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젝트 해시태그 아카이브 바이닐
낯선 작가의 작품을 발견하는 일은, 예술 감상의 지평을 한 뼘 더 늘리는 일이다. 그건 넷플릭스 시리즈나 나에게 어울리는 물건을 구입하는 일을 찾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가 좋아하는, 유명한 작가 대신 나의 취향에 맞는 작가의 리스트를 하나씩 쌓아가며, 우리는 예술과 좀 더 가까운 일상을 누리게 된다.
생경하지만 새로운 시선을 찾는다면, 국립현대미술관의 차세대 크리에이터 공모 프로그램인 ‘프로젝트 해시태그’가 좋은 대안이다. 2019년부터 현대자동차와의 파트너십으로 이어오고 있는 프로젝트 해시태그는 작가, 기획자, 연구자 등 창작자의 분야나 매체에 구애 없이 신선하고 실험적인 감각의 결과물을 선보여왔다. 우리가 익히 아는 회화, 디자인, 건축 같은 시각예술 분야 이외에도 무용, 생물학, 시와 소설 등 다양한 장르들이 교차하면서 기존에 알고 있던 미술관 전시나 예술 작품의 경계를 확장하고, 예술의 범주에 대한 풍부한 질문과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왔다.
여기 프로젝트 해시태그의 지난 3년여 간의 창조적 여정이 3개의 바이닐 안에 담겨 있다. 무언가를 듣는다는 건, 시각적인 정보를 무한대로 상상할 수 있다는 뜻이다. 스크린으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시대에 흔치 않은 경험. 500 에디션 한정판으로 제작된 이번 아카이브 바이닐을 꺼내보면 다섯 팀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응축한 실험의 소리가 출력된다. 소리라고 해서 비단 음악에 한정되지 않는다. 어떤 이는 픽션을 낭송하기도 하고, 팟캐스트를 들려주기도 한다.

프로젝트 해시태그 아카이브 바이닐
눈꼬리를 치켜 뜬 오리가 그려진 2021년 바이닐은 사이드 B에서 더 덕 어몽 어스(신희정, 이가영, 정만근, 손정아)의 SNS와 인간의 욕망을 주제로 사운드 실험이 펼쳐진다. '양치 론도'는 전시를 통해 입의 감각에 대해 주목했던 이들이 1년여의 세월이 흐른 지금, 칫솔질이라는 행위를 통해 멈추지 않는 욕망이 반복되는 것을 표현한 작품이다. 반대편 사이드 에서는 새로운 질서 그 후(윤충근, 기예림, 남선미, 이소현, 이지수)가 챗 GPT가 만든 가사를 토대로 작곡한 ‘HTML SONG’을 선보인다. 과거 전시에서 음모론이 번지는 웹 생태계를 다룬 〈#벤트〉, 국립현대미술관의 웹 접근성에 대해 질문한 〈#국립대체미술관〉 등을 공개하며 오늘날 웹의 본질을 돌아본 이들은 현시점으로 나아가 화두인 챗 GPT 시대를 고찰한다.
마지막으로 2022년 바이닐에는 사이드A에서 로스트에어(이우경, 이다영, 박주영, 박민주)가 흥겨운 파티 믹스 세트를 송출한다. 이태원 케익샵, 성수 데어 바다데 등 국내 언더그라운드 공연 씬에서 파티를 통해 퍼포먼스를 이어온 이들의 기록이 음악과 팟캐스트 형식으로 담겼다. 반면 사이드B는 기술과 예술의 관계에 대해 탐색해온 크립톤(황수경, 염인화)이 우리를 미지의 먼 곳으로 데려간다. 〈관광 안내소〉, 〈환초〉, 〈식도락 투어〉라는 세 트랙을 통해, 기후 위기 시대에NFT를 활용한 가상의 생태 관광지, 코코 킬링 아일랜드를 만들어 그곳을 투어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프로젝트 해시태그 아카이브 바이닐 패키지에는 그간 크리에이터들의 질문과 고민이 담긴 프로젝트의 면면이 반영돼 있다. 소리를 눈으로 마주하는 듯한 경험을 누리고 나면 자연스레 자문하게 된다. “예술은 우리 앞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가?” 프로젝트 해시태그가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보여주었듯, 그것은 무한의 가능성이다.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2〉 전시 전경. 사진/ 박수환,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 아카이브 바이닐 트랙 전곡은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사운드클라우드(https://soundcloud.com/user-669778634) 에서 감상할 수 있다. 보다 자세한 사항이 궁금하시다면, 현대차 아트랩 아카이브 웹사이트(https://artlab.hyundai.com)와 인스타그램 (@hyundai.artlab)을 살펴보면 된다.
*《프로젝트 해시태그》는 공모, 심사, 프로덕션, 쇼케이스 총 4단계로 진행된다. 최소 2인 이상 참가자로 이루어진 컬렉티브 형태로 접수할 수 있으며, 융복합 실험성, 독창성, 실현가능성, 파급효과, 발전 가능성을 고려해 최종적으로 2팀을 선정한다. 선발된 창작자는 작업을 위한 3,000만 원의 상금과 작업실(창동레지던시)이 제공되며, 국립 현대미술관 서울에서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공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