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 하는 아드리안 게니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드로잉 하는 아드리안 게니

아드리안 게니(Adrian Ghenie)는 아시아 첫 개인전을 위해 28점의 새로운 그림을 그렸다. 처절할 정도로 폭발력을 가진 색을 잠시 접어두고 목탄으로 자유로운 선을 그었는데, 그는 이를 두고 미래를 위한 그림이라 명명했다.

BAZAAR BY BAZAAR 2022.10.02
 
Adrian Ghenie, 〈Self-Portrait with Paintbrush〉, 2022, Charcoal on paper, 65x50cm. © Adrian Ghenie

Adrian Ghenie, 〈Self-Portrait with Paintbrush〉, 2022, Charcoal on paper, 65x50cm. © Adrian Ghenie

아트 신이 프리즈와 키아프를 준비하느라 환희와 고통으로 뒤범벅될 때 아드리안 게니는 서울 땅을 밟았다. 그는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었다. 며칠 후 열릴 개인전을 위해 벽에 그림을 걸어야 했다. 아침부터 시작한 작업이 어느 정도 일단락되자 해가 지기 시작했다. 갤러리 한쪽 의자 위에 말보로 골드와 레이밴의 보잉 선글라스가 보였다. 잠시 후 그 물건의 주인이 나타났다. 이를테면 슬롯머신이 같은 그림이나 숫자를 일렬로 보여주는 순간처럼 그 광경과 완벽히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잘은 몰라도 오래전 모델로 보이는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있었는데 드로잉 속 인물들도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자화상인가 보군. 인터뷰 며칠 전에 받은 보도자료에도 자화상이라는 문구는 쓰여 있지 않았다. 휴대폰에 몰입한 인간 군상과 작가는 저만치 멀어 보였다. 큐레이터에게 듣기로는 휴대폰을 잘 쓰지 않고 메일도 일주일에 한 번 몰아서 본다고 했으니. 이런저런 모순을 떠올리는 와중 가장 큰 궁금증이 치고 올라왔다. 역사에 오점을 남기고 뒤틀리게 한 나쁜 인간들을 캔버스에 불러들여 형상을 뭉개고 색색의 물감을 난도질처럼 휘두르던 그였다. 여전히 그림 속 피사체들은 뚜렷한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목탄 하나로 그림을 그리게 된 변혁의 이유를 알고 싶었다. 단순명료한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아드리안 게니의 첫 개인전이 열리는 페이스 갤러리 전경.

아드리안 게니의 첫 개인전이 열리는 페이스 갤러리 전경.

1977년 루마니아의 바이아 마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유년시절 그곳은 어떤 모습이었으며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
바이아 마레는 루마니아의 북쪽 어딘가이고 우크라이나 국경과 가까운 곳에 있다. 놀랍게도 그림에 관한 한 풍부한 전통을 지닌 곳이다. 19세기 말 뮌헨, 비엔나, 부다페스트의 예술가들이 학문적인 환경 밖에서 그림을 연습하기 위해 찾아왔다. 그들로 인해 자유예술가 식민지 같은 분위기였다. 이런 메아리는 지금껏 학교에도 영향을 미쳤다. 예술가에 익숙해 꽤 개방적이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루마니아 혁명이 일어났을 당시 10대 초반이었을 텐데.
공산주의가 몰락하는 동안 10대를 보냈고 20대에 자유사회로의 전환을 경험했다. 어려운 시간이기도 했지만 사회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직접 볼 수 있는 독특한 기회가 되기도 했다. 결국 대부분의 것은 아름답지 못했지만.
국적과 연도를 되짚은 건 그런 배경들이 작품 세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 의사인 닥터 요제프, 나치인 헤르만 괴링이나 히틀러, 스탈린처럼 역사적 인물, 추악한 독재자의 모습이 악몽 혹은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그려진다.
언급한 그 이름들에 대한 나의 관심은 우리가 역사에 대해 심각하게 잘못 알고 있는 공산주의 기간 동안 그리고 공산주의가 몰락한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고자 하는 사람들의 갈망이 있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자유사회에서도 정보는 그저 다양한 형태로 변장된 ‘프로파간다’일 뿐이었다. 작품 안에서 이 주제를 다루는 것은 과거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 나 스스로 알아내는 방법이었고 행동 패턴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었다.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아드리안 게니.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아드리안 게니.

그러나 이런 얼굴이 뚜렷하게 보이는 건 아니다. 눈, 코, 입이 없기도 하고 재배치되어 있다. 파이를 뒤집어 쓴 채이기도 하다. 당신에게 초상화는 어떤 의미인가?
초상화를 풍경과 비슷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이 관점은 나에게 특정한 자유를 준다. 해부학으로서 보지 않으면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나는 우리에게 다소 현실적인 방식으로 다루어진 초상화를 그림의 역사가 충분히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얼굴을 해체하는 방식 말고는 초상화의 미래를 내다볼 수 없었다.  
반 고흐 같은 고전적인 거장들의 흔적이 발견된다. 구도나 기법 또한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아우른다. 이런 고전의 용법이 현재와 맞닿아 강렬함을 전달한다.
반 고흐, 바로크, 르네상스 등을 언급했는데 진실을 고백하자면 개인적으로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나 시대는 없다. 예술의 역사는 연대순으로 흐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모두 ‘동시대 미술’이라고 본다. 때문에 고전의 용법을 사용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 모든 예술이 동시대 미술에 사용되지 않는다면 ‘축적’의 의미는 없다고 생각한다.
주로 베를린에서 작업하며 일 년에 15개 이상의 작품을 만들지 않으려 하고 혼자서 작업한다. 내 일상은 정말 재미없다.
스튜디오 작업은 본질적으로 별로 흥미롭지 않다. 아마 화가들에 관한 영화가 별로 없는 이유일 것이다. 그냥 스튜디오에 가고 혼자 있고 그리고 나서 많은 시도와 실수를 하는 것. 이런 루틴을 가진 아티스트들은 어느 정도 대화의 단절을 즐기는 것 같다. 나 역시 그렇고.
 
Adrian Ghenie, 〈Figure with Remote Control 2〉, 2022, Charcoal on paper, 130x100cm. © Adrian Ghenie

Adrian Ghenie, 〈Figure with Remote Control 2〉, 2022, Charcoal on paper, 130x100cm. © Adrian Ghenie

이번 전시에서 목탄 드로잉 신작을 대거 선보인다. 화려한 색의 명암 대비를 보여줬던 전작들과 정반대에 서 있다. 목탄을 사용하지만 캔버스 안의 명암이 아주 리드미컬하다.
나와 그림의 관계를 말해보자면 사실 이 전시 이전까지 소묘를 두려워했다. 그림은 정밀성이 전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림을 정밀하게 그릴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최근 실수를 해도 손으로 선을 지울 수 있는 종이를 발견했다. 이 작은 기술이 실수할까 두려워하는 마음을 상쇄해주었다. 지운 선이 살짝 남아 있기도 하는데 그것마저도 하나의 실험처럼 여길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내가 그리는 그림의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실수를 바탕으로 그리는 것이 내 그림의 방식이 되었다.
피사체는 휴대폰 중독, TV 중독처럼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캔버스 속에 존재한다.
이 그림들은 미래를 향해 있다. 인류가 항상 가지고 다니는 전자제품 덕분에 우리에겐 새로운 보디랭귀지가 생겼다. 사람들이 항상 머리를 숙이고 누워 있는 자세에 관심이 갔고 그것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이 기술 혁명이 가져온 변화들에도 관심이 크다.
이번 서울 전시는 아시아에서 열리는 첫 개인전이다. 이제 막 설치를 마쳤다.
한국에서 나의 첫 드로잉 쇼를 열게 되어 흥분한 상태다. 지금 이곳에는 드로잉의 비물질적인 품질에 대한 감성이 있다. 대부분의 아시아 전통 예술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하고 정밀하다. 나의 이번 시리즈가 그 섬세함과 공명하길 바라고 있다.  
 
※ «안드리안 게니»전은 페이스갤러리에서 10월 22일까지 열린다.

Keyword

Credit

    에디터/ 박의령
    사진/ 맹민화(인물), 페이스 갤러리 제공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Weekly Hot Issue

팝업 닫기

로그인

가입한 '개인 이메일 아이디' 혹은 가입 시 사용한
'카카오톡, 네이버 아이디'로 로그인이 가능합니다

'개인 이메일'로 로그인하기

OR

SNS 계정으로 허스트중앙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회원이 아니신가요? SIGN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