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CODES
IN 2021
FALL COUTURE

1922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는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혁명가이자 영화감독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뛰어넘어 그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는 ‘아웃사이더’다. 그의 영화는 폭력에 대한 과격한 묘사와 파시즘과 반파시즘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파졸리니가 바라본 로마에 대한 시선은 킴 존스를 흥분시켰다.
〈마태복음〉 〈오이디푸스 왕〉 〈살로 소돔의 120일〉 등 파졸리니의 영화 속 로마를 바라보는 날 선 시선과 감각적인 표현력은 이번 쿠튀르 컬렉션을 이루는 근간이 된다. 여러 형태의 패브릭이 무한한 환상을 꾸며내고, 겉으로 보이는 것과 전혀 다른 속내를 가지고 있는 룩들은 ‘현실적 삶을 통찰력 있게 설명한 위대한 해설가’ 파졸리니의 시선을 닮았다.
2 Rome
지난 2021 봄/여름 쿠튀르 컬렉션이 킴 존스의 주 무대를 영국에서 로마로 이동하는 과정이었다면, 이번 2021 가을/겨울 쿠튀르 컬렉션은 그가 영원의 도시 로마에 완벽히 정착한 결과의 산물이다. 로마 건물과 거리의 질감에서 영감을 얻은 소재와 함께 의상 위로 흐르는 선에서도 로마 조각상의 실루엣이 겹쳐졌다. 핸드백과 슈즈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너져가는 유서 깊은 건물의 잔해를 닮았다.
킴 존스는 많은 문화가 교차했던 고대 로마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모델 역시 여러 세대에서 캐스팅했다. 델피나 델레트레즈가 디자인한 주얼리 라인 역시 조각상의 질감과 부피감을 그대로 옮겨왔다.

18세기 융성했던 피아노 노빌레 스타일로 세운, 펜디의 본사이자 상징적 장소인 팔라초 펜디는 로마의 중심가에 자리하고 있다. 펜디 주얼리 컬렉션의 주된 로고이기도 한 펜디 팔라초가 이번 쿠튀르 컬렉션의 배경이자 요소가 되었다. 네모반듯한 건물의 실루엣과 아치형 창이 인상적인 균형감을 이루는 펜디 팔라초는 슈즈의 힐이나 벨 모양의 소매, 튤 드레스의 실루엣 등에도 고스란히 접목됐다.
4 Luca Guadagnino
〈아이 엠 러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감독으로 유명한 루카 구아다니노만큼 럭셔리 패션 하우스의 미장센을 잘 표현하는 감독도 드물다. 그만의 미학을 만들어내는 건 배우나 배경만큼이나 패션의 힘이 크다. 2005년부터 펜디와 함께 창의적인 작업을 해온 그는 이번 쿠튀르를 위해서도 아름다운 영상을 제작했다. “역사가가 역사를 들여다볼 때는 직접 그 속에 빠져드는 방식을 취해요. 하지만 영화 제작의 장인이자 시인인 파졸리니와 같은 사람이 역사를 들여다본다면, 그의 시각은 더욱 높은 차원의 관점이에요. 그의 시각으로 바라본 역사는 다급하면서도 세심하게 포착해낸 현재의 순간입니다. 과거는 현재가 되고 우리와 함께 숨 쉬게 돼요.” 그의 카메라, 그의 시선으로 담아낸 13분가량의 쿠튀르 컬렉션 필름 역시 펜디의 현재를 세심하게 포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