FASHION

'푸른 뱀의 해'에 찰떡인 주얼리가 있다고?

이탈리아 로마에서 만난 불가리 세르펜티 컬렉션.

프로필 by 이진선 2025.01.21

세르펜티 라는 우주


1940년대에 탄생해 진화를 거듭하며 불가리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세르펜티’는 메종의 대담한 창의성을 대변한다. 2025년, 푸른 뱀의 해를 맞아 그 의미를 더하는 세르펜티 컬렉션을 온전히 탐구하고자 이탈리아 로마로 향했다.

2023년 세르펜티 75주년을 기념해 출간한 <Beyond Time>에 실린 세르펜티 브레이슬릿 워치들.

2023년 세르펜티 75주년을 기념해 출간한 <Beyond Time>에 실린 세르펜티 브레이슬릿 워치들.

세르펜티(Serpenti)는 이탈리아어로 ‘뱀’을 뜻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에서 뱀은 부활의 힘을 가진 영물로 묘사되었는데, 대표적인 예가 아폴로의 아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의술을 가르쳐준 뱀에 대한 신화다.(뱀이 휘감고 있는 그의 지팡이는 훗날 현대 의학의 상징이 되었다.) 또 무한한 원을 그리며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의 형상을 가리키는 ‘우로보로스(Ouroboros, 꼬리를 삼키는 자)’는 끊임없이 부활하는 에너지, 윤회사상을 표현한다. 이처럼 풍성한 문화적 의미를 지닌 세르펜티는 매혹적인 영감의 원천으로 수많은 예술가와 작가, 시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해왔다. 그리고 1940년대, 불가리는 역사적인 상징성을 가진 뱀의 강렬한 힘에 착안해 그 역동적인 형상을 재해석한 브레이슬릿 워치를 선보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메종의 아이콘이 된 ‘세르펜티’ 컬렉션의 탄생이다.
작년 11월 말, 을사년 푸른 뱀의 해를 맞아 그 의미를 더하는 세르펜티 컬렉션을 더욱 깊이 탐구하고자 이탈리아 로마로 떠났다. 캄포 마르치오 지역의 심장부인 아우구스투스 황제 광장에 자리한 불가리 호텔 로마에서 시작된 이번 여정은 불가리의 하이주얼리 연구소 탐방, 비아 콘도티 10 스토어에 자리한 헤리티지 갤러리인 불가리 도무스(Domvs, 라틴어로 ‘집’을 의미) 전시 관람을 비롯해 세르펜티의 다양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세르펜티 브레이슬릿에 적용되는 투보가스(Tubogas) 공법으로 완성한 헤리티지 피스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가 하면 최근 공개된 ‘세르펜티 인피니토(Serpenti Infinito)’ 캠페인을 VR로 체험하니 그야말로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느낌이었달까. 시내 곳곳에 자리한 세르펜티의 역사와 발자취를 찾아 나선 여정의 마지막 순서, 로마 가이드 투어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아울러 이번 트립이 더욱 특별했던 건 불가리 주얼리 부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루치아 실베스트리에게 메종의 다양한 보석을 소개받을 수 있는 ‘젬스테이블(Gemstable)’ 프로그램이 있었기 때문. 루치아의 오피스로 초대된 소수의 프레스는 들어서자마자 테이블 가득 놓인 보석과 스케치, 화려한 하이주얼리 피스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오는 2월에 공개될 새로운 세르펜티 하이주얼리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그녀에게 무엇에 중점을 두고 디자인했는지 묻자 “세르펜티 디자인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초점이자 큰 도전은 미래를 향한 창의성을 투영해 항상 새로운 제안을 제시함으로써 이 상징이자 브랜드의 심벌인 뱀에 대한 변화무쌍한 본질을 강조하는 것”이라 답했다. 또 세르펜티 디자인의 핵심 과제는 혁신과 전통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라 덧붙였다. 다음은 루치아와 나눈 불가리와 세르펜티, 그리고 주얼러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잔 바올로 바르비에리가 촬영한 모델 아만다 웰시의 캠페인 컷. 르펜티 로마 투어 중 팔라초 바르베리니에서 발견한 뱀 형상의 문 손잡이. 하이주얼리 연구소에서 만난 새로운 세르펜티 하이주얼리 네크리스. 세르펜티 브레이슬릿의 스케치 이미지.
2025년은 뱀의 해, 세르펜티 컬렉션이 그 어느 때보다 빛날 기회일 것이다. 어떤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나? 뱀의 해는 불가리와 세르펜티의 본질적인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자 도전이다. 먼저 1월에 세르펜티 주얼리 라인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새로운 피스를 출시해 세르펜티의 시대를 초월한 영원한 매력을 강조했다. 동시에 새롭게 공개할 세르펜티 하이주얼리 네크리스는 탁월한 보석 선택과 각 피스의 절충주의적 특성으로 감탄을 자아낼 것이다. 이 모든 작업은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피부를 변화시키고 매혹을 선사하는 세르펜티의 다재다능한 정체성을 보여준다. 2023년엔 세르펜티의 75주년을 기념해 국제적인 아트 이니셔티브를 통한 새로운 도전, «세르펜티 팩토리»를 시작했다. 이는 각국을 순회하며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각자의 관점에서 뱀을 표현하도록 한 매우 매력적인 프로젝트다. 2025년 뱀의 해를 맞아 이 프로젝트는 뱀이라는 아이콘의 무한한 잠재력을 이야기하기 위한 일련의 전시 형태로 계속될 예정이다. ‘세르펜티 인피니토’로 소개될 새로운 콘셉트는 상징적인 디자인뿐만 아니라 세르펜티가 지닌 다양한 문화와 해석, 예술적 표현을 연결하는 상징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해준다.
뱀은 강력한 상징성을 지녔다. 세르펜티 컬렉션을 착용함으로써 동시대 여성들이 어떤 기운을 받길 바라는가? 세르펜티는 힘, 대담함, 매혹, 독립성, 결단력 등을 표현하며 강인하고 영향력 있는 여성과 밀접하게 연결된, 아이콘이 되어왔다. 세월이 흐르며 이 디자인은 외형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여성의 성장과 자기실현의 여정에 동행했고 상징성을 가진 아이콘으로 진화했다. 세르펜티는 착용자의 몸을 감싸며 끊어질 수 없는 깊은 연결고리를 형성한다. 현대적 컬렉션인 세르펜티 바이퍼, 세르펜티 팔리니 그리고 최근에 출시된 세르펜티 투보가스 컬렉션은 낮부터 밤까지, 어떤 환경과 상황에도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또한 불가리의 세르펜티 하이주얼리는 여성의 대담함과 강인함을 투영해 착용자가 지닌 매혹적인 매력을 발산하게끔 해준다.
이번 트립에서 가장 좋았던 경험 중 하나는 당신이 일하는 공간을 직접 둘러볼 수 있었던 것이다. 사무실 벽을 가득 채운 다양한 사진, 일러스트가 인상적이었다. 나는 소중한 순간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에 둘러싸여 있는 것을 좋아한다. 여기까지 오게 된 모든 이벤트, 사람, 창작물 등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여정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 사무실에 들어오면 나와 나의 열정 그리고 우리가 이루어온, 앞으로도 계속해서 만들어갈 멋진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한 특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런 공간과 분위기는 나에게 에너지를 충전해주고 힘을 실어주며 창의력을 불태울 수 있는 원천이 된다.
18세에 이 세계에 입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전공도 생물학이었다고 하던데 보석과 사랑에 빠지게 된 계기가 있나? 아직도 미스터 불가리의 사무실에 처음 들어섰을 때 테이블 위에 놓인 다양한 색상과 형태의 보석을 마주했던 순간이 생생히 기억난다. 그건 첫눈에 반하는 사랑과도 같았다. 다양한 색상과 조합을 실험하고 새로운 창조물을 상상하고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본능이었다. 불가리 형제들은 이러한 내 성향을 바로 알아봐주었고 그들의 기술을 가르쳐주기로 결정했다. 그 가르침에 영원히 감사할 것이다.

세르펜티 75주년 기념북 <Beyond Time> 속 이미지. 새롭게 공개된 세르펜티 하이주얼리 컬렉션의 네크리스와 브레이슬릿 워치 새롭게 공개된 세르펜티 하이주얼리 컬렉션의 네크리스와 브레이슬릿 워치 불가리 주얼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루치아 실베스트리. 나보나 광장 중심에 자리한 콰트로 피우미 분수의 뱀 조각상.
2013년에는 메종의 주얼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었다. 과거에는 그 분야에서 일하는 여성이 많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지금의 당신을 있게 한 원동력은 무엇인가? 내 여정에서 언제나 중심이 된 키워드는 열정, 희생, 결단력이었다. 사실 이 길이 쉬운 길은 아니었다. 이 분야는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적인 세상이었고 그 안에서 자리를 찾고 존중과 신뢰를 얻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멈추지 않는 열정, 끝없이 배우고자 하는 호기심과 배움에 대한 갈망이 나를 버티게 했고 모든 도전을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겸손하게 경청하고 배우는 자세를 갖추는 것은 물론 동시에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일어설 수 있는 강인함 또한 필요했다.
‘스톤 헌팅(Stone Hunting)’은 불가리가 가진 가장 강력한 노하우가 아닐까 싶다. 2022년엔 그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더 드림(Inside the Dream)>을 공개하기도 했다. 스톤 소싱은 창작 과정의 핵심적인 단계다. 여행을 통해 얻는 영감이 가장 크고 강렬하다. 나는 여행 속에서 수집한 풍경, 문화, 다양한 발견으로부터 깊은 영감을 얻는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젬스톤 구매 디렉터를 겸직하는 것은 이 분야에서 정말 독특한 일이며, 이를 통해 창작 과정의 가장 초기 단계부터 시작해 보석을 선택하고 작업하는 모든 과정을 함께할 수 있다는 점이 나에게는 매우 자랑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물론 각 단계에서 나와 함께 일하며 끊임없이 아이디어와 제안을 주고받는 훌륭한 팀들의 지원도 늘 받고 있다. 뛰어난 품질의 젬스톤을 선택하는 주요 기준은 컬러, 투명도, 그리고 모양과 크기 사이의 비율을 의미하는 컷이지만 보석의 시각적인 매력도 중요한 요소다. 무엇보다 항상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직접 만져보고 그 에너지를 느끼는 것이다.
하나의 주얼리에 담긴 다양한 보석을 보고 있노라면 그 컬러 조합에 감탄할 때가 많다. 그런가 하면 지난번 ‘에테르나’ 하이주얼리 컬렉션의 세르펜티 네크리스처럼 압도적인 다이아몬드 세팅의 피스들을 선보이기도 한다. 컬러풀한 주얼리와 화이트 다이아몬드 주얼리를 구상함에 있어 고려하는 바가 다른가? 다이아몬드와 유색 보석 중 어떤 것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나의 창작 과정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먼저 유색 보석으로 작업할 때는 원석 그 자체에서 프로세스가 시작된다. 보석은 주요한 영감의 원천이며, 색상과 형태, 그리고 보석에서 받는 느낌과 감정을 바탕으로 디자인을 구체화시킨다. 보석을 보자마자 그 에너지에서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거기서부터 작품이 만들어지는 거다. 반면에 다이아몬드가 중심이 되면 그 과정은 콘셉트에서 시작한다. 먼저 작품의 디자인, 구조, 전체적인 구성을 구상하며 구체적인 형태를 그린다. 또한 어떤 접근방식을 택하든 디자인 팀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협력한다. 모두가 완벽한 결과를 얻기 위해 프로세스 전반에 걸쳐 협업하고 아이디어를 교환하며 완성해낸다.
현재 가장 희귀한 보석은 무엇인가? 그리고 당신이 생각하기에 점점 더 가치가 상승할 것으로 예측되는 보석은 무엇인가? 현재 가장 희귀한 보석은 루비로, 그 가치는 희귀도에 정확히 비례하여 상승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모든 유색 보석의 가치는 앞으로 몇 년간 꾸준히 증가할 전망이다. 이는 유색 보석의 활용 범위가 점점 더 넓어지고 있으며, 서로 다른 유색 보석들과 함께 사용했을 경우 그 창조적 잠재력이 높이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좀 더 개인적인 질문을 해보려 한다. 스스로를 위한 주얼리를 만들기도 하나? 물론이다. 특히 링을 디자인하는 걸 매우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칵테일 링과 이어링.
당신은 굉장히 우아하고 패셔너블한 여성이기도 하다! 어떤 데일리 룩을 즐기는지, 또 그럴 땐 어떤 주얼리를 자주 착용하는지 궁금하다. 내 스타일을 표현하자면 ‘시크하면서도 클래식하다’고 할 수 있겠다. 주로 셔츠, 재킷, 팬츠를 즐겨 입는데 여기에 내가 사랑하는 주얼리를 레이어링하여 개성을 더한다. 컬러풀한 주얼리와 모네떼, 투보가스, 세르펜티 제품을 다양한 길이와 라인으로 믹스 매치하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주얼리, 특히 브레이슬릿 없이는 절대 외출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화로움’이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삶에 있어 주얼리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주얼리는 내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다. 난 단순히 주얼리를 사랑하는 것을 넘어, 그것이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종종 이렇게 말하곤 한다. 누군가가 주얼리를 착용하고 조합하는 방식을 보면 그의 기분이나 스타일을 이해할 수 있다고.

Credit

  • 사진/ ⓒ Bvlgari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