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클로데트 존슨의 회고전

런던 코톨드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는 그가 예술적인 소명을 다시 발견하게 된 과정이다.

프로필 by BAZAAR 2023.12.12
 
클로데트 존슨이 입은 의상은 모두 Pleats Please Issey Miyake. 귀고리는 존슨 개인 소장품.

클로데트 존슨이 입은 의상은 모두 Pleats Please Issey Miyake. 귀고리는 존슨 개인 소장품.

클로데트 존슨(Claudette Johnson)은 사람을 피사체로 그리기는 하지만, 자신을 초상화가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의 그림들은 거대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가깝고 친밀한 느낌을 준다. 그의 작품에는 구상화가의 날카로운 통찰력과 추상화의 자유로움이 결합되어 있다. 존슨은 이름 없는 인물들을 담아내며, 그들의 이름이나 나이보다 더욱 중요한 면모를 포착해 비춘다. “저는 흑인의 존재감과 관련해 더 폭넓게 접근하는 작품을 그리려고 합니다. 개인에게 국한되지 않고, 인류의 일부분에 속하는 더 큰 이야기를 말이죠.” 존슨이 말한다. “그래서 초상화라는 개념에 저항하는 거예요. 실질적으로 저의 작품들은 초상화가 맞지만, 저는 분명 그걸 넘어선 걸 추구하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존슨의 집과 작업실이 있는 런던 동부 호머튼의 작은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커피머신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음이 나의 질문에 대답하는 그의 말을 방해한다. 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반복했다가, 다시 풀어 설명한다. 나는 그런 존슨의 모습을 보며 그가 조심스럽고 사려 깊으며 신중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테이트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고, 인터뷰 후에는 코톨드갤러리에서의 개인전이 열리는 등 존슨은 재능을 인정받은 아티스트다. 하지만 이제 60대 중반인 그가 예술세계에서의 자신의 입지에 대해 자신감을 갖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저 자신을 예술가라고 생각하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이어간다. “저는 오랫동안 저에 대해 예술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고 말했어요. 그냥 예술가라고 말하는 게 좀 허세라고 생각하기도 한 것 같아요.” 
 
셔츠, 팬츠는 Issey Miyake. 귀고리는 존슨 개인 소장품.

셔츠, 팬츠는 Issey Miyake. 귀고리는 존슨 개인 소장품.

흑인 여성들이 얼마나 보이지 않는 존재인지에 대해, 또 우리의 삶에 대해 다르게 표현해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점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클로데트 존슨의 작업실.

클로데트 존슨의 작업실.

맨체스터에서 재봉사 어머니와 운송회사에서 야간 근무를 하는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존슨은 어린 시절부터 인종차별을 경험했다. “우리가 길을 걸어가면 다른 집 창문 커튼이 펄럭거리는 게 보이더군요. 우리에게 침을 뱉고, 욕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기억을 돌이킨다. “그런 게 드문 일이 아니었어요.” 흑인들, 특히 흑인 여성들을 ‘가장 밑바닥에 있는 존재’로 여기는 이런 인식은 존슨으로 하여금 그들을 자신의 작품의 중심에 두고 전면에 내세울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흑인 여성들이 얼마나 보이지 않는 존재인지, 또 우리의 삶에 대해 다르게 표현해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점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울버햄프턴 폴리테크닉 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던 시절, 존슨은 흑인 아티스트들의 전시회를 보러 갔다. 선더랜드 폴리테크닉 미대생이었던 에디 챔버스가 기획한 전시회였다. 챔버스는 존슨에게 BLK 아트 그룹에 가입하라고 권유했다. BLK 아트 그룹은 1980년대에 풀뿌리운동으로 주목받은 컬렉티브였다. 존슨은 이 그룹에 참여한 경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하고 있던 일에 대해 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고, 나의 일이 다른 사람들도 인식하는 현실에 근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죠. 변화의 시대가 왔다는 걸 진심으로 믿었어요. 우리는 충분히 젊고, 충분히 강하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었죠.” 동료 아티스트 루바이나 히미드는 존슨의 초창기 지지자였다. 히미드는 존슨의 가족 외에 처음으로 존슨의 작품을 구입한 사람이었다. 히미드는 존슨의 1982년작 <무제(귀고리를 한 여인) (Untitled(Woman with Earring))>를 구입했으며, 1985년 영국 현대미술협회에서 열린 전시에 파랑, 검정, 빨강 옷을 입은 세 여성이 등장하는 존슨의 세 폭 그림 <트릴로지(Trilogy) (1982-1986)>를 포함시켰다. 이후 존슨은 맨체스터와 로치데일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영국 미술위원회는 존슨의 작품 몇 점을 소장품 컬렉션에 추가했다. 
마법 같은 날들이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었다. 흑인 아티스트에 대한 관심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에디와 루바이나가 발굴해낸 기회가 점점 말라가고 있었어요. 그들은 서로 경쟁 구도에 놓이게 되었죠.” 존슨은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예술로 생계를 유지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고 덧붙인다. “저는 지역 예술단체에서 일했는데, 그게 저의 생계수단이었어요. 제 작품으로는 생활할 수 있을 정도로 판매 수익을 얻지 못했죠.”  
존슨에게는 자녀가 둘 있었다. 그는 그것이 자신이 수십 년 동안 창작에서 멀어진 이유가 되었다고 수긍한다. “(아티스트인) 매기 햄블링이 왜 자신이 엄마가 되지 않았는지에 대해 말한 인터뷰를 읽었어요. 한 방에서 아기가 울고 있고, 다른 방에서 그림이 울고 있다면, 자신은 아기에게 가야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요. 그게 어떤 느낌인지 저는 너무나 다 잘 기억하고 있답니다.” 존슨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머릿속에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이 오면 그걸 적어둬야겠다고 생각을 했죠. 하지만 집안일을 하다보면 그런 순간은 결코 오지 않았어요.” 
 
«아프리카 가면들과 서있는 인물(Standing Figure with African Masks)», 2018.

«아프리카 가면들과 서있는 인물(Standing Figure with African Masks)», 2018.

여러 해가 지난 후에야 존슨은 자신의 진정한 소명을 추구하기 위해 필요한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지지해준 사람은 바로 (“나의 요정 대모님!”) 히미드였다. 히미드는 2014년 자신이 조직한 홀리부시 가든스에서의 전시에 존슨을 참여시켰으며 존슨이 작업실을 구하는 것을 도와주었다.(홀리부시 가든스 갤러리는 현재 두 아티스트를 대변한다.) 존슨은 “루바이나가 나서주지 않았다면, 나는 다시 창작 활동으로 돌아갈 용기를 갖지 못했거나, 용기를 갖기까지 훨씬 더 오래 걸렸을지 모른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이제 성인이 된 자녀들로부터 충분한 영감을 받는다. “아들들이 있어서인지 흑인 남성들이 사회에서 겪는 일에 대해 상당히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총을 일곱 발 맞은 한 청년의 사진을 우연히 봤어요. 자기 상처를 드러내는 그의 모습이 아주 감동적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L.A의 특정 지역 사망률에 관한 한 기사에 실렸던 이 참혹한 사진은, 가장 정치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존슨의 작품들 중 하나인 2015년 작 <무제(일곱 개의 총알)(Untitled(Seven Bullets))>를 탄생시켰다. 한 남성이 자신의 셔츠를 들어올려 자기 배의 흉터를 보여주는 모습을 그린 파스텔화다. 
존슨의 작품은 대체로 정치적이지만, 그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의 그림들이 가진 힘의 일부는 그 규모에서 온다. 엄청난 크기 때문에, 그림 속 인물들은 거의 초인 같은 능력을 갖추게 된다. “커다란 캔버스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제가 마크(mark)를 만드는 방식이 달라진 걸 느꼈습니다. 더 역동적으로 변했고, 제가 그리는 인물들이 그들 개인을 뛰어넘어 더 큰 이야기를 한다는 개념에도 맞아떨어졌죠.” 
이번 <하퍼스 바자> 영국판 리미티드 에디션 표지에 실린 그의 새 작품, <블루스 댄스(Blues Dance)>의 피사체는 종이의 경계 안에 가둬지지 않는 듯이 보인다. 여성의 두 팔은 외향성을 띠면서도 지극히 은밀한 느낌을 주며 황홀하게 움직여 뻗어나간다. 이 작품은 댄서들을 찍은 사진을 기반으로 작업한 것이다. “미대생일 때 티켓값이 싸고 쉽게 볼 수 있는 블루스 댄스를 보러 다녔었죠.”라고 존슨은 말한다.  그리고 이어서 말한다. “가운데에 있던 인물을 보면서 마음이 사로잡혔어요. 제가 춤을 출 때의 기분이 느껴졌거든요. 자기 자신을 되찾는 느낌 있잖아요. 어떤 순간에 사로잡혀서, 어떤 억압도 없이, 이방인이라는 느낌도 없이, 그저 온전히 내 몸 안에서 편안해지는 느낌이요.” 
<블루스 댄스>는 현재 코톨드갤러리에서 열리는 존슨의 전시회에서 볼 수 있다. 오랫동안 기존 규범에 대해 더 열린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예술가에게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전시회다. “고갱이나 바네사 벨의 작품을 보러 가는 사람들이 저의 <기대어 누운 사람(Reclining Figure)>을 본다는 것이 무척 흥분되네요.” 존슨이 말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가 흑인 예술가로서 바라온 것이거든요. 우리들의 작품이 예술사의 일부로 인정받는 것 말이에요.”  
그는 바쁜 가을이 지나고 나면(그는 현재 홀리부시 가든스에서도 프리즈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미디어를 실험해볼 기대에 차 있다. 
최근 그는 자신의 시그너처인 파스텔화 외에 유화 물감 역시 점점 많이 사용하고 있다. 또 입체적인 3차원 작품을 작업하는 데도 관심을 갖고 있다.길게 내다보자면, 존슨은 영국의 흑인 아티스트들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아직도 이게 현실인지 믿기지 않을 때가 있어요. 내일이면 이 모든 게 끝날까? 이 변화가 계속 유지될까? 생각하면서요. 하지만 저는 대체로 낙관적입니다.” 클로데트 존슨은 그래야 한다. 오랫동안 기다리며 그가 열심히 해온 노력들이 열매를 맺는 때가, 바로 지금이기 때문이다.  
 

Credit

  • 글/ Frances Hedges
  • 사진/ ⓒ Philip Sinden
  • 스타일리스트/ Holly Gorst
  • 번역/ 박수진
  • 에디터/ 백세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