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23년간 일본의 시골 마을을 촬영한 사진가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무려 23년간 일본의 시골 마을을 촬영한 사진가

시오타니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BAZAAR BY BAZAAR 2021.12.28
시오타니는 교토에서 북쪽으로 46km 떨어진 산기슭에 자리한 마을이다. 이곳에는 모두 합쳐 47명의 주민들이 전통적인  농촌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1993년, 스웨덴의 패션사진가이자 영화감독 안데르스 에드스트룀(Anders Edstr¨om)은  우연한 기회에 일본인 아내의 조부모가 살고 있는 시오타니를 방문했고 그 후로 23년간 이 외딴 마을에서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을 기록했다. 7백5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사진집 〈SHIOTANI〉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축제처럼 도래한 새해의 첫 자락, 들뜬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마음에 담아두면 좋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풍경들.
 
아침 안개, 여름 폭죽, 눈이 쌓인 논밭, 조간신문 뭉치, 화장실 양동이, 오래된 노트북…. 사진집 〈시오타니〉 속 조용하고 소박한 이미지에 마음을 빼앗겼다. 당신은 어떤 풍경을 좋아했나? ‘좋아하는 풍경’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랄까?
장소이든 물체이든 사람이든 남들이 보지 않는 각도에서 남들이 찍지 않을 것들을 찍는 것에 관심이 있다. 남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아름다운 것들을 아주 천천히 찍는다. 그렇게 하나의 장소를 오랫동안 찍다 보면 일종의 패턴이 보인다. 어느 날 나는 내가 시오타니 마을 어느 집의 모퉁이 구석을 여러 번 찍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사진들을 보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거기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다른 사진가들보다 잘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그들과 ‘다르게’ 찍으려고 노력했다.
 
마을 사람들이 외지인을, 그것도 외국인 남자인 당신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시오타니 사람들은 첫 만남부터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2차 대전 이후로 서양인을 거의 보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는 전혀 다른 문화권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아마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이다. 전 세계 어딜 가나 그럴 것이다. 당신이 그들에게 보이는 호의와 관심이 전해진다면 그들도 같은 태도로 대할 것이다. 그 후론 그냥 익숙해지셨던 것 같다. 매년 카메라를 들고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내 모습을 보시면서.
 
이를테면 시오타니라는 공간에선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사진집을 덮고 나면 시간에 대한 감상이 남는다. 시간의 유한성과 삶의 무상함 같은 것들. 
시간은 모두에게 흥미로운 개념일 것이다. 철학적 사고를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살면서 한번쯤은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되니까. 35년 전 사진을 시작한 나도 그랬다. 사진은 순간을 간직하는 매체이고 시간 자체가 곧 사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사는 동안 시간에 대해 더 깊이 사유할 수 있었다. 꽃꽂이, 다도 같은 리추얼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일본 문화에서 시간이라는 개념이 매우 중요하지 않나. 내 눈에 일본인들은 언제나 시간에 영향을 받고 사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그들의 DNA에 각인이라도 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 역시 오랫동안 일본에서 살면서 그런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이 사진집의 ‘배열’에서도 시간에 대한 당신의 태도를 가늠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종종 뒤에서부터 책을 읽는다. 놀라운 한 장의 사진을 기대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나머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이 보는 방식을 내 맘대로 조정할 수는 없지만 나는 독자들이 이 사진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페이지를 건너뛰지 않고 순차적으로 읽었으면 했다. 왜냐하면 이 사진집 안의 모든 사진이 똑같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음악도 그렇지 않나. 전주는 건너뛰고 절정 구간만 듣는다면 결코 그 곡을 다 이해하지 못 한다. 때로 잔잔함은 절정을 더욱 빛나게 한다. 나는 이번 사진집에서 열 장 남짓한 비슷한 이미지를 반복해서 배치했다. 완전히 똑같은 이미지가 아니라 아주 살짝 다른 이미지들로. 독자들이 그걸 지나치지 않았으면 했다. 내가 시오타니에서 오랫동안 보았던 것들. 시간이 흐르는 동안….
 
23년이라는 초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매일 사진을 찍었다. 그게 내 일이니까. 그것을 반복할 뿐이다.
 
이 프로젝트를 전시한다면 사진을 어떤 크기로 걸고 싶은가?
20×30cm. 모든 사진이 그랬으면 한다. 나는 그 사진들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대우받기를 바란다.
 
이 프로젝트의 연장선인 영화 〈일과 나날(시오타니 계곡의 시오지리 다요코의) The Works and Days(of Tayoko Shiojiri in the Shiotani Basin)〉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 “농사에서 첫 번째 법칙은 쉬운 방법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땅은 당신의 노력을 요구한다.” ‘농사’라는 단어를 당신이 하고 있는 예술 작업으로 치환해도 충분히 말이 되는 아포리즘이다.
맞는 말이다. 영화나 책을 만들 때, 자르고 가꾸고 무언가를 키우려고 하니까.
 
이 영화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되었다. 8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이 그야말로 ‘체험으로서의 관람’이었는데. 실재를 허구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점이 있나?
나는 매일 카메라로 ‘거짓말’을 한다. 왼쪽으로 살짝 틀거나 오른쪽을 보거나 위나 아래를 향하면 전혀 다른 시야가 확보된다. 당신만의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진짜이든 아니든 관계 없다. 오로지 사진에서 보이는 것에 신경을 쓸 뿐이다. 마찬가지로 이 사진집이 기록용인지 아닌지,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다. 그것은 언제나 카메라에 의해 프레이밍되고 누군가에 의해 편집되는 이미지들이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관점’일 테고.
 
지금 딱 떠오르는 사진 한 장은 무엇인가?
지금 내가 앉아 있는 방에서 감각하는 것들. 창문 밖으로 눈이 내리는 풍경, 따뜻한 빛의 조명, 내 옆에 누워 있는 강아지 한 마리, 방 안에서 나는 소리들.
 
시오타니에서의 경험이 예술가로서 당신을 어떻게 성찰하고 변화시켰나?
나는 스스로에게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하지 않고 오래 걷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시오타니에서뿐만 아니라 매일 아침 산책을 하면서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꾸준히 ‘보면’ 어디에서나 재미있는 것을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고 인내심이 생겼다.
 
필립 퍼키스는 사진을 찍는 목적에 대해 “Just to see”라고 말하지 않았나. 궁극적으로 당신은 왜 사진을 찍는가?
모른다. 줄곧 나 자신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마도 내가 보고 싶은 세상이 거기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스튜디오에서 새 필름을 현상할 때마다 깜짝 놀란다. 일종의 낚시 같달까. 저녁에 그물망을 던지고 다음 날 아침에 들어 올린다. 때로는 그 안에 물고기가 들어 있기도 하고, 때로는 아무것도 없다. 사진은 낚시보다 조금 더 재미있다.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여도 나중에 다시 들여다보면 좋은 순간이 거기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단지 처음에는 그것을 ‘볼 수’ 없었을 뿐. 일주일이고 일 년이고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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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손안나
    사진/ Anders Edstrom
    번역/ 백세리
    웹디자이너/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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