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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llusion of Painting
Tom Anholt, 〈Fallen Flower I〉, 2021, Oil and Acrylic on Linen, 40x30cm. Courtesy Galerie EIGEN + ART Leipzig/Berlin. Photo: Gunter Lepkowski
2019년 학고재 청담에서 진행한 «톰 안홀트»가 좋은 반응을 얻었고 오는 10월 서울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무엇인가?
이제 막 서울 전시를 위한 작업을 끝낸 참이다. 미국 L.A의 프랑수아 게발리(Francois Ghebaly) 갤러리와 덴마크 코펜하겐의 미카엘 안데르손(Mikael Anderson) 갤러리에서 선보인 두개의 전시와 주제 면에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고전적이고 로맨틱하지만 종종 이상하거나 폭력적일 때도 있는, 일방향이기도 쌍방향이기도 한, 결국은 ‘사랑 이야기’다.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선정했나? 한국행이 결정된 작품 중에 특별히 아끼는 작품이 있다고 알고 있다.
다 나의 자식들이기에(웃음) 작품을 고르는 일은 늘 괴롭지만 마지막 그림 〈Fallen Flower〉는 유독 신나게 작업해서 기억에 남는다. 탁 트인 공간에 화병이 용감하게 놓여 있는 작품인데 시리즈가 거의 끝날 무렵에 얻은 자신감으로 이렇게 그릴 수 있었던 것 같다.
록다운 기간 동안 당신의 작품은 사뭇 어두워졌다. 이번 전시는 어떤가?
예술가들의 삶은 원래부터 꽤 고립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록다운이 내 작업에 영향을 미친 것은 맞다. 한동안 나는 어둡고, 무겁고, 감성적인 실내 공간을 주로 그렸다. 내 작업은 나의 현재를 반영한다. 나의 발전과 진보, 그날의 분위기, 지나온 여정까지. 다른 사람의 마음가짐이나 사고방식을 흉내내고서는 결코 작업에 임할 수 있다. 이번 서울 전시를 위한 작업을 시작할 무렵에는 이미 록다운이 풀린 이후였다. 요즘의 나는 빛과 개방성에 다시금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것이 이번 전시에서도 두드러질 것이다.
여전히 “제약이 곧 창조다”라는 피카소의 말을 믿는가?
그렇다. 화가로서 내가 들은 최고의 조언이기 때문에. 작업할 때면 팔레트 색깔을 일부러 몇 가지로 제한하고 그 안에서 최대한의 조화를 찾으려고 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보다 다채로운 색을 사용했다. 옐로, 오렌지, 핑크 같은 것들.
Tom Anholt, 〈Notes On Everything〉, 2020, Oil on Linen, 150x190cm. Courtesy Galerie EIGEN + ART Leipzig/Berlin. Photo: Gunter Lepkowski
당신은 직관적이고 즉흥적으로 작업한다. 우연성에 매력을 느끼나?
언제나 작품이 반쯤 완성될 즈음이 가장 행복하다. 그 작업이 나를 어디로 이끄는지 알 수 있으니까. 한마디로 그림을 가지고 놀 수 있으니까. 반대로 가장 힘든 날은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다. 도중에 하던 작업을 전면 폐기하고 다시 시작할 때가 다반사다. 심지어 나는 한 번에 한 작품만 작업한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덜 고통스럽다. 이 또한 작업의 일부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독일 베를린에 본거지를 두고 있다. 이 도시가 당신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나?
베를린은 모든 걸 가능케 한다. 만약 당신이 자연을 원한다면 자연을 가져다줄 것이고, 만약 당신이 재미와 흥분을 원한다면 그것 또한 찾아다줄 것이다. 무엇보다 물가가 저렴하다. 예술가로서 사는 데 이만한 도시가 또 있을까?
물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과거와 달리 이제는 전업 작가로 일한다. 스튜디오로 출근하는 삶이 당신의 예술세계를 어떻게 바꾸었나?
나는 여전히 아침의 빛을 사랑하는 ‘아침형 작가’다. 매일 아침 딸을 유치원에 데려다준 뒤 짐에서 복싱을 한다. 그런 다음 스튜디오로 출근해 그림을 그린다. 좀 더 시적인 답변을 전하고 싶지만, 솔직히 나는 매일 그림을 그리면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는 것에 큰 감사를 느낀다. 내가 이 사실을 결코 당연하게 받아 들이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난 뒤 새로이 영감을 얻은 부분이 있나?
매일 내 딸 ‘아다’로부터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운다. 이를 테면 걷는 속도를 천천히 늦추고 주변의 작고 아름다운 디테일을 발견하는 시선 같은 것 말이다. 딸이 나를 가르치고 딸과 함께 그림을 완성한다고 할 수 있다.
Tom Anholt, 〈2 AM〉, 2021, Oil on Linen, 190x150cm. Courtesy Galerie EIGEN + ART Leipzig/Berlin, Photo: Gunter Lepkowski
당신의 작업은 가족사와 연관이 있다. 페르시아 미니어처 화풍은 16세기 유럽으로 이주한 터키계 유대인 가문의 일원으로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환상적인 스토리텔링은 동화작가의 자녀로서 받은 영향이라고 보는데.
나의 부모님 캐서린과 로렌스 앤홀트는 동화책을 쓰고 삽화를 그린다. 나는 스토리텔링이라는 세계에 푹 빠져 유년 시절을 보냈다. 나는 우리 모두가 ‘조상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페인팅은 그것들을 끌어내는 마법 같은 것이고.
“수천 년의 미술사를 가방에 넣어두었다가 하나씩 꺼내 쓴다”는 표현을 한 바 있다. 당신에게 가방에서 꺼내고 싶은, 흥미로운 이야기는 무엇인가?
페르시아 미니어처 페인팅, 켈스의 서, 조선시대 초상화. 역사라는 이름으로 내 앞에 놓인 아주 긴 줄을 들여다보고 내가 그를 이루는 작은 일부임을 이해하는 것. 미술사를 들여다보는 일은 작가로서 나에게 매우 중요한 과업이다.
특정 장소에 영구적으로 걸리는 대형 페인팅. 언젠가 장소맞춤형(Site Specific) 회화를 그리고 싶다.
당신이 상상하는 미래의 예술은 어떤 형태인가?
페인팅이다. 페인팅은 영원히 죽지 않을 테니까.
손안나는 〈바자〉의 피처 에디터다. 평면회화란 이미지와 사유를 연결하는 2차원 너머의 또 다른 세계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