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아시아 첫 전시를 여는 캘리 비맨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서울에서 아시아 첫 전시를 여는 캘리 비맨

켈리 비맨(Kelly Beeman)이 아름다운 곡선들로 창조한 패셔너블한 스냅샷은 탐미주의적인 기쁨과 몽상적인 환상을 전한다.

BAZAAR BY BAZAAR 2022.03.09
 
〈Sisters with A Bird Sepia〉, 2022, Watercolour on paper, 30.5x40.6cm.

〈Sisters with A Bird Sepia〉, 2022, Watercolour on paper, 30.5x40.6cm.

당신의 미술계 데뷔 경위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시물에서 비롯되었다고 알고 있어요. 그 얘기를 들려줄 수 있나요?
당시 뉴욕의 한 레스토랑에서 저녁 근무로 일하며 낮에는 그림을 그렸어요. 내 작품을 세상에 공개하고 싶은 열망이 컸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죠. 2015년,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시물 하나가 모든 것을 바꿔버렸어요. JW 앤더슨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해서 이를 스케치에 활용하고 인스타그램에 공유하며 그를 태그했죠. 당시만 해도 저는 SNS를 활발히 하지 않았기에 평소답지 않은 행동이었어요. 다음 날, 다음 주에 파리에서 열리는 로에베(JW 앤더슨은 자신의 레이블 JW 앤더슨을 전개하며 2013년부터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겸임하고 있다) 쇼에 초대되었고, 이후 JW 앤더슨, 로에베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죠. 몇 달 사이 레스토랑 일을 그만두었고 전업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여러 브랜드와 출판 업계의 요구에 맞추려고 노력하며 몇 년을 보냈어요. 어느 순간 나의 작품에 보다 집중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고, 서울에서 페로탕 갤러리와의 첫 전시를 앞두고 있는 지금, 제가 마주한 운 좋은 상황을 어떻게 잘 풀어나갈지 열심히 고민하고 있어요. 
 
뉴욕 작업실에서 켈리 비맨.

뉴욕 작업실에서 켈리 비맨.

흥미롭고 민주적인 소통의 창구로서 SNS가 아티스트의 다채로운 면모를 만날 기회를 제공한다는 관점도 있지만 미술을 플랫하게 만들어버린다는 의견도 있어요. 마찬가지로 상업 브랜드와 왕성하게 협업 활동을 이어나가는 작가에 대한 시선도 찬반으로 갈리는데, 이에 대한 당신의 의견이 궁금해요.
젊은 작가들이 임대료가 높고 공간이 제한된 도시에서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에요. 따라서 컬래버레이션 활동이 작가에게 재정적인 안정을 보장해주고 작업에 대한 투자, 성장을 위한 발판이 된다면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해요. 갤러리나 미술관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는 대중에게 예술이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안이라는 점도 좋고요. 예술이 일상생활에서의 경험과 더 폭넓게 상호작용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에 참여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역사 속의 한 시기에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실행에 옮기고 느끼는가에 대한 기록이 바로 예술이니까요.
초기 작업은 단순한 인물 드로잉이나 누드화에 가까웠는데 어느 순간부터 패션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더군요. 특정 패션 브랜드의 특정 룩을 구체적으로 화면에 담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당신의 그림 속에서 패션은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저는 항상 패션이 사람들의 삶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관심이 많았어요. 처음 작품 속에 특정 룩을 활용했을 때는 그저 그림 속 인물들의 모습을 더 나아 보이게 하기 위해서였어요. 하지만 패션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선택하는 옷에 따라 상당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시간이나 장소, 상황, 인물의 성격 등, 그들이 입는 옷은 작품의 무드에 이바지하는 중요한 레이어가 됩니다. 이번 개인전 «Wish»에서 선보일 작품들 속 패션은 1980년대 여름에 유행한 트렌드에서 영감을 얻어 어린 시절을 연상시키는 캐러멜이나 사탕 포장지에 그려진 스트라이프 패턴이나 파스텔 톤의 색감을 사용했어요.  
 
〈Sisters with Lollipop〉, 2021, Oil on linen, 76.2x121.9cm.

〈Sisters with Lollipop〉, 2021, Oil on linen, 76.2x121.9cm.

당신의 그림은 굉장히 패셔너블한 동시에 청아하고 명상적인 느낌을 자아냅니다. 아마도 깨끗한 아웃라인과 농담이 느껴지는 수채화의 특성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어린 시절부터 오랜 기간 그림을 그려왔는데, 그 과정에서 같은 주제를 두고도 수채화부터 과슈, 아크릴, 오일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며 연구하게 됐어요.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아르헨티나에서 살았는데 그때 본격적으로 수채화를 사용하기 시작했죠. 그 전까지는 수채화가 너무 섬세하고 까다롭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당시 미술 재료를 구하는 일이 여의치 않아서 처음엔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결국 내가 가장 즐겨 그리는 방식이 되었어요. 2014년 뉴욕으로 돌아와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을 시작하며 유화도 사용하게 됐고 그러면서 나의 수채화 작업을 어떻게 큰 사이즈의 유화로 확장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그림 스타일과 새로운 시도는 여러 해에 걸쳐 일어나고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여러 요인으로 변하기 때문에 설명하기가 쉽지 않아요. 분명한 건 어떤 재료를 사용하든지 저는 차분하고 잔잔한 표면과 질감의 미묘한 변화 그리고 불규칙성을 표현하려고 합니다. 펜과 잉크화는 점묘법으로, 수채화는 종이의 자연스러운 표면이 드러나는 맑은 농도로, 유화는 섞이지 않는 짧은 붓질들로 멀리서 보면 마블링된 것처럼 보이게 표현하죠. 저는 제 그림 속의 이미지를 실제 사람이나 장소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꿈이나 기억의 편린이라고 생각해요. 때문에 렌더링이나 디테일은 거의 없고 단순한 윤곽이나 색감 정도만 존재하게 되고 저의 재료 선택은 그런 특성을 위한 것이 됩니다. 
 
〈Runaways〉, 2022, Watercolour on paper, 30.5x40.6cm.

〈Runaways〉, 2022, Watercolour on paper, 30.5x40.6cm.

당신의 그림에는 조금은 느슨한 일상 속 인물들이 살고 있어요. 그리고 그들의 관계에는 분명 어떤 이야기가 있죠. 그걸 보는 이에게 꼭 말해줄 필요는 없지만 당신이 그림을 그릴 때 그런 내러티브를 염두에 두는지 알고 싶어요.
저는 인터넷에서 찾은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오래된 가족 사진을 보고 그들이 누구였는지,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 변한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를 상상해요. 그런 리서치 작업은 어떤 분위기를 조성해주죠. 이런 모호하고 미묘한 감정들을 품은 채 그들이 지나온 시간을 매우 아득하게 여기면서 인간이란 과거와 미래를 가늠할 수 없고 그게 바로 시간의 신비로운 특성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아요. 그런 마음을 작품에 담으려다 보니 시대를 초월한 아련함 같은 뉘앙스가 느껴지는 게 아닐까 싶어요.
당신의 작업실 사진을 보면서 당신의 하루를 그려봤어요. 내 상상을 확인시켜줄 수 있나요?
물론이죠. 아침 일찍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스튜디오까지 걸어가면서 하루를 열어요. 규모가 큰 작품들을 작업할 때는 새로운 색 레이어나 글레이징을 얹히는 등 매일 새로운 단계의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각 작품마다 순서대로 접근해요. 이런 회화 작업들 사이에 드로잉이나 종이 기반 작업을 하고 피아노 연주에 많은 시간을 쏟기도 해요.
아, 피아노를 전공했다고 들었어요. 그림은 어릴 적 어머니에게서 배웠고요.
어머니는 식탁에 아주 큰 수채화 종이를 펼쳐놓고 그림을 그리셨고 나는 가만히 앉아 그 모습을 구경하곤 했어요. 작은 물감 튜브에서 나온 색들이 섞여 다채로운 컬러가 탄생하는 게 마법 같았죠. 아버지 또한 그림을 잘 그리고 스토리텔링에 능한 예술적인 분이셨어요. 주변에는 아트북이 가득했죠. 고야, 보스, 다빈치가 특히 기억에 남아요. 부모님은 우리가 아주 어릴 때부터 그림을 감상하는 것에 익숙해지기를 바랐고, 누드화나 섬뜩한 도상이 있을 때는 숨기기보다는 자세하게 설명해주셨죠. 자매들과 이야기를 만들어 그림으로 풀어내거나 텔레비전에서 좋아하는 디즈니 영화 속 장면이 나오면 종이를 대고 베껴 그리며 자란 저에게 지금 작업실에서의 시간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평안한 일상이에요. 그럼에도 그림이 잘 안풀리거나 그냥 휴식이 필요할 때는 피아노에 앉아 연주를 해요. 창작곡이나 클래식 곡의 일부를 연주하기도 하고 옛날 재즈 곡들을 노래하기도 하는 게 제 창작 루틴에서는 중요한 부분이죠. 
 
〈Dog〉, 2021, Watercolour on paper, 30.5x40.6cm.

〈Dog〉, 2021, Watercolour on paper, 30.5x40.6cm.

팬데믹으로 쉽지 않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들었어요. 당신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어요.
팬데믹은 나의 일상을 크게 바꾼 중대한 위기였어요. 이번 신작들에는 많은 갈등과 불만이 스며들어 있어요. 제가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기에 큰 슬픔이 담겨 있기도 하죠. 이 시기를 통해 저는 특정한 때나 장소로 달아나거나 돌아가려는 열망에 집착하게 되었어요. 여러 작품 속에서 인물들이 드넓은 평야를 달리거나 희미한 풍경 속에 있거나 예스러운 동네로부터 도망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예요. 몇 작품에는 그들이 새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했는데 저에게 새란 지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두고 떠날 수 있는 힘과 가능성의 상징과도 같아요. 우리의 삶에서 다시는 되돌아가지 못할 순수한 시절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즘인데요, 저는 우리가 이런 방식으로 역사를 바라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는 이상화되고, 실제와는 거리가 먼 집단 기억에 얽매여 우려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아요.  
 
※ 켈리 비맨이 아시아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개인전 «Wish»는 페로탕 서울에서 2월 24일부터 4월 7일까지 열린다.  
 
※ 안동선은 컨트리뷰팅 에디터다. 노스탤지어의 회고적인 몽상을 사랑하며 그런 심리 상태를 발현시키는 그림에 여지없이 사로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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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안동선
    사진/ Aki Akiwumi, Mengqi Bao, 페로탕 갤러리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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