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옷에 진심을 담는 디자이너, 파올로 카르자나
사라반드 스튜디오를 떠나 런던의 중심 패링던에 새로운 둥지를 튼 파올로 카르자나를 만났다. 단순히 해야 하기 때문에, 혹은 상업적인 이유가 아닌, 정말로 믿고 의미와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내놓고 싶기 때문에 컬렉션을 만든다는 그. 패기와 열정, 그 너머에 인간적인 따뜻함을 지닌 파올로와 나눈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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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올로 카르자나 웨일스(더 정확하게는 카디프)에서 온 디자이너 파올로 카르자나(Paolo Carzana)라고 한다. 2014년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학으로부터 장학금을 받고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디자이너로서의 여정의 첫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당시에 가장 가고 싶은 대학은 이곳 하나뿐이었다. 젊은 디자이너들이 자신만의 방식대로 기량을 펼치고 주목받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러고 싶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패턴 커팅부터 리서치, 트왈까지. 디자이너로서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은 여기에서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체성을 찾은 것도 바로 이 시기다. 월터 반 베이렌동크(Walter Van Beirendonck)에서 인턴을 하면서 나만의 레이블을 만들 수 있다는 응원과 자신감을 얻었다. 학사 시절(2014~2018) 때만 해도 대다수가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그리 크지 않았다.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많은 것을 스스로 배우고 터득해야 했지만 그래서 더 빠져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새로운 길이었으니까. 흥미로웠고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환경을 생각하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고 9년째 비건으로 지내고 있다.
하퍼스 바자 2024 LVMH 파이널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수상을 놓쳐 아쉬운 마음도 있을 것 같은데, 소감이 어떠한가?
파올로 카르자나 아쉬움은 전혀 없다. 오히려 심사위원들에게 내 작업에 대해 설명할 기회가 주어진 것을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하퍼스 바자 그렇다면 심사위원들이 어떤 이유에서 당신을 선택했다고 생각하나?
파올로 카르자나 나는 정말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작업을 하고 있다. 다른 디자이너를 참고하지 않고, 내가 직접 패턴을 만들고, 바느질하고, 염료도 직접 만든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내 손을 거쳐 간다. 또한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이다. 유기농 알로에 베라 섬유, 앤티크 실크 모두 럭셔리 패션에서 본 적도 없는 소재다. 다른 것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행위야말로 앞으로의 ‘모던 럭셔리’를 정의하는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작업할 때는 그것을 이해하고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익숙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파올로 카르자나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겠다. 우선 작업의 퀄리티. 모든 기술은 하면 할수록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원단 커팅, 재단 방법, 스티칭, 염색, 스토리텔링…. 모든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고 새로운 것을 탐색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분야의 기술자가 되지 않는가. 무엇보다도 가장 크게 바뀐 점은 나에게 든든한 팀원들이 생겼다는 사실인 것 같다. 관계에 믿음이 더해지면 얼마나 큰 힘을 내는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들이 있기에 모든 것이 가능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시즌은 처음으로 뉴젠(Newgen, 뉴젠 디자이너는 동일한 공간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쇼를 펼친다) 스페이스에서 벗어나 완전히 다른 공간, 그것도 내 집에서 컬렉션을 선보였다. 조명은 이웃집의 외벽에 부착해 비춰야 했고, 정원은 다시 가꿔야 했으며 쇼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던 우물은 원래 있던 것이 아니라 이 컬렉션을 위해 새로 만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헤어와 메이크업부터 퍼포먼스 디렉팅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컬렉션을 위해 힘써줬는지…. 다시 한 번 그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하퍼스 바자 당신의 집 뒷마당에서 쇼를 열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파올로 카르자나 그래야만 했다. 다른 생각은 나지 않았다. 어쩐지 이번 컬렉션은 다른 어떤 곳보다 이곳이어야만 한다고 느꼈다. 왜라고 묻는다면 ‘그럴 운명(meant to be)’이라고밖에 답할 수 없다. 정말 그랬으니까.
하퍼스 바자 그렇게 공개된 2025 S/S 컬렉션에 대해 소개해준다면?
파올로 카르자나 이번 컬렉션에선 인간의 허영심, 다른 이들보다 나를 더 아끼고 또 아끼는 이기심, 그리고 그것이 지구에까지 미치는 현실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우리는 더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그렇게 살아야만 미래가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How to Attract Mosquitoes’는 일종의 메타포다. 모기라는 존재가 그렇지 않나.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지, 어떠한 방법으로 이들을 죽일 수 있는지만 생각한다. 그래서 쇼의 첫 시작을 ‘나르시스’로 보여주고자 했다. 나르시스는 인간의 허영을 가장 잘 표현한 인물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는 물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지만 빠져들지 않는다. 등을 지고 걸어 나와 런웨이를 서서히 걸어가면서 다른 모델들이 걸어가는 길을 비춰준다. 완벽한 메시지를 전달한 퍼포먼스였다.
하퍼스 바자 컬렉션 이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매 시즌 컬렉션에 이색적인 이름을 붙이는 이유가 있다면?
파올로 카르자나 나의 모든 컬렉션은 제목에서부터 출발한다. 어떤 컬렉션이 펼쳐질지는 제목에 달려 있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긴 가장 완벽한 제목을 찾기 위해 아주 많은 시간을 쏟는다. 벽에 적어보기도 하고, 떠오르는 단어를 마구 써 내려가기도 한다. 제목이 확실해지기 전까진 색상이나 질감, 연약하고 강인한 정도, 옷을 입은 사람들의 움직임이 머릿속에서 잘 그려지지 않는다. 아티스트가 앨범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하나의 완전한 작품이 나올 때까지 집중하고 파고든다. 어떤 제목은 몇 년 동안 생각해왔던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내 첫 번째 데뷔 컬렉션 제목은 2018년 대학 재학 시절에 스케치북에 적어 놓았던 것이었지만 2022년에야 사용되었고, ‘Melan-chronic Mountain’은 2021년에 떠올린 제목이었지만 올해가 되어서야 비로소 세상에 나왔다. 전혀 즉흥적이지도 않고 흥미롭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에겐 제목을 생각하는 것부터가 작품의 시작이다.
하퍼스 바자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은 2024 S/S 컬렉션 ‘My Heart Is a River for You to Bend’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어디에서 영감을 받은 것인가?
파올로 카르자나 내 속마음 아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컬렉션이었다. 음악 프로듀서였던 소피(Sophie)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코로나19 팬데믹에 그녀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마지막 다섯 개의 룩이 검은 색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많은 사람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나. 시기가 그랬다. 그래서 진심으로 그녀를 기리는 시간을 마련하고 싶었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정말 큰 의미를 둔다. 디자인이 세상의 전부고 내 인생 그 자체다.
하퍼스 바자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다수의 신진 디자이너 가운데서도 활약이 돋보인다. 모두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힘쓰고 있는데, 당신은 어떤 방식을 추구하는가?
파올로 카르자나 내 작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구를 위하는 행위로 가득하다. 내가 사용하는 유기농 대나무 실크, 유기농 면, 시장에서 구한 앤티크까지, 모든 게 그 목표와 맞닿아 있다. 유기농 면이나 텐셀을 사용하고, 단추는 너트나 빈티지를 찾아 해맨다. 모든 요소가 환경을 생각한 선택이다. 특별한 고민 없이 그냥 이렇게 해야 한다고 느낀다. 패딩 속을 채우는 솜도 유기농 면, 대나무, 삼으로 만들고 고무줄조차 천연 고무를 사용한다. 모든 구성 요소가 지구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나는 항상 자연과 함께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나의 철학이다. 패션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려면 반드시 지구와 함께 가야 한다고 믿는다. 진정한 ‘모던 럭셔리’는 지구는 물론 우리의 건강에까지 이로운 소재를 사용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옷이 우리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선 이야기하지 않지만, 나는 이 부분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나무로 만든 원단은 항균 효과가 있고, 유기농 면은 화학물질이 없어서 피부에 닿아도 안전하다. 텐셀은 통기성이 뛰어나다. 내가 사용하는 모든 소재는 사람과 지구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그래서 폴리에스터를 사용하지 않는다. ‘재활용’ 폴리에스터도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건축이나 가정용품에 사용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몸에 닿는 옷은 건강에 좋고 환경에도 이로워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염색도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천연 재료로 한다. 식물로만 만들 수 있는 색상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큰 축복이다. 사람들은 종종 이런 방식이 제한적이지 않냐고 묻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자연과 함께 창조하는 것은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고, 그 결과물은 공장에서 화학적으로 만든 것보다 훨씬 특별하고 의미 있다.
하퍼스 바자 그 과정에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든가?
파올로 카르자나 긍정적인 영향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힘든 점은 없다. 나는 모든 디자이너, 패션 하우스가 지구를 위해 긍정적인 방식으로 일할 수 있다고 정말로 믿는다. 의심의 여지 없이.
하퍼스 바자 지속가능성을 위해 새로운 방법을 찾는 여정이 오히려 당신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다. 힘들기보단 즐기는 것 같은데.
파올로 카르자나 항상 그래 왔다. 나는 끊임없이 연구하는 사람이다. 무엇이 더 나을지, 어떻게 대체할 수 있는지, 안감은 폴리에스터 대신 어떤 걸 써야 할지, 패딩엔 어떤 걸 채워야 할지, 어깨 패드의 대안이 있을지, 지구에 해롭지 않은 게 무엇인지 매일 연구하고 개발한다. 정말 멋진 일이고, 힘들기보다 행복하다.
하퍼스 바자 맥퀸이 설립한 재단에 소속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파올로 카르자나 리(Lee Alexander McQueen)에 관해 이야기하게 되어 기쁘다. 팬데믹 동안 나는 고향인 카디프로 돌아갔고 그때 사라반드 재단(Sarabande Foundation)에 지원했다. 마치 그가 나를 내려다보며 어서 빨리 지원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만약 그때 뽑히지 못했다면 내 인생은 정말 달라졌을 거다. 정말 외로웠다. 카디프에는 아무도 없었고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스튜디오(사라반드 재단은 젊은 디자이너를 위해 작업 공간을 지원했다)를 얻을 수 있었고 그 덕에 내 이름을 건 브랜드를 론칭할 수 있었다.(사라반드 스튜디오를 얻은 건 내가 브랜드를 론칭하기 전이었다). 이런 말 하기에 조심스럽지만, 요즘엔 우리가 하는 일의 의미가 점점 퇴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정말 큰 의미를 둔다. 디자인이 세상의 전부고 내 인생 그 자체다.
하퍼스 바자 당신이 지속적으로 컬렉션을 선보이는 데 있어 가장 큰 원동력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파올로 카르자나 끝없는 아이디어. 내가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의 표면조차도 아직 건드리지 못한 상태이다. 내가 하는 모든 작업, 컬렉션에 관해서는 정말 구체적인 생각과 그 뒤엔 강력한 추진력이 있다. 매우 감정적이고 솔직하며 그 순간에 충실한 작업이다. 역사적 참고 자료나 예술작품을 보더라도 현재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개인적인 경험을 엮어내는 도구일 뿐 결국 컬렉션을 만들어내는 건 ‘내 생각’이다. 그래서 내가 창조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좋든 나쁘든, 나는 내 감정을 작품으로 표현한다.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능력이고, 그렇게 내 생각과 감정의 흐름을 따라간다.

디자이너 파올로 카르자나.
파올로 카르자나 글쎄. 이 질문은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야 할 것 같다. 이번 컬렉션의 처음부터 끝까지 걸린 시간은 5주. 그전의 컬렉션도, 그전도, 그전에도 컬렉션이 완성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고작 4~5주였다. 나에겐 작업에 막힐 따위의 여유가 없다. 컬렉션 작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이거나, 생계를 꾸리고 생활을 유지하는 데 집중해야 할 때조차도 머릿속에서는 항상 작업을 생각하고 있다. 지금 당장만 해도 만들고 싶은 컬렉션이 20개쯤 떠오른다. 그래서 절대 막힐 수가 없다. 내가 하는 일에 내 마음과 영혼을 쏟아붓기 때문에 만약 내가 막혔다면 그건 내가 죽은 거나 다름없다.
하퍼스 바자 당신의 컬렉션은 실험적이기도 하지만 그 바탕엔 서정적인 무드가 늘 존재하는 것 같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파올로 카르자나 솔직함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사실 나는 인생에서 아주 어두운 시간을 겪었다. 한 번도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그리고 앞으로도 안 하겠지만, 그 무거웠던 시간과 심해보다 깊은 어둠을 아름다움으로 바꾸는 법을 찾았다. 그게 컬렉션에도 투영되나 보다. 내 작업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을 것 같은 점이 있다. 내 모든 작업에는 ‘몸’에 대한 진지한 고려가 담겨 있다는 사실. 모든 컬렉션을 살펴보면, 신체에 대한 깊은 배려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 조각처럼 구조적 형태 혹은 딱딱한 마네킹을 위한 옷이 아니라, 입는 사람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떻게 느끼게 할 수 있을지를 항상 고민한다. 그리고 그 부분이 명확히 드러나길 바란다. 나는 매번 새로운 것을 좇기에 실험적이다. 이전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참고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새로운 소재를 다루는 방식, 새로운 실루엣을 만드는 방식, 새로운 텍스타일을 활용하는 방식, 새로운 구조를 만드는 방식. 이 모든 것은 현재와 미래를 위한 것이다.
하퍼스 바자 이제는 조금 가벼운 얘기를 나눠보자. 런던에서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를 한 곳 소개해준다면?
파올로 카르자나 세인트 호머스 병원(St. Homers Hospital). 나의 아버지가 태어난 곳이다.
하퍼스 바자 하루의 루틴 중 절대 빼먹지 않는 것이 있다면?
파올로 카르자나 에스프레소, 파스타, 레드 와인, 담배 그리고 물. 날마다 함께하는 5인방이다.
하퍼스 바자 굉장히 이탤리언스럽다! 마지막으로 파올로 카르자나를 3개의 단어로 정의해본다면?
파올로 카르자나 고통, 치유, 희망. 내 작업에 늘 투영되는 키워드이기도 하지만 인생의 이치이기도 하지 않는가.
Credit
- 인터뷰·번역/ 한지연(런던 통신원)
- 사진/ Hyeongju Kim,Paolo Carzana, Hyeongju Kim(디자이너 포트레이트)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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