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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전여빈의 시간 속으로 10월호 화보 공개

‘저의 그리움과 안부를 사진으로 실어 보냅니다.’ 10월에 쓰인 전여빈의 편지.

프로필 by BAZAAR 2023.10.04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너의 시간 속으로> 제작발표회 때 요즘을 일컬어 “씨를 뿌린 곡식을 수확하는 시기”라고 표현했다. <너의 시간 속으로>와 영화 <거미집>이 비슷한 시기 공개된다. 열심히 작업한 작품들이 세상에 나오는 때는 어떤 마음인가?
작업을 하면 꽤 시간이 흐르고 나서 과거의 작업을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쏟아부은 애정과 노력은 과거형이 되었는데 또 다시 현재형이 되어버리는 기분이 이상하기도 하다. 내 안에서 그 인물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그 작업물이 하나의 유기체로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게 세상에 내보낼 때면, 보냈다고 생각한 인물과 다시 만나는 기분이 든다. 그럼 나는 또 헤어질 준비를 해야 한다. 얘를 또 어떻게 잘 보내야 할지.
현재진행형으로 그 인물에 대해 생생하게 이야기하는 기자간담회를 보면 최선을 다해 그 작품을 마무리했다는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어떤 것을 떠나 보낼 때 마음을 많이 쏟는 편인가?
연인 관계에서도 사랑했다 헤어지면 마음이 아프고 우정을 쌓은 친구 사이에서도 어떤 이유로든 멀어졌다는 걸 느낄 때 허전함을 느끼잖나. 시간과 애정, 노력을 쏟으며 살았던 시간이니만큼 작품을 대할 때도 똑같은 감정을 느낀다. 이별하거나 졸업하는 마음을 말이다.
<너의 시간 속으로>와 <거미집>을 비슷한 시기에 촬영했다고. <너의 시간 속으로>의 준희와 민주, <거미집>의 미도는 캐릭터의 결이 완전히 다르다. 같은 시기에 이 인물들을 연기하는 것이 어렵진 않았나?
분명 쉬운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본에 적힌 캐릭터의 성격이 워낙 달랐고 좋은 동료들이 옆에 있어 각각의 그림을 그려내기 위해 내가 해야 될 몫을 해내기만 하면 됐다. 
 
플라워 디테일 화이트 드레스는 Rohk. 박시한 데님 팬츠는 Arket. 
 

텍스트로 존재하는 인물에게 생명력을 부여하기 위한 각자의 방식이 있다.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인물이 되기 위해 어떤 방법을 활용하나?
우선 대본에 충실한다. 그 사람을 유추할 수 있는 모든 지도가 대본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과서적인 대답 같지만 정말이다. 대본에서 그 인물을 찾기 위해 샅샅이 살펴본다. 마치 지도를 꼼꼼히 보듯 말이다.
<너의 시간 속으로>의 연출을 맡은 김진원 감독이 “민주로서도 준희로서도 그 순간 진짜 그 인물이 되는 집중력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비단 이 드라마뿐 아니라 전여빈이 연기하는 모든 인물에서는 ‘그 사람을 연기한다’가 아닌 ‘완전히 그 사람이 되어버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순간을 만나려고 항상 노력한다. 하지만 언제였다고 꼽고 싶지는 않다.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 부분은 관객들의 선택으로 남겨두고 싶다. 배우로서는 모든 순간이 그러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인간인지라 그렇게 되지 못하는 시간들이 많기 때문에 계속 노력하려 한다. 완전히 그 인물이 되었던 순간들은 내 안에 깊게 남아 또 다시 그 순간을 만나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톱은 Chloé. 
 
<너의 시간 속으로>에는 누구나 한번쯤 꿈꿔본 세계관이 등장한다. 타임 슬립 말이다. 누구나 한번쯤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 않나. 당장 오늘 저녁에라도 이불킥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하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도, 미래로 빨리 달려가고 싶지도 않다. 나는 현재가 가장 소중하고 지금이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벚꽃 장면부터 시작해 드라마에 사계절이 다 담겨있다. 누구에게나 몽글몽글한 감정이 떠오르는 시절이 있다. 당신에게도 그때 그 시절의 설렘을 불러일으키는 날씨, 습도, 온도 같은 것들이 있나?
대학생 때 친구와 함께 ‘젊은 연극제’의 임원을 맡아 굉장히 열심히 참가했던 일이 떠오른다. 마로니에공원에 전국의 연극영화과 학생들이 모여서 하는 축제였다. 여름밤에 한 치킨집에 모여 치맥을 했다. 거기서 파는 라면이 너무 맛있었던 기억도 난다! 여름밤 공기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그때 입었던 단체 티가 빨간색이었는데…. 그 당시에만 가질 수 있었던 감정들이 생각난다.  
그런 감정들이나 기억을 일기로 남기는 편인가?
기록을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다. 그런데 기록한 것들을 잘 없앤다. 간직하는 걸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사진이나 글로 가지고 있을 때도 있지만 그것들이 언제든 사라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시폰 드레스는 Dries Van Noten. 슬렉스는 Fendi. 샌들은 Givenchy. 
 
과거의 작은 물건이나 기억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역시 당신은 현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실 이런 성향은 물건 관리를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단짝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자료 수집을 굉장히 잘한다. 10년 전에 찍은 내 셀카도 가지고 있을 정도다. 그 친구에게 항상 말하곤 한다. “난 이런 걸 잘 저장해두지 않으니 너가 잘 가지고 있어줘. 가끔 보고 싶어질 때 네가 보여주니 좋더라.”
과거의 시간이나 물건에 집착하지 않는 건 굉장히 부러운 성격이다. 추억과 관련한 것이라면 손톱만 한 것도 못 버리는 사람이 많으니까.
나는 되려 아기자기하고 꼼꼼한 사람들이 부럽다. 보내버린 것들이 너무 많으면 기억하고 싶어도 흐리게 떠오를 때가 있다. 선명하게 보고 싶은데 마음의 감상으로만 남아있으니까.  
 
가죽 미니 드레스는 Miu Miu. 
 
<거미집>으로 칸에 다녀온 순간도 나중에 생각하면 몽글몽글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추억이 되지 않을까.
아주 훌륭한 영화 축제에 우리 영화를 처음으로 선보이러 간다는 생각으로 다녀왔다. (송)강호 선배님께서 <거미집> 팀 모두를 잘 이끌어주셔서 낯선 감정 없이 굉장히 편안한 마음으로 다녀왔다. 다 함께 소풍을 떠난 것 같았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 그리고 동료들과 ‘연기’를 통해 연대했다. 다른 사람과의 만남으로 인해 내 세계가 확장되거나 달라지기도 한다. 그들은 전여빈이라는 인물의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매번 작업을 할 때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운이 좋으면 스쳤던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도 있다. 각각의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한 개성들이 달라 사람들에게 배울 점은 언제나 있는 것 같다. 어떤 부분은 나를 비추어 반성하게 만들기도 하고 누군가의 빛나는 면을 닮고 싶어지기도 한다. 어느 순간 좋은 모습이 나에게 흡수되기도 하고. 영화든 드라마든 동료들과 주고받는 시간의 밀도가 깊은 작업이다 보니 이러한 유기적인 상호작용은 항상 일어나는 일인 것 같다.
 
니트 톱은 Gucci. 목걸이는 Jiye Shin. 
 
배우는 일을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말한 적 있다. 매일이 불안과의 싸움이었다고. 이 불안은 착실히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는 지금도 있나?

인간은 살아있는 한 방황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모두 불안을 마음에 갖고 있지 않을까. 나도 그렇고 모두가 미래를 알 수 없으니 말이다. 불안하지 않다고 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은 유약한 동시에 한없이 강해지는 존재라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있는 동안 불안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자 마땅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불안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도 한다. 당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은 무엇인가?
어떨 땐 그게 나 자신인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인 것 같기도 하다.
 
터틀넥 맥시 드레스는 Cholé. 슈즈는 Dries Van Noten. 
 

최근 관심을 가지고 있는 화두는 무엇인가?
역시 넷플릭스 <너의 시간 속으로> 공개와 <거미집> 개봉이다. 사랑하는 작품을 세상에 뚜벅뚜벅 걸어가게 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되니 말이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 집에서 꼭 하고 나오는 것들이 있나?
향초를 피우거나 아로마 오일을 데운다. 향이 주는 편안함을 중요시 여긴다. 촬영을 하러 나간다거나 개인 일정을 보낼 때 옷에 향수를 뿌리는 것은 나에게 편안함을 주는 루틴이다. 그 향을 맡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매일의 습관 같은 것이다.
<너의 시간 속으로>와 <거미집>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를 하나씩 꼽아달라.
<거미집>에서는 “컷, 오케이”. 송강호 선배님이 그 대사를 자주 외친다. <너의 시간 속으로>에서는 대사 대신 작품 자체를 많이 닮아있는 OST ‘Never Ending Story’를 뽑고 싶다. 가사를 찬찬히 읽어 보면 너무도 시적이라 명징하게 다가오진 않는다. 어릴 때부터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가사의 뜻은 모르겠지만 굉장히 아름답다 여겼다.  

Credit

  • 프리랜스 에디터/ 김지원
  • 인터뷰/ 김희성(프리랜스 에디터)
  • 사진/ 안주영
  • 헤어/ 손혜진
  • 메이크업/ 이영
  • 스타일리스트/ 윤애리
  • 어시스턴트/ 박세진,이원선,허지수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