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안 읽으면 후회! 국내 작가 신작 2권 리뷰

웃음과 눈물, 긴장과 평안, 사고와 사유. 책 한 권을 손에 쥐면 우리는 어디로든 간다.

BYBAZAAR2021.08.11
 

미완의 방에서 보내는 초대장 

 
얼마 전 인사동 어딘가의 땅속에서 항아리에 담긴 조선 전기의 금속활자 1천6백여 점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진흙에 파묻힌 자갈 더미처럼 보이는 작고 검은 덩어리에서 먼지와 이물질을 털어내자 보였을, 모서리가 무뎌지고 부식된 금속에 새겨진 15세기의 문자. 이것을 발견한 2021년의 사람들이 느꼈을 경이를, 금속글자 하나하나를 만져가며 엮은 책을 손에 쥔 6백년 전 사람들의 경이를 상상해본다. 차와 사람이 수없이 오가는 서울 땅 아래 묻힌 사물을 생각하는 역사학자들의 마음, 거대하고 견고한 그 땅의 표면을 열어보고 싶은 호기심도. 경이롭다는 말을 곱씹어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어떤 얼굴, 먼 곳의 풍경, 길고 먼 시간을 건너오며 손상되고 보존된 것, 어쩌면 아무것도. 분더카머는 ‘호기심을 북돋는 경이로운 사물들의 방’, ‘고정된 가상이 아니라 언제든 촉지하고 새로 배치할 수 있는 사물 그 자체를 수집, 보관, 진열’하는 방. 새로운 기술은 지루하고, 경이와 호기심을 영영 잃어버리게 될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는 시대. 이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의 분더카머에는 무엇이 들어갈까.
 
책상 밑에서, 오랜만에 꺼내 입은 옷 주머니에서 이물질이라는 사실 외에는 기원을 파악하기 어려운 작은 부스러기를 발견한다. 다만 이 부스러기의 본래 용도가 먹을 것이라면 함께 사는 개의 빛나는 눈과 분주한 코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내가 알 수 없는 논리를 통해 의미로 작동하는, 오래된 사물이 가진 기호. “문학은 소음에서 시작된다. 술렁이는 것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에 대한 호기심과 불안. 너는 어느 나라 말이니.” 너는 어느 나라 말이니. 이 책은 개의 통역 덕분에 바싹 마른 갈색 덩어리가 빵 조각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일 같은 것. 기호로서의 이미지를 상실해버렸지만 기호로서의 냄새를 발견당한, 다시 작동하는 기호 같은 것.
 
〈분더카머〉를 읽는 동안 작동법을 잊어버려 먼지 쌓인 기호들이 분주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들여다본 최초의 분더카머, 언제나 무언가를 모았던 아빠의 선반. 유리나 돌로 만든 동물 조각, 도자기 인형, 작고 새카맣고 놀랍도록 무거웠던 운석, 온갖 크기와 형태의 돌멩이, 고대 생물의 화석, 기념주화, 광물들…. ‘무언가’라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중구난방의 수집품들. 당신의 마음이 기운 사물이라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없는 ‘야릇한 무계통의 혼돈’. 조그만 사물이 빈틈없이 우글거리는 선반에 기어코 새로운 사물을 위한 장소를 만들어내는 손길. ‘시대혼종의 난입적 무질서로 파괴되고 확장하는 세계’. 이 세계 속에는 처음으로 서울에 놀러 간 나와 동생이 롯데월드에서 찍은 사진이 인쇄된 머그잔이 함께 놓여 있다. 카메라를 응시하는 우리의 긴장한 눈동자와 어색한 웃음. 스무 살이 되고, 서울로 이사한 내가 몇 달 만에 갈 때면 선반에 자리한 새로운 사물을 소개해주느라 여념이 없던 아빠의 들뜬 목소리. 술도 담배도 모르고 저게 유일한 재미인 사람인데 그냥 놔둬라, 집을 잠식해가는 이 분더카머를 용인해주는 엄마의 목소리. 유년에 대해 생각할 때면 종국엔 늘 길을 헤매는 사람이 된다. 다 아는 길이라 생각해 지도도 보지 않고, 길 곳곳에 도사리는 징후에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고 걷다 보니 낯선 골목을 헤매고 있는 사람. 헤매다 보니 어디를 가려던 것인지 기억도 나지 않게 된 사람. 헤매는 중이라는 상태만이 남아 있는 상태. 그리고 글쓰기, ‘금세 망각의 영역으로 다시 숨어 도망칠’ 예정인 잔해들을 임의적이고 일시적인 방에 모아두는 일.
 
이 책이 내게 왜 “땀 흘리는 외국인은 길을 알려주자 / 너무 더우면 까만 긴 옷 입자”라는 노래 가사를 떠올리게 했는지 모르겠다. 땀 흘리며 길을 헤매는 외국인의 마음과 통하지 않는 언어, 그러니까 언어로 기능하지 못하는 언어와 그것을 보완하기 위한 몸짓, 그림, 지도 앱 같은 것을 섞어가며 길을 알려주려는 마음이 모두 여기에 있기 때문일까. 사방에서는 낯선 언어가 들려오고, 뜨겁고 말간 햇빛이 사물의 윤곽을 선명하게 오려낸다. 피부에 닿는 버석한 공기, 열기. 땀이 줄줄 흐르고, 온몸의 근육이 푹 익은 여름 과일처럼 나른하게 풀어지는 감각. 너무 더울 때는 더 맹목적으로 더위를 향하기. 기꺼이 길을 잃고 헤매기. 덜 굳은 땅 위를 서성이기. 발자국 같은 문자들, 해독할 수 없는 의미를 내버려두기. 오독을 거듭해 쌓아나가기. 했던 말을 또 하기. 지우지 않고 철회하기. 분더카머가 방이라는 것, 방은 열리는 문을 가진 공간이라는 점이 내게는 중요하다. 이곳이 문을 가진 방이고 안팎은 언제든 뒤바뀔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 책 역시 열리는 사물이라는 점이. 닫는다는 동사 역시 다시 열릴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점이. 언어로 기록된 시간과 장면이 무계통의 혼돈 속에 놓인 방. 미래를 믿을 수 있었던 시간을 아득히 지나와버린 것 같은 지금, 이 방은 무덤가에 낸 창문, 유물 보관소, 박물관이기만 할까. 그렇지 않다. “먼저 쓰는 사람이 있고, 그의 글을 소리 없는 메아리처럼 거듭 베끼는 사람이 있다. 미래의 언어를 계획하고 사라지는 사람이 있고, 살아남아 그것을 덧이어 실현시켜야 하는 사람이 있다.” 시, 꿈, 돌, 숲, 빵, 이미지의 방. 방에는 문이 있고 문을 가진 방은 결코 완결되지 않는다.
 
글/ 김지연(시인, 그래픽 디자이너) 


스릴러 마스터

 
정유정 작가의 신작 〈완전한 행복〉은 〈7년의 밤〉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들에게는 반가운 책이 될 듯하다. 1부 ‘그녀의 오리들’, 2부 ‘그녀는 누구일까’, 3부 ‘완전한 행복’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한 여자를 둘러싼 수수께끼 같은 죽음들을 차례로 드러낸다. 읽어가면서 한국 독자라면 누구나 바로 연상할 수 있는 실제 사건이 있는데, 그 이야기는 잠시 뒤에 하기로 하고 줄거리는 이렇다.
 
지유의 엄마는 오리 먹이를 잘 만든다. 돼지고기를 다듬는 일부터 전부 직접 한다. 집 안에 맴도는 비린내에 지유는 꽤 익숙해져 있다. 시골집에서 지유는 새아빠 없이 엄마와 둘이 지내는데, 어느 날 친아빠 진영이 지유를 만나러 온다. 다음 날 아빠와 놀러 갈 생각에 기대에 부풀었던 지유는 밤에 고기 비린내가 감도는 것을 느낀다. 아침이 되자 아빠가 없다. 엄마는 아빠가 먼저 돌아가버렸다고 한다. 지유는 벌을 엄격하게 주는 엄마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돌아갔다는 아빠 물건들을, 심지어 휴대폰을 발견한 뒤에도 지유는 아무것도 못본 척한다.
 
은호는 재혼했다. 전 결혼으로 얻은 아들 노아는 어머니가 키우고 있는데, 노아를 데려오기로 한 계획을 아내가 여러 이유를 들며 미루고 있다. 은호는 지금의 아내가 격렬하게 화를 낼 때마다 사과하며 비위를 맞추며 살아왔다. 하지만 아내는 (아내가 전 결혼에서 데리고 온) 딸을 데리고 친정집에 가 있겠다고 하고 집을 나가버렸고, 은호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게 됐다.
 
〈완전한 행복〉은 유나의 정체를 서서히 드러낸다. 유나는 은호의 두 번째 아내이자 지유의 엄마다. 은호의 눈에 유나는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결합도 결핍도 없는 완전성이 아내의 우주였다. 행복은 가족의 무결로부터 출발한다고 믿고 있었다. 이 믿음은 신앙에 가까웠다. 타협이 있을 리 없었다.” 무결함을 추구하는 방식은 무엇인가. 은호는 행복한 순간을 하나씩 더해가면 그 인생이 결국 행복해진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유나는 다르다.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그리고 〈완전한 행복〉은 유나의 과거를 아는 사람을 끌어들이며 현재 시점의 여러 사람들이 겪는 이상한 일들을 하나로 엮어간다.
 
〈완전한 행복〉을 읽으면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1백 페이지를 넘기기 전에 기시감을 느낄 것이다. 다른 소설이나 영화와 닮았다는 느낌이라기보다는 ‘사건’ 혹은 ‘인물’에서 느끼는 기시감이다. 한 여자가 있다. 아이를 만나러 온 전남편을 살해한 혐의를 받던 여자는 두 번째 남편이 전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죽였다는 의혹도 받게 된다.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왔던, 아이나 가족의 안녕보다도 타인을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에 충실했던 사람. 그의 과거를 파헤칠수록 수상쩍은 죽음은 점점 늘어간다. 〈완전한 행복〉의 유나는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고유정을 연상시킨다. 사건의 정황도 닮은 면이 있다. 정유정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독자가 직감적으로 누군가를 떠올렸다면 그 ‘누군가’의 실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밝혔다. “이야기를 태동시킨 배아이긴 하나, 그 밖의 요소는 소설적 허구다. 플롯도, 인물도, 시공간적 배경도, 서사도.” 강조해야 할 만큼 실제 사건(들)과 책 속의 사건(들)은 닮아 있기는 하다.
 
1부 ‘그녀의 오리들’에서는 수상했던 여러 일이 2부 ‘그녀는 누구일까’에 이르면 천천히 퍼즐처럼 맞춰지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은 바로 지유의 이모이자 유나의 언니인 재인이다. 재인은 원래 진영과 오래 만난 사이였는데, 진영은 재인의 동생인 유나와 결혼했다. 재인은 사라진 진영도, 두 번 결혼한 유나도 가장 잘 아는 인물인 동시에 기자로 일하고 있다. 1부 마지막 대목에서는 (작가나 독자에게는) 굉장히 편리하게도 진영의 동생이 재인에게 긴 이메일을 보내 그간의 모든 상황을 자세하게 브리핑한다. 유나의 과거가 드러날수록 등장인물들이 느끼는 극한의 긴장과 두려움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7년의 밤〉의 후반부처럼 결국 만날 사람은 만나고 부딪힐 사람은 부딪히며 생사를 건 사투가 이어진다.
 
고유정 사건을 연상시키는 설정이라고 해도 후반부로 갈수록 전개는 알려진 사건과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은 꼭 강조해야 할 듯하다. 유나의 딸 지유, 유나의 현 남편 은호, 유나의 언니 재인 세 사람의 시점을 오가며 진행되는 이 이야기는 정유정 작가의 전작 〈종의 기원〉처럼 악의 내면을 탐구하는 식으로 흐르지 않는다. 유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보다 유나를 바라보는 주변인들의 공포와 긴장이, 이 작품의 주된 정서를 이룬다. 악인의 내면에 마이크를 주는 대신, 보통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독자들은 이 이야기에 깊이 연관되어, 긴장을 늦추기 어려워진다.
 
글/ 이다혜(작가,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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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박의령
  • 사진/ 이현석
  • 웹디자이너/ 한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