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HUNTING

남궁선(영화감독)
벌써 10년 전 이야기다. 벨기에에 한 달 정도 머무를 일이 있었는데 앤트워프의 빈티지 숍에서 1960년대 Record de Luxe 빈티지 시계를 발견했다. 그 도시의 클래식하면서도 현대적인, 소년과 소녀를 넘나들고 할머니 같기도 한 즐거운 기운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뭔가 오래되었지만 귀여운 것을 갖고 싶었다. 다른 시대에서 온 물건의 디자인에는 언제나 미묘한 그 시대의 오리지낼러티가 묻어 있다. 그래서일까. 이 시계의 자그마한 골드 프레임을 볼 때마다 1960년대 말 70년대 초 〈아메리카의 밤〉 같은 영화들의 필름 현상 방식에서 나오는 특유의 컬러와 생기를 상상하게 되고, 반짝이는 눈으로 다른 도시를 탐험하던 10년 전의 나를 다시 만나는 기분도 든다. 겨울에 교복처럼 자주 입게 되는 검은색 캐시미어 터틀넥에 매치하면 마치 수전 손택이라도 된 것 같다. 반면 지극히 현실적인 애플워치도 자주 착용하는 아이템이다. 모든 기기를 전 세계의 플랫폼으로 연동시켜 기능적으로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스마트 워치가 기계 아니고 시계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에르메스 에디션을 질렀다. 활동이 많은 날엔 스트랩을 네이비 스포츠 루프로 바꿔서 청바지에 스니커즈나 부츠와 매치한다. 가끔 친구들이 너드 같다고 정색하기도 하지만 사람의 본색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성격에 맞으면서 클래식한 것들이 결국엔 남는 것 같다. 10년이 지나도 변치 않을 것들과 매일매일 곁에 둘 것만큼은 좋은 인연이 보이는 순간에 붙잡아두는 게 좋지 않을까.


정진아(아트 컨설턴트, 오운 대표)
내 화장대 위에는 그 흔한 보석상자 하나 없다. 주얼리를 즐겨 착용하지 않지만 내게 일상과 같은 아이템이 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365일 함께하는 실버 주얼리인데, 작은 링 피어싱과 마르지엘라 커프가 그것. 이탈리아 밀라노 출장길에 찾은 꼬르소 꼬모 아웃렛 매장에서 팔에 꼭 맞는 마르지엘라의 커프를 발견했다. 사이즈가 작아서 아웃렛까지 왔던 모양이다. 팔에 끼는 순간 유레카를 외치며 구매했고, 3년간 자는 시간을 빼고 늘 착용했다. 그런데 또 다른 베네치아 출장에서 잃어버리고 말았다. 출장 성과나 귀국의 기쁨보다 허탈감이 컸다. 국내 매장뿐만 아니라 해외 출장이 있으면 마르지엘라 매장을 뒤지고, 중고 사이트까지 수년간 같은 모델을 찾았지만 끝내 실패했다. 왜 그렇게 집요하게 찾았을까 싶다. 매일 함께했던 그 3년이라는 시간 때문이었을까. 그러다 우연히 작고 한산해 보이는 주얼리 공방을 지나다 주문 제작을 했고, 2개월을 기다려 100% 싱크로율은 아니지만 비슷하고 꼭 맞는 팔찌를 다시 손에 넣었다. 이 은팔찌는 매일 할 수 있고 어떤 옷과 분위기에도 잘 어울린다. 드러나지 않고 과하지도 않다. 반면 특별한 날 착용하는 실버 귀고리는 좀 다르다. 좀 웃기는 얘기지만 나이를 느낄 때가 있다. 40세. 단어도 낯설고 무거운 ‘불혹’ 앞에 서니 협상할 때가 생각보다 많더라. 평소에 늘 하고 있는 피어싱 링 귀고리는 너무 가볍기 때문에 협상해야 하거나 중요한 자리가 있으면 무게감이 있는 이 녀석을 꼭 하고 간다. 불필요한 감정을 눌러주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