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화보 촬영을 〈바자〉와 함께하게 되었네요. 연극적인 표정을 지어주실 수 있냐는 요청에 금세 눈시울이 붉어지던데. 어떤 장면을 상상했어요?
오늘 촬영은 저에게 도전이었어요. 사진 찍히는 게 영 익숙한 일이 아니거든요. 그래도 무척 재미있었어요. 불 꺼진 무대에 서서 혼자 대사 하는 순간을 떠올렸어요.
드라마 〈일타스캔들〉이 막을 내렸어요. 남행선의 든든한 지원군, 김영주 역을 맡았죠. 영주 같은 친구를 곁에 두고 싶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영주를 연기하면서 ‘진짜 친구 관계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만 집중했어요. 어떤 무거운 고민도 필요 없이 즐겼어요. 딱 영주처럼! 상대의 모든 말에 반응할 필요 없이, 그저 믿고 연기하면 됐죠. ‘찐친’이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관계잖아요. 촬영장 분위기 또한 드라마 속 반찬 가게처럼 밝은 분위기였어요. 애틋함과 끈끈함이 생겼죠. 전도연 선배와는 이전에 알던 사이가 아닌데, 촬영 마치고 인사하면 못내 아쉽고 그랬어요.
〈갯마을 차차차〉에서 공진동 통장 여화정, 〈런 온〉의 영화사 대표 박매이처럼 드라마를 통해 상대를 넉넉히 품어줄 만큼 마음씨가 너른 캐릭터를 자주 맡아왔어요.
각자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좋은 역할들이니까, 안 할 이유가 없었어요. 제게는 늘 이야기가 최우선이에요. 작은 역할이라도 이야기 안에서 인물이 어떻게 존재하는지가 가장 중요해요. 동참하고 싶지 않으면 선택하지 않을 때도 많아요. 비중이 큰 역할도 좋겠지만, 작아도 현장에 좋은 배우와 팀이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면 당장 그 속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죠.
어떤 배우들은 한 작품이 끝나고 완전히 180도 다른 성향의 캐릭터를 선택하면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기도 하는데, 그런 흐름과는 거리가 먼 배우 같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외적으로 크게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는 게 배우로서 너무 중요한 선택이죠. 다만 배우가 변화하는 방식에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색다른 캐릭터를 선택함으로써 이미지를 확연히 변화시키는 방법과 조금씩 내적으로 밀도를 높여가며 배우가 본래 가진 결을 확장하는 법. 저는 후자에 가까운 것 같아요. 기회가 된다면 겉으로 변화가 큰 역할도 해보고 싶어요.
니트 소재 팬츠수트는 Rvn. 스틸레토 힐은 73 Hours.
이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본명인 ‘이정은’ 대신 사진학과에 재학 중이던 시절 지은 그 이름요.
아티스트를 꿈꾸며 호기롭게 작가명을 짓고 싶었고, 아무도 쓰지 않는 이름을 택하고 싶었어요. ‘봉련’을 검색하면 ‘봉황 장식이 수놓인, 임금이 타는 가마’라는 뜻이 나오는데 딱히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어요. 어릴 적 친구들과 순수한 마음으로 지은 이름이죠. 그 이름으로 데뷔도 하게 되고 이제는 저한테 본명보다 의미있는 이름이 됐네요.
학부와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죠. 그 시절 무척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던데요.
매일 마미야 6 중형 필름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갔어요. 다큐멘터리 사진은 기다림이 필요한 작업이잖아요. 보통 카메라가 24~36컷을 찍을 수 있다면, 중형 카메라는 한 롤에 9~10컷 정도밖에 나오지 않거든요. 가만히 순간을 기다리죠. 바닷가, 길거리, 공사장 풍경을 찍고, 사람을 따라가 찍기도 하고. 기다리면 어떤 일들은 무조건 일어나니까요. 꼭 극적인 순간이 아니어도 매일 가면 미세한 변화들이 보여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가야 한다.” 이런 우직한 마음으로 죽도록 찍었던 것 같아요.(웃음) 이미지에 대한 강박도 있었고, 심취했던 시절이었죠. 암실에서 흑백 필름을 마음에 들 때까지 인화하곤 했어요. 그 작업이 대단한 장인정신을 요구해요.
작가를 꿈꾸던 소녀가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마음먹기까지, 어떤 전환의 순간이 있었나요?
대학원 논문을 써야 하는 고독한 시기였어요. 무료하기도 했고 명쾌한 답도 없어서, 기분을 환기하려고 갔던 연기 수업에서 흥미를 찾은 거죠. 영화에 매료되어 있었는데, 어느 순간 찍는 것보다 그 속에 들어가서 연기하는 배우들이 더 궁금해졌어요. 디렉터로서 결정하고 창작물을 이끌기보다 피사체가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커진 것 같아요.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 아버지께서 외모의 고유함을 잃지 말라고 조언해주셨다고요.
아버지께선 배우라면 막연히 연예인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얼굴을 바꾸지 않고, 네 고유한 얼굴로 잘할 수 있는 걸 찾아봤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죠. 자식이 행복하길 바라는 응원이었던 것 같아요. 아마 속으론 괴로우셨을 수도 있어요. 사진 공부 실컷 해놓고 진로를 또 바꾸니까. 고등학생 때에도 무작정 자퇴를 하기도 했고, 제 선택을 보면서 분명 고충이 많으셨을텐데 한 번도 반대하지 않으셨어요.
연출가 박근형 씨가 이끄는 극단 ‘골목길’에 소속해 활동하기도 했죠. 어떤 경험이었나요?
연극을 통해 사람에 대한 이야기,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결국에는 ‘우리 모두 불쌍하다’ 이런 이야기를 함께 하고 싶었어요. 독특한 개성의 극단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을 수 있었죠. 아무리 비참한 이야기를 다루는 연극이라도 극 속에는 희극과 비극이 공존한다는 걸 더 많은 분들이 느꼈으면 좋겠어요. 흔히 사람들은 연극은 무겁거나 어렵고 뮤지컬은 더 쉽다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거든요. 이야기가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지 장르에 구애받는 것이 아니니까요.
재작년 국립극장에서 〈햄릿〉을 연기할 때의 경험도 궁금해요. 여자 햄릿, 젠더 프리 캐스팅으로 주목받았죠. 독백이 많은 극의 특성상 책임감이 막중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해냈고, 결국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여자연기상까지 수상했죠.
연습할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혼자 해야 되는 것들에 짓눌려 괴롭기도, 도망가고 싶기도 했지만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스스로 가진 한계 때문에 선입견에 갇히는 순간도 많았는데, 끝마치고 나서는 행복했어요. 이 역할을 여자가 할 수 있다, 이 뜻이 아니라 “연극으로 연기로 무엇이든 가능하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고, 믿음을 갖게 됐어요.
연극을 하면서 매체 연기를 쉼없이 이어왔잖아요. 계속해서 연기하는 동력이 무엇인가요?
저는 40대가 되면서 “달리고 싶다”라는 생각이 더욱 들어요. 30대에는 죽을 뻔했어요. 너무 힘들었거든요. 할 건 많은데 이뤄놓은 게 없으니 조바심도 들고. 20대로는 돌아가고 싶지도 않아요. 아무것도 몰랐기에 막연했고, 두려웠죠. 과거에는 모르는 것들 투성이이고 그게 마냥 부끄럽고 그랬는데, 이제는 ‘몰라도 돼, 아는 척하는 것보다 모르는 게 나아’ 이런 식으로 배짱도 생기고요. 40대가 되니 이제 약간의 결과물들이 보여요. 그 결과물로 피드백을 받고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기 시작했는데, 여유를 갖기보단 연기를 더 많이 하고 싶어요. 농담 삼아 남편이랑 “우리 시간 없다, 조급하게 살자” 이렇게 말하곤 해요. 재밌잖아요. 남들 다 천천히 하라고 하는데 “뭘 천천히 해. 급하게 해!” 서로 그러고 살아요.
러플 디테일 드레스는 Irostyle. 체인 팔찌는 Panache Chasunyoung.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스스로 과거에 무척 내성적인 아이였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점점 더 대범해지는 거네요.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생각해보면 전 어릴 때부터 대범했던 것 같아요. ‘나 이거 할 거야’ 마음먹으면 갑자기 방향 틀어서 그만두고 다른 거 배우고. 과거에는 소심하다 생각하기도 했는데, 아니었던 것 같아요. 흔히 사람들은 조용한 사람을 소심하다고 생각하죠. 조용한 아이들이 되게 무서운 거예요. 그 에너지가 어디로 갈지 몰라요.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을 뿐, 그들만의 대범함과 비범함이 있어요.
안 해본 역할, 전부요. 특정한 모습, 어떤 성격의 인물을 얘기하는 건 너무 한정적이란 생각이 들어요. 저는 뭐든 처음 해보는 게 좋아요. 그래서 오늘 화보도 좋았고요. 비슷한 분위기를 내보는 촬영은 해봤지만, 오늘 이 경험은 처음이니까. 제게 맡겨질 역할이 누군가 해봤음직한 역할이라도 저는 한 번도 해본 적 없을 테니, 다른 걸 발견할 수 있는 거죠.
연기를 하면서 가장 사랑하는 지점은 무엇인가요?
일단은 할 일이 있어서 좋고(웃음), 저라는 사람이 타인에게 무언가를 충족시켜준다는 점이 좋아요. 점점 관심을 가져주실수록, 대중이 나란 배우에 대해서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되게 짜릿해요.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줄 때 그걸 오롯이 느낄 줄도 알아야 되는 것 같아요. 알고 보니 저는 누군가의 관심을 느껴야 더 큰 동력이 생기는 사람이더라고요. 자기 세계에 갇히기보다 이제는 대중이 나라는 배우의 어떤 점을 좋아하는지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게 충족되고 나면 비로소 개인의 것이 충족되는 것 같아요. 저는 그것 때문에 존재하는 사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