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쾌락주의자라 규정하는 배우, 문소리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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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쾌락주의자라 규정하는 배우, 문소리

연기도, 연출도 매 순간 재미를 좇아오니 사그라지지 않는 확신에 닿아있었다.

BAZAAR BY BAZAAR 2023.05.25
뷔스티에 드레스, 트렌치코트, 슈즈는 모두 Dolce & Gabb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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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와 오랜만에 재회했다. 특히 좋아하는 자신의 얼굴이 있나?
아이, 그런 거 없다.(웃음) 화보 촬영은 ‘내가 언제 이러고 있었지?’ 싶은 순간을 포착당할 때가 많아서 낯설다. 나도 모르던 표정을 발견하면 반갑고.
개인적으로 〈보건교사 안은영〉의 화수 캐릭터를 좋아한다. 레드립, 꼭 다문 입술, 의뭉스럽지만 강단 있는 표정. 비밀을 품은 빌런을 그토록 다정스럽고, 매혹적으로 표현한 배우를 본 적이 없다.
나도 무척 좋아한다. 쉽게 만나볼 수 없는 역할이기도 하고.
최근 드라마 〈레이스〉에서 PR 전문가 구이정 역할을 맡았다.
주위에 홍보 업계 사람들이 많은데, 세상이 디지털화되고 MZ세대가 등장하면서 예전에 비해 문화가 바뀌었다더라. 구이정은 그런 흐름에 변화를 가져오고, 수직적인 홍보 문화를 바꾸는 인물이다.
공개된 포스터에서 구이정의 MBTI가 INTJ라던데. 당신의 실제 성향은 INFJ라고 알고 있다.
한 항목만 다른 걸로 봐선 비슷한 걸까? 잘은 모르지만, 내 MBTI를 말하면 다들 반응이 “아…” 하며 시큰둥한 것 같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별자리도 마찬가지. 7월생 게자리인데 외국 친구들에게 말하면 나를 굉장히 까다로운 타입으로 본다. 좋게 말하자면, 예술가 기질이 많다고들 하는데….
누군가 비유하길 INFJ가 “널 위해 죽을 수도 있어”라면, INTJ는 “널 위해 죽여줄게”라고. 두 타입 다 자기성찰을 과도하게 한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맞다. 잠들기 전 하루 있었던 일을 복기하느라 두세 시간이 걸린다. 내가 했던 말을 쉽게 안 잊어버리고 반성을 그렇게 한다. 남편이 용감한 캐릭터가 아닌데 사람들이 그렇게 본다며 놀리기도 한다.
이번 촬영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젊은 배우들과 함께했다. 늘 ‘꼰대’되기를 경계한다고 했는데, 어떤 경험이었나?
돌이켜보니 왜 그랬는지 창피한데, 쫑파티 때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친해진 거겠지? 같은 회사인 홍종현 배우와는 키우는 강아지 얘기도 하고 〈퀸메이커〉를 잘 봤다는 연락을 주고받기도 했다. 또 드라마 속 홍보팀 직원을 맡은 배우들이 올해 초 다 같이 내 연극을 보러 왔는데, 되려 모두 나를 챙겨주어 고마웠다.
 
원피스는 Coach.

원피스는 Coach.

 
볼레로, 스커트는 Sportmax. 슈즈는 Alaï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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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퀸메이커〉는 공개 직후 넷플릭스 비영어권 국가 시청 순위 1위에 오르는 등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소신 있는 인권 변호사 역의 오경숙 캐릭터가 실제 당신의 성격과 겹쳐 보인다는 평이 많았는데,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다면?
“오경숙에겐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의 눈빛이 있다”는 댓글이 기억에 남는다. ‘안광이 남다르다’, ‘안광숙’ 같은 코멘트를 보고, 오경숙이 어떤 마음 가짐으로 살아온 인물인지 표현하려 애쓴 노력이 언뜻 누군가에게는 보였구나 싶어 감사했다. 눈빛은 결코 연기로 속일 수 없는 부분이다. 영화 〈박하사탕〉 속 순임의 눈빛을 지금 아무리 연기하려 해도 불가능하다. 그땐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갓 세상으로 나온 눈빛이었으니.
말 그대로 코르셋을 벗어던지는 토론 장면도 화제였다. 지문이나 대사가 직접적이어서 오히려 표현하기가 어렵진 않았나?
호흡을 달리하며 갇혀 있지 않은 인물로 표현할 수 있어 좋았다. 셔츠 사이로 패드와 코르셋을 한 번에 풀어야 해서 기술적으로도 무척 연습이 필요한 신이기도 했다. (웃음)
반듯한 황도희 역과 달리, 오경숙만의 자유분방한 에너지가 대립되면서 극의 재미가 배가되었다는 반응이 많았다.
촬영 전만 해도, 직선적이고 투사적인 이미지를 생각했는데 첫 신을 찍고 오경숙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목적지에 도달하는 유연한 캐릭터로 잡아가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이렇게 딱 들어맞는 느낌이 오는 역할이 있다. 육감이 필요한 영역이랄까.
병원 원장, 배심원, 판사에 이어 시장 역을 맡았다. 종종 관(官)이 많은 사주를 연기로 풀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현실에서 판사나 의사, 정치인으로 사는 것보다 극중에서 캐릭터로 연기하는 편이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비해 여성이 전문 직업인의 역할을 많이 맡는 게 무척 반가운 일이기도 하다. 〈퀸메이커〉를 촬영하면서는 실제 사건이 모티프가 되다 보니, 오히려 현실 속 인물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저런 인물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질 수 있게끔 만들고자 했다.
 
화이트 수트는 L’H.A.S. 슈즈는 Alaïa.

화이트 수트는 L’H.A.S. 슈즈는 Alaïa.

 
드레스는 Valentino.

드레스는 Valentino.

한편으로 대중이 배우 문소리에게 보고 싶어하는 모습이 정해져 있는 것 같다는 고민은 없나?
물론 대중의 전반적인 취향과 생각은 중요하다. 작품의 성패가 달려있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작품을 선택할 땐 오로지 내가 이 작품의 창작자 중 한 명으로서 얼마나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 것인지를 고민한다. 어떤 작품은 요즘의 취향보다 한 발 앞서 나가기도 하지만, 그 역시 대중과 소통하려는 의지가 읽힌다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의 니즈와 딱 맞아떨어지는 작품을 만나면 쾌감을 얻기도 하고, 반보 뒤따라가는 듯 뒤처지거나 촌스럽다는 평을 받는 작품도 그만의 미덕이 있다.
독립영화에 참여하는 이유에 대해 “삶이 우아하고 명예로운 것으로만 채워지면 지겹지 않나. 흥미진진한 긴장감을, 공부거리를 스스로 더 부여하는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어떨 때 창작자로서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나?
사람들이 나를 굉장히 의식 있는 사람으로 보기도 하는데, 스스로를 규정하자면 나는 ‘쾌락주의자’에 가깝다. 연기도, 연출도 결국 내가 재미있어서 참여한 거다. 남들과 쾌락을 느끼는 포인트가 다를 수는 있다. 밥 한 끼를 시켜 먹어도 되는데 굳이 만들어 먹는 과정이 재미있어서 요리를 한다. 왜 사서 고생하냐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나는 재미를 좇아서 살아왔구나’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이 답을 본 신인 감독들이 용기를 얻을 것 같다.
예전에 윤여정 선배님과 〈바람난 가족〉을 찍을 때, 당시 임상수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이었고 투자도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과감하게 작품을 고르는 점이 참 멋있어 보였다. 나도 나이 차이가 나는 감독들과 저렇게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언제든 도전적인 영화와 연극에 참여하고 싶다.
연출을 공부하기 이전에, 배우는 삶이 좀 미쳐있어야 미친 듯한 연기가 나올 수 있다고도 말했다. 여전히 같은 생각인가?
끝까지 밀어붙이는 마음과 멈출 줄 아는 것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추상적인 관념이기도 한데, 배우에겐 자기만의 기준을 넘어서는 순간이 연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귀신같이 그 적정선을 매번 찾아가는 배우들이 있고, 어떤 배우들은 기세로 나아가기도 한다. 예전에는 나 역시 자신을 가만히 놔두지 않고 집요하게 굴었던 것 같다. 지난 공연 때 오랜만에 만난 박원상 배우가 내게 “그렇게 살면 힘들지?”라고 물었는데, “이제 안 그래” 하고 답했다. “기운이 빠져 그러니?” 묻길래, “나를 덜 몰아세워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이야기했다. 아마도 자기 확신이 쌓여서 그런가보다.
 
트렌치코트는 Alaïa. 타이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트렌치코트는 Alaïa. 타이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따금 연기를 벗어나고 싶었던 순간을 어떻게 극복해왔냐는 질문을 하는 편인데, 문소리에게는 그런 순간이 없었을 것만 같다. 직접 연출자가 되거나, 제작자로서 영화사를 차리거나 배우가 아니어도 늘 연기 곁에서 지내왔으니까.
배우가 된 초창기에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닌가 무섭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좋은 작품을 만나며 버텼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를 좋아했다. 연극, 소설처럼 이야기에서 위안과 살아갈 힘을 얻는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지금도 이야기를 만드는 일에 종사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내 안에 이야기의 씨앗들이 널려 있는데 언제 싹이 날지, 나무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햇빛도 쐬어주고 물도 주며 잘 키우다가 운명처럼 큰 나무가 되어 완성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멈추지 않고 이어가고 있다.
지난가을 제주도에 영화사 연두의 사무실을 열기도 했다.
남편이 매일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볕도 쐬고, 초록초록한 것들을 볼 수 있는 환경에 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한 달에 서울 반 제주 반 나누어 생활한다. 제주에 살려면 기운이 필요하다. 바람도 세고, 날씨도 변덕스럽고. 거기에 적응하다 보니 더 힘이 생기는 것 같다.
문소리는 언제까지 연기 곁에 머물게 될까?
20년쯤 배우를 하면 그만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마음이 달라진다. 이제 좀 다른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싶고. 요즘은 10년씩 계획을 세우는 게 무의미한 것 같다. 사부작사부작, 한 6개월 정도 작은 성취감을 느끼며 살다 보면 꿈에 가닿지 않을까? 하반기에 유독 촬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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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안서경
    사진/ 김영준
    헤어/ 혜나(순수)
    메이크업/ 최수경(순수)
    스타일리스트/ 구원서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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