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대세로 떠오른 스커트

최근 몇 년간 팬츠가 런웨이를 휩쓸더니 이젠 스커트가 완벽한 대세로 떠올랐다. 이에 자칭 팬츠 애호가인 <바자> US의 패션 뉴스 디렉터가 자신도 스커트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을지 실험해보았다.

프로필 by 윤혜영 2024.09.12
2024 가을 런웨이의 스커트 룩. (첫 번째 줄 왼쪽부터) 드리스 반 노튼, 준야 와타나베, 디올. (두 번째 줄 왼쪽부터) 토미 힐피거, 마이클 코어스, 아크리스, 몰리 고다드. (세 번째 줄 왼쪽부터) 미우미우, 바쉐바, 초포바 로위나, 더 로우, 마리아 맥마누스. (마지막 줄 왼쪽부터) 마르니, 루아르, 발렌티노, 보테가 베네타, 루이 비통, 브랜든 맥스웰.

나는 늘 스커트와 애증의 관계였다. 물론 아예입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스커트는 지금껏 내 삶에 있어 중요한 시기마다 분명 존재했으니까. 10대 시절 애버크롬비 앤 피치(Abercrombie & Fitch)의 러플 코튼 미니스커트가 그랬다. 우리 부모님은 그 나이에 내가 왜 그런 걸 입게 놔뒀는지, 또 가톨릭 학교에서는 대체 어떻게 용인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나의 취향은 서서히 바뀌어갔다. 고등학교 때는 조금 더 성숙해졌다. 물론 익스프레스에서 구입한 버버리의 타탄 플리츠 미니스커트와 신시아 로리의 비즈 장식 저지 미니스커트(제니퍼 로페즈가 ‘Love Don’t Cost a Thing’을 부를 때 입었던 그 버전이다)만큼은 고수했다. 대학 시절에는 이자벨 마랑의 허리를 강조하는 디자인의 펄럭이는 프린트 스커트에 빠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태닝용 블러셔와 값싼 탱크톱, 볼드한 목걸이, 그리고 오픈 토 플랫폼 힐과 함께 매치했다. 일명 나의 ‘가십 걸’ 시대였다.
그러던 어느 순간, 첫 직장을 얻고 지금껏 커리어를 이어오면서 나는 스커트를 버리고 팬츠 애호가가 되었다. 팬츠는 말 그대로, 아니 비유적으로도, 나를 다잡아주고 자신감을 가득 채워주었다. 게다가 최근엔 너무나 훌륭한 피스들이 등장하기도 했고. 더 로우의 와이드 팬츠, 보테가 베네타의 가죽 진, 로에베의 과장된 하이웨이스트 팬츠, 그리고 콜리나 스트라다의 광기 어린 카고 팬츠가 그 예다.
하지만 지난 시즌부터 런웨이에 멋진 스커트의 향연이 이어지고 있다. 뉴욕부터 볼까. 루아르(Luar)의 디자이너 라울 로페즈는 크리스찬 디올의 클래식 ‘뉴 룩’ 실루엣을 비틀어버린 듯한 엄청난 볼 스커트를 선보였다. 런던의 몰리 고다드는 튀튀 스커트를 루스한 스웨터와 매칭하기도 했다. 밀라노는 또 어떤가. 보테가 베네타의 마티유 블라지는 핀턱이 잡힌 가죽 A라인 스커트와 럭셔리한 버튼 장식 블라우스를 선보였는데 그것은 그야말로 보스다운 보스 룩이었다. 흔히 생각하는 여성스러운 보스 느낌이 아닌. 파리로 가보자. 루이 비통의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선보인 부푼 헴라인과 프린지 장식 스커트는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프라다 여사의 모던한 미디스커트와 기다란 오페라 장갑도 마찬가지. 클래식 실루엣을 한껏 비튼 준야 와타나베의 스커트는 검정 가죽 벨트를 두른 채 거리를 활보하고 싶도록 만들기도 했다. 또 드리스 반 노튼 쇼를 보고 프린트가 담긴 단정한 펜슬 스커트에 셔츠를 입은 내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왼쪽부터) 1960년 디자이너 메리 퀀트. 1994년 봄 컬렉션의 아이작 미즈라히. 1995년 샤넬 봄 컬렉션. 1999년 장 폴 고티에 가을 쇼. 2007년 미우치아 프라다. 2022년 드리스 반 노튼의 봄 컬렉션.

스커트는 최근 레드 카펫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5월에 열린 칸영화제에서 헌터 샤퍼는 프라다의 모노크롬적인 화이트 앙상블을 입었다. 레트로한 헤드 스카프와 앞부분이 마무리가 덜 된 듯한 랩 스커트가 프렌치 리비에라 스타일의 화려함을 상기시켰다. 파리지앵 팝스타이자 모델인 이설트(Yseult)의 주문제작 디올 스커트수트(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크리스찬 디올의 혁명적인 뉴룩을 보다 대중적으로 변모시켰다)는 11일 동안 진행된 행사에서 가장 눈에 띈 스타일 중 하나였다.
팬츠를 선호하는 나에게 편집부 에디터는 한 가지 과제를 주었다. 스커트를 다시 입어보라는 것. 루아르의 라울 로페즈는 이런 상황에 설득력 있는 얘기를 했다. “스커트의 활용도는 정말 강력해요. 스타일에 다소 보수적인 여성들이 입는 긴 데님 스커트와 무릎 길이의 펜슬 스커트는 2000년대 오피스 룩 트렌드에 다시 불을 지폈죠. 그리고 사실 사람들은 미니를 비공식적 자리에서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즐겨 입어왔고요.”
스커트는 문화적인 변곡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1960년대 미니스커트의 발명은 당대의 성적 자유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크리스찬 디올이 1947년 봄 컬렉션에서 뉴룩을 처음 소개했을 때 여성들은 허리를 단단히 강조한 바 재킷과 풀 스커트라는, 새롭고도 보디컨셔스한 옷 입기 방식을 제안받았다. 그것은 많은 여성들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일터로 나갔던 전후 여성성의 단적인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1984년, 장 폴 고티에는 런웨이에서 체크 스커트를 입은 남성과 여성을 등장시키며 젠더에 불순응하는 일련의 행위에 앞장섰다. 이는 패션이 그 사이 더 포용적으로 변모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사례였다. 오늘날 최신 버전은 초포바 로위나의 엠마 초포바와 로라 로위나가 담당한다. 그들은 업사이클링된 펑크적이고 포크적인 플리츠를 선보이며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이는 실제로 새 시대의 ‘쿨함’으로 인정받고 있다.
프라다 여사로 말할 것 같으면 가장 오랜 시간 모던한 스커트를 선보여온 사람이다. 그녀는 항상 스커트를 입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는 프라다와 미우 미우를 통해 스커트 길이에 리듬을 주는 방법으로(프라다에서는 대부분 미디 길이를, 미우미우에서는 최근 들어 마이크로 미니를 선보인다) 실용적이면서도 지성적인 스타일에 대한 비전과 함께 여성들이 원하는 옷 입기 방식을 새롭게 정의 내리고 있다. 스커트는 옷에 있어 가장 전통적인 피스 중 하나다. 하지만 프라다 여사에게는 체제 전복의 상징이기도 하다. 몇 년 전 그녀는 <하퍼스 바자>를 통해 스커트에 대한 섬세한 예찬을 하기도. “매우 평범하면서도 클래식하죠. 스커트를 자른다는 건 반항적인 행동이고요.”
인스타그램 ‘@whatmiuccia(What Miuccia Wore, 프라다 여사의 룩을 기록한다)’를 운영하는 기욤 라보에는 스커트에 대한 그녀의 애정에 항상 매료되어왔다. 실제로 그는 프라다 여사의 개인적인 옷장과 스커트에 관한 집요한 연구를 통해 ‘스커트가 어떤 노력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정말 오래됐고 관습적이고 보수적인 옷이지만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준다는 점이 재밌죠. 반항적이고 아이러니한 애티튜드로 소화하거나 혹은 예상치 못한 뭔가와 매치하는 순간, 여성성을 가지고 노는 듯한 느낌과 함께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거든요.” 프라다 여사는 2024년 가을 미우미우 쇼의 백스테이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매일 아침 15살 소녀가 될 건지, 아니면 죽음에 가까운 여인이 될 건지를 결정해요.” 이는 스커트가 자기 표현의 선택지로 기능을 한다는 소리다.
(왼쪽부터) 칸 영화제에서의 이설트, 2024년 미우미우 가을 쇼에서 팔로마 엘세서와 신디 브루나. 칸영화제에서 헌터 샤퍼의 모습. 초포바 로위나 스커트를 소화한 모습.

스커트가 재미있는 점은 세상에서 가장 모던한 것은 아닐지라도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엄청난 부분이 있다는 거예요.- 아이작 미즈라히

아이작 미즈라히는 1994년 봄 컬렉션에서 풀 스커트와 탱크톱 시리즈를 처음 선보여 화제가 되었다. 그는 이 룩에 어딘가 ‘원시적인’ 것이 있다고 말한다. 동시에 스커트는 그에게 중요한 장난감 같은 존재이면서 하이엔드와 그 정반대의 것을 믹스하는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고. “낭만적인 볼 가운 스커트와 웨어러블한 티셔츠를 레이어링한다는 것. 이 자체가 꽤나 강렬하죠.” 사실 미즈라히가 처음 이 시도를 했을 때 패션계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저는 버그도프 굿맨의 퍼스널 쇼퍼 베티 할브레히가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걸 봤어요. ‘17만 달러 스커트랑 같이 보여줄 9달러짜리 탱크톱은 어디서 구하죠?’ 사실 정말 큰 문제였죠. 결국 전체 룩을 팔지 못했거든요.“
프라다 여사처럼 미즈라히도 스커트가 가질 수 있는 아이러니를 사랑했다. “스커트가 재미있는 점은 세상에서 가장 모던한 것은 아닐지라도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엄청난 부분이 있다는 거예요.” 그도 그럴 것이 스커트는 섹시한 헴라인부터 하이와 로, 클래식과 모던, 펑크와 단정함 등 언제나 반전이 있는 옷 입기를 가능하게 한다. “말도 안 되는 룩이 되기도 하죠. 제가 스커트가 근사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예요.”
스커트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나는 드리스 반 노튼의 타이트한 머메이드 실루엣의 네온 염색 미디스커트를 출근 룩으로 선택했다. 임신했을 때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충동적으로 산 스커트로 탄력 있는 소재는 점점 불어나는 배를 감싸주었고, 내가 받아들이기 힘들 거라 생각했던 부분에 라인을 잡아주었다. 이 스커트 룩은 소셜미디어에서 강요한(지극히 시골스러운) 임산부 룩과는 거리가 멀었고, 이는 내가 바라던 모든 것이기도 했다.
어느 늦봄 사무실에서 나는 이 스커트를 빈티지 콤 데 가르송 니트 탱크톱과 매치해 입었다. 여기에 소용돌이 무늬 프린트와 스퀘어 토가 포인트인 빈티지 미우미우 힐을 신었다. 그날 아침 나는 한껏 꾸미면서 어린 아이와 항상 함께 있는 사람처럼 피곤해했다. 하지만 스커트는 내게 신박한 에너지를 안겨줬다. 심지어 나가기 전 내 룩이 어떤지 물어보자 성질 급한 딸은 박수를 치기까지. 이 룩은 모험적이고 드레시하고, 쿨하고 약간 미친 것처럼 보였지만(조금 비치기도 해서) 동시에 편했다. 나는 자유롭게 움직였고 심지어 커 보였다. 지하철에서 사무실로 향하면서, 미팅에 앉아 있으면서, 그날 밤 행사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내 삶이 마치 잠시 제자리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스커트는 내가 잊고 있었던 자신감을 일깨워줬다. 어쩌면 미니나 미디 스커트도 이제 돌아가며 나의 선택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Credit

  • 글/ Brooke Bobb
  • 번역/ 이민경
  • 사진/ Gisela Schober/Getty Images, Jacopo Raule/Getty Images, Daniele Venturelli/Wireimage, Marcy Swingle/Shutterstock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