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하던 아이템이 죄다 엎어졌다. 퇴사에 대한 욕구가 목까지 차오른 어느 날, 사표를 던지는 대신 귀촌을 결심했다. 전라도 김제의 작은 마을. 일곱 가구가 전부인 한적한 이 동네 끄트머리에 4천5백만원짜리 폐가를 한 채 매입했다. 고치고 부수고 쓸고 닦아 마침내 나만의 리틀 포레스트를 만들었다. 지금은 유튜브 〈오느른〉을 통해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을 귀촌 후의 삶에 대해 전하고 있다. MBC 1호 브이로거 최별 PD의 사정이다. 시골살이가 불러온 소소하지만 확실한 변화들.
입구에서 보이는 풍경. 대지는 약 3백 평으로 마당이 본채와 별채를 둘러싸고 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게 시골의 라이프스타일이다. 이곳에선 아침 6시부터 7시가 러시아워다. 아침이면 안개가 껴서 신비한 느낌이 드는데 눈을 뜨고 고요한 풍경을 지켜보는 것이 좋다. 매일매일 새로운 게 심겨 있는 밭을 구경하는 것도 재밌다. 처음엔 이웃 어르신들이 농사일 쉽다고 하셨는데 이제서야 진실을 말씀해주시더라.(웃음) 아침 일찍 일하고 낮엔 쉬니까 나만 몰랐던 거다. 도시 사람들이 훨씬 더 바쁘겠지만 그들이 각박하게 사는 느낌이라면 이곳 어르신들은 계절에 맞게 참 부지런하고 건강하게 사신다. 재택근무가 오전 9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오전 시간이 한참 남는다. 그 시간에 책도 보고 글을 끄적인다. 6시에 업무가 끝나면 동네 한 바퀴 돌면서 산책을 한다. 옆집 이여사님과 함께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인터넷과 TV를 별채에 두었더니 자연스럽게 6시 이후엔 그쪽에 잘 안 들어간다. 늦어도 밤 10시에는 잠에 든다.
보통은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몇 시간 들여다보다가 잠이 드는데.
서울에서 생활할 때 늘 의문스러웠던 점이다. 회사에서 5분 거리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바쁜 거였다. 일찍 퇴근했다 싶어도 씻고 배달음식 시켜 먹고 넷플릭스보다 보면 금방 자정이 되고. 이상했다. 이사 와서 짐을 정리하다가 당시에 쓴 메모를 발견했는데 화가 많이 나 있더라. “도대체 내 시간은 어디로 간 건가?”(웃음) 그런 분노가 적혀 있었다.
합판으로 마감된 천장을 뜯어 오래된 서까래를 그대로 드러냈다.
농번기에는 좀 바빴고.(웃음) 적어도 지금은 내가 소진되고 있다는 기분이 들진 않는다. 이곳에서의 모든 일이 내겐 새로운 시도이고. 서울에서 완전히 망해도 여기서 농사짓고 살면서 나 하나 입에 풀칠하고 살 수는 있겠다는 막연한 든든함이 있달까. 정서적으로도 쉴 공간이 생겼지만 실제 물리적으로 ‘빽’이 생긴 느낌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요즘 더 열심히 회사 일을 하고 있다.
시골에 살지만 재택근무를 활용해서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 일반적인 귀촌과 가장 다른 점이다.
내가 귀촌 후에도 회사를 그만두지 않은 것은 PD로서 콘텐츠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갚아야 할 대출이 있고 퇴사 후에 뭘로 먹고살아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도시생활을 완전히 버리고 오면 도망치는 느낌이 들 것이고 이 좋은 풍경을 보면서도 패배감이 들 것 같았다. 머리를 썼다. 집은 자비로 마련할 것이다, 출연료도 필요 없다, 나에게 기회와 시간을 달라고 회사를 설득했다. 어떤 분이 댓글로 “누군가는 이런 시간을 얻기 위해 인생에서 크나큰 결단을 내려야 하는데, 당신은 직업적 특성 때문에 그런 고민 없이도 이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하더라. 맞는 말이다. 개인 유튜버가 아닌 방송국 소속 PD이기 때문에 공익성을 담보로 해야 한다는 압박을 나 스스로 가지고 있고, 회사 또한 최대한으로 나를 배려해주고 있기 때문에 이 기회를 나 혼자 힐링하는 시간으로 삼지 않고 시청자들에게 잘 전달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크다.
분리수거를 하거나 마실을 나갈 때는 자전거나 스쿠터를 활용한다.
4개월 만에 유튜브 구독자가 20만 명을 넘었다. 팔리는 콘텐츠가 될 거라 예상했나?
회사에선 아무도 이 기획이 잘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웃음) 시사교양으로 방송을 시작해서 그런지 기획을 할 때는 항상 내 세대 속에 들어가 있으려고 한다. 예전에는 다큐멘터리가 PD가 공부해서 시청자에게 답을 알려주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지 않나. 오히려 사람들이 너무 바쁘니까 고민을 대신 해주는 역할이이라고 생각한다. 20대 후반에는 결혼에 대한 고민이 많아서 그 이야기를 했었고, 실제로 어느 순간부터 집에 대한 관심이 생기더라. 서울은 집값이 너무 비싸고. 작년에 서울의 오래된 다세대 주택을 살까 고민했는데 어른들이 되게 반대하더라. 왜 아파트를 안 사냐고.(웃음) 결국 포기했는데 그때의 찝찝함이 가슴 한편에 남아 있었다. 이 집을 사기로 결정하면서 분명 나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을 거란 생각을 했다.
음식 배달이 불가한 시골의 특성상, 부엌에서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다.
특히 코로나 이후 새로운 주거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 않나.
이전부터 시골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나 역시 코로나가 결정을 내리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은 맞다. 일단 재택근무가 가능해졌다. 코로나 전엔 내가 일반 사원으로서 화상회의로 업무를 보게 될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 해볼 만하다고 봤다. 주거 문제는 앞으로 더 이슈가 될 것이고 삶의 형태는 계속 달라질 테니까.
스무 살 때 처음 자취를 시작하면서 지하 고시원에 살았는데 끔찍한 경험이었다. 깊고 어두운 동굴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랄까. 정서적으로도 영향을 받았다. 쉽게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지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집의 사이즈를 점차 바꿔나갔는데 그때마다 만족감이 커지더라. 사는 곳에 투자를 하면 항상 그만큼의 효과를 본 것 같다. 예쁘게 살고 싶었다. 단순히 인테리어로 집을 예쁘게 꾸미는 것 이상으로 내 삶을 예쁘게 살아나가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나는 이곳 현지 부동산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 집은 의외로 유튜브를 통해서 찾았다. 요즘 부동산 유튜브들을 보면 조회수가 10만 뷰 이상 나온다. 시골집이라고 검색하면 지역별로 매물이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