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urtesy Lets Studio and Frieze. Photo by Lets Studio.

박현기, 〈무제〉, 1988-2021, 돌, 단채널 비디오, 컬러, 무음; 모니터, 돌, 가변크기. 갤러리현대 제공, Courtesy of the artist & Gallery Hyundai.
갤러리현대는 프리즈와 키아프에서 상반된 부스 운영 전략을 발휘했다. 키아프에서 케니 샤프부터 김창열까지 국내외 작가 21인의 작품을 선보였다면, 프리즈에서는 한국 실험미술을 대표하는 박현기·이승택·곽인식 오로지 세 작가에 집중해 ‘돌의 세계’를 구현했다.
부스 한가운데는 박현기의 대형 비디오 설치작업 〈무제〉가 장악했다. 3m의 높이로 ‘TV 돌탑’ 중 가장 거대한 규모로 실상과 허상의 공존을 보여주는 박현기의 대표작이다. 갤러리현대의 권영숙 디렉터는 “최근 들어 해외 운송비가 2~3배 치솟는 관계로 이렇게 대규모의 설치작품을 해외에 한꺼번에 소개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페어의 특성상 하루 안에 설치를 마무리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숙련된 전문가가 동행해야 해서 과거에 비해 어려움이 배가되었다. 프리즈 서울 첫회에 한국 아방가르드 역사의 대표작들을 한자리에 볼 수 있도록 기획함으로써 한국 작가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8명의 숙련된 아트 핸들러와 박현기 에스테이트 전문가의 도움으로 하루 만에 성공적으로 설치를 마무리했다. 서울이 아니었다면 성취하기 힘든 과업이었다”라고 말했다.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톡톡히 누린 운영이었던 셈이다. 박현기·이승택의 작품은 개인 컬렉터와 국내외 기관에 총 11억원에 판매되었다.

George Condo, 〈Red Portrait Composition〉, 2022, Oil on linen, 215.9x228.6cm / 85x90in ©️George Condo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Photo: Thomas Barratt.
프리즈 서울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이 모인 ‘한 평’은 어디일까. 조지 콘도(George Condo)의 신작 〈Red Portrait Composition〉이 걸려 있고 그 아래에 루이즈 부르주아의 조형물 〈Gray Fountain〉이 배치된 하우저앤워스 부스 정면이었을 것이다. 콘도의 신작을 카메라에 담기 위한 관람객이 붐비면서 여러 차례 아찔한 상황도 벌어졌다. 하우저앤워스의 조소영 매니저는 “〈Gray Fountain〉은 미술관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히스토리컬한 작품이다. 대리석 소재이다 보니 자칫 관람객의 휴대폰이 떨어지면 깨질 수도 있는 순간이 몇 차례 있었다. 고민 끝에 이튿날부터 펜스를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하우저앤워스는 프리즈 서울에 참여한 갤러리 중에서 최초로 스트리트 게릴라 광고를 선보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 〈Red Portrait Composition〉을 전면에 내세운 포스터가 코엑스 주변과 한남동, 삼청동 일대에 나부끼며 축제 분위기를 한층 돋웠다. 하우저앤워스의 아시아 관리 파트너 일레인 콱은 “팬데믹 이후 해외 방문객을 맞이할 수 있는 세계적인 아트페어인 프리즈 서울에 모든 시선이 쏠리고 있다. 우리의 기대치는 매우 높았으며 역시나 현장에서 그 기대치를 충족했다”고 자평했다. 조지 콘도의 〈Red Portrait Composition〉은 국내의 한 사립 미술관이 2백80만 달러(약 38억원)에 구입했다고 알려졌다.

Egon Schiele(1890-1918), 〈Self Portrait〉, 1910, Watercolour and charcoal on paper, 45.2x30.5cm. Private Collection. Courtesy Richard Nagy Ltd., London.
고대부터 20세기 후반까지의 명작을 만날 수 있는 프리즈 마스터스에는 총 18개의 메이저 갤러리가 참여하여 피카소, 샤갈, 마티스, 앤디 워홀, 몬드리안, 빌렘 데 쿠닝, 자코메티, 데미안 허스트 등 거장의 작품을 선보였다. 나흘 내내 인간시장을 방불케했던 이 섹션 중에서도 에곤 실레(Egon Schiele)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부스에서 만난 한 관람객은 “실레를 보기 위해서 30분 넘게 기다렸다.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그를 사랑하는지 몰랐다”고 투덜거렸다. 런던 소재 리처드 내기는 1980년대부터 에곤 실레를 전문적으로 다뤄온 갤러리답게 희귀한 유화와 드로잉 등 40여 점을 출품했다. 한국에서 열린 최초의 에곤 실레 개인전인 셈이다. 판매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다.

Installation view, Sadie Coles HQ, Booth A23, Frieze Seoul, COEX, Seoul, 02-05 September 2022. © The Artist/s, courtesy Sadie Coles HQ, London. Photo: CJYART Studio
사디 콜스 부스에는 로라 오웬스의 신작 회화를 비롯하여 루돌프 스팅겔, 엘리자베스 페이튼, 사라 루카스, 알렉스 다 코르테, 빌헬름 사스날, 짐 램비 등 소속 작가 14인의 작품이 혼란스러운 듯 흥미로운 방식으로 섞여 있었다. 그 중에서도 입구에 사선으로 놓인 우르스 피셔(Urs Fischer)의 〈Chalk and Cheese〉는 과연 지나가는 컬렉터의 관심을 붙잡기 충분했다. 우르스 피셔의 얼굴을 한 중년 남자 둘이 우르스 피셔의 얼굴을 한 아이를 양쪽에서 잡아 당긴다. 이 불길한 모양의 키네틱 조각은 지난 7월 뉴욕에서 열린 공공 전시 «7 Gardens» 중 소방관 기념 공원에 설치되어 뉴욕 시민들의 환대를 받았다. 판매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다.

Amoako Boafo, 〈Mesh Collar〉, 2022. Courtesy of Mariane Ibrahim.
시카고와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마리안 이브라힘은 자신만의 예술적, 정치적 미학을 구축한 젊은 작가 4인 아모아코 보아포(Amoako Boafo), 자렐 깁스, 피터 우카, 유키 마사이다의 작품을 출품했다. 그중에서도 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 솔로쇼 이후 세계적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아모아코 보아포는 프리즈 개막 전부터 MZ세대 컬렉터들의 위시리스트에 들어 있던 예술가다. 흑인의 삶을 예찬하며 흑인 디아스포라를 탐구하는 작업에 열중하는 그는 붓이 아닌 손가락을 사용해 인물의 피부를 표현하고 그들에게 회화적 표면을 넘어서는 광채와 깊이감을 부여한다. 작중 인물들이 주로 강렬한 색상과 화려한 패턴의 의상을 입고 있기 때문에 ‘패셔너블 초상화’라고도 불린다. 지난 해엔 디올 맨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킴 존스와 협업하여 화제를 모았다. 〈Mesh Collar〉를 포함한 보아포의 신작 3점은 프리뷰 오픈 한 시간 만에 각각 9만 달러(약 1억원)에 ‘완판’되었다.

Kimiyo Mishima, 〈Comic Book 03(Comic Book 03-03)〉, 2003, Painted on melted slag, H35xW134xD93cm. 2003, Painted on melted slag H13.7xW52.7xD36.6 in. mishima0031, Courtesy of Sokyo Gallery. Photo by Yuji Imamura
이번 프리즈 서울에서 처음 선보인 ‘포커스 아시아’ 섹션은 2010년 이후 개관한 아시아 신진 갤러리가 소개하는 작가 10인의 단독전이다. 국내 갤러리 중에서는 휘슬과 P21이 참가하여 각각 배헤윰의 추상화와 류성실의 조각으로 국제적인 이목을 끌었다.
한편 교토에서 시작한 소쿄 갤러리는 세라믹으로 만든 이른바 ‘깨지는 쓰레기’로 현대사회의 소비, 과도한 낭비, 병적인 정보 흡수를 비판해온 키미요 미시마(Kimiyo Mishima)에 주목했다. 〈Comic Book 03〉을 비롯하여 50년이 넘도록 세라믹 작업을 지속하고 있는 90세 작가의 작은 회고전이다. 홍콩의 키앙 말링게는 타오 후이의 최신 비디오 〈Being Wild〉를 출품하는 용감한 결정을 내렸다. 주인공은 시대의 속도를 은유하는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대학가, 오래된 제지공장, 영화 스튜디오, 업무 지구를 가로지르며 대만 포크 가수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이곳에 프리즈 런던의 리젠트공원 같은 ‘쉼표 공간’이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무역박람회가 더 잘 어울리는 코엑스 C홀의 삭막함에 질린 탓일까, 그 음울한 멜로디가 겪어본 적 없는 노스탤지어를 자극했다. 두 갤러리 모두 판매 정보는 공개하지 않았다.
손안나는 〈바자〉의 피처 에디터다. 프리즈 아트위크에 펼쳐진 흥미로운 아트 이벤트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단골 약국에서 포션 피로회복제를 특별 주문했다. 비타민과 카페인과 설렘과 기대감을 한 스푼씩 복용한 뒤 낮과 밤을 막론하고 서울 도심을 쏘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