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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주명덕이 담은 1963년 홀트씨 고아원과 서울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기록해온 사진가 주명덕의 초기작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이 전시는 우리를 1960년대의 홀트씨고아원으로 데려간다.

BYBAZAAR2020.08.01
〈섞여진 이름들〉, 1963~1965.

〈섞여진 이름들〉, 1963~1965.

당시 대부분의 사진가들이 ‘예쁜 사진’에 매달렸던 반면, 사진의 사회적 기능을 믿은 주명덕 작가는 인천 차이나타운의 이방인들, 시립아동병원의 아이들, 성남으로 이주하는 철거민 등 도시의 그늘에 있는 이들을 찾아다녔다. 그리하여 그에게는 ‘한국 르포르타주의 개척자’라는 이름이 따라 붙었고, 이제 그의 사진은 과거를 해석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하나의 조각이 되었다.
 
〈섞여진 이름들〉, 1963~1965.

〈섞여진 이름들〉, 1963~1965.

이번 전시에서는 홀트씨고아원 아이들의 초상 사진과 더불어 혼혈 고아 문제를 좀 더 예리한 시선으로 포착한 작품 〈용주골〉과 〈운천〉, 그리고 1960년대 서울의 서정을 담은 30여 점의 ‘서울’ 연작도 함께 선보인다. 우연한 계기로 사진 동아리에 입단하여 카메라를 들게 된 20대 청년이 풋풋한 시선으로 바라본 서울이다. “젊은 날의 한 순간의 선택이 일생을 이끌어가는 것 같아요. 당시에 친구를 만나러 다방에 갔는데 사진 동아리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중 예쁜 여학생이 있어서 소개해달라고 했다가, 엉뚱하게 사진 동아리에 들어가게 된 거죠. 그 이후로 광산을 하던 부친이 심부름을 시킨 돈으로 몰래 니콘 카메라를 사고, 명동 거리의 노점상에서 파는 외국 잡지를 보면서 사진을 공부했어요. 매그넘 회원들의 사진이나 대도시의 거리를 누비며 사진을 찍던 윌리엄 클라인의 작품을 보며 흉내 내던 시절이에요. 1960년대에 한국에는 걸작주의 사진이 유행이었어요. 아름다움만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른바 살롱 사진이라고도 하는데, 이번에 서울 시리즈를 다시 보면서 내가 살롱 사진에 물들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종로 3가〉, 1964.

〈종로 3가〉, 1964.

경험해보지 않은 시대를 담은 사진은 언제나 흥미롭다. 누군가가 포착하지 않았으면 잊혀졌을 개개인의 사소한 일상이 특정 시대의 공기로 기록된다는 점에서 말이다. 사진가로서의 낭만과 기록해야 할 현실의 경계에 서 있던 그는 적정 거리를 두고 도시의 일상을 관찰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서계동에 있는 집 앞 골목길에서 동생의 머리를 묶어주고 있는 소녀, 활력이 넘치는 피카디리 극장가의 청년들, 나른한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는 천진동의 노인, 갑작스러운 폭설에 대비하지 못한 광화문의 행인들 등 보통 사람들의 거창할 것 없는 순간이 한 시대의 초상으로 기록되었다. 작가 본인은 “아마추어 시절에 찍은 습작”이라고 간단히 말하며 겸손을 표하지만, 도시의 현실을 기록하는 저널리스트의 시선과 도시의 아름다움을 관찰하는 산책자의 태도는 지금까지도 그의 작품 속에 공존하고 있다. 소외된 계층의 삶, 한국의 가족, 건축물, 자연 등을 고유의 문법으로 기록해온 주명덕의 사진에는 자신이 발 딛고 사는 땅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그의 사진은 한국적인 아름다움의 뿌리와 맞닿아 있다.
 
〈와룡동〉, 1963.

〈와룡동〉, 1963.

 
몇 년 전부터 고건축학자와 함께 한국의 가옥을 찾아다니고 있어요. 고택 체험과 재개발로 인해서 그윽한 기운이 고스란히 보존된 가옥이 생각보다 없더라고요. 이 집들을 기록한다는 것이 일차적 목적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안에서 나만이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해요.
 
〈광화문〉, 1965.

〈광화문〉, 1965.

전시장의 한편에는 1969년에 쓰인 주명덕의 형형한 사진론이 활자로 새겨져 있다. “사진은 그 예술성으로 따지자면 조형예술 중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이런 상태를 사진작가로서 부끄러워할 것은 없다. 어느 분야보다 뛰어나야 될 것이며 뛰어날 수 있는 조건을 사진은 가졌다. 사실과 기록이라는 특성으로.” 개인의 사진론을 넘어서, 기록 사진의 존재의 의미를 명쾌하게 정의하는 말이다. 그러나 전시장을 돌아보다 이 문구 앞에 도달한 백발의 사진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때는 참 어렸죠. 이렇게 말이 많았던 것을 보면요.(웃음) 20대는 물론 30~40대까지만 해도 나 자신이나 작품에 대해 할 말이 많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요. 좋은 작품은 그 자체로 관객에게 말을 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이러한 생각은 점점 더 침착하고 고요해지고 있는 그의 작품에도 담겨 있다. 그의 검은 풍경은 이제 언어 이상의 것을 담으려 한다.
 
※«주명덕 : 섞여진 이름들»전은 8월 8일까지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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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김지선(프리랜스 에디터)
  • 에디터/ 박의령
  • 웹디자이너/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