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STAINABILITY

한국에서 두 번째로 유명한 벨기에 사람, 줄리안이 말하는 기후 위기

한국에서 두 번째로 유명한(그의 조카 우리스가 첫 번째 자리를 차지했다) 벨기에 사람이지만, 환경을 향한 진심만큼은 제일인 줄리안 퀸타르트와의 대화.

프로필 by 정혜미 2024.09.10
촬영이면 으레 챙기던 (되도록 이면지를 사용하지만) 시안도 프린트하지 않았다. 대신 노트북을 한 손에, 스태프를 위한 비건 빵과 다회용 젓가락을 다른 손에 들었다. 줄리안을 인터뷰하기 전, 공유 받은 파일에는 ‘지구를 지키는 남자’라는 소개문과 함께 활동 내역, 인터뷰 자료, 협업 안내 사항이 적혀 있었다. ‘QR로 인쇄량 줄이기(무료로 QR코드를 생성할 수 있는 사이트 링크까지)’ ‘도시락이나 음료 준비하지 않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등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행보에 함께할 것을 정중히 요청했다.
사실 줄리안이 이토록 지구 지키기에 진심인 걸 안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워터밤 초대장에 대한 소신 발언이 기사화되면서 그의 SNS를 방문하게 되었고, 놀라울 만큼 다양한 활동 모습을 확인했다. 주한외국인자원봉사센터(Volunteer Korea)의 공동 창립자이자 비건 제로 웨이스트 복합 공간 ‘노노샵’의 대표. 유럽연합 환경행동 친선대사로, 또 채식주의자로서 부지런히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퍼스 바자 택시를 타고 오는 길에(결국 택시를 탔다) 39℃가 찍힌 온도계를 보며 기사님이 한바탕 걱정을 늘어놓으시더라고요. 육십 평생 이렇게 더운 적은 없었다며.
줄리안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날씨와 기후는 다르다는 거에요. 기후는 지구 전체의 기온과 강수량, 바람의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계산한 것이죠. 어느 날은 춥고, 또 어느 날은 날씨가 좋으니 기후위기를 잘 실감하지 못하지만 그건 날씨에 관한 얘기예요. 한반도의 경우 현 시점 기준 지난 1년간 평균 기온이 1.5℃ 이상 상승했어요. 작은 숫자 같다고요? 2만 년 전 빙하기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고작 -5℃밖에 차이가 나질 않아요. 5℃만 낮아져도 빙하기에 들어설 수 있다니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심각한 수준인 거죠.
하퍼스 바자 한 환경 전문가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이기 때문에 더위와 추위에 잘 대비되어 있고, 그래서 기후 위기를 잘 체감하지 못한다고요.
줄리안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은 기후변화대응지수(CCPI, 기후정책과 이행 수준을 평가한 국가별 종합점수)가 67개 국가 중 64위예요. 전 세계 학자들이 평가하기로 “한국은 충분한 기술력을 갖췄음에도 기후 대응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죠. 얼마 전, 한 강연에서 이러한 문제가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RE100(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캠페인)을 계획 중인 기업들이 재생에너지를 쓰지 않는 한국과의 교류를 망설이고 있다고요. 체감하기 힘들다는 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설득시켜야 해요.
하퍼스 바자 다른 나라에서는 기후변화 대응을 어떤 식으로 하고 있나요?
줄리안 화석 연료에 의존한 동력을 지속가능한 에너지로 바꾸고, 친환경 교통 정책을 펴기도 해요. 인구당 탄소배출량도 평가 지표 중 하나이기 때문에 소비나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요. 프랑스의 경우 공공기관 내부 온도를 19℃로 제한하면서 탄소배출량이 엄청나게 줄었어요. 인구당 탄소배출량이 전 세계 평균 4.5톤인 데 반해 한국은 12톤 가까이 돼요.

하퍼스 바자 확실히 유럽 국가들이 빠른 대응을 하고 있죠. 줄리안이 보기에 칭찬할 만한 나라는요?
줄리안 참 어려운 게 잘하는 점과 부족한 부분은 늘 공존해요. 얼마 전까지 녹색 강국 하면 단연 독일이었는데 현재는 심각한 위기죠. 탈원전을 선언한 후 러시아 가스 공급이 중단되면서 석탄 사용이 증가하고 있거든요. 오래된 도시들을 파괴하면서 무분별하게 석탄을 채굴하고 있죠. 프랑스의 경우 잘하는 점을 몇 가지 꼽자면 채소, 과일 등의 일회용 포장을 금지시켰고, 수저와 접시도 다회용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 초고속 열차로 2시간 반 내에 이동 가능한 지역은 비행기 노선을 폐지했어요. 비행기는 이착륙 시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에 횟수를 줄이는 게 중요해요. 영국은 정부가 바뀌면서 신재생에너지 설치율이 상승했으며 벨기에는 세계 최대 해양풍력 발전소를 짓고 있어요. 신재생에너지를 활발하게 사용 중인 덴마크나 포루투갈도 좋은 예시로 꼽히죠. 유럽연합 내에서 ‘탄소국경조정제도(자국보다 이탄화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에서 생산, 수입되는 제품에 부과하는 관세)’를 시행하는 것도 칭찬해주고 싶어요. 아직 품목은 적지만요.
하퍼스 바자 벨기에는 어때요? 환경 인식이 높은 편인가요?
줄리안 더디지만 잘하는 면도 있고요. 유기농 분야는 높은 수준이죠. 특히 겐트라는 도시를 소개하고 싶어요. 이곳은 도시 차원에서 매주 목요일 채식을 해요. 일반 식당이나 구내 식당 모두 채식 옵션을 마련하고, 마트에서는 할인을 하죠. 또 교통 정책을 통해 자동차 없는 구역을 만들었어요. 처음엔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어요. 차가 다닐 수 없으면 상점 매출이 떨어지고 결국 시내가 황폐해질 거라고. 하지만 정반대였어요. 도보나 자전거로 이동하는 사람들로 거리는 활성화되었죠.

하퍼스 바자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늘 채식을 강조해요. 하지만 그 둘의 상관관계를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죠.
줄리안 소와 양은 굉장히 많은 양의 메탄가스를 배출해요.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높은 온실 효과를 일으키고요. 두 번째는 산림 벌채. 아마존 산림 벌채의 80%가 소 때문이란 걸 아나요? 식용 소를 키우기 위한 공간을 확보하거나 사료를 재배하기 위해서 열대우림을 파괴하고 있어요. 한국 역시 95% 이상의 사료를 수입하고 있으며 이 중 1/3이 브라질산이죠. 우리가 하는 육식이 지구 정반대에까지 영향을 주는 거예요. 바다가 오염되어 더 이상 생명체가 살지 못하는 일명 ‘데드 존’은 대부분 축산업 연안에서 발생하고요. 어업도 다르지 않아요. 바다 쓰레기 대부분이 어업용 쓰레기로 심각한 해양 문제를 야기하죠. 저인망 어업도 생태계 파괴의 주범이에요. 저인망 어업이란 바다 밑에 있는 어류를 잡기 위해 그물로 해저를 긁어내는 방식이에요. 비행기 13대가 들어갈 정도로 큰 망을 사용해 바다를 초토화시키죠. “참치만 들어와주세요” 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멸종 위기종을 포함한 수많은 바다 생물이 목숨을 잃게 돼요.
하퍼스 바자 저도 몇 번 시도해봤지만 채식을 한다는 게 쉽지는 않아요.
줄리안 육식을 완전히 금하라고 말하진 않아요. 탄소배출량이 높은 소나 양보다는 돼지를, 돼지보다는 닭을 선택하고, 그 횟수를 10%만 줄여도 결과는 어마어마하죠. 영국 국민이 1년 동안 하루 한 끼만 채식으로 바꿔도 자동차 1천6백만 대를 줄인 효과가 나타난대요. SUV 타는 채식주의자보다 자전거 타는 육식주의자가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죠. 늘 “채소 한 끼, 최소 한 끼”를 외치는 이유예요.
하퍼스 바자 줄리안도 모태 비건은 아니잖아요. 완전한 비건이 되기까지 과정이 궁금해요.
줄리안 한 10년 전쯤 유럽에서는 우유와 달걀이 몸이 좋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 시작했어요. 특히 우유는 뼈를 약하게 만들고 사망률을 증가시킨다는 내용이었죠. 그때부터 우유와 달걀 양을 줄이고 바다에서 온 생선과 조개류 등을 먹지 않았어요. 우리는 바다를 쓰레기통처럼 대하고 있잖아요. 쓰레기통에 든 음식을 먹고 싶지는 않았죠. 그러다 5년 전쯤 다큐멘터리 <더 게임 체인저스>를 보고 본격적으로 비건을 결심했어요. 채식을 하는 운동선수들에 관한 이야기로, 고기를 먹지 않고도 기네스 기록 등을 세우는 걸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죠. 우리는 “힘을 쓰려면 고기를 먹어야지”라고 말하잖아요. 하지만 이게 진실이라면 그들은 누구보다 먼저 육식을 했겠죠. 자신의 신념과 다르더라도요. 결국 육식은 필수가 아닌, 선택 사항인 거죠. 그저 내 즐거움을 충족시키기 위한. 그런데 과연 동물의 생명과 환경을 해치면서까지 즐거움을 찾는 게 맞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솔직히 예전엔 많은 걸 포기하고 감수해야만 비건이 가능했죠. 하지만 이제는 달라요. 즐겁게, 맛있게, 불편 없이 비건을 실천할 수 있어요.

하퍼스 바자 현재 줄리안도 채식만으로 벌크업에 도전하고 있다고요. 몸이 좋아져서 깜짝 놀랐어요.
줄리안 놀랍게도 4개월 만에 근육이 6kg 늘었어요.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많아요. 단백질은 고기에만 있다고 생각하죠. 채소, 과일, 밥 어디에도 단백질은 있고, 이제 불완벽 단백질이라는 용어는 쓰이지 않아요. 단백질 대체 식품도 잘 나오고요.
하퍼스 바자 개인적으로 대단하다고 느낀 게 결심한 걸 곧바로 실천으로 옮긴다는 거예요. 생각에만 그칠 수도 있는데 말이죠.
줄리안 저에겐 공유하는 병이 있어요.(웃음) DJ를 한 것도 좋아하는 음악을 함께 듣고 싶어서였죠. 사람들이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생각보다 잘 모르고, 그래서 알려야만 한다고 느꼈어요. 화석연료 때문에 생긴 공기 오염으로 매년 8백70만 명이 조기 사망해요. 코로나19 사망자보다 높은 숫자죠. 사람들은 원자력발전소를 무서워하지만 저는 화력발전소가 어쩌면 더 두려워요. 생각해보세요. 다른 이유로 매년 8백70만 명이 죽는다면 모르는 척 넘어갈 수 있을까요?

하퍼스 바자 오래전에 기후우울증을 겪었다고요.
줄리안 내가 할 수 있는 건 더 이상 없고, 내가 하는 일이 무의미하다고 느꼈어요. 패션쇼를 보러 갔다가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배출되는 걸 보고 ‘생수병 하나 때문에 텀블러를 쓰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었죠. 바보가 된 느낌이랄까? 10년 전이니 더더욱 나 혼자만의 싸움 같았어요. 그러다가 비건을 하면서 다시 힘을 얻게 됐어요. 버거킹에서 비건 버거를 출시했는데, CEO가 채식에 빠졌기 때문은 아닐 테잖아요. 소비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가 모여 변화를 이룬 거죠. 그때 ‘내 목소리도 영향력을 가질 수 있겠구나’란 확신을 얻게 되었죠.
하퍼스 바자 하지만 여전히 국가나 기업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아요.
줄리안 Triangle of Inaction, 개인과 기업, 정부가 기후변화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이유를 다른 두 측 때문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개인은 “기업은 오직 수익만 챙길 뿐 환경을 생각하지 않는다, 정부는 시민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기업은 “우리는 수요에 대해 공급할 뿐이다. 시민들이 바뀌어야 한다, 기후 변화를 위해 기업이 움직이기엔 돈이 많이 든다. 정부가 재무에 관한 법을 세워야 한다”, 정부는 “시민이 원하는 정책을 시행할 뿐이다, 기업에게는 정부가 왈가왈부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것이죠. 그럼 절대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누군가는 먼저 바뀌어야 해요.

하퍼스 바자 과거의 줄리안처럼 기후우울증을 겪는 이들에게 조언한다면?
줄리안 환경이란 공통분모가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길 추천해요. 10%만 관심을 갖는다면 비주류에서 주류로 바뀌고 가속도가 붙어요. 10년 전에 누가 MBTI를 궁금해했나요? 그 당시엔 사이비 같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였죠. 딱 10%의 사람들만 달라지면 돼요.
하퍼스 바자 당신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은요?
줄리안 장마르크 장코비시(Jean-Marc Jancovici)는 기후와 에너지 분야에서 저명한 전문가예요. 몇 년 전 출간한 기후 관련 그림책은 1년에 50만 부 이상 판매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죠. 담담하지만 논리적인 목소리로 많은 이들을 설득해요. 가끔은 감정적으로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감정만 앞세워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면 공격당하기 쉬워요. 게탠(Gaetan Gabriele)은 유쾌한 영상을 통해 환경에 대해 말해요. 환경 주제는 재미없다는 편견을 깨죠. 동료인 타일러 라쉬도 많은 영감을 주고요.

하퍼스 바자 2년 전에는 벌룬티어 코리아를 창립했고, 작년에는 노노숍을 오픈했어요. 올해 계획은요?
줄리안 ‘기후 프레스크’라고 기후 문제를 이해하도록 개발된 교육 워크숍의 퍼실리테이터로 활동하고 있어요. 카드 게임을 통해 기후위기에 대한 바른 시각을 배우는 것이죠. 민간인 대상은 물론 공공기관이나 기업에서도 진행하고 있어요. 이 프로그램이 확산되도록 힘쓰려고요. (참고로 줄리안 인스타그램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하퍼스 바자 ‘비정상기후회담’을 마치며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줄리안 환경에 관심을 갖고 무엇이라도 실천하고 있다면 당신은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가끔 우리는 너무 많은 걸 하려다가 이내 포기하고 말죠. 그리고 알고리즘을 조작하자.(웃음) 환경 콘텐츠에 ‘좋아요’나 댓글을 달면 주변인에게 노출되고,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접하게 되죠. 콘텐츠 소비자로서 보다 현명하게 움직일 때 우리의 알고리즘도 친환경적으로 바뀔 거예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지만 매우 큰 실천이죠.

Credit

  • 사진/ 김형상
  • 헤어 & 매이크업/ 하나
  • 스타일리스트/ 윤지빈
  • 의상/ Noah, Converse
  • 어시스턴트/ 안나현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