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ATURAL RAW MATERIALS
로로피아나는 섬유에 관한 탐험가이자 개척자다. 섬유는 본디 얇으면 얇을수록 가치가 높아진다. 물론 머리카락 굵기의 1/1000 정도로 얇은, 일명 ‘초극세사’로 불리는 합성섬유를 공장에서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연에서 얻는 것과는 달리 합성섬유는 흡습성과 투습성이 낮아 피부에 덜 친화적이다. 로로피아나는 실험실이 아닌, 자연 속에서 인간이 찾을 수 있는 최상의 섬유를 찾아 다녔다. 6대에 걸쳐 섬유에 대해 파고들던 이 가문은 이젠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섬유 노하우를 유산으로 가지게 됐다. 고인이 된 세르지오 로로피아나가 각 소재의 기능에 맞게 디자인을 제어하는 제품 전문가였다면, 그의 동생이자 현재 로로피아나 부회장인 피에르 루이지 로로피아나는 보다 더 모험적인 역할을 맡았다. 그는 수년간 비쿠냐 목동들과 안데스 산맥을 등반하고, 몽골의 염소지기들과 초원을 누비며 더 가까이, 그리고 더 깊숙이 섬유에 대한 탐험을 이어가고 있다. 인간이 자연과 함께 만들어낼 수 있는 궁극의 섬유를 찾아서 전 지구를 샅샅이 뒤지고 있는 로로피아나식 탐험의 진귀한 결과물을 소개한다.





낙타과 동물 중 하나인 희귀 동물 비쿠냐는 로로피아나가 구해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현재 그들의 직접적인 보호를 받고 있다. 4천 미터가 넘는 안데스산맥 고산지대에서 서식하는 비쿠냐는 매우 예민하고 우아한 동물로 사육이 불가능하며, 한 마리 당 약 3천 평(1헥타르)이 넘는 땅이 서식을 위해 필요하다. 워낙 섬세한 털을 가지고 있어 ‘안데스의 여왕’이라 불릴 정도로 신성하게 다루어진 동물이었지만 무자비한 밀렵꾼들에 의해 1960년대에는 전 세계 5천 마리 정도만 남아 있을 정도로 멸종 위기에 몰렸다. 이에 1994년 페루 정부는 국제적 파트너를 선정해 비쿠냐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 섬유를 얻고 시어링이 끝난 후에는 자연으로 돌려 보내는 방식으로 비쿠냐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러한 보호 작업을 함께 진행한 파트너가 바로 로로피아나다. 이 결과 단 5년 만에 비쿠냐의 개체수는 2배로 불어났으며 멸종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2008년 로로피아나는 6백만 평이 넘는 땅을 구입해 비쿠냐를 위한 사유 자연보호구역을 만들었고, 이어 아르헨티나에도 2억 6천 평의 비쿠냐 보호구역을 운영 중이다.
비쿠냐는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와 타버릴 듯한 여름의 무더위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금빛 속털을 만들어내는데, 평균 지름이 12.5~13미크론 정도 되는 초미세 털로 짧고 촘촘하다. 덕분에 뛰어난 온도 조절 속성을 갖고 있다. 이렇게 귀하고 고급스러운 섬유를 채취하고 가공하는 것은 전통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요한다. 2년에 한 번씩만 털깎기가 이루어지는데, 다 자란 비쿠냐는 약 250g의 털을 생산한다. 겉부분의 거친 보호털을 제거하는 과정이 끝난 후 최종적으로 120~150g 정도만 생산된다. 비쿠냐 섬유의 세계 연간 공급량은 8천kg이 채 안 된다. 로로피아나의 스카프 하나를 만드는 데에 비쿠냐 한 마리의 플리스가, 스웨터 한 벌에는 비쿠냐 여섯 마리, 코트 한 벌에는 총 서른다섯 마리의 비쿠냐 플리스가 사용된다. 바로 이 희소성이 비쿠냐의 ‘잔인한’ 가격을 설명하고 있다.
더 기프트 오브 킹스(The Gift of KingsⓇ)
8세기부터 스페인에서 길러진 메리노 양은 워낙 품종이 뛰어나 왕이 동맹국의 왕족에게만 선물로 보낼 정도로 귀했다. 메리노 울은 말 그대로 ‘왕의 선물(The Gift of Kings)’이었다. 실제로 14세기에서 18세기 사이 스페인에서는 메리노 양을 한 마리라도 반출하는 사람에게 사형을 내릴 정도로 귀하게 다뤄졌다! 이후 메리노 양에 대한 규제가 사라진 1700년대 후반 호주에 메리노 양이 소개됐고, 호주의 자연환경과 잘 맞았던 메리노 양은 이후 호주의 주요 수출품이 된다. 현재 호주에서는 7천5백만, 뉴질랜드에서는 3천2백만 마리의 메리노 양이 서식하고 있다. 로로피아나는 이 중 선별한 1천여 마리의 양에서 양질의 양모를 채집하며 이후 진귀한 모든 것들이 누려야 할 정성과 전문성을 깃들여 가공한다. 이렇게 얻어진 섬유만이 ‘더 기프트 오브 킹스’라는 이름을 획득할 수 있다. 로로피아나의 더 기프트 오브 킹스는 특유의 카네이션 향이 나며, 12미크론밖에 되지 않아 캐시미어보다 더 가늘고 비쿠냐만큼 가볍다.
한편 로로피아나는 양모 업자들에게 더 나은 양모를 만들어야 할 동기를 끊임없이 부여하며 양모 산업이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예컨대, 매년 호주에서는 9백30여 가지의 테스트를 통해 최고의 울을 선정하는 ‘레코드 오브 베일(Record Of Bale)’ 경매가 이뤄진다. 지금까지 생산된 것 중 가장 우수하고 얇은 섬유에겐 ‘월드 레코드 베일’이라는 타이틀이 주어진다. 1997년 이래 로로피아나는 월드 레코드 베일을 차지한 메리노 울 전량을 높은 가격에 구매하고 있다.
베이비 캐시미어(Baby Cashmere)
최고를 향한 로로피아나의 집착은 멈추지 않는다. 베이비 캐시미어는 이름 그대로 3~12개월의 히르커스 새끼염소에서 얻는 소재로, 캐시미어를 뛰어넘는 새로운 경지의 섬유다. 오직 로로피아나에서만 만날 수 있는 희귀한 섬유로, 한번 입어보면 품질의 차이를 단번에 느낄 수 있다. 베이비 캐시미어는 여타의 로로피아나 섬유와 마찬가지로 털을 인위적으로 깎는 게 아닌, 완전히 무해한 빗질을 통해서만 얻는다. 10여 년간 몽골과 중국 북부의 염소 사육자들을 설득한 끝에 어린 염소의 털만을 모아서 제공받게 됐다. 새끼염소 한 마리에서 얻을 수 있는 부드러운 속털의 양은 80g에 불과하며(어른 염소에게는 약 250g을 얻을 수 있다), 거친 바깥쪽의 섬유들을 다듬고 나면 사용할 수 있는 속털의 무게는 30~40g으로 줄어든다. 풀오버 한 벌을 만드는 데에 새끼염소 19마리가, 오버 재킷 한 벌을 만드는 데에는 새끼 염소 58마리가 필요하다. 여기에 길고 긴 인간의 노력과 시간이 보태질 때 베이비 캐시미어 섬유는 옷으로 탄생한다.
캐시미어(Cashmere)
캐시미어는 점점 대중화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등급별 차이는 크다. 카프라 히르커스 염소 속털에서 얻는 캐시미어는 섬유의 굵기와 길이, 불순물의 혼합율에 따라 총 9등급으로 나뉜다. 그 중 최고 등급은 14미크론 정도로, 보통 머리카락 굵기의 1/4밖에 되지 않는다. 로로피아나는 염소와 염소지기의 관계를 염두에 둔 자연친화적인 방법을 통해 캐시미어를 채집한다. 염소는 순환주기에 따라 5월 즈음 털갈이를 시작하는데 이때 염소지기가 최대한 평화로운 상태에서 빗질을 한다. 이 과정이 다른 캐시미어 채집의 과정과 다른 점은 ‘시간’을 들인다는 것이다. 친밀함을 쌓는 과정 없이 바로 빗질을 하는 경우 염소가 경직된 상태가 되어 털도 뻣뻣하게 일어난다. 그 미묘한 차이가 오롯이 촉감으로 느껴진다.
또한 최근 ‘부드러운 금’이라고 불리며 캐시미어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자 무분별하게 염소의 수를 늘렸고, 이로 인해 염소들이 집단 영양 부족을 겪는 경우도 생겼다. 결과는 자연스레 캐시미어 품질의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로로피아나는 스스로가 속한 생태계를 가꾸는 일이 곧 브랜드의 번영으로 이어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때문에 2015년부터 ‘올해의 로로피아나 캐시미어 어워드’를 신설해 세계에서 가장 귀한 섬유인 캐시미어 생산에 삶을 헌신하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수많은 생산자와 신망받는 공급업체들이 섬도, 길이, 성능이라는 목표 기준을 바탕으로 이 상에 도전하고 있다.

LORO PIANA






LVMH 회장인 베르나르 아르노와 그의 아들인 앙투안 아르노에게는 으레 여름이 되면 하는, 이른바 ‘여름 전통’이 있다. 이탈리아의 호사로운 휴양지 중 한 곳인 포르토피노의 로로피아나 매장에 들러 폴로 셔츠와 스웨터를 고르는 일이다. 슈퍼 디자이너들이 만드는 온갖 명품 하우스를 소유(!)한 그들이 로로피아나의 폴로 셔츠와 스웨터를 휴가지에서 고르는 모습에서 우린 로로피아나가 어떤 브랜드인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로로피아나 가문은 19세기 초부터 모직물 사업을 시작했다. 19세기 후반 산업화 과정에서 2개의 모직공장을 설립했고, 1924년 피에트로 로로피아나가 자신의 이름을 딴 ‘로로피아나(Loro Piana)’라는 브랜드를 만들게 된다. 이어 1941년 그의 조카 프랑코 로로피아나가 경영권을 받았으며,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과 미국, 일본 등지에서 고급 직물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사업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한다. ‘Made in Italy’가 하나의 상징이 되던 시절, 로로피아나의 엄선된 고급 직물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품질을 자랑했다. 이로 인해 로로피아나는 이브 생 로랑의 시크한 니트부터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수트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컬렉션에 원단과 원사를 공급했다. 이후 1970년대 프랑코의 두 아들인 세르지오와 피에르 루이지가 경영권을 물려받아 3년마다 교대로 회사를 이끌었다. 로로피아나 가문의 섬유에 대한 탐험정신은 두 아들에게도 이어졌다. 이들은 더 집요하게 품질에 대한 연구를 이어갔으며 캐시미어를 비롯해 비쿠냐, 메리노 울 등 고급 직물 생산은 물론이고, 자신들의 직물을 이용해 직접 남성, 여성, 아동용 컬렉션을 출시하기에 이르렀다. 1990년대부터 직접 매장을 운영하기 시작한 로로피아나는 현재 카프리섬, 칸, 베벌리힐스를 비롯해 아르노 부자가 그토록 사랑하는 포르토피노 등 세계 곳곳에 매장을 열었다. 로로피아나가 화려한 로고 플레이나 소란스러운 마케팅 없이도 이토록 성장할 수 있었던 건 그들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품질’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
피에르 루이지의 말처럼, 로로피아나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소재를 만드는 것에 주력했다. 결국 단골 손님이던 아르노 부자는 2013년 로로피아나의 지분 80%를 인수한다. 이 거래에서 로로피아나 가문의 요청 사항은 단 하나였다. “절대 스타 디자이너를 데리고 오지 말 것!”이 얼마나 패기만만한 조건인가. 그들은 오직 품질로만 말하고 싶어한다.
참고로 예부터 상류층의 럭셔리한 휴양지 포르토피노에는 항구를 따라 요트가 줄지어 있다. 여름에는 이곳에서 요트를 즐기고, 겨울이면 아스펜에서 스키를 타고, 때때로 클래식 카 경주에 참여하는 사람들,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브랜드가 바로 로로피아나다.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이 고른 브랜드, 로로피아나가 특별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