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토 슈타이얼 전시가 그렇게 핫하다고?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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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토 슈타이얼 전시가 그렇게 핫하다고?

오늘날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현대미술가 중 한 사람인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의 웃기고 논쟁적인 작품들이 국립현대미술관 지하를 가득 채웠다.

BAZAAR BY BAZAAR 2022.06.17
 
〈안 보여주기 빌어먹게 유익하고 교육적인.MOV 파일〉, 2013,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전경(2022).

〈안 보여주기 빌어먹게 유익하고 교육적인.MOV 파일〉, 2013,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전경(2022).

지난 4월 28일 «히토 슈타이얼: 데이터의 바다» 전시 개막 하루 전 언론 공개회가 열린 국립현대미술관에는 역대급으로 많은 취재원이 몰렸다. 개막에 맞춰 서울을 찾은 히토 슈타이얼은 2010년부터 5년 동안 빌보드 차트 노래 제목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영어 단어를 제목으로 하는 설치작품 〈Hell Yeah We Fuck Die〉(2016) 앞에서 반원형으로 둘러싼 카메라를 향해 고개 각도를 조금씩 돌리며 포토 콜 타임을 가졌다. 나는 개막 이후 전시를 총 세 번 찾았는데 모두 평일 오전이었음에도 전시실은 항상 북적였다. 5개의 섹션에 미디어 영상·설치·오브제 등 23점의 작품이 소개된 이번 전시의 시작점에 설치된 〈미션 완료: 벨란시지〉(2019)의 나선형 시팅 구조물에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형상이 빼어난 설치작품을 배경으로 연사를 찍는 관람객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저녁 5시 50분, 폐관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올 때까지도 열성적인 눈빛으로 작품을 보느라 여념이 없는 관람객들을 보는 게 전시를 보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웠다. 개막일 열린 아티스트 토크는 예매 시작 직후 전석 매진되고, 5월 첫 주 연휴 기간 동안 미술관 1층은 이건희 컬렉션 대기 줄로, 지하 1층은 히토 슈타이얼 전시로 그야말로 만원이었다. 
 
〈소셜심〉, 2020.

〈소셜심〉, 2020.

이토록 학구열을 불태우게 하는 히토 슈타이얼 작품 세계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우선 드높은 명성이 사람들을 미술관으로 불러 모으는 것은 분명했다. 슈타이얼은 도쿄와 뮌헨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연출을 전공한 후 영화감독 빔 벤더스의 조감독으로 일했다. 이후 빈에서 철학을 전공,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베를린예술대학교에서 실험 영화 및 비디오 담당 교수를 맡고 있다. 다양한 영상 푸티지와 디지털 효과가 혼성을 이룬 작가의 실험적인 영상은 2010년대부터 미술계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2017년 미술전문지 〈아트리뷰〉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로 선정됐고 이후 꾸준히 상위권에 들었다. 파리 퐁피두센터, 런던 서펜타인갤러리 등에서 주요 개인전을 가졌고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전시를 선보였으며 모마, 테이트 모던 등 주요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스크린의 추방자들〉〈면세 미술: 지구 내전 시대의 미술〉 등 다수의 저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지만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타워〉, 2015,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전경(2022).

〈타워〉, 2015,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전경(2022).

히토 슈타이얼은 매력적인 스토리텔러다. 글로벌 자본주의, 지구적 재난과 전쟁, 글로벌 유동성, 디지털 기술, 신계급사회를 만든 빅데이터 등 거대하고 방대한 화두를 두려움 없이 다루는 작가의 내러티브에서 익살과 풍자는 주요한 전략으로 작용한다. 현실과 허구가 뒤섞인 부조리극의 형식을 띤 이야기에는 앞서 말한 오늘날 전 지구적으로 펼쳐지는 첨예한 문제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가해지는데, 이때 비꼬는 듯한 유머 그리고 절묘하게 삽입되는 음악이 지루할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대부분의 작품들은 영상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설치물이 짝을 이룬다. 파도 위 빈백 소파에 몸을 묻고 오늘날 금융, 자본, 데이터, 사람이 끊임없이 이동하는 현상을 물의 이미지로 표현한 영상을 보거나 나무 둥치를 본뜬 스툴에 앉아 스페인 산골마을 양치기의 하루를 보고 있으면 영상 속 세계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제 전시를 볼 때 굳이 한 번에 모든 내용을 다 알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여러분의 머리를 아프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마음에 드는 서너 작품 위주로 편안하게 봐주길 바라요.” 작가의 말처럼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전시장을 항해하다가 가장 편안해 보이는 자리에 똬리를 틀면 되는 것이다.   
 
〈태양의 공장〉, 2015,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전경(2022).

〈태양의 공장〉, 2015,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전경(2022).

작가를 직접 만나면 어떤 방향으로든 작품에 대한 이해는 다른 차원으로 나아가기 마련이다. 기자간담회와 아티스트 토크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며 여유롭게 농담을 즐기는 모습에서 난해한 작가라는 선입견이 다소 녹아내렸다. “제가 거대담론을 지키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며 작가는 말했다. “사실 모든 작품들이 매우 특정한 인물들,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분석하고 다른 것을 보려고 시도를 하는 작품들이에요.” 언뜻 중구난방처럼 보이는 내러티브가 특유의 흡입력을 발휘하는 건 진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5년 56회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에서 선보이기도 했던 〈태양의 공장〉(2015)에는 주인공이자 내레이터인 율리아가 등장한다. “저의 3D 작업 어시스턴트였던 율리아를 통해 그의 남동생인 게임 프로그래머를 알게 되었어요. 소련에서 이민 와서 이스라엘을 거쳐 캐나다까지 흘러 들어가게 된 실제 가족의 이야기와 가상의 게임 이야기를 병치해서 풀어냈는데요, 저에게는 이런 작업 방식이 매우 익숙합니다.”
 
〈Hell Yeah We Fuck Die〉, 2016,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전경(2022).

〈Hell Yeah We Fuck Die〉, 2016,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전경(2022).

이번 전시에서 가장 즐겁게 감상한 작품은 〈소셜심〉(2020)이다. ‘소셜 시뮬레이션’의 줄임말을 제목으로 삼은 이 작품은 팬데믹 초기에 제작되었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시뮬레이션 가상공간이 현실세계를 더욱 적극적으로 대체하기 시작한 팬데믹 기간 동안, 혼란스러운 사회 상황과 예술 창작의 조건, 변화하는 동시대 미술관의 위상을 탐구한 5개의 모니터로 이뤄진 영상작품이다. 전시장을 꺾어 들어가면 거대한 4개의 모니터에서 무리를 이룬 경찰 아바타들이 20여 분 동안 신나는 댄스를 펼친다. 그들의 춤은 팬데믹 이후 퍼지기 시작한 대중의 시위와 이를 진압하는 경찰 및 군인들의 행위를 번안한 일종의 사회적 안무다. 벽면과 바닥이 만나는 코너에 부려둔 투명 짐볼에 엉덩이를 걸치고 탄성을 즐기며 어쩐지 좀비스러운 댄스를 감상하다 보면 나머지 1개의 모니터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1500년경 그렸다고 추정되는 〈살바도르 문디〉가 등장한다. 여전히 논란이 많은 이 미스터리한 그림을 두고 황당한 일들이 벌어지는 가운데 그림 속 문디가 촛농 같은 눈물을 떨구며 말한다. “인공지능이 지배하고 인권이 말살된 자유무역항으로 끌려가는 중입니다. 최대한 빨리 제 가치를 낮추고 싶습니다. 신에게 맹세코 레오를 딱 한 번 보았습니다. 그가 제 손가락을 스쳤을 때요.” 실소가 터져 나온다. 
 
히토 슈타이얼. © photographer Leon Kahane

히토 슈타이얼. © photographer Leon Kahane

아시아 최초 대규모 개인전인 이번 전시를 두고 한 기자가 “아시아 첫 개인전으로 왜 한국을 선택했느냐”라고 묻자 히토는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 한국이 날 선택한 것”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이번 전시를 담당한 배명지 학예연구사에 따르면 2017년 뉴미디어 기획전 «역사를 몸으로 쓰다»로 미술관과 히토의 첫 만남이 이뤄졌다. 당시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도 만날 수 있는 미디어 영상 〈경호원들〉(2012)을 출품했는데 이를 계기로 개인전 계약이 이뤄졌다고 한다. 이후 미술관은 역시 이번 전시에서 소개된 〈유동성 주식회사〉(2014)를 소장하게 됐고 원래 2020년에 열려야 했던 개인전이 팬데믹으로 이제야 막을 올리게 된 것이다. 
 
〈11월〉, 2004.

〈11월〉, 2004.

지난 5년간 점진적으로 관계를 다져온 히토 슈타이얼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인연의 하이라이트는 국립현대미술관 커미션 신작인 〈야성적 충동〉(2022)일 것이다. 총 4개의 모니터로 구성된 비디오 설치작품인 〈야성적 충동〉은 스페인 산골마을의 양치기들과 본래 그들의 삶을 담으려던 계획을 접고 동물 전투 메타버스를 제작하려는 리얼리티 TV 쇼 제작자 간의 대립을 중심으로 한다. 여기에 블록체인, 대체불가능토큰(NFT) 등의 이미지를 중첩하며 인간의 욕망과 탐욕이 디지털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추적한다. 종국에 NFT 적자생존 경쟁에 내몰린 양치기들은 구석기시대 라스코 벽화를 옮겨다 놓은 듯한 동굴에서 그들이 자연에서 배운 사회적이고 생물학적인 이종간 상호교류의 힘을 불러온다. 여기에는 박테리아를 기반으로 한 블록체인에 코드화되어 있는 ‘치즈 코인’ 제작 과정 등이 포함된다. 작가는 이와 같은 이야기를 담은 24분 영상과 함께 특수센서가 달린 식물이 자라나는 환경을 3채널 영상으로 구현해 신비로운 체험을 선사한다. 히토 슈타이얼은 “NFT가 혁신이란 얘기는 듣기 지겹다”며 “극소수 작가들과 대형 갤러리, 옥션만 이익을 볼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1936년에 언급한 바 있는 “야성적 충동”에서 인용해 사람들의 감정이나 탐욕, 야망, 두려움으로 인해 시장이 통제 불능이 되고 미친 듯이 날뛰는 현상을 설파한다. 라스코 벽화까지 경유하는 이토록 장구한 이야기를 완벽하게 이해하려는 욕구는 접어두어도 좋겠다. 현대인은 모든 사안에 대해 금전적인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압박, 무엇이든 명확하게 의미를 전달하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다며 “예술작품은 고갈적인 방식으로 뭔가를 가리키는 일에서 벗어나야 하고 어느 정도는 열린 상태로 남아 있어야 한다”라고 히토는 말한다. “시각예술의 고유한 힘은 그 누구도 어떤 작품을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주장할 수가 없다는 점에서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토론의 여지가 남아 있고, 즉각적인 유용성이나 가치를 말하기 어렵지요.” 
 
〈야성적 충동〉, 2022.

〈야성적 충동〉,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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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안동선(컨트리뷰팅 에디터)
    에디터/ 손안나
    사진/ 홍철기,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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