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보그’는 ‘영광이 사라졌다’는 뜻의 ‘ichabod’를 변형해서 만든 말이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집필하던 때였다. J.K. 롤링은 어린 자신의 두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면 이 의미심장한 제목의 모험담을 들려주었다. 10여 년 전 다락방에 묵혀두었던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나온 건, 뜻밖의 계기 때문이다. 팬데믹으로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자 롤링은 〈이카보그〉를 인터넷에 다시금 연재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그랬듯, 평화로운 코르누코피아 왕국에 전설 속 괴물 ‘이카보그’가 나타나면서 사람들의 일상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똑똑한 어른들이 혼란에 빠진 사이, 용맹한 어린이 버트와 데이지가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길을 나선다. 집 안에 갇힌 아이들은 모험의 여정을 함께하며 창문 너머 바깥 세상의 무한함을 상상했고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친구를 떠올리며 버트와 데이지의 우정에 흥분했으리라.
〈이카보그〉의 놀라운 점은 말하는 괴물이 나오는 이 판타지가 어른에게도 진한 위로를 건넨다는 사실이다. 무능력한 리더, 괴물이라는 우상, 지역 차별, 가짜 뉴스의 탄생과 소멸까지. 매일 저녁 8시 뉴스에서 보던 우리 시대의 갖가지 얼룩이 이야기 안에 그대로 녹아 있다.
마침내 ‘나쁜’ 괴물은 소멸하고 코르누코피아 왕국도 서서히 정상성을 회복한다. 사람들은 이제 막 가게 문을 열고 빵과 포도주를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영광의 시대는 끝났고 그 자리에 실낱같은 희망이 조심스레 자란다. 한 명의 어른으로서 이 조심스러운 해피 엔딩에 묵직한 책임감을 느꼈다. 어쩌면 어린이 화가들이 그렸다는 천진무구한 삽화들에 마음이 동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