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의 가치는 독창적인 아름다움과 탁월한 완성도로 차별화된다. 단순히 트렌드에 그치는 패션 아이템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을 기반으로 하며 오랜 전통으로 이어지는 것. 샤넬 하우스가 보유하고 있는 르사주 공방의 특별한 노하우들이 그렇다. 르사주 공방은 프랑스의 장인들이 모여 샤넬 컬렉션을 위한 자수와 트위드 등을 제작하는 곳이다. 물론 처음부터 샤넬 하우스를 위한 공방은 아니었다. 1858년 미쇼네(Michonet, 르사주로 이름을 바꾸기 전)는 유명 오트 쿠튀르 디자이너 찰스 프레데릭 워스, 패퀸, 마들렌 비오네를 위해 자수를 만드는 공방이었다. 이들의 어시스턴트가 다름 아닌 마리-루이즈 르사주였던 것. 1924년 알베르와 마리-루이즈 르사주 부부는 미쇼네의 공방을 인수했고, 이것이 현재 르사주의 시초가 된다. 르사주는 버미셀리 스트레이트 얀(여러 색조를 배합하는 방식)과 차분한 색조의 음영 기법 등 새로운 기술을 발명했으며, 엘자 스키아파렐리, 폴 푸아레, 잔 랑방 같은 당대 유명 디자이너들과 함께 아방가르드 모티프로 이름을 알렸다.
르사주 공방 장인들의 터치가 느껴지는 파리-캉봉가 31번지 2019/20 공방 컬렉션.
1949년 부친 알베르가 사망하자 아들 프랑수아 르사주가 20세의 나이에 이어받는다. 그 이후 크리스토벌 발렌시아가, 피에르 발맹, 이브 생 로랑 등 최고의 쿠튀리에와 작업하며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르사주와 샤넬의 본격적인 협업이 시작된 1983년은 바로 칼 라거펠트가 샤넬에 입성한 해였다. 런웨이 쇼의 속도에 발맞춰 르사주는 디자이너의 비전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1996년, 프랑수아 르사주는 자수에 만족하지 않고 직물 공방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2년 후 샤넬의 레디투웨어 컬렉션을 위한 트위드를 디자인했으며, 2008년부터는 오트 쿠튀르를 위한 새로운 트위드도 선보이고 있다. 다양한 실이 정교하게 조합된 트위드는 르사주만의 특별한 노하우를 여실히 증명한다. 매년 10개에 이르는 샤넬 컬렉션의 꾸준한 조력자로 활동해온 르사주는 2002년 샤넬 공방에 합류했다. 공방 구석구석에 설립 이래 지금까지 만든 7만5천 개에 달하는 자수 샘플을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과거에서 미래의 흐름을 찾고 싶어하는 디자이너들이 종종 이곳을 찾아 영감을 얻기도 한다. 칼 라거펠트를 비롯해 존 갈리아노, 제이슨 우 등이 자주 찾았다고 전해진다.
이렇듯 창의적 유산의 보고인 르사주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쿠튀르 자수를 보유하고 있으며, 무궁무진한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2011년 프랑수아 르사주가 작고한 후, 위베르 바레르가 공방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임명되었다. 현재는 약 60여 명의 장인들이 프랑스 파리의 그랑주 바테리에가에 위치한 르사주 공방에서 작업하고 있다. 의외는 그들이 20~30대라는 사실. 젊은 장인들은 여전히 전통 방식을 고수해 훅과 바늘로만 수를 놓는데, 거기에 크리스털을 더하거나 잉크로 물들이는 등 창조적인 디자인을 선보인다. 대표적인 자수기법으로는 니들(실크, 래미네트, 벨벳 셔닐 등 다양한 소재로 만드는 기법)과 뤼네빌(일렬로 수놓는 방법)을 주로 사용하는 화려한 스타일이 유명하다. 1992년부터는 자체적으로 자수 학교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전통과 기술을 익힌 자수 전문가들이 탄생하게 된다. 이렇게 샤넬은 프랑스의 패션과 예술을 젊은 세대를 통해 발전시키고 이어나가는 데 동참하고 있다. 현재 샤넬을 이끄는 버지니 비아르 역시 르사주 공방과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샤넬에 입사해 칼 라거펠트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을 때 르사주 공방과의 협업을 담당했다는 사실. 몇 년 후 샤넬 크리에이션 스튜디오의 디렉터가 되었을 때, 그리고 2019년 패션 아티스틱 디렉터로 발탁된 후에도 르사주와 창의적인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1 훅과 바늘로만 자수를 놓는 방식을 고수하는 르사주 공방.2 파리-캉봉가 31번지 2019/20 공방 컬렉션.3 르사주의 전통과 역사가 담긴 자수를 위한 도구들.
샤넬의 수많은 컬렉션 중 공방 컬렉션이야말로 실과 바늘의 예술적 노하우가 빛을 발한다. 이제 막 시작된 파리-캉봉가 31번지 2019/20 공방 컬렉션에서는 르사주의 섬세한 자수가 벨트, 슬리브 커프, 울과 캐시미어 트위드 소재로 만든 우아한 코트 위에 자리했다. 르사주의 브레이드 자수로 장식된 레드 트위드 수트는 샤넬의 상징인 레더로 엮은 체인을 연상시킨다. 또 다른 브레이드는 50만 개 이상의 실버와 에메랄드 그린 비드를 사용해 실버 레더 재킷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트위드 소재의 톱과 스커트는 멀티 컬러 자수로 뒤덮였고, 재킷과 실크 튤 스트랩리스 드레스는 밀 이삭 패턴과 진주로 자수를 놓았다. 그야말로 장인들이 한땀한땀 수놓아 만든 진귀한 피스들로 가득하다. 에디터/ 황인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