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산 땟골마을
한낮의 땟골은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닮았다. 소음도 없고 속도를 높이는 차도 없다. 도로변으로 수십 년은 자랐을 나무가 아담한 보폭으로 차양을 만들고 그 아래는 두 사람이 앉으면 꽉 찰 만한 작은 버스정류장이 낮게 자리한다. 오가는 사람들은 마치 서로가 아는 것처럼 살며시 눈인사를 나눈다. 식료품가게와 미용실, 식당, 정육점, 옷가게. 사는 데 꼭 필요한 상점들은 모두 갖췄다. 화려하지도 않고 누추하지도 않은 딱 삶의 색채가 깃든 공간들이 길을 따라 놓여 있다. 사이사이 자리한 외벽이 없는 복도식 다세대 주택은 사람 사는 모양새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오래전 양식을 그대로 간직한 붉은 벽돌 건물에는 키릴 문자 간판과 한글 간판이 사이좋게 걸려 있다. 옷가게 사장님이 문을 활짝 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한국 사람이고요. 옆집은 고려인.” 고려인이 7천 명가량 거주한다지만 한국인들의 터전이기도 하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주로 스탄 국가에서 이주한 고려인들은 그들의 언어와 유창하진 않지만 한국어를 섞어 쓴다. 놀이터에도 두 나라의 언어로 쓴 현수막이 걸려 있다. 놀이기구와 벽에 쓰인 낙서도 키릴 문자다. 새삼 다른 나라에서 온 이들의 삶 속에 있다는 자각이 든다.

고려인 마을 주택은 대부분 외벽이 낮은 복도식 다세대다.
고려인 마을에서 보낸 반나절은 고려인 음식처럼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이었다. 해석할 수 없는 문자와 더디게 말이 통하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생경함이 아니라 마을 전체에 녹아 있는 그들만의 생활방식이 있어서다. 거리를 걷고 물건을 사는 모든 일이 서둘러 돌아가지 않고 보드랍게 이어지는 감각. 이것이 바로 지금 여기의 삶일 것이다.

고려인 마을 주택은 대부분 외벽이 낮은 복도식 다세대다.

고려인의 국수 ‘국시’.

벽에 쓰인 낙서도 키릴 문자다.

익숙한 빨간 벽돌 건물에 자리한 러시아 음식점.

고려인 마을 주택은 대부분 외벽이 낮은 복도식 다세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