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전시장 뒤의 사람들
아티스트와 관객이 만나기까지는 수많은 관문이 존재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문을 하나씩 열어 전시를 완성하는 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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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공간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전시는 말하자면 작가가 작품을 선보이는 공간이다. 그래서 작가와 공간을 만드는 사람 사이에 조율이 필요한데, 그 역할을 큐레이터가 한다. 조율된 의견을 수렴해서 도면화한 다음 기술적으로 어려운 부분을 조정한다. 우리 팀은 3D 모델링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전시처럼 일회성 공간의 모델링을 하는 일이 수고스럽다는 게 업계 분위기지만 전시 공간을 만들 때만큼 유용할 때도 없다. 작품 이미지와 사이즈에 맞춰 실제로 전시하는 것처럼 가상의 공간에 배치하면서 전시의 동선과 흐름을 잡는다. 회화나 사진전의 경우는 좀 더 단순한 작업이 이뤄지지만 조형물을 전시하게 되면 단상을 세우거나 천장에서 지지하는 시공 등 할 일이 더 많아진다.
전시를 보는 입장에서 현재 전시와 다가올 전시 사이의 기간이 짧던데 현장은 얼마나 바쁘게 돌아가는지 궁금하다. 사무실에서 하는 사전 준비와 현장에서 하는 시공의 중요도는 5:5이지만 사전 준비에 한 달이 넘는 시간이 걸리고 현장은 2~3일 정도 걸린다. 목공 작업은 사람이 많이 투입되면 그만큼 빨라질 수 있는데 도장을 해야 하면 물리적인 시간이 늘어난다. 페인트를 칠하고 말린 다음 샌딩하고 덧칠하고. 그러면 며칠 동안 정말 잠도 안 자고 작업을 한다. 아트 핸들러 분들이 오셔서 작품을 정해진 위치에 걸면 오픈 준비가 끝난다. 철거할 때도 전시 마지막 날 저녁부터 하루 만에 끝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경 쓰고 주의하는 부분은? 전기 문제에 신경 쓴다. 작품을 감상할 때 조명이 가장 중요하지만 실제로 조명에 들어가는 전기는 크게 과부하가 걸리지 않는다. 날씨 이슈가 있는 겨울과 여름에 냉난방 기기를 여러 대 사용할 때 미리 넉넉하게 전기선 배분을 해놓는다. 건물에는 일정량의 전기가 들어오는데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시공 단계에서 처리하는 것이다. 벽을 도색해야 하는 경우에도 큐레이터와의 긴밀한 소통이 필요하다. 샘플 칩을 놓고 큐레이터와 작가가 정한 컬러를 3D로 구현한 가상 벽에 적용한다. 작품과 어떻게 어울리는지 여러 번 수정한 다음 실제 색을 칠한다. 대체로 전시 시작 하루이틀 전에 도색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결정한다.
지금까지 해온 전시장 구축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업은 무엇인가? 작년에 «바자전»을 통해 서울특별시 기념물인 1백 년 된 건물을 시공하게 됐다. 워낙 오래된 건물이다 보니 구역마다 마감과 바닥의 소재나 상태가 다 달랐다. 전시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통일성이 있어야 하는데 문화재라 훼손에 민감하게 대처해야 했다. 오래된 마룻바닥에 시공을 잘못하면 철거할 때 표면이 뜯겨나가는 경우가 있어 시공할 수 있는 소재에 대해 오래 고민했다. 그러다 가장자리만 접착해서 사용할 수 있는 롤로 된 호텔용 카펫을 찾아서 무사히 작업했던 기억이 있다.
전시가 시작되고 관람자로 공간에 섰을 때 느끼는 남다른 기쁨은? 작가들도 아마 전시를 할 때마다 아쉬움과 후련함이 있을 것이다. 짧은 시간을 위해 많은 것을 쏟아부을 테니. 우리도 마찬가지다. 머릿속에 그렸던 이미지가 얼마만큼 잘 구현되었는지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한데 막상 그것보다는 관람객들이 전시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르게 뿌듯하다. 작가가 만족하거나 공간에서 우리가 시공한 부분을 그대로 두고 오래 사용할 때도 보람을 느낀다. 일반 인테리어는 A/S 기간이 있는데 전시는 없다는 이점도 있다.(웃음)

전시장 디자인과 시공이 끝나면 아트 핸들러가 배턴을 이어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온 참이다. 아트 핸들러가 전시를 위해 하는 일은 어떤 것인가? 우선 아트 핸들러란 미술품을 가장 가까이서 보고 다루고 미술품만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전시를 볼 때 저 미술품은 어디서 왔을까,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을 텐데 오피스에서 작품 수출입 통관을 하고 해외 운송사, 고객, 갤러리들과 소통하는 사람, 현장에서 직접 운송하는 이들까지 모두 아트 핸들러다. 미술품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거창한 표현을 쓴 이유는 일반 운송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작품 표면에 닿는 포장재부터 특수한 재질로 된 것들을 사용하고 해상 운송 때는 온도 조절 컨테이너, 국내 운반 시 무진동 차량을 사용하는 등 손상을 고려해 다룬다.
전시의 종류도 다양하다. 갤러리와 아트페어 등 장소나 전시 성격에 따라 과정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일반 갤러리일 경우 큐레이터나 디렉터의 확고한 의도와 목적에 따라 운송과 설치가 이뤄져 금방 끝나는 편이다. 내한 전시의 경우 해외에서 작가와 관련 스튜디오 분들이 오시기 때문에 아무래도 의사 결정이 늦어지거나 현장에서 바뀌는 경우가 잦다. 아트페어는 정해진 시간에 부스를 한꺼번에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속도가 생명이다.
연장을 주렁주렁 매단 벨트에 눈길이 간다. 현장에서 한 몸처럼 꼭 지녀야 할 도구들을 소개해준다면? 작품을 직접 옮길 때 사용하는 목장갑이 필수다. 좀 더 섬세하게 자국에 신경 써야 할 때는 수술장갑을 착용한다. 줄자와 수평자, 연필, 칼, 종이 테이프 같은 측량을 하고 자리를 잡는 도구가 기본이다. 소도구 외에 장비들이 필요할 때도 있는데 얼마 전 하비에르 카예하 개인전에서 5백kg 조형물을 옮기느라 실내용 크레인인 갠트리를 쓰기도 했다.
작가나 작품과의 만남에서 생긴 기억 나는 에피소드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잘 옮겨주는 것에 고마움을 가지고 아트 핸들러를 대한다. 한 가지 재미있던 일은 9년 전 뉴욕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를 아티스트와 운송사의 관계로 만난 거다. 태국의 공칸이란 작가가 탕 컨템포러리 서울에서 전시를 열었을 때였는데 서로 놀랐다. 예술을 사랑하던 사람끼리 한 분야로 연결되는 순간이라는 생각에 기억에 남는다.
아트 핸들러라는 직업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아티스트의 작품을 합법적으로 만져볼 수 있다는 것.(웃음) 유명한 작품이든 신작이든 누구보다 빨리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다.
아트 핸들러를 꿈꾸는 이들에게 한마디. 나 또한 미술을 전공했지만 직접 예술계에서 활동하는 건 안 맞아 포워딩이라는 화물 운송 중개 업무로 진로를 틀었다. 그러다 미술품 운송을 알게 되었고 비로소 전공과 내 성향에 맞는 직업을 찾게 되었다. 오피스 업무로 미술품 운송 과정을 하든, 현장에서 직접 운송하는 업무를 하든 꼭 전공자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예술품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꼼꼼하고 잘 챙기는 성격의 소유자라면 누구든 현장에서 배우며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도슨트는 전시를 이루는 프로그램 중 하나이지만 전시가 열리기 이전부터 함께 준비해나간다는 점에서 전시 뒤의 일로 보았다. 준비하는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해준다면. 전시가 정해짐과 동시에 연구를 시작한다. 출품작이나 기획 의도를 중심으로 습득하고 좀 더 세분화해 작품 배치나 공간 사용에 따라 전체적인 플로를 만들어나간다. 이를 바탕으로 대본을 만든 다음 시연을 하고 수정과 보충을 한다. 리허설을 통해 현장의 변수까지 확인하고 나서 실제 도슨트가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지점은 무엇인가? 전시를 보다 잘 관람할 수 있도록 이해를 돕는 역할이 도슨트다. 전시 콘텐츠는 다양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다. 사실을 기반으로 아티스트의 콘셉트와 기획자의 목소리 등을 주의 깊게 받아들여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한다. 도슨트를 하다 보면 책상에서 작품을 보던 때와 또 다른 관점과 해석이 유기적으로 생겨난다. 관람객 또한 다양한 방법으로 작품과 직접 호흡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돕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도슨트는 개인이 하는 일이라 사람의 개성이 드러나기도 한다. 규정된 것은 없다. 말한 대로 사람이 하는 일이다. 개인의 특성이나 개성이 드러나는 도슨트에 더 흥미를 느끼는 관람객이 있을 테고 전시에 더욱 집중하고 싶은 관람객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작품이 주인공인 만큼 도슨트 하는 사람의 복장이나 말투보다는 전시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편이다.
전시의 몰입도를 높이는 데는 편안한 말투와 정확한 말투 같은 화술이 중심에 있을 것 같은데. 도슨트 교육을 할 때도 불필요한 언어 습관을 고치는 데 집중한다. 중언부언하지 않는 것, 어미가 길어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단어 하나를 고를 때도 추상적인 것들은 배제한다.
도슨트 아이패드로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관람객과 소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에서 «게르하르트 리히터» 전시를 할 때 작품이 한 점이었다. 물론 벽면에 여러 그림이 걸려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30분가량 도슨트를 하는데 어떤 방법이 좋을까 고민했다. 그때까지는 관람객에게 전시 외의 이미지를 보여준 적이 없어서 망설여졌지만 참고 이미지를 보는 시간이 결과적으로 유익했다. 전시 작품이 많지 않을 경우 관련 작품이나 사례를 보여드리면 마치 더 큰 전시를 본 것 같다는 반응이 있어서 종종 활용한다.
도슨트가 아닌 관람객의 입장에서 보았던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와 도슨트가 있다면. 지금 딱 떠오르는 전시는 없고 도슨트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된 순간에 대해 말하고 싶다. 미국에서 교환학생을 하면서 예술 관련 교양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조각하는 교수님이 테이프 디스펜서를 책상에 올려놓고 따라 그리라고 시켰다. 학생들이 쭈뼛거리니 가만히 서 있지 말고 앉아서도 보고 다른 방향에서도 보라며 호통을 치셨다. 그 후에 서로 그린 그림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정말 다양한 그림과 언어와는 상관없는 표현들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시각언어가 가진 소통의 힘을 그때 느꼈고 자연스럽게 소통의 한 범주인 도슨트를 하게 되었다.
관람객이 작품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가까이서 바라보는 일이다. 그 순간 함께 느끼는 감정이 도슨트를 하면서 얻는 큰 행복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많은 작품을 보지만 감동은 사람에 따라 절대적인 시간으로 온다고 생각한다. 물리적인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는데 절대적인 의미가 담긴 시간을 갖게 되면 그 시간은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전시를 보면서 감명받은 순간이 그만큼 관람객에게 중요한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순간을 나누는 것은 나한테도 큰 의미가 있다.
프레젠스(Presence)는 문화예술의 가치를 전달하는 전반적인 일을 한다.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개관전 «알베르토 자코메티», 송은 «PANORAMA», 아뜰리에 에르메스 «탁영준: 목요일엔 네 정결한 발을 사랑하리» 등의 전시 도슨트 프로그램 기획 및 교육 등에 협력하였다.
박의령은 컨트리뷰팅 에디터다. 전시를 볼 때 전시장 뒤의 사람들이 보낸 오랜 시간과 정성을 곱씹고 상상하는 시간이 추가되었다.
Credit
- 글/ 박의령
- 사진/ 김연제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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