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아 벤투리니 펜디(이하 실비아): 한국은 기분 좋은 에너지를 가졌다.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고, 델피나는 두 번째다. 이곳은 볼거리가 풍부하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많아서 언제나 흥미롭다. 다만 방문 기간이 짧아서 늘 아쉽다. 델피나 델레트레즈 펜디(이하 델피나): 한국은 경제적으로도 발전했지만 문화 역시 뛰어난 나라다. 특히 서울을 좋아하는 이유는 전통과 미래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방문할 때마다 빠르게 발전하는 모습을 확인하며 놀라곤 한다. 전통과 미래의 결합은 펜디가 추구하는 방향과도 일치한다. 이번에 한국의 겨울을 처음 경험했는데 너무 춥다.
펜디 하우스는 1925년 시작 이래 현대의 여성을 그려왔다. 펜디가 추구하는 오늘의 여성상은 무엇인가.
실비아: 펜디는 곧 우리 가족의 역사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남긴 족적을 따라왔다. 1925년에 펜디가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여성의 입지가 매우 좁은 가부장적 사회였다. 강인한 여성이자 어머니였던 아델 카사그란데는 2차 세계대전 이후 5명의 딸 파올라, 안나, 프랑카, 칼라, 알다를 참여시키며 진보적인 가족 경영으로 펜디를 이끌어갔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의 여성은 더욱 부단한 노력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만 했다. 펜디가(家) 여자들의 도전적인 삶 자체가 브랜드의 모티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여성들이 많은 목소리를 내고 있고, 특히 디지털 플랫폼에서 여성의 약진을 확인할 수 있다. 펜디가 여성 비중이 높은 기업이라는 점에서 늘 자부심을 느낀다. 딸인 델피나를 비롯해 다음 세대를 위한 환경이 더 나아지길 고대한다.
현재 펜디 하우스는 실비아, 델피나, 킴 존스 세 디자이너가 삼각구도를 이루고 있다. 최근 컬렉션들을 보면 전체를 관통하는 콘셉트가 백, 액세서리, 주얼리, 슈즈까지 이어진다. 서로의 비전과 아이디어를 어떤 방식으로 공유하고 발전시키는지 궁금하다.
실비아: 우리 셋은 매우 친하다. 델피나는 딸이자 좋은 친구다. 킴과는 긴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잘 통한다. 함께 움직여야 할 때가 많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각자 다른 곳에 있을 때조차 흥미 있는 무언가를 보면 사진과 아이디어를 바로 공유한다. 우리의 단체 채팅방에서 대화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킴은 정말 탁월한 커뮤니케이터다. 그는 펜디의 아카이브를 탐색하여 헤리티지에서 영감을 얻고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한다. 특히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컬렉션에서 영감을 받아 젊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주입시킨다. 델피나: 오’클락(O’lock) 주얼리가 좋은 예다. 2021-2022 F/W 컬렉션에서 펜디 본사가 있는 팔라초 델라 치빌타 이탈리아나의 원형에서 영감을 받은 타원 디자인을 모티프로 전통적인 사각 FF 로고를 재해석한 펜디 오’클락 주얼리 컬렉션을 디자인했다. 점차 가방의 체인, 옷의 지퍼, 다양한 액세서리로 확장되어 쓰였다. 오’클락은 새로운 디자인이지만 오래전부터 펜디에 있어온 디자인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이번에 새로 선보이는 오’클락 홈웨어 컬렉션에서는 수직, 수평, 오벌 형태와 메탈 및 텍스타일 등 다양한 소재와 크기의 제품을 소개할 예정이다. 디자이너로서 흥분되고 영광스러운 일이다. 우리 셋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킴은 유머 감각이 뛰어나다. 유머는 우리에게 중요한 동력이기도 하다.
팬데믹을 지나면서 펜디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션 방향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실비아: 코로나를 통해 많은 것을 성찰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에도 작업을 멈추지 않고 긍정적인 생각을 유지하고자 했다. 코로나는 우리의 모든 것, 업무나 경험, 사고방식, 가치에도 영향을 주었다. 전에는 디테일에 집착했다면 지금은 큰 그림을 보려고 한다. 패션에 있어서도 패션 너머의 깊이, 사람과 건강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모든 행동에는 결과가 따른다.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하는 음식이나 의상에 보다 신중해졌다. 명품 브랜드는 오브제의 가치를 넘어 그것을 만든 제조법, 그 안에 담긴 철학, 그것이 가진 퀄리티의 총합이다. 이 모든 가치를 재정립하는 시간이었다.
오늘 서울 플래그십 오픈과 같이 펜디의 역사에는 굵직한 순간들이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은 무엇인가?
실비아: 100주년을 앞두고 있을 정도로 역사가 긴 브랜드에서 일하는 장점은 기념할 만한 역사적인 순간이 많다는 거다. 델피나의 오’클락뿐만 아니라 칼 라거펠트가 디자인한 로고 등 펜디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들을 믹스하는 것을 즐긴다. 킴이 디자인한 펜디그라피 로고도 있다. 펜디 하우스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다. 우리의 미래는 전통에 기반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하지만 과거의 유업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모든 순간이 오늘의 펜디를 만들기 때문이다.
아이코닉한 바게트, 피카부 백 등의 잇 백의 창시자로서 펜디 백만의 차별화된 디자인 전략이 있다면?
실비아: 나는 아이코닉한 백으로 다양한 디자인 플레이를 시도한다. 오늘 내가 들고 온 피카부 컷 백이 좋은 예다. 기존 피카부 백을 반으로 커팅하여 새롭게 탄생시킨 디자인이다. 피카부에서 가장 중요한 코드들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더한 것이다. 아이코닉 메탈 바, 버클, 피카부 특유의 뾰족한 사다리꼴을 더욱 매력적인 모습으로 변신시켰다. 거기에 그윽한 빈티지 실버 컬러의 오’클락 모티프 체인 스트랩을 더해 여성스러운 느낌을 강조하고자 했다.
펜디의 아이코닉한 백 중에서 평소에 가장 즐겨 착용하는 아이템과 이유는?
실비아: 오늘은 피카부 컷 백을 들고 나왔지만 보통은 빅 백과 스몰 백을 함께 든다. 커다란 쇼퍼 백에 바게트 백이나 피카부 백을 드는 식이다. 필요한 모든 것을 넣을 수 있는 빅 백과 미팅이나 포멀한 자리를 위한 스몰 백 둘 다 필요하다. 더블 백이 바로 나의 트레이드마크인 셈! 델피나: 바게트 백은 마치 내 여동생 같다. 엄마의 땀과 노력의 결실이다. 바게트 백은 여자에게 완벽한 파트너다. 실비아: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다. 지인이 바게트 백을 처음 구입했는데 이제서야 진가를 알게 되었다며 고백해왔다. 바게트 백 없는 삶은 이제 생각할 수도 없다고. 바게트 백은 비율이 완벽하다. 소프트하고 편해서 몸의 일부처럼 착 감기고, 수납력도 상상 이상이다. 소프트한 소재는 물건을 넣는 대로 모양이 자연스럽게 잡히게 만든다. 바게트 백을 하나만 소유한 사람은 없다. 일단 하나를 사면 자연스럽게 모으게 된다고. 바게트 백만 5백 개 이상 갖고 있는 일본 여성도 본 적이 있다. 지금은 훨씬 많을 거다. 바게트 백을 집대성한 바게트 북 사인회가 열렸을 때 수많은 수집가들을 만났다. 믿기 어려우면서도 행복했다. 바게트 백 중독이라니!
이탈리아의 문화와 자연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당신의 주얼리는 비대칭적이고 자유로운 방식의 스타일이 대부분이다. 펜디 컬렉션에서 주얼리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델피나: 내가 표현하고 싶은 건 ‘해방된 여성’이다.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믹스 매치는 자유를 상징한다. 어릴 때부터 경험한 브라질의 자연과 이탈리아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내재되어 있다. 사실 15년 전에 싱글 이어링을 처음 시도했다. 당시에는 귀고리를 한쪽만 하고 나가면 사람들이 반대쪽 귀고리 잃어버렸냐고 호들갑을 떨곤 했었다. 시대를 너무 앞서갔던 것 같다. 지금은 싱글 이어링이 자연스러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고 또 하나의 주얼리 클래식이 되어가고 있지 않나. 이처럼 정체된 세계를 뒤흔드는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 실비아: 고정된 룰에 대한 저항이라니 매우 이탈리아스럽다. 델피나: 규칙은 깨지게 마련이다. 주얼리보다는 패션적인 접근이다. 펜디라는 브랜드와 가문에서 습득한 것을 주얼리에 적용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참여하는 컬렉션만 봐도 엄청난 업무량이 예상된다. 일과 떨어져 쉬는 시간에는 주로 어떻게 보내나?
실비아: 쉬는 시간? 우리에게 쉬는 시간이 있던가?(웃음) 일과 휴식의 구분이 딱히 없다. 가족과 여행을 많이 다닌다. 주말도 여느 가족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하다. 업무가 많기 때문에 집에서는 최대한 편하게 쉬려고 한다. 델피나: 일과 개인 시간의 구분이 없다. 항상 무언가를 보고 연구한다. 전부 좋아서 하는 일이다.
펜디 가문의 일원으로 가족으로부터 받은 가장 큰 메시지가 있다면?
델피나: 매우 다양한 교훈과 메시지를 배우고 흡수해왔다. 직장과 가정 모두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훌륭한 여성들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기업과 가족이라는 두 유니버스를 자연스럽게 경험했다. 현재의 성취나 성공에 만족하지 말고 더 배우고 더 노력하고 더 발전시키라는 것이 가장 주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PALAZZO FENDI SEOUL 지난해부터 FF 로고만 그려진 천막을 드리운 채 공사 중이었던 펜디 플래그십 부티크가 2월,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청담 부티크 외관은 스테인리스스틸 마감의 기하학적인 대각선 디자인과 건물의 모서리로 수렴하는 듯한 구조의 중앙 유리창이 조화를 이루어 고전적인 로마 양식을 연상케 했다. 멀리서부터 시선을 압도하는 16m 높이의 LED 아치는 펜디만의 상징적인 모티프로, 로마에 위치한 펜디 본사인 팔라초 델라 치빌타 이탈리아나(Palazzo della Civilta Italiana)와 닮았다. 715m2 면적을 아우르는 4층 규모의 팔라초 펜디 서울에서는 여성 및 남성 레디투웨어와 퍼 컬렉션을 비롯하여 슈즈, 액세서리, 가죽 제품, 홈 액세서리 아이템을 만나볼 수 있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담은 유니크한 디테일과 함께 새롭고 현대적인 비전과 럭셔리 미니멀리즘을 제시한다. 부티크 4개 층에는 외관 파사드의 메탈 컷에 맞추어 각기 다른 대리석이 배치되었다. 로마의 교회를 연상시키는 아라베스카토 발리, 파타고니아 블랙 & 화이트, 라이트 그린 및 캐멀 컬러가 돋보이는 블루 로마, 강렬한 크리스털 블루 대리석이 자리 잡은 각각의 층은 외관의 LED 아치와 어우러졌다. 거친 시멘트 기둥과 빛줄기는 고급스러운 대리석, 샴페인 메탈, 스틸과 조화를 이루며 펜디 특유의 코드와 이중성이라는 전통을 강조하는 것. 이곳 부티크에서는 이탈리아 디자이너 로베르토 시로니(Roberto Sironi)가 맞춤 제작 브론즈 및 브론즈 글라스 소재로 완성한 디스플레이 테이블과, 뉴욕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 페르난도 마스트란젤로(Fernano Mastrangelo)의 미러 아트워크 등 엄선된 컨템포러리 작품 큐레이션 또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