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셋이 모여 치열하게 연기하고 의견을 나누며 보완하는 모습이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혜화: 작품 들어가기 전에 언니나 동생한테 자주 조언을 구한다. 연기 워크숍이 생기면 ‘단톡방’에 남기기도 하고. 승화: 단톡방에서 음식이나 동물 사진을 주고받으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자주 나눈다. 재화: 내가 시집가기 전에 셋이 같이 산 시절이 있었다. 혜화랑은 오디션에 같이 다니면서 한 인물을 맡아 서로 대사를 쳐주기도 했다.
나이와 상관없이 서로 동등하게 마주한다는 느낌이 있다. 셋이 독립적인 시간을 보내서일 수도 있겠다.
재화: 내가 막 대학을 졸업하고 승화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때 부모님이 지방에 내려가시면서 셋이 살았다. 혜화랑 한창 혈기왕성하게 연극 하느라 승화 혼자 집에 있게 해서 많이 미안했다. 밥 대신 고구마를 먹였다고 엄마한테 혼났던 기억도 있다.(웃음) 승화: 언니들이 청소년일 때 내가 태어나서 그 어린 모습이 생생했을 것 같다. 부모님 대신 나를 챙겨야 했을 텐데 나는 그냥 언니들이라 생각했다. 나 진짜 괜찮았어.(웃음)
(위부터) 김혜화가 입은 재킷, 팬츠, 부츠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승화가 입은 재킷, 언밸런스 스커트는 Ader. 부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재화가 입은 재킷, 팬츠는 Arder. 베스트는 Cos.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같이 커온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어린 시절을 추억하자면?
승화: 재화 언니는 착하고 용감하고 따뜻한 햇살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추진력이 엄청 강해서 하고자 하는 걸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신기한 사람이었다. 혜화 언니는 어릴 때 나를 잘 골탕 먹였다. 무서우면서도 짜릿함을 선사하는 짓궂고 웃긴 언니.(웃음) 재화: 혜화는 야무지고, 확실하고, 똑똑하다. “피 한 방울 안 나온다”는 말처럼 설거지할 때도 물 한 방울을 안 떨어뜨린다. 예쁘고 인기 많고 공부도 잘했다. 말하자면 다 가진 아이였다. 승화는 어린데도 과감했다. 똘똘하고 자신감 넘치는 아이. 혜화: 언니는 사람들에게 희망적인 느낌을 주는 이타적인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든 실행하고 정의감에 불타는 스타일. 언니가 태양 같다면 승화는 샛별처럼 기발하고 통통 튀었다. 어리지만 나보다 언니 같은 느낌도 있었다. 나한테는 없는 봉사하고 헌신하는 면을 가진 아이였다.
성인이 되어 같은 직업을 가진 동료로서 존중하고 배울 점도 생겼을 테다.
재화: 혜화의 섬세함과 분석력, 끈기 있는 모습을 배우고 싶다. 나는 오디션 대본을 종일은 못 보는데 혜화는 그걸 한다. 그만큼 섬세하고 그래서 연기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승화는 거침없이 시도하는 스타일이다. 느끼는 대로 하니까 표정과 음성이 살아 있다. 혜화: 재화 언니가 말한 것처럼 승화는 동물처럼 날것 그대로를 보여주는 매력이 있다. 재화 언니는 어떤 역할을 해도 잘한다. 즉흥적으로 대사를 내밀어도 잘하고. 자기 것이 확실히 잡혀 있어서 그렇다. 승화: 나는 아직 연기에 대한 고민이 많고 흔들리는 때라 그런지 언니들의 견고한 중심이 가장 부럽다. 기술적으로 발성과 발음이 좋은 것도.
재킷, 팬츠는 Arder. 베스트는 Cos.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언제든 외국어 연기를 할 수 있도록 갈고 닦는 모습이 보인다.
재화: 해외 진출이라는 말은 부담스럽고. 대학생 때 1년 2개월 동안 장구를 메고 팀과 함께 세계일주를 했다. 그때 나는 세계 시민 중의 한 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어디로 갈 거야! 외국에서 살 거야!’라기보다 프로덕션에서 필요할 때 기꺼이 어디 가서든 자연스럽게 소화할 준비를 하고 있다. 혜화: 아주 짧은 장면이었지만 일본인 역할을 했을 때였다. 승화가 일본어를 굉장히 잘한다. 뉘앙스를 캐치해줘서 그대로 수천 번을 연습했다. 어떤 대상을 관찰하고 따라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막상 외국어 연기를 할 때는 발음 같은 언어적인 부분보다는 연기 그 상태에 집중하고 즐기게 된다. 승화: 평소 ‘말’에 관심이 많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얘기하는지 보는 걸 좋아한다. 외국어를 할 때 목소리가 달라지고 성격도 조금씩 변한다. 영화를 보면서 특유의 뉘앙스를 찾아내는 게 즐겁다.
드레스는 Cos. 슈즈는 Rachel Cox.
연기 워크숍과 스터디, 외국어 공부까지. 시간을 꽉꽉 채워 쓰는 편인가?
재화: 몇 년 전에 극단 선배들과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갔다. 그 한 달 동안 정말 열심히 성실하게 살았다. 일어나서 밥 먹고 설거지하고 입간판 메고 공연 홍보하러 다니고. 공연 마치면 남의 공연 보고 혼자 1인극까지 했다. 그때 지금 에든버러에서처럼만 산다면 어떤 꿈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는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시간을 쪼개서 살고 있다. 혜화: 되게 오래된 루틴은 아침에 일어나서 EBS 영어 방송을 듣는 거다. 원래는 세 개를 이어 들었는데 요즘에는 한두 개 정도 듣는다. 그리고 평소에 공부할 시간이 많이 없으니까 계속 영어 라디오를 틀어놓는다. 요즘에는 프랑스어 과외를 다시 받고 틈틈이 EBS 중급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 재화: 혜화는 중학생 때부터 신디 크로퍼드 비디오 보면서 운동하던 애다. 야자 끝나면 에어로빅 하러 가고.(웃음) 승화: 나는 벼락치기 스타일이다.(웃음) 시간을 보람차게 안 보내니까 잠이 잘 안 왔는데 요즘은 연기 공부도 하고 루틴을 찾아가니 잠이 잘 온다.
세 명 모두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당연하지’ 게임처럼 반복하는 ‘마이즈너 레피티션’도 그렇고 끊임없이 연기법을 공부하는 ‘학구파’일 것 같다.(웃음)
재화: 학교에서 먹고 자고 할 정도로 열심히 다녔지만 이론에 입각해서 연기하진 않는다. 오히려 요즘에는 축구를 통해 연기를 배운다. 오늘도 축구 하고 왔는데 너무 많은 것이 연기와 맞닿아 있다. 감독님과 연기 선생님이 하시는 말이 너무 똑같아서 놀라울 정도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기회는 내가 제일 힘들 때 찾아온다”. 아무리 골까지 뛰어 갔다 와도 사람들은 잘 몰라준다. 내 앞에 공이 있을 때가 기회인데 바쁘게 뛰다 보면 공이 내 앞으로 온다. 배우도 그렇다. 슬럼프나 지적, 안 좋은 리뷰가 있기 마련인데 그럴 때 어떤 기회가 오기도 하더라. 이렇게 다른 것들에서 연기의 힌트를 얻을 때가 있다. 혜화: 워크숍에서 배운 것들 중에 실용적인 스킬을 하나 캐내서 연기에 접목한다. 일상에서 힌트를 많이 얻는 편이다. 어떤 때는 식당에 가면 카운터에 계신 아주머니가 머리에 염색약을 바른 채로 일하고 계신다.(웃음) 그런 모습을 관찰한 다음에 왜일까 이유를 생각해보고 휴대폰 메모장에 기록해둔다. 승화: 연기는 높은 기술을 요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울타리가 없어지니 더 잘 알게 됐다. 그래서 요즘 어느 때보다 더 공부를 하고 있다.
김재화 배우는 하반기 최고의 흥행작 〈모가디슈〉에 참여했다. 아직까지 극장에 걸려 있을 정도로 저력 있는 상업영화였고 해외 올로케라는 흔하지 않은 경험을 했다.
엄마가 된 후로는 촬영이 끝나면 무조건 집으로 가야 해서 늘 갈증이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촬영 끝나고 동료들과 연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행복이었다. 한 작품의 처음과 끝을 함께 하게 된 것도.
드레스는 Cos. 슈즈는 Rachel Cox.
김혜화 배우는 드라마 〈마인〉으로 ‘크림빵 언니’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만큼 강한 임팩트를 주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분들이 ‘한진희’라는 역할을 사랑해줘서 신기했다. 별명도 맘에 들고.(웃음) 그리고 시청자들이 완전 악역이고 못된 여자라 미워하지 않고 귀엽게 봐주시는 것 같아 행복했다.
재킷, 언밸런스 스커트, 티셔츠는 모두 Ader. 부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늘 소속사에 들어가고 싶은 열망이 있었는데 언니들과 함께 처음으로 나간 방송이 기회가 되어 꿈을 이뤘다. 정말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기고 그만큼 열정도 커지고 있다.
몸과 머리에 기록된 것처럼 연기가 바로 튀어나오는 걸 보고 놀랐다. 최근에 그렇게 숙지하고 싶을 만큼 인상적으로 본 장면이 있나?
재화: 〈세라핀〉이라는 벨기에 영화가 있는데 주인공이 가정부다. 고된 일을 마치고 집에 가면 풀과 진흙으로 그림을 그린다. 혼자서 감정의 희로애락을 모두 끌고가는데 꼭 그런 연기를 해보고 싶다. 승화: 〈오징어 게임〉에서 구슬치기 장면. 그 상황에서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하기도 싫은 거다. 본성이 아찔하게 드러나고 슬프고 웃기고. 혜화: 최근에 켄 로치 감독의 영화를 몰아봤다. 그중에서 〈엔젤스 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라는 영화가 너무 좋았다. 배우들이 일반인이고 처음 연기를 하는 거라 굉장히 사실적이다.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연기에 끌렸다.
앞으로 한 작품에 함께 나올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어떤 작품을 하고 싶나?
재화: 단편영화 〈중성화〉를 같이 찍은 적이 있다. 혜화는 수의사, 승화는 간호사, 나는 병원에 고양이를 맡기러 간 사람으로 나왔었다. 2년 전에 힘을 합쳐 시나리오를 쓴 적도 있는데 공모전에서 떨어졌다. 기발한 내용이라 줄거리를 말할 수는 없다.(웃음) 현실에서 비롯된 굉장한 판타지인데 꼭 세상에 내놓고 싶은 욕심이 있다. 혜화: 세 자매 이야기인데 첫째, 둘째, 셋째가 서로 바뀌어도 재미있겠다. 승화: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 같은 원래 있는 연극도 재미있을 것 같다. 아빠를 주인공으로 써놓은 시나리오도 있다.(웃음) 거기도 세 딸이 나오지 않나. 아빠가 왕을 하고 우리가 세 딸을 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