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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마 아프 클린트 영화가 개봉한다

칸딘스키가 추상화를 자신의 발명품이라 선언하기 전 이미 추상화를 시도한 화가가 있었다.

프로필 by BAZAAR 2023.12.21
현대미술사를 통틀어 가장 큰 사건은 힐마 아프 클린트의 재발견일 것이다. 2018년 뉴욕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힐마 아프 클린트 회고전’은 개관 이래 최다 관객수를 기록했다. 전시 도록은 미술관에서 가장 많이 팔린 도서가 됐다. 한때는 “힐마의 미술이 추상화라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고 말했던 뉴욕현대미술관은 2019년부터 신소장품 전시관에 힐마의 그림을 선보였다.  
칸딘스키, 몬드리안, 말레비치보다 추상화를 먼저 시작한 사람. 이 스웨덴의 여성 화가는 자신의 작품을 의심하진 않았지만 동시대인은 의심했던 것 같다. 아카데미에서 오직 남자만이 선생으로 임용되던 시절이었다. 힐마는 자신의 미래를 예견했다. 그녀는 자신의 노트에 연필로 +×라는 표시를 하고 그 아래에 이렇게 적었다. “위의 표시가 있는 작품은 내가 죽고 20년이 지난 다음 개봉되어야 한다.” 그녀의 작품은 타임캡슐에 담겨 현재에서 미래로 쏘아 올려졌다. 
12월 20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힐마 아프 클린트‐미래를 위한 그림>은 힐마의 일대기를 다루며 봉인되었던 추상화를 발명하게 된 사고 과정을 그녀의 시선으로 따라간다. 이를 위해 <힐마 아프 클린트 평전>을 쓴 율리아 보스를 비롯해 미술사학자, 큐레이터, 컬렉터, 갤러리스트 등 다양한 전문가가 동원되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과학사학자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인터뷰다.
당시 과학계에는 새로운 사실이 연일 증명되고 있었고 힐마는 자연과학에 대한 지식과 소양이 높은 예술가였다. “감마선, 엑스선, 방사선부터 시작해서 전파까지 이어지죠. 하지만 우리 눈에 보이는 건 이 손가락 하나입니다. ‘우린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결론에 이르는 거죠. 미술가로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싶다면 보이는 대로 그려선 안 돼요. 정말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면 세상을 창조해야 하죠.” 이것이 힐마가 영성주의와 과학 지식을 조화시키려 했으며, 그 우주관을 그림으로 남긴 이유다. 말하자면 그녀는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므로 더 이상 힐마를 ‘신비주의자’나 ‘영매’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깊숙이 볼 줄 아는 사람은 보이는 것 이상을 볼 수 있다. 경계선 너머에 숨겨진 경이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삶이라 부른다.

Credit

  • 에디터/ 손안나
  • 사진/ 마노엔터테인먼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