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가 엊그제 열렸으니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을 것 같다. 새로운 둥지에서 첫 번째 로샤스 컬렉션을 선보인 소감은 어떠한가?
굉장히 행복하고, 또 자랑스럽다. 피지컬 쇼에서도 쿨하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나? 가장 큰 영감이 된 것은 무엇인가?
특별히 어떤 것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하기 어렵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창조적이고 약간은 광적인 한 여인에 대한 것이었으며 이건 로샤스와 함께 진화될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신의 집에서 얼굴, 벽이나 가구, 옷에 그림을 그린다. 이러한 광기는 오프닝 룩에서부터 지속적으로 등장한 불(fire) 모티프로 표현되었다. 불꽃을 형상화한 부츠와 소매 디테일이 대표적인 예다. 전반적으로 이번 컬렉션은 몽환적이고 내러티브가 강하다.
일 년간 공석이었던 로샤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었다. 당신의 나이(24세)를 듣고 조금 놀라기도 했는데 기분이 어떠했나?
6개월간 공석이었던 로샤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제안받은 게 6개월 전이니 딱 일 년이 된 셈이다. 패션 학교 샹브르 드 센디칼레(Chambre de Syndicale)를 졸업하고 얼마 되지 않아 이 직책을 맡게 되었는데, 나에게 있어 굉장히 흥분되는 도전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난 뒤 이 자리가 무엇을 의미는지 이해하게 되었고, 이틀 전 패션쇼를 진행하며 더 명확해졌다. 강렬한 경험이었고 나에게 동기를 부여해주었다. 두려움을 멀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소개하는 영상에서 샤를이 직접 그려 보인 레터링 일러스트.
많은 이들이 당신의 외모가 젊은 시절의 이브 생 로랑을 떠올리게 한다고들 한다.
오래전부터 그 얘길 들어왔다. 하지만 그건 내 외모에 관한 것이지 내가 하는 작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의미를 둔 적도 없고, 어쩌면 되려 좋은 쪽으로 선전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2021년 봄, 그리고 가을, 오트 쿠튀르 기간을 통해 총 두 번의 컬렉션을 선보인 바 있다. 그 두 가지 모두 다른 방향으로 굉장히 드라마틱했다. 개인 컬렉션을 통해 당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르지만 모두 드라마틱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장 폴 고티에가 나를 쿠튀르 캘린더에 초대해주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오트 쿠튀르는 레디투웨어와 굉장히 달라서 드라마틱함을 최고조로 보여줄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극단적으로 선보일 수 있는 것이다. 첫 번째 컬렉션에서는 긍정적이고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즐거움과 컬러, 커다란 볼륨에 집중했다. 두 번째 컬렉션은 그와 상반된 다크한 무드, 타이트한 실루엣에 초점을 맞췄다. 첫 컬렉션과 전혀 다른 방향성을 제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어둠의 피조물들이 나타나는 비디오를 연상해 완성한 것이다. 또한 나는 트릴로지(trilogy, 3부작)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먼저 세 가지 콘셉트를 정하고 그 안에 다른 요소를 주입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을 추구한다. 바꿔 말해 나에겐 또 하나의 개인 쿠튀르 컬렉션이 남아 있다는 얘기다.
샤를이 그린 2022 S/S 로샤스 컬렉션의 일러스트 중 하나.
특히 첫 번째 컬렉션은 장 샤를르 드 카스텔 바작과 장 폴 고티에를 연상케 했다.
특유의 유희로움과 창의적이고 내러티브한 모습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러하듯 그들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디자이너이고, 난 그들과 꽤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카스텔 바작은 나의 멘토로 파리에 도착했을 때부터 알고 지냈는데 내가 먼저 그에게 SNS로 메시지를 보냈다. 그 후에 그가 나를 팔로하고 내 작업물을 유심히 봐주었으며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그의 장점 중 하나가 굉장한 호기심을 가졌다는 것과 젊은 영혼에 열려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시간을 내는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음악과 패션, 아트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새로운 세대의 문화를 섭렵하곤 한다.
어둠의 피조물이 나타나는 비디오에서 영감을 받은 두 번째 쿠튀르 컬렉션.
젊은 세대에게 오트 쿠튀르 컬렉션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더 나아가 젠지세대를 대표하는 쿠튀리에로서 갖고 있는 사명감 같은 것이 있을까?
나에게 있어 오트 쿠튀르는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증표와도 같다. 그리고 그에 대한 나의 의지를 나타낸다. 사실 예전에는 오트 쿠튀르란 굉장히 전통적인 것으로, 그곳에 소속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몇 년의 경력을 가져야 하며 어떤 방식으로 작업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오트 쿠튀르는 새롭게 변신하고 있고 나와 같은 젊은 세대에게는 진실한 표현의 수단처럼 느껴진다. 테크닉이나 가격을 벗어나 디자이너의 예술적인 비전을 드러낼 수 있는 신선하고 자유로운 매개체가 된 것이다. 이 새로운 포맷을 통해 나의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 쿠튀리에로서의 사명감이라 생각한다. 고여 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다.
지속가능성 역시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있어 필수적인 화두일 것이다. 이를 어떻게 실현하고 있나?
패션은 현재 상태로는 지속될 수 없다. 지금처럼 1백40개의 비슷한 모습의 패션쇼를 일 년에 4~5번 하는 것은 굉장한 낭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것이고 컬렉션도, 만들어지는 피스도 점차 제한될 것이다. 난 아무렇게나 생산해내고 싶지 않다. 로샤스나 내 브랜드 모두 말이다. 무엇인가 의미를 지닌 옷을 만들고 싶다. 다행스러운 것은 대중들의 소비 패턴도 많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매일매일 비슷한 옷들을 소비하는 것이 아닌 의미 있는 소비를 하고 싶어한다. 옛날부터 빈티지를 좋아했는데, 요즘 길을 가거나 숍에 들어가도 사람들이 이 화두에 대해 관심이 높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파리 근교의 생제르맹 앙 레(Saint-Germain-en-Laye)에서 태어났다. 내 가족은 다양한 문화에 관심이 많은 창조적인 분위기였고 나의 예술성과 그 결과물에 대해 격려와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또 우리 집안에는 아티스트가 많았다. 덕분에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를 만들고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채곤 기꺼이 지원해주었다. 어린 시절엔 소심하고 친구가 별로 없었는데 그래서 내면의 세계에 깊숙이 빠져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난 좀 특이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자율적이고 독립적이었기 때문에 그렇지는 않았다. 대체적으로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이사를 다니기는 했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고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냈다. 지금 같이 일하는 마르고는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인데 그녀가 없는 나의 삶은 상상할 수 없다. 나를 잘 아는 누군가가 내 옆에 있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2021 F/W 오트 쿠튀르 컬렉션의 키 룩.
특유의 컬러풀하고 에너제틱한 일러스트는 당신의 시그너처가 되었다. 그림은 언제부터 그리기 시작했나?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렸는데, 샹브르 드 센디칼레에 다닐 때 비로소 나만의 스타일을 찾은 것 같다. 나에게 있어 그림은 간판과도 같은 것이다. 물론 방황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한창 유튜버를 꿈꾸며 비디오를 만들기도 했으니까. 그 영상들은 현재 모두 내린 상태다.(웃음) 그리고 디지털 사진 작업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손을 놓은 지 오래되었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
로샤스의 SNS를 통해 당신을 주인공으로 한 영상과 사진들이 꾸준히 업로드되고 있는데, 다수의 디자이너들이 얼굴 공개를 꺼려하는 것과 차별화된 행보라 흥미롭게 느껴진다.
내가 그 영상과 사진에 등장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우리 세대 대부분이 그러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내가 뭐 주인공으로 어떤 역할을 연기하는 게 아닌, 스스로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두려움이나 거부감 같은 건 없다. 다른 사람을 재현해내는 게 아닌 본능적이고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카스텔 바쟉과 장 폴 고티에가 연상된 그의 데뷔 컬렉션.
개인 컬렉션을 만드는 과정과 하우스 소속의 디렉터로서 컬렉션을 만드는 것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굉장히 다르다. 물론 내가 머릿속에 그려낸 컬렉션을 스스로 형상화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나는 컬렉션을 구상할 때 마치 영상을 플레이하듯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흘러가는 영상처럼 떠올리고 그에 어울리는 무드와 음악이 내 안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로샤스 컬렉션을 준비할 때는 곁에 커다란 팀이 있고, 스튜디오가 있으며, 원단 선택에서 완성에 이르기까지 정말 여러 사람이 협업해 만들어진다. 내 브랜드로 옷을 만들 때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점이 가장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로샤스의 아틀리에는 밀라노 옆 베르가모에 있어 나는 격주로 이탈리아에 출장을 간다. 평소에는 파리에서 내 컬렉션 작업과 혼자 할 수 있는 로샤스의 업무들을 해나간다. 이탈리아에서는 이곳과는 다른 빛을 느낄 수 있다. 빛이 다르게 빛난다고나 할까?
올여름 파리 패션위크 기간 중에 열린 이벤트에서 카스텔 바쟉과 샤를이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컬렉션을 집중적으로 준비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당신의 일상은 각각 어떻게 흘러가는가?
파리에서의 나는 매일 새롭게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계획적이지도 규칙적이지도 않다. 내가 사는 바티뇰 지구는 파리에서 가장 사랑하는 곳이다. 여기를 산책하는 것도 좋아하고, 9구나 마레의 갤러리를 둘러보는 것도 좋아한다. 다른 장르를 추구하는 다채로운 사람들과 만나 식사를 하고 어울리는 것도 좋아한다. 밤을 새며 일러스트 작업을 하는가 하면 어떨 땐 아침 일찍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베르가모에서는 전혀 다른 생활을 보내게 된다. 아침 8시부터 시작해 하루 종일 작업에 몰두해야 한다.
여행을 가는 것이다. 내일도 프랑스 남부 라 로셸 옆에 있는 일덱스(Ile-d‘Aix)라는 섬에 며칠 쉬러 가기로 했다. 휴대폰도 터지지 않고 슈퍼마켓도 없는, 배가 하루에 한 번만 운항하는 작은 섬인데 거기서 머리를 식힐 참이다.
2022 S/S 런웨이 쇼 피날레에 등장한 샤를.
쇼가 이제 막 끝났으니 한숨 돌리고 생각해봐야겠다.
마지막으로, 당신을 세 개의 단어로 표현한다면?
감성적(sensible), 확고함(determine), 영감적(inspi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