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1호선 보산역 1번 출구를 나서자마자 동두천 문화특구 캠프보산이 시작된다. 지상철 선로를 받치고 서 있는 교각은 그래피티로 휘감겨 있다. 둘러보면 많은 건물에도 세계 각국의 작가들이 그린 그래피티가 새겨져 있다. 캠프보산의 정체성 중 하나다. 선로 아래에는 미얀마, 캐나다, 독일 등 다양한 국적의 테이크아웃 음식점이 늘어서 있다. 저녁 6시부터 시작하는 월드푸드 스트리트. 통일된 디자인과 콘셉트로 정비된 진입로는 팬데믹 이후 정체된 구역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는 시와 상인들의 노력이 덧입혀져 있다.
더불어 오랫동안 캠프케이시 옆의 생활권이자 유흥가인 일대는 전형적인 부대 앞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테일러라고 이름 붙은 양복점이 군데군데 보인다. 파티 문화를 즐기는 미군들이 연회복을 지어 입고 본국으로 돌아갈 때 몇 벌씩 맞춰 가곤 하는 상점이다. 1980년대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은 아는 ‘밍크 이불’은 미군들이 아직까지 사랑하는 아이템. 우리나라 가정의 이불들이 극세사로 바뀌는 동안 동두천에 머물다 가는 외국인들은 화려한 밍크이불의 매력을 놓지 못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수십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각종 클럽과 미국, 라틴아메리카 스타일의 음식점들 사이 새로 생긴 공방들이 보인다. 가죽공예나 섬유공예, 금속공예까지 수십 개. 군부대가 평택으로 이전하면서 상권이 크게 흔들렸고 그때 빠져나간 가게들에 공방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독특한 지형을 만들어냈다. 5년 전부터 상가 연합회가 나서 아예 이 구역을 ‘캠프보산’이라 이름 붙였다.
보산동에서 태어나 50년 동안 줄곧 이곳에서 살고 있는 한 상인은 캠프보산을 ‘도심 속 섬’, ‘반쪽 동네’ 라고 말한다. 백열 전등이 LED 전구로 바뀌었을 뿐 외관이나 사람들은 그대로인 동네. 낮에는 사진을 찍거나 공방을 체험하고 이국적인 음식을 먹는 외지 주민들이, 저녁에는 몇 년 머무르는 미군뿐 아니라 그들과 국적이 비슷한 멕시코, 필리핀, 아이티 계 이주민들이 퇴근 후 생활을 보낸다는 이유에서다. 해가 떨어지니 상인의 말처럼 한순간에 분위기가 바뀐다. 낮은 조용한 세트장 같았다면 밤은 라이브 무대처럼 번쩍인다. 그렇다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조금 분주해질 뿐 국적은 상관없다.
20년 가까이 영업 중인 페루 음식점 ‘사보리 라티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