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패션과 예술의 경계, 2024 SS 오트 쿠튀르에서 생긴 일

범인(凡人)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쿠튀르의 세계.

프로필 by 김서영 2024.01.30

외계인과 사이보그 사이 그 어디쯤, 스키아파렐리


우리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다니엘 로즈베리(Daniel Roseberry)가 선보이는 스키아파렐리의 초현실주의를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19세기 천문학자로 화성에서 운하를 발견한 후 ‘화성인’이라는 용어를 만든 조반니 스키아파렐리에게서 영감을 얻은 스키아파렐리 2024 S/S 꾸뛰르 컬렉션. 쇼의 제목 ‘스키아파에이리언(Schiaparalien)’에 걸맞는 미래지향적인 룩들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모델 매기 마우어가 크리스털과 칩, 전선을 이용해 만든 로봇 아기를 안고 등장하는 모습은 패션 위크 내내 ‘패션 그 이상의 의미’로 회자되었다. 또한, 컴퓨터 칩과 오래된 플립형 휴대폰, 계산기, CD 등으로 만든 마더 보드 드레스는 미래적인 외형과 다르게 모바일 기술 붐이 일어난 2000년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다니엘 로즈베리는 쇼를 발표한 후, “나의 과거 컬렉션이 인공지능을 만나 미래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것에서 과거의 중요성을 다시 깨달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모든 것이 AI로 가능한 시대, 우리는 스키아파렐리 2024 S/S 꾸뛰르 컬렉션을 통해 낯설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미래를 본 것은 아닐까.

사랑스럽고 섬뜩하게, 로버트 운


쿠튀르 계의 라이징 스타, 런던 베이스 디자이너 로버트 운은 런웨이에 또다시 공포 영화를 한편을 재현했다. 브랜드 10주년을 맞이하며 감사의 마음으로 준비했다고 밝힌 이번 컬렉션의 제목은 ‘For Love’. 새빨간 런웨이 위로 비가 내리는 으슬으슬한 골목을 연상시키는 크리스털 장식의 블랙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모델이 등장하며 쇼는 시작했다. 다음 스토리는 사건의 발생! 마치 깨진 유리를 연상시키는 조각 거울로 뒤덮어버린 코트(심지어 얼굴마저 거울로 뒤덮었다)가 중간에 등장하고, 피가 흩뿌려진 듯 레드 크리스털로 장식한 새하얀 웨딩 드레스와 영적인 존재를 어깨에 얹은 듯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핏빛 드레스로 쇼는 마무리됐다. 영화 감독들이 속편을 제작하듯, 이번 컬렉션은 지난 꾸뛰르 컬렉션의 확장판으로 보인다. 옷을 통한 기괴한 스토리텔링에 능한 로버트 운의 능력이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고 할까. 물론 현실에서 저 옷을 입은 사람을 마주하기에 조금 무섭겠지만.


쿠튀르적인 창의성의 총집합, 메종 마르지엘라


파리 오트 쿠튀르의 종지부를 찍은 메종 마르지엘라 2024 아티즈널 쿠튀르는 상상 이상의 컬렉션으로 패션계를 열광케 했다. 보디라인을 극적으로 강조한 코르셋과 패딩 처리한 엉덩이, 튤 소재의 시스루 룩, 속옷에 수놓은 머킨 장식, 크리스찬 루부탱과 협업한 12센티 높이의 펌프스 힐 등 제작 기간만 무려 1년에 달하는 이번 쿠튀르 컬렉션은 1920-30년대 파리 클럽과 밤 거리의 모습을 재현했다. 런웨이에 선 모델들은 연기에 집중하는 배우에 가까웠고, 메이크업 아티스트 팻 맥그래스는 유약을 바른 도자기 인형인 포슬린 인형처럼 매끈하고 반짝거리는 메이크업을 연출해 쇼의 판타지를 극대화 시켰다. 마르지엘라의 실험적인 해체주의와 1996년부터 2011년까지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사랑받았던 존 갈리아노의 빅토리아 취향이 뒤섞였던 메종 마르지엘라 2024 아티즈널 쿠튀르. 2022년 7월 이후 오트 쿠튀르를 선보이지 않았던 존 갈리아노의 화려한 귀환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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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각 브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