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총감독이 말하는 2024 부산 비엔날레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정치 공동체를 만들었던 집단인 마다가스카르의 ‘해적’. 세속에서 떨어져 나와 공동체에서 자신을 낮추는 불교의 ‘도량’. 자기자신만의 길을 걷는 일이 어둠 속에 갇힌 것처럼 막막한 오늘날, 부산비엔날레의 예술감독이자 큐레이터 베라 메이와 필립 피로트는 해답의 단서를 두 사상에서 발견했다.

프로필 by 안서경 2024.09.02
프라차야 핀통(Pratchaya Phinthong), <내일을 돌보는 오늘>, 2024, 전시 전경. 바라캇 컨템포러리 제공

프라차야 핀통(Pratchaya Phinthong), <내일을 돌보는 오늘>, 2024, 전시 전경. 바라캇 컨템포러리 제공

부산비엔날레 공동 예술감독 베라 메이 & 필립 피로트 부산비엔날레 공동 예술감독 베라 메이 & 필립 피로트
이번 부산비엔날레의 타이틀은 «어둠에서 보기(Seeing in the Dark)»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Dàvid Rolfe Graeber)의 책 <해적 계몽주의(Pirate Enlightenment)>에서 얻은 아이디어와 불교의 ‘도량’과 연결 지은 주제라고 밝혔는데. 두 개념은 어떤 방식으로 결합된 것인가? 베라 메이(이하 베라) 두 개념은 보완적이다.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책은 근대의 ‘계몽’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마다가스카르 해적들의 활동에서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17~18세기 식민 지배를 받은 대서양과 인도양의 다른 국가들과 달리) 마다가스카르의 해적들은 일종의 ‘회색 지대’로서 유토피아적인 정치 공동체를 만들었다. 불교의 계몽과 해적의 활동 사이에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부산에 범어사라는 대표적인 사찰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항구도시로서 부산에 여러 이주민과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는 곳이 있다는 점도 주제와 맞닿아 있다. 필립 피로트(이하 필립) 사회적인 맥락에서 보면 해적은 외부 세계로 뻗어나가는 존재고 불교는 자신의 내면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탐구’라는 것, ‘계몽’이라는 건 이렇듯 내부와 외부가 연결되는 것이기도 하다. 두 개념은 지금과 다른 삶을 위해 현재의 위치를 벗어나고 떠나려 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해적이 되기 위해서는 일반적 사회를 떠나야 하고, 불교적 수행 역시 기존에 갖고 있던 틀에서 벗어나는 행위이니 말이다.
포스터 디자인을 보면 블랙 컬러가 지배적이다. 두 사상을 연결 지어 ‘어둠’이라는 시각적이고 은유적인 제목을 도출했다. 베라 역설적인 제목이다. 캄캄한 어둠 안에서 무언가를 보려고 하는 행위가, 지금 우리가 이 세계에 대해 말하는 방식 같다고 생각했다. 정치적인 상황에서 현실을 볼 때 우리는 어두운 시대를 살고 있지 않나. 오랫동안 영미권에서는 ‘계몽’을 말할 때 빛의 투명성이라는 개념을 수반해왔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돌아보고 싶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기 위해서 다른 종류의 기술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게 이번 전시에서 묻는 질문이라 생각한다. 필립 어둠 속에서 잘 볼 수 있는 동물들도 있다. 그들은 밝은 곳에서만 보는 동물들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다. 마치 해적과 승려들이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 것처럼.

프레드 베르보에츠, <Mijn Stad 1>, 1997, 종이에 단일 판화 에칭, 아크릴 채색, 212x292cm.

프레드 베르보에츠, <Mijn Stad 1>, 1997, 종이에 단일 판화 에칭, 아크릴 채색, 212x292cm.

부산비엔날레는 항구도시라는 지역적 특색을 잘 활용해왔다. 부산이라는 지리적 장소를 경험하면서는 어떤 발견을 했나? 또 부산 출신 박수지 협력 큐레이터와는 어떤 교류를 했는지 궁금하다. 베라 박수지 큐레이터 덕분에 부산 출신이거나 부산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작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현지인과 긴밀히 소통하고 리서치를 하며, 부산이 서울보다 일본 후쿠오카와 가까운 지역성을 갖고 있다는 점도 깨달을 수 있었고 부산의 개방적인 역사 등에 대해 다르게 이해해볼 수 있었다.
36개국 62팀(명)의 참여 작가 리스트가 인상적이다. 독특한 이력의 한국 작가들을 포함해 마다가스카르,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작가들까지. 작가를 선정할 때 가장 중점에 둔 사안은 무엇인가? 베라 이번 비엔날레를 기획하면서 예술이라는 개념에 대해 좀 더 개방적으로 접근하려 했다. 한국 작가를 만날 때에도 미술대학 교육을 받은 작가만 만나지 않았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채 여러 나라에서 활동하는 이두원 작가나 승려이자 전통 불화 이수자인 송천 작가가 기억에 남는다. 해외 작가의 경우 의도적으로 비엔날레에서 자주 조명되는 작가들을 피하려 했고, 한국에서 자주 접하지 못한 작가들을 포함하려 했다.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시아 작가를 대거 포함해 이런 작가들이 비엔날레의 어떤 지형도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다. 필립 작가를 정할 때 어떤 대상을 묘사하는지보다 어떤 태도와 전략으로 활동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를 기준으로 삼았다. 예술가를 분류하는 걸 선호하지 않지만 굳이 나누자면 벨기에 출신인 프레드 베르보에츠처럼 미학적인 측면에서도, 예술계에 참여한다는 측면에서도 아웃사이더 포지션에 있는 작가들을 포함시켰다. 불교적 사상을 선보이는 작가도 여럿 있는데, 요코 테라우치 작가 같은 경우는 극히 추상적인 작품을 선보인다. 내러티브로 표현하기보다 작가가 재료와 인식을 다루는 방식이 ‘불교적’이라 할 수 있다.
부산현대미술관은 물론 원도심의 옛 건물인 부산근현대역사관, 한성1918, 초량재 등 거주민의 실생활과 맞닿은 곳을 전시 장소로 활용한다. 전시 장소를 선정할 때 가장 유의한 점은 무엇인가? 베라 부산근현대역사박물관의 지하는 한때 은행의 금고로 쓰였던 곳이다. ‘해적’이라는 주제와 긴밀히 연관되고, 자원을 분배하는 측면에서도 매우 상징적인 장소다. 초량재는 1960년대 지어진 가옥인데, 초량이라는 동네 자체가 항구에서 그리 멀지 않아 이민자들의 커뮤니티가 발달된 장소다. 도시의 이면도 하나의 전시 장소로 경험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반영한 곳이다. 필립 한성1918 또한 과거 은행으로 쓰인 곳인데, 전시에서 오늘날 거대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하는 측면과 연결된다. 또 실제 크루즈 위에도 영상 및 설치 작품을 설치하고, 연계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지난 부산비엔날레에서 영도 폐조선소에 설치된 이미래 작가의 <구멍이 많은 풍경: 영도 바다 피부>가 이목을 끌었는데,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어떤 장소 특정적인 작품을 볼 수 있을까? 필립 부산현대미술관에서는 전통적인 전시장을 ‘해적질’하는 것처럼, 마치 불법 점유하는 것처럼 활용하는 광경을 볼 수 있을 거다. 거의 모든 전시 장소에서 흔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지나치게 말끔히 마감한 구조물이 아닌, 완결되지 않은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베라 태국 출신 프라차야 핀통의 작품은 벽면에 우리가 알고 있는 방식으로 붙어 있지 않아 작품으로 알아차리기 힘들 수도 있다.(웃음)

신학철, <한국현대사-질곡의 종말>, 2021, 캔버스에 유화, 330x130cm.

신학철, <한국현대사-질곡의 종말>, 2021, 캔버스에 유화, 330x130cm.

공동 감독으로서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을 것 같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큐레이터로서 느낀 점은 무엇인가? 필립 기존에 좀 더 전형적인 미술계식 전시를 선보였다면, 베라와 함께 일하며 더 확장된 리서치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었다. 지금까지 부산비엔날레는 다른 비엔날레보다 자유로운 가능성을 지닌 비엔날레를 지속적으로 선보여왔다. 실험적인 질문에서 시작해 전시 막바지를 준비하고 있다. 베라 필립과 나 둘 다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의 미술사를 연구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그곳에서 일어난 저항의 역사, 각기 다른 이미지 접근 방식에 이끌려왔는데,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이런 관점에서 나아가 불교라는 틀, 해적이라는 틀에서 미술사를 어디까지 바라볼 수 있을까, 마음껏 상상해볼 수 있었다.
토크, 퍼포먼스, 워크숍 등 연계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준비되는데, 주목해야 할 프로그램을 추천해준다면? 필립 웹사이트(busanbiennale2024.com)를 보면 다양한 사운드를 접할 수 있다. 작가들이 스스로 좋아하는 사운드 플레이리스트를 공개할 예정이다. 린 치-웨이, 세이디 우즈, 조 네이미처럼 아방가르드 사운드나 라디오 방송을 통해 사운드가 가진 정치적인 잠재성을 다루는 작가들이 있고, 데이비드 그레이버 인스티튜트를 운영하는 작가 니카 두브로브스키가 ‘파이트 클럽’이라는 토크 프로그램을 연다. 실제 싸움이 아니라 철학자들끼리 대결하는 콘셉트의 프로그램이다. 또 악기를 만들거나 몸을 쓰는 등 행위를 유도하는 워크숍도 준비되어 있다.
필립 피로트 당신은 미술 전시를 “실수의 공간이며, 길을 잃을 수 있는 곳”이라 말한 적 있다.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관람객들이 길을 잃은 과정에서 무엇을 발견하길 바라나? 필립 기대하는 무언가를 보지 않으려고 했으면 좋겠다. 관객들이 휴대폰 화면을 검색하며 보는 대신 몸으로 감각하는 데 집중하길 바란다. 베라 이 비엔날레는 꽤나 아날로그적인 비엔날레다. 팬데믹을 겪으며 우리는 화면으로만 보고 느끼는 게 아니라 직접 봐야만 하는 이유가 분명한 전시를 만들고 싶었다.

※ 2024 부산비엔날레 «어둠에서 보기(Seeing in the Dark)»는 8월 17일부터 10월 20일까지, 부산현대미술관과 근현대역사관, 초량 원도심 일대에서 열린다.

안서경은 <바자>의 피처 에디터다. 마감이 끝나면 양림동과 초량의 장외 전시를 가장 효율적으로 볼 수 있는 동선을 짜고 두 도시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Credit

  • 글/ 안서경
  • 사진/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