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생 로랑에서 직접 만든 영화 세 편

생 로랑의 어휘와 미장센으로 완성된 세 편의 영화가 공개됐다.

프로필 by 김경후 2024.05.24
“영화는 시간을 봉인하는 예술이다”라는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말은 어쩌면 패션에도 해당되는 말인지 모른다. 지금의 패션은 옷 한 벌을 만드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옷 디자인에 담긴 시대적 단서는 물론이고 그 옷을 알리기 위한 전방위적 미디어 활동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표현하는 ‘시간을 봉인하는 예술’에 가깝다. 단편적인 이미지에 열광하는 SNS 시대는 오히려 반대로 ‘맥락’이라는 요소를 더 중요하게 만들었다. 패션 역시 이미지와 서사가 충분히 어우러져 사람들 속에 ‘이야기’로서 스며들어야 한다. 생 로랑이 이러한 시대에 발맞춰 생 로랑 프로덕션이라는 이름의 영화제작사를 차린 건 그리 엉뚱한 선택은 아니다. 과거 패션 하우스에서 영화 제작에 자금을 지원하거나 배우들의 패션을 담당한 적은 많았지만, 이렇게 영화 제작에 직접 뛰어든 건 처음이다. 생 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토니 바카렐로가 이끄는 프로덕션은 미래를 향해 브랜드를 이끌어나가며 컬렉션의 폭넓은 영화적 감성과 뉘앙스를 강조하려는 그의 의도와 맞닿아 있다. 그는 영화를 통해 생 로랑이라는 이미지와 서사를 완성하고, 관객들은 그들이 영화에 담은 이야기와 장면을 자신의 삶 속에 이식하여 생 로랑이라는 맥락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생 로랑 프로덕션이 2024년 제77회 칸 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에서 총 세 편의 장편 영화,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에밀리아 페레즈(Emilia Perez)>,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더 슈라우즈(The Shrouds)>,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파르테노페(Parthenope)>를 선보였다.
첫 번째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는 조이 샐다나, 셀레나 고메즈, 에드가 라미레즈,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 아드리아나 파즈가 출연해 대형 로펌에서 일하는 리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무랄 것 없는 능력에도 저평가된 변호사 리타는 정의 실현보다는 범죄자의 혐의를 벗겨주는 일에 관심을 더 기울인다. 그러던 어느 날, 카르텔의 보스 마니타스가 그녀를 고용하며 자신이 조직에서 은퇴하고 나면 수년간 비밀리에 준비해온 계획, 즉 늘 꿈꿔왔던 ‘여성이 되려는’ 계획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시작되는 리타의 스토리가 오묘하면서도 매력적이다.
한편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더 슈라우즈>는 뱅상 카셀, 다이앤 크루거, 가이 피어스, 샌드린 홀트 등 배우 리스트만으로도 기대감을 자아내는 영화. 이 영화의 주인공은 뱅상 카셀이 분한 50세의 유능한 사업가 카르시다. 아내의 죽음 이후 슬픔에 잠긴 그는 산 자들이 수의를 입은 채 고인을 지켜볼 수 있는 혁신적이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는 기술, 그레이브테크를 발명하기에 이른다. 어느 날 밤, 카르시의 아내의 무덤을 포함해 수많은 무덤이 훼손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카르시가 범인을 추적하기 시작하며 영화의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전개된다.
마지막으로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파르테노페>는 1950년에 태어난 파르테노페의 삶을 다룬 영화다. 영웅적인 여성은 없지만 여성주의적인 서사로 자유, 나폴리, 그리고 진솔하거나 혹은 무의미하거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모든 사랑의 얼굴을 향한 형언할 수 없는 갈망을 이야기한다. 영화는 나폴리의 카프리섬을 배경으로 스타일리시한 미장센을 펼쳐낸다.
안토니 바카렐로의 진심이 담긴 영화 세 편을 보고 있노라면 영화는 그에게 패션의 아니, 삶의 방도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옷으로는 도저히 설명 불가능한 세계를 영화라는 새로운 장르로 표현한 셈이다. 그러니 이 영화는 그 어떤 예고편보다 ‘생 로랑’이라는 세 글자만으로 이미 기대가 차오르게 만든다.

Credit

  • 글/ 김민정(프리랜스 에디터)
  • 사진/ ⓒ Saint Laurent Production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