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지역 저널리스트 김영미가 미얀마에 언론사를 차린 이유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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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지역 저널리스트 김영미가 미얀마에 언론사를 차린 이유

<바자>의 카메라 앞에 선 여성이 말한다. 여기, 당신이 귀 기울여야만 하는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고. 만약 들어준다면, 우리에겐 아직 희망이 있다.

손안나 BY 손안나 2021.09.10
 
재킷, 팬츠는 H&M Studio.

재킷, 팬츠는 H&M Studio.

분쟁 지역 저널리스트

김영미 

 
미얀마의 해직 기자들을 모아 현지에서 ‘다큐 앤드 뉴스 코리아’라는 언론사를 차렸다. 
내가 직접 취재를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 미얀마에는 외신 기자들이 들어갈 수 없다. CNN도 며칠 만에 못 견디고 나왔다. 정부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서 제대로 된 취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조금씩 나오고 있는 미얀마 뉴스는 대부분 군부의 입맛에 맞춘 것이다. 저널리즘은 그런 게 아니다. 연대하고 움직여서 누군가가 언론사의 역할을 계속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미얀마 뉴스가 나와야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거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현재는 우리 기자들이 미얀마 대표 청년 지도자들 옆에서 동행 취재를 하고 있다. 훗날, 미얀마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기록이 될 것이다. 언젠가 좋은 날이 오면 촬영 원본은 기증할 생각이다.
 
지금 미얀마의 상황은 얼마나 심각한가?
 한번 시위를 하면 체포당하고 고문당하고. 우리나라 독재 시절만큼 심각한데, 거기에 코로나까지 덮쳤다. 양곤 시내의 주민들 중 50% 이상, 그러니까 한 명 건너 한 명이 코로나에 걸렸었다. 견디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많다. 산소통이나 약품이 있으면 살 수 있는데 너무 비싸다. 돈이 없으면 죽는 상황이다.
 
이 기록들을 모아 다큐멘터리로 제작한다. 작업은 잘 되고 있는가? 
우리 직원들이 굉장히 힘든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외신과의 작업 경험이 별로 없어서 처음에는 촬영 퀄리티가 너무 낮았는데 지금은 그래도 기자들의 역량이 꽤 올라간 상태다. 장비도 직접 사서 현지로 공수하고 있다. 내가 벌어서 하나씩 보내는 거라 한꺼번에는 다는 못 바꿔주고(웃음) 한 사람씩 차근차근 하고 있다. 그런데 그 장비로 야외 촬영은 못한다. 군부 단속 때문에. 풀샷은 여전히 휴대폰으로 촬영한다.
 
이렇게까지 미얀마를 돕는 이유가 있나? 
사람들은 저널리즘을 추상적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저널리즘은 시민의 생활과 권리, 헌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매개체이다. 소식이 안 들리면 세상이 조용한 줄 아는 법이다. 옆집에서 부부싸움 하는 소리가 안 들리면 저 집은 평화롭구나 생각하는 것처럼.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들이 정보를 가지고 와서 자꾸 알리는 거다. 그러면 사람들이 간접적으로나마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게 되고. 그게 국민의 알 권리다.
 
미얀마 사태를 위해 한국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람들은 왜 UN이 움직이지 않느냐고 아우성치는데, 여론이 약하니까 그렇다. 반대로 UN은 우리에게 말하는 거다. 그렇다면 당신네들이 여론을 만들어보라고.
 
이 직업에 사명감을 갖고 있나?
사명감 없다. 나는 내 일에 충실하려는 것뿐이다. 다만 다음 세대를 위한 일이라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우슈비츠를 보고 평화의 중요성과 경각심을 상기하듯이. 더 허물어지고, 더 망가지기 전에 기록하고 남겨놓는 일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음 세대가 필요할 때 참고할 수 있게.
 
본격적으로 분쟁 지역을 취재한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 
아프가니스탄에 간다고 하니 사람들이 미쳤다고 하더라. 그때가 30대 초반이었다. 그 나이에는 좀 미쳐봐도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기엔 너무 위험하지 않나? 
항공료와 머무는데 드는 비용, 그것 말고 더 손해볼 게 있나? 어차피 깨질 각오하고 가는 거다.
 
김영미는 다큐멘터리 제작 현장에서 수십 명의 스태프를 진두지휘하는 감독이다. 현장에서 그의 손에는 늘 무전기가 들려 있다. 같은 이유로, 현장이 아닐 때에도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은 이 무전기다.

김영미는 다큐멘터리 제작 현장에서 수십 명의 스태프를 진두지휘하는 감독이다. 현장에서 그의 손에는 늘 무전기가 들려 있다. 같은 이유로, 현장이 아닐 때에도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은 이 무전기다.

 
원래 용감한 편인가? 
내 별명이 ‘새가슴’이다. 그런 곳에서 용감하면 죽는다. 더 좋은 그림을 좇다가 불나방이 된다. 현장에서 그런 일을 목격하면서 느낀 건 2나 3만큼만 하면 되는데 멈추는 법을 몰라서 10까지 간다는 것이다. 그게 본능이기도 하고. 나도 인간인지라 욕심이 있다. 특히 일 욕심. 그나마 줄여서 이 정도다. 그걸 억제하려고 스스로 트레이닝도 많이 했다. 절제하는 훈련이 되어야 현장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당신은 무엇이 가장 무섭나? 
본능이 가장 무섭다. 극한 상황에서 사람이 짐승으로 변하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봤다. 내 눈에는 사람들이 다 각자의 저울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과 짐승 가운데에서 살다가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어느 한쪽으로 추가 기우는 것이다. 그 중에는 남의 것을 빼앗고 무조건 자기가 다 먹으려고 덤비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난다. 지금의 아프리카가 그렇고 그 옛날 삼국지가 그랬다. 나는 삼국지야말로 고도의 부동산 투기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물질에 대한 욕망이 없나?
물질로 얻을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몸의 안락함과 계급에 대한 만족감. 그런데 계급을 나누고 거기서 만족을 얻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짐승 같은 거다. 난 그런 건 안 하고 싶다. 인간에게 어떻게 계급이 있을 수가 있나. 우리는 짐승이 아니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원래는 환갑까지만 하려고 했다. 그런데 정신차려보니 환갑이 얼마 안 남았더라. 그래서 코로나 때문에 현장에 못 나간 기간은 조금 빼기로 했다.(웃음) 그러면 60대 중반까지는 일할 수 있지 않을까.
 
일 얘기 할 때 누구보다 행복해 보인다.
욕심을 줄이되 일할 때는 언제나 내가 할 수 있는 베스트를 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러 사람이 호흡을 맞춰야 하고, 각자 의견도 다르다. 그걸 조합해서 최상의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다. 그러나 같은 곳을 향해 달려간다는 동지애가 좋다. 서로 공감하면서 하나의 작업을 해나가는 건 정말 신나는 일이다. 피디로서 받을 수 있는 상은 이미 다 받았다. 명예를 위해서 일하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가 궁극적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는가? 
인류 역사는 한 번도 후퇴한 적이 없다. 한국도 1백 년 전만 해도 종로에서 사람을 참수했다. 그 사이에 이만큼 발전한 거다. 사담 후세인이나 카다피를 취재할 때는 그 이름을 입에도 못 올렸다. 그 정도로 신적인 존재였다. 그런데 카다피가 물러나고 그의 저택에 가보니, 집 안의 걸레받이 하나까지 온통 황금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걸 가져갈 수 있나? 아무리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져도 결국 죽는다. 우리는 그 사이에 한 번 왔다 가는 부속품일 뿐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명의 시계는 계속 돌고 있다.
 
남보다 세상을 넓게, 많이 본 입장에서 젊은 세대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은가? 
아름다움은 옷과 보석과 명품이 아니라 자기 가슴 안쪽에 있는 거다. 언어가 다르고 피부색이 다르고 종교가 달라도 심장은 똑같이 생겼다. 그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가. 인간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도 사랑할 줄 아는 유일한 존재다. 나는 그게 인간의 품위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계획은 있으나 신의 계획은 모른다. 내일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를 예쁘고 충실하게 잘 살자고 말하고 싶다.
 
내일부터는 또 다른 촬영을 위해 2주간 외딴 섬에서 지낼 예정이라고 들었다. 어떤 프로젝트인가? 
거제도 옆에 지심도라는 섬이 있다. 마치 한반도의 축소판 같은 곳인데, 일제시대에 일본군이 들어와서 원주민을 다 쫓아냈고 광복 이후엔 다시 한국인들이 들어가서 사는 섬이다. 점령 당시 일본 군부대의 임무는 대한해협을 지키는 것으로, 태평양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이었다. 지금은 잊혀진 역사를 끄집어내서 그때 일을 교훈 삼아 다시는 이 섬에 평화가 깨지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자 한다. 중동이든 아프리카든 지심도든 내가 찍는 다큐멘터리는 다 비슷하다. 최종적으로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평화로운 세상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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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손안나
    사진/ 김영준
    헤어/ 안미연
    메이크업/ 이아영
    스타일리스트/ 이명선
    어시스턴트/ 백세리
    웹디자이너/ 한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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