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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순정 만화 '아르미안의 네 딸들'을 그린 신일숙

이 만화들을 보고 자랐다면 당신은 축복받은 세대다. “나는 나의 삶을 나의 욕망대로 이끌어갈 것이다”. 그 시절 여성 서사를 꿰뚫는 한 줄의 로그라인이 지금도 당신을 북돋우고 있지는 않은지.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BYBAZAAR2021.03.02
 

순정만화처럼

 
만화가 신일숙
얼마 전 〈아르미안의 네 딸들〉의 복간판이 출간되고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알라딘에서 진행한 북펀드 중에 역대 최고 금액을 달성하기도 했고요.
감동적이었어요. 엄마와 딸이 같이 팬인 경우도 있고, 당시에는 눈치 보면서 제 만화를 봤을 남성 독자들도 섞여 있고. 그야말로 ‘찐팬’들이더라고요. 
〈아르미안의 네 딸들〉 레트로판 14권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이 장면이다.

〈아르미안의 네 딸들〉 레트로판 14권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이 장면이다.

대본소 시절의 어린 팬들이 자라서 기꺼이 지갑을 열 수 있는 경제적 수준이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할 텐데요.
그때는 사지 못했던 책을 이제야 손에 넣었다고도 하더군요. 이런 걸 ‘내돈내산’이라고 하나요?(웃음) 지금은 없어진 창만사(도서출판 프린스)판을 그대로 재현해서 나왔기 때문에 예전 기분을 느끼고 좋아해주는 것 같아요.
이번 복간판을 위해 출판본을 일일이 스캔한 뒤 포토샵으로 수정 작업을 거쳤다죠.
당시엔 스캔 데이터라는 게 없었죠. 컬러 원화를 출판사로 보내고 나면 잊어버리고 안 돌려주거나 분실되는 경우도 많았어요. 출판본을 다시 스캔해서 보정을 하는 수밖에요. 다른 작업은 몰라도 그림을 그리는 건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시간이 좀 걸려도 어쩔 수 없었죠. 레트로판이라곤 하지만 새롭게 출간하는 책이다 보니 표지 그림도 조금씩 손을 봤고요.
붉은색이 창만사판의 시그너처였잖아요. 레트로판의 붉은색 타이틀과 책등을 보고 딱 그 당시 판본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때는 왜 순정만화들을 빨간색으로 통일했는지 모르겠지만(웃음) 빨간색 커버에 로고도 금박으로 인쇄해서 금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반짝반짝 빛났던 게… 생각해보면 창만사에서도 제 책을 꽤 신경 써주었던 것 같아요. 그 사장님이 〈아르미안의 네 딸들〉을 좋아했어요. 당시 고료가 50만원이었는데 생활비도 안 되는 돈이었죠. 내가 이 작품을 제대로 하려면 백만원은 받아야겠다 싶었는데 주변에서 그건 좀 어렵지 않겠냐 하셨죠. 원고료가 두 배나 뛰는 거잖아요. 그런데 사장님이 작품을 보시더니 “흠, 이건 백만원은 받아야겠네.” 하셨던 기억이 나요.(웃음)
그럴 수밖에요. 〈아르미안의 네 딸들〉은 지금 다시 봐도 작화 디테일이 엄청나더라고요. 요즘에야 컴퓨터 작업으로 복사, 붙여넣기도 가능하고 스케치업을 응용하기도 하지만 당시엔 배경 하나하나 옷 주름 하나하나 손으로 그려야 했을 텐데요.
건강을 갈아 넣는다고 하죠. 만화라는 것이 창작의 영역이지만 대부분은 소위 말하는 노가다로 이루어져 있어요. 소장할 만큼의 값어치를 한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려면 절대 서툴게 그려서는 안 됐죠.
대본소-대여점 문화 때문에 만화책을 소장한다는 개념이 다소 낯설던 시기였는데요.
그 문화를 바꾸고 싶었거든요. 대여점은 일종의 선전 매체일 뿐 한 때 소비되고 마는 그런 그림이 아니라 소장가치가 있는 작품을 그리고 싶었고 10년 뒤에도 독자들이 내 만화를 사고 싶고 읽고 싶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죠.
1984년 〈라이언의 왕녀〉로 데뷔하시기 전엔 직장생활을 하셨다죠?
대학은 꿈도 못 꿨어요. 돈 없는 집에서 아들 하나 간신히 학교에 보낼 정도였으니까. 대학도 못 가는데 공부해서 뭐하나, 그런 마음으로 수업 시간에도 책만 읽고. 일본어도 잘 모르면서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를 보고 또 봤죠. 상고를 졸업하고 조기 취업을 했는데 말이 경리지 온갖 잡일을 다 했어요. 평생 이렇게 살다간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크게 후회할 것 같더라고요. 인생에 한 번은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에 도전해봐야겠다고 마음먹고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죠. 요행히도 다니던 회사가 도산하면서 그렇게 만든 만화책 한 권을 들고 서울에 올라왔어요.
 
〈아르미안의 네 딸들〉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레 샤르휘나와 에일레스.

〈아르미안의 네 딸들〉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레 샤르휘나와 에일레스.

두 번째 작품인 〈아르미안의 네 딸들〉은 한국 순정만화계에서 보기 드문 장편 대하서사물이었습니다. 1986년 연재를 시작하여 1996년 완결까지 돌이켜보면 창작자로서 외로운 싸움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지금처럼 독자나 편집자의 의견에 따라 이야기의 방향이 바뀌는 법도 없었을 테고요.
독자들의 반응은 편지를 통해 접할 수 있었기 때문에, 피드백을 받았을 즈음엔 이미 다음 스토리가 나온 뒤였죠. 당시 독자들에게 ‘미카엘’을 죽이지 말아달라는 편지를 정말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처음부터 죽을 운명을 정해 놓은 인물이었기 때문에 뒤집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어요.
미카엘이 카오스의 계곡에서 자신을 희생하는 장면을 보고 당시 수많은 독자들이 목놓아 울었을 겁니다.(웃음)
샤리(레 샤르휘나)의 일행은 모두 죽는 걸로 이미 결정된 이후였죠. 그것은 샤리의 운명하고도 연결이 되고 이야기를 좀 더 극적으로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장치였어요. 어찌 보면 외로운 싸움이 맞아요. 독자들이 한마디씩 던질 수는 있지만 그 말에 흔들려선 안 돼요. 결국 작품은 작가가 책임지는 거니까요.
〈아르미안의 네 딸들〉은 여성만이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아르미안 왕국의 네 왕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특히 여전사 레 샤르휘나와 철의 여왕 레 마누는 그 당시 보기 힘든 강인한 여성상이었죠. 권력 투쟁부터 운명에 맞서는 태도까지 지금 다시 읽어도 상당히 저항적인 여성 서사를 담았고요.
사실은 그냥 인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거죠. 남자든 여자든 똑같은 인간일 뿐인데 왜 여자만 이래야 하는 걸까? 당시엔 이것이 페미니즘이라는 생각조차 못했고 그저 의문이었어요. 어렸을 때 마을에서 어떤 여자분이 강간을 당했는데 그 부모가 가해자에게 시집을 보낸 일이 있었어요. 거기서 맨날 두들겨 맞고 사는 거예요. 울면서 본가로 도망 오면, 또 쫓아내고. 그걸 지켜보면서 도대체 이 여자의 삶은 무엇인가? 환멸이 들더라고요. 중학교 친구는 학교를 중퇴하고 공장으로 보내졌어요. 공장에는 그 친구의 여동생도 있었죠.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월급 날마다 그 친구의 아버지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돈 받아가려고. 하루는 제가 그 친구에게 물었죠. “차라리 도망가는게 낫지 않겠니?” 제가 화가 났던 건 그 친구가 그동안 한 번도 도망갈 생각조차 해본 적 없었다는 거예요. 그때 보고 겪은 일들이 다 제게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중학교 때 장래희망으로 여성해방운동가가 되겠다고 했었어요.(웃음)
남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도 남달랐어요. 저는 ‘에일레스’파였습니다만 리할 오타네스 등 대부분의 남성 캐릭터가 할리퀸 주인공과는 거리가 멀었고 오히려 수동적이나 악역으로 그려지기도 했죠.
일단 백마 탄 왕자는 제가 믿지 않았어요. 남자 덕을 봐서 갑자기 신데렐라가 된다고 한들 내가 일군 것이 아니면 남는 게 없잖아요. 여자도 스스로 자기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 강하게 살아야 한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한 사람으로서 자기 인생에 두 발 딛고 설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명대사 “인생은 언제나 예측불허, 그리하여 삶은 그 의미를 갖는다.”는 그렇게 나온 것일 테고요. 당시 선생님의 만화를 보고 자란 세대는 분명히 이 메시지에 영향을 받았을 거라 생각해요.
제가 책을 통해 여자가 아닌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했다면 독자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그분들이 어떤 조직의 결정권자가 되어 있거나 이 다음 세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테고요. 그분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것도 여자들이겠죠? 그러니 각자 자기의 삶을 열심히 살아주세요. 우리의 메아리가 끝나지 않고 계속될 수 있도록.
지금은 웹툰 플랫폼의 시대잖아요. 카카오페이지나 네이버시리즈를 통해 〈아르미안의 네 딸들〉을 새로 접한 젊은 독자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10년 뒤에도 읽히는 책을 만들고 싶었는데 30년 뒤에도 읽히게 되었으니 성공했다. 열심히 살았다!(웃음) 처음 만화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 집안에서 엄청난 반대가 있었어요. 만화가로 성공하기 전에는 절대 집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죠. 사실은 그냥 죽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만큼 열심히 살았고 또 즐겁게 살았어요. 사람들이 종종 제게 다시 태어나도 만화가를 할 거냐고 질문하더라고요. 물론, 다시 태어나면 만화가는 안 할래요.
다음 생에 또 만화를 그리는 건 힘들 것 같으세요?
힘들어서가 아니라 재미가 없잖아요. 왜 똑같은 인생을 살아야 해요?(웃음) 다시 태어나면 다른 삶을 살아봐야죠. 그래야 이번 생이 얼마나 좋았는지 알 수 있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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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손안나
  • 글/ 홍난지(만화연구가,청강문화산업대학 교수)
  • 사진/ ⓒ신일숙 이미지 제공/ 거북이북스
  • 웹디자이너/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