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올가을 트렌드는 '드뮤어'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절제된 아름다움 속에서 빛나는 배려의 미학.

프로필 by 윤혜연 2024.10.22
우리는 지쳤다, 분명히. SNS의 홍수로 난잡하게 뒤섞여버린, 흔히 ‘~코어’라고 붙여지는 몰개성적 트렌드, 요란스럽고 화려한 스타일링에 피로감을 느낀다. 지난달 한 화보 촬영장에서 만난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여타 촬영에 대해 “‘투 머치’ 콘셉트는 이제 그만하고 싶다”며 푸념을 늘어놓기까지 했다. 그런 의미에서 ‘드뮤어(demure)’라는 움직임이 구세주(?)처럼 환호받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닐 터다.
최근 해외 매체나 SNS에서 자주 보이는 ‘드뮤어’라는 표현은 ‘얌전한’ ‘조용한’을 의미하는 영단어다. 의역하자면 ‘남들의 주의를 끌지 않는 사람’ 정도가 되겠다. 이 단어는 지난 8월 6일 틱토커 줄스 르브론(Jools Lebron)의 게시글에 등장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직장에서 얌전하고, 겸손하고, 공손한 태도를 유지하는 방법’이라는 38초짜리 영상 속 그는 “제 출근용 메이크업이 보이나요? ‘드뮤어’합니다. 또 사려 깊죠. 저는 눈을 초록색으로 화장하고 출근하지 않아요. 광대처럼 보이지 않으려 하죠”라고 말한다. 출근할 땐 ‘투 머치’를 지양하고 튀지 않는 태도를 유지하라는 골자다. TPO를 무시하고 무분별하게 꾸미는 스타일을 지적하는 뉘앙스다. 이후 전 세계 네티즌은 무엇이 드뮤어한지 토론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줄스의 대사가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
덜어낼수록 아름다운 ‘드뮤어’. 지난해 유행한 ‘올드머니’ 트렌드와 겉모습은 비슷해 보이는데, 어떻게 다른 걸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올드머니는 스타일, ‘드뮤어’는 태도 이야기다. 올드머니는 로고를 외관에 노출하지 않은 채 고급스러운 소재와 디테일 디자인이 특징으로, 고소득 층의 지위를 대변했다. 반면 ‘드뮤어’는 단순한 패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을 존중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고급스러운 스타일을 표방하는 게 아니다. 착용자의 편안함을 중요 가치로 두며, 그렇기 때문에 화려하고 과감한 장식을 피하는 게 기본 공식이다. 자타 모두를 위해 절제의 미덕을 항상 상기해야 한다.
하늘이 높아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자 패션 피플은 본격적으로 드뮤어한 가을을 보내고 있다. 테일러드 코트와 카디건, 재킷 등 단정한 아이템에 주목한 것. 톱 모델 비토리아 세레티는 블랙 맥시 코트 안에 군더더기 없는 화이트 탱크 톱, 데님 진을 매치했으며, 배우 다코타 존슨은 블랙 카디건과 데님 팬츠를 선택했다. 철저히 계산한 듯 우아하게 떨어지는 이들의 팬츠 실루엣이 지적인 매력까지 자아낸다. 한편 이 시대의 패션 아이콘 헤일리 비버와 벨라 하디드는 룩과 백, 슈즈를 한 가지 컬러 팔레트로 통일했다. 원 컬러톤 룩은 차분히 정돈됐어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한다. 블랙 터틀넥 톱과 그레이 팬츠, 로퍼 등 가장 기본적인 세 가지 아이템만으로 힘 있는 스타일링을 완성한 니콜 키드먼은 또 어떤가. 아무 액세서리 없이 그야말로 ‘절제’의 미학을 완벽히 소화한 모습이었다.
드뮤어 룩은 2024 F/W 런웨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더 로우는 아무 무늬 없이 풍성한 A 실루엣 트렌치코트 두 벌을 레이어드해 조용한 존재감을 뿜어내는가 하면, 그레이 코트를 와이드 숄더로 디자인해 중후한 분위기를 더했다. 보테가 베네타는 단정한 니트 톱 안에 블랙 패턴 이너를 레이어드해 차분한 포인트 스타일링을 완성했고, 타미 힐피거는 셔츠의 넓은 칼라를 재킷 밖으로 빼 위트를 더했다. 레지나 표는 데님온데님 룩을 선보이면서도 바지 밑단을 부츠 안으로 시크하게 넣고, 어깨에는 블랙 스웨터를 걸쳐 룩 전반에 균형감을 선사했다. 토즈의 정적인 셔츠 레이어드 역시 참고할 만하다. 메이크업 또한 마찬가지다. 코스, 르메르, 로로피아나, 막스마라 등 드뮤어한 런웨이를 선보인 하우스는 대부분 누디한 뮤트 컬러를 활용했다. 눈썹은 깨끗하게 정리한 뒤 아이브로 마스카라로 쓱쓱 빗어주기만 했다. 또 다수가 마스카라를 과감히 생략했다. 뭐든 힘을 빼야 드뮤어하니까.
런웨이와 셀러브리티 룩에서 살펴봤듯, 드뮤어 스타일링은 어려울 게 없다. 절제가 핵심인 만큼 여러 아이템을 레이어드하기보단 간단히 조합해야 한다. 단, 그렇기 때문에 아이템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 셔츠나 블레이저 등 오피스 룩에 어울릴 법한 아이템과 매치하는 게 쉽다. 팬츠는 다리에 딱 맞는 실루엣을 지양해야 한다. 워싱은 너무 과하지 않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전반적 컬러 조합을 최소화하는 게 좋다.
패션계는 지쳤다. 월, 아니 주 단위로 바뀌는 트렌드가 연속인 요즘. 이달 칼럼을 통해 드뮤어한 룩을 입으라며 또 다른 트렌드를 권하고 싶지 않다. 다만 ‘드뮤어’의 쟁점적 미덕인 절제와 기본을 되새겨보자고 제안한다. 쏟아지는 트렌드 홍수 속 기본으로 돌아가 자신만의 개성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거다. 옷을 입는 행위가 주는 순수한 즐거움을 다시금 누려보길 바라며!

Credit

  • 사진/ ⓒ Getty Images,Launchmetrics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