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영국 맨체스터 골목길에서 열린 샤넬 공방 컬렉션!

축축한 맨체스터 뒷골목이 샤넬의 캣워크로 변하던 그날 밤의 이야기.

프로필 by BAZAAR 2023.12.21
샤넬 2023/24 공방 컬렉션.

비처럼 음악처럼 맨체스터

비가 음악처럼 내리던 날 맨체스터 북부에 자리한 토머스가(Thomas Steet)에선 이전과는 다른 저녁이 시작되고 있었다. 초저녁 촉촉히 젖은 도로 위로 도시의 불빛들이 부서져 내린다. 어둠과 빛이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낮과는 전혀 다른 밤의 시간으로 초대하는 맨체스터의 뒷골목, 그 좁은 거리 위로 샤넬의 여인들이 워킹을 시작했다. 타투 숍과 가라오케, 펍 등이 줄지어져 있는, 실제 거리를 걷는 그녀들은 “여기요!”라고 말을 걸면 언제라도 고개를 돌릴 듯 가까워 보였다. 런웨이가 아닌 영국, (그것도 런던이 아닌!) 맨체스터 거리 위에서 선보인 샤넬 2023/24 공방 컬렉션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샤넬의 비트가 느껴졌다. 좋다, 나쁘다를 떠나 그건 신선함 그 자체였다.
“이건 정말 예상치 못한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죠. 너무 불협화음적이라 신기하기까지 해요.” 영국을 대표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피터 새빌(Peter Saville)의 말처럼 말이다. 그는 조이 디비전, 뉴 오더 등 영국 출신 유명 밴드의 앨범 아트워크를 비롯해 버버리, 캘빈 클라인, 라코스테, 애스턴마틴 등의 브랜드 로고 작업을 한 바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고향인 맨체스터의 아트 디렉터를 맡으며 도시 디자인에 참여했고, 아디다스와 함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위한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 샤넬 2023/24 공방 컬렉션의 초대장도 그의 손에서 완성됐다. 그가 만든 티저 영상에는 단지 샤넬과 맨체스터, 두 단어만 적혀 있을 뿐인데 우린 이미 그 글자 사이에 쿵쾅거리는 비트를 느낄 수 있었다. 
 
맨체스터와 샤넬의 만남은 언뜻 보기엔 피터 새빌의 말처럼 불협화음 같았다. 2002년 이후로 샤넬 공방 컬렉션은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로마, 세네갈의 다카르 등 다양한 도시에서 개최되었다. 때마다 그 지역의 문화를 덧칠한 컬렉션은 지역 장인들과의 협업으로 더 단단한 스토리를 완성했다. 하지만 맨체스터라는 도시에서는 이전의 도시들과는 다른 맥락이 느껴진다. 심지어 지난번 영국 쇼, 그러니깐 2012/13 공방 컬렉션이 열렸던 장소는 영국 스튜어트 가문의 고풍스러운 15세기 린리스고 궁전이었다! 그런 샤넬이 비가 추적추적 오는 맨체스터 뒷골목을 무대로 하다니, 둘 사이의 낙차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는 어마어마했다.
 
비가 내리는 맨체스터의 골목길을 낭만적으로 밝힌 샤넬의 2023/24 공방 컬렉션.

비가 내리는 맨체스터의 골목길을 낭만적으로 밝힌 샤넬의 2023/24 공방 컬렉션.

샤넬과 영국, 그리고 트위드

19세기 세계 최고의 면직물 생산량을 자랑하던 맨체스터는 ‘면의 도시(코트노폴리스, Cottonopolis)’라 불렸다. 전통적으로 노동자 계급을 대표하던 도시로, 산업혁명의 발상지, 세계 최초 여객 열차를 운행한 도시, 현대 컴퓨터가 시작된 도시, 여성 참정권 운동이 처음으로 시작된 곳 등 맨체스터는 수많은 ‘최초’의 수식어를 달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축구와 음악이 맨체스터 최대 수출품인 면화를 대체했다. 급격한 산업화로 흰 나방이 검은 나방이 될 정도로 삭막했던 도시는 수차례의 변태를 겪고 음악과 축구의 도시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건 누군가의 도움이 아니라 맨체스터의 시민들 스스로가 이뤄낸 결과물이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맨큐니언(Mancunian)’이라 부르며 맨체스터 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맨체스터는 대중문화 역사상 가장 활기찬 도시 중 하나이자 아방가르드한 장소이며, 모든 장르에 걸쳐 음악의 역사를 바꾼 밴드들이 있는 곳입니다.” 맨체스터라는 의외의 선택에 대해 샤넬 측은 이렇게 설명했다. 맨체스터는 세계를 바꾼 음악 문화의 근간이다. 그리고 현재 맨체스터는 이에 공감하는 이들의 만남의 장소다. 샤넬의 아티스틱 디렉터 버지니 비아르 역시 “제게 맨체스터는 음악의 도시입니다”라고 했다. 이곳의 날씨와 공기, 사람들의 에너지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비트는 창작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투톤 컬러로 완성된 메리제인 슈즈.

투톤 컬러로 완성된 메리제인 슈즈.

이번 샤넬 2023/24 공방 컬렉션을 이루는 스토리(패션이든, 음식이든 요즘 중요한 건 물건 자체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다!)는 맨체스터라는 그 도시 속에 모두 녹아있다. 수십 년간 쌓아올린 도시의 이미지를 패션으로 해석하는 것, 이것처럼 멋진 큐레이팅은 없다. 일단 버지니 비아르는 가브리엘 샤넬과 이 도시와의 인연을 떠올렸다. 1926년부터 1931년까지 샤넬의 스타일이 다분히 영국적이었던 건 가브리엘 샤넬의 연인이었던 웨스트민스터 공작의 영향이다. 그의 가문인 듀크스가 소유한 지역이 맨체스터 근처인 체스터에 위치해 있었다. 샤넬은 종종 그곳에서 디자인 작업을 했으며 근처 맨체스터의 공장에서 컬렉션을 위한 면을 구입했다. 또 이 지역 영국 귀족들이 야외 활동복, 예를 들어 이턴 홀에서의 사격을 위해 입는 트위드 재킷이 샤넬의 역사상 미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이번 컬렉션의 중심은 트위드입니다. 가브리엘 샤넬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지만 샤넬 여사가 웨스트민스터 공작의 재킷을 입었을 때의 룩을 그대로 재현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샤넬 여사가 트위드에 색을 입혔던 점에 착안해 생기 넘치는 팝 정신을 더했죠.” 섀먼 핑크, 펌킨 옐로, 애플 그린, 머스터드, 스카이 블루, 레드 컬러가 입혀진 트위드 수트는 분명 이전의 시리즈보다 펑키했다. 여기에 베이커 보이 캡과 메리제인 슈즈를 더해 더 영국스럽게 스타일링했다. 궁극의 단순함과 절대적 정밀함을 통해 이번 2023/24 공방 컬렉션을 하우스의 코드에 충실하게 표현하고자 했다. 컬렉션의 모던함을 부각시켜주는 코드 이외에도, 재킷 하단의 체인, 대비를 이루는 안감, 움직임의 자유를 선사하는 톱 스티치를 넣은 여러 개의 패널에서 가브리엘 샤넬만의 테일러링 기술을 엿볼 수 있다. 스커트의 윗부분에도 재킷과 코트의 안감과 같은 패브릭을 사용해 시선이 이어지도록 했다.
 
톤다운된 컬러 팔레트 속에서 공방 장인들의 섬세한 터치를 느낄 수 있는 디테일들.톤다운된 컬러 팔레트 속에서 공방 장인들의 섬세한 터치를 느낄 수 있는 디테일들.톤다운된 컬러 팔레트 속에서 공방 장인들의 섬세한 터치를 느낄 수 있는 디테일들.톤다운된 컬러 팔레트 속에서 공방 장인들의 섬세한 터치를 느낄 수 있는 디테일들.
트위드 외에도 셰틀랜드 니트웨어와 캐시미어 소재 랩 스커트, 플레어 형태의 미니스커트, 버뮤다 쇼츠, 코트 드레스가 영국 무드를 더했다. 약간은 삐딱한 분위기의 피트(Fit) 역시 맨체스터의 클럽 걸들에게 어울릴 만하다.
Le19M의 공방에서 제작한 섬세한 플리츠, 깃털 장식, 자수, 모자와 주얼리 버튼은 가까워진 모델과의 거리를 더 실감나게 만들었다. 쇼에 참석한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말을 빌리자면, 이 살아있는 듯한 디테일은 마치 옷이 걸어다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여기에 빠지지 않는 샤넬식 위트. 예컨대 영국풍 찻주전자, 레코드판, 귀여운 꽃 장식으로 재미를 더하고, 소박한 블랙 메리제인 슈즈는 영국식 담백함을 표현했다. 청바지, 레더, 베이비돌 잠옷을 포함한 니트웨어, 스트랩리스 드레스로 앙상블을 완성하며 축구, 맨체스터의 음악계, 영국의 시골 등 다양한 영감을 표현했다. 도시는 인간의 창조물이다. 맨체스터를 살아있는 유기체로 만드는 건 예나 지금이나 그곳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다. 샤넬은 그들에게, 그 도시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이번 컬렉션을 만들었다.
 
샤넬의 앰배서더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애프터 파티에서 열창 중인 록 밴드 프라이멀 스크림(Primal Scream).배우 틸다 스윈튼.
몇 년 전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가 ‘우리의 공동체 일원들에게’로 시작하는 공개 서한을 페이스북에 올린 적이 있었다. 그 글 중 뇌리에 꽂히는 한마디는,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고 있나요?”였다. 맨체스터의 어느 밤, 2023/24 공방 컬렉션을 보던 우리는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고 있나? 적어도 여기에 있는 맨큐니언들은 고개를 끄덕이면 대답할 것 같았다. “물론이죠!”   

Credit

  • 글/ 김민정(프리랜스 에디터)
  • 사진/ ⓒ Chanel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