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골목을 지켜온 정동1928 아트센터 한편, 두손 갤러리의 예스러운 건축물이 선명한 블루 컬러로 휩싸였다. 2014년 창간 이래 매해 5월과 10월 발간되어온 〈바자 아트〉 한국어판의 창간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전 ≪바자전: Holi-Day, 세 개의 렌즈≫(이하 바자전)가 준비를 마쳤기 때문이다. 예술이 지금처럼 패션 매거진의 메인 콘텐츠로 자리 잡기 이전부터 〈바자 아트〉는 현학적 수사 대신 예술이 우리의 삶과 어떻게 맞닿아있는지를 〈바자〉의 언어로 전해왔다. 책을 통한 담론을 전시로 구현한 이번 ≪바자전≫에는 고유한 사진예술을 선보이는 세 명의 사진가 제임스 해리스, 신선혜, 목정욱이 ‘홀리데이’를 주제로 담아낸 시선이 담겼다. 패션 매거진에 있어 사진이라는 매체는 불가분의 관계이자 창조적 실험을 반영하는 도구다. 피터 린드버그, 리처드 애버던부터 만 레이와 달리까지. 당대를 대표하는 수많은 예술가와 포토그래퍼를 배출한 〈바자〉의 역사를 살펴보면 전시의 형태가 사진전인 것은 마땅한 선택이다.
1층 전시장에 작품 설치를 끝내고 나니 교토의 사원과 카라라의 대리석 산을 지나 아이슬란드와 이탈리아의 어느 길목까지 자전축을 유유히 넘나드는 광경이 펼쳐졌다. 입구에서 관객을 맞이하는 것은 영국 출신의 아티스트 제임스 해리스의 작품. 다양한 국가를 오가며 작업하는 그는 ‘마법과 같은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강박적일 만큼 무수한 시도를 거듭한다. 이번 전시에 강원도의 단풍나뭇잎을 포함한 미공개 작을 선보인 작가는 전시를 위해 한국을 방문해 관객들과 작업 비하인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패션 포토그래퍼로 〈바자〉와 수많은 작업을 이어온 신선혜 작가는 1년에 한 번 갖는 휴가 기간 동안, 이탈리아의 작은 해안가 마을에 머물며 포착한 순간을 선보였다. 시장 한편에 쌓인 새파란 플라스틱 바구니에 무심하게 담긴 빨간 장미 다발, 수명을 다한 모카 포트에 꽂힌 들꽃까지. 화려하고 감각적인 패션 사진과 달리 무심하고 소박한 오브제와 잔잔한 일상의 장면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평화롭게 만들었다. 유수 셀러브리티들의 애정을 받으며 상업과 개인 작업을 왕성히 하는 사진가 목정욱은 2018년 촬영한 아이슬란드의 풍광을 처음 공개했다. 전시장 내 다른 구역에 비해 조도가 낮은 공간이, 수묵화 같은 10월의 아이슬란드 풍경과 어우러져 고요한 명상의 시간을 선사했다.
한번쯤 미지의 장소에서 익숙한 향기를 마주했을 때, 잊고 있던 기억을 소환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후각이 뇌를 자극해 특정 심리로 이어진다는 연구 결과는 다수. ≪바자전≫의 전시장은 시각뿐만 아니라 후각을 통해 감상한 작품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뷰티 브랜드 포스트에세이와 협업한 것. ‘향을 통해 써내려갈 에세이 같은 시간’이라는 슬로건을 품고 전개하는 브랜드인 만큼 전시 공간 내 향을 더했다.
전시장에 배치한 ‘005 완더 위드 미’는 청량한 하늘을 연상케 하는 플로럴 머스크 향으로, ≪바자전≫의 홀리데이 바이브와 조화를 이뤘다. 이 외에도 생화를 한 아름 안은 듯한 ‘001 잔브릴리언트’, 시트러스 느낌이 시원한 ‘002 얼모스트 블루’, 파우더리한 플로럴 향 ‘003 도즈 인 러브’, 바닐라와 재스민을 가르는 중성적 레더 향이 독특한 ‘004 프롬 데미안’ 등도 굿즈숍에 배치했으며, 오 드 퍼퓸과 핸드크림, 디퓨저로 만나볼 수 있었다.
프리뷰가 시작된 저녁 6시. 사전 초청을 받은 미술계·패션계 인사들과 관객 약 6백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산뜻하고 차분한 공기 속에 각자의 ‘홀리데이’에 대한 사유들이 모인 전시장 위 2층에서는 여느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목격할 수 없는 파티의 열기가 뿜어져나왔다. 축제에 음악과 먹거리가 빠질 수 없는 법. 백남준의 대작인 비디오 월 〈M200〉을 배경으로 디제잉 사운드가 흐르고, 다양한 술과 음료, 각종 전과 음식, 〈바자 아트〉의 상징들로 채워진 포토월이 손님을 맞이했다. 만남과 대화는 끊이지 않았고 작가와 관람객들이 자유로이 시간을 함께한 시간. 그날의 설렘을 고스란히 담은 순간을 공유한다.
휴식을 위한 태도, 완벽한 휴가에 대한 상상.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행복을 위해 홀리데이에 대한 정의는 필수 불가결이다. ≪바자전: Holi-Day, 세 개의 렌즈≫를 통해 각자의 홀리데이에 대한 시선을 갖는 단서를 발견했기를 바란다. 전시에 대한 작가들의 이야기는 10월호로 출간될 〈바자 아트〉 21호에 담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