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우리에게 수많은 흔적을 남긴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물론 특별한 순간을 경험하며 새로운 감정과 추억을 쌓게 한다. 1898년, 파울 모르스첵(Paul Morszeck)이 여행자를 위한 여행용 러기지 회사 리모와를 독일 쾰른에 설립한 후 물건과 추억을 실어나르며 여행자들과 함께했던 리모와의 여정이 어느덧 1백25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리모와가 선보인 회고전 ≪SEIT 1898≫이 첫 번째 도시 도쿄를 지나 뉴욕 맨해튼 중심에 자리한 첼시 팩토리에 상륙했다. 한 세기가 넘게 기록된 방대한 아카이브와 리모와 프렌즈로부터 공수한 1백여 개의 케이스를 한자리에 모은 이번 전시는 총 6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리모와의 글로벌 아이콘 로제는 첫 공식 행사로 «SEIT 1898» 뉴욕 전시에 참석했다.
탑승권을 끊고 푸른 카펫을 지나면 리모와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히스토리 섹션이 등장한다. 과거 배와 기차로 이동하는 여행에 있어 러기지라 함은 옷장의 일부를 가지고 다니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만큼 크기가 거대했을 뿐만 아니라 나무 혹은 가죽 소재로 완성되어 무겁고 불편했다. 창립자 파울 모르스첵은 같은 소재로 만들더라도 최대한 가볍게 완성해 여행자들의 불편의 최소화했다. 이러한 정신은 훗날 알루미늄, ABS, 폴리카보네이트 등 다양한 소재를 러기지에 적용하는 혁신으로 이어지며 리모와가 여행의 선구자로 앞장서는 데 큰 일조를 한다.
리모와에게 알루미늄이란 브랜드의 존재 그 자체다. 1930년대 어느 날, 리모와 공장에 대형 화재가 발생한다. 붉고 거친 화마는 단 하나만을 남긴 채 모든 것을 소실시켰다. 그때 하나 남은 것이 바로 알루미늄이다. 대형 화재로 인한 알루미늄의 재발견은 리모와에게 있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다. 창립자의 아들 리하르트 모르스첵(Richard Morszeck)은 화마 속에도 살아남은 알루미늄을 미래 소재로 선언하며 경량 알루미늄 러기지를 출시했고 이는 화재에서 살아남은 가방이라고 소문이 퍼지며 큰 인기를 끌었다고 전해진다. 이때부터 리하르트 모르스첵 바렌차이헨(Richard Morszeck Warenzeichen)의 이름 앞 두 글자씩을 따와 ‘리모와’라고 명명하기 시작했다.
2백20개의 부품을 1백17분 동안 조립해야 비로소 리모와의 러기지로 탄생된다.
리모와는 새로운 소재로 또 다른 혁신을 일으킨다. 장난감 레고의 소재로 유명한 ABS와 우주비행사 헬멧에 사용된 폴리카보네이트 소재가 그 주인공이다. 리모와는 이 두 소재를 통해 다양한 디자인과 형형색색의 컬러로 ‘젊고 가볍고 캐주얼하다’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게 된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통해 여행자에게 편의는 물론 디자인까지 만족시키는 리모와의 혁신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리모와는 반 세기의 경험을 통해 여행용 가방 브랜드 그 이상을 바라보게 된다. 이동이 잦은 전문직 종사자들은 물론 체스선수, 뮤지션, 시계수집가, 주류 애호가 등 다양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맞춤형 여행 러기지를 주문 제작하기 시작한 것. 전시장에서 선보인 레저 라운지, 해피 아워, 사운드 스테이지, 사운드 룸, 리모와의 스티커를 붙여볼 수 있는 체험 공간으로 구성된 ‘스페셜 퍼포즈’ 섹션에는 이러한 주문 제작 러기지와 다양한 아이템이 가득했다. USM과 협업한 모듈 가구부터 보틀과 라디오 케이스, 뮤지션 퍼렐 윌리엄스의 키보드 케이스까지. 이제 리모와는 단순히 여행자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특별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도 담게 되었다.
리모와의 다양한 아이템과 러기지를 만나볼 수 있는 ‘스페셜 퍼포즈’ 섹션.
다음 공간으로 들어서니 익숙한 얼굴들이 보인다. 디올, 펜디, 오프화이트, 몽클레르 등 패션 하우스와의 협업부터 뮤지션 빌리 아일리시, 아티스트 다니엘 아샴과 협업한 케이스, 뷰티 브랜드 이솝, 자동차 브랜드 포르쉐와의 협업 케이스까지. 패션과 뷰티는 물론 문화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우리의 일상에 더 다가온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이번 전시를 통해 다음 협업 브랜드에 대한 힌트를 공개했다. ‘티파니 블루’ 컬러가 칠해진 이 공간은 9월 말 공개될 티파니와의 협업 제품을 암시한다.
러기지는 우리와 함께 여행을 하며 추억을 내포한다. 긁히고 파이면서 여행의 모든 순간이 수많은 흔적으로 남게 되기 때문. ≪SEIT 1898≫ 뉴욕 전시의 마지막 섹션 ‘프렌즈 & 패밀리’에는 개성이 담긴 러기지로 가득하다. 이번 전시를 위해 예술가 다카시 무라카미, DJ 페기 구, 테니스선수 로저 페더러 등 리모와 프렌즈가 직접 사용하는 러기지를 특별히 공수해온 것이라고. 한편, 리모와의 글로벌 아이콘이 된 로제와 프렌즈 로운이 뉴욕 전시장을 찾아 직접 전시를 관람하고 체험해 눈길을 끌었고 뮤지션 센트럴 씨(Central Cee)가 축하 무대를 선보이며 뉴욕의 밤을 뜨겁게 달구었다.
도쿄에 이어 뉴욕 전시에도 함께한 리모와 프렌즈 로운.
“목적지가 아닌 여정이 중요하다”는 극작가 T.S 엘리엇의 말처럼 모든 여행의 시작과 끝은 가방을 정리하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그저 여행가방에 물건을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설렘과 함께 여행지에서의 추억을 담아 오기 때문이다. 지난 1백25년간 리모와는 여행자들의 발길이 닿는 곳 어디든 함께하며 설렘과 새로운 흔적들을 간직해왔다. 아쉽게 이번 뉴욕 전시는 마무리되었지만 중국 상하이와 독일 쾰른으로 그 여정이 이어진다고 하니 다음 도시에서의 만남을 기약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