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같은 순간을 선물하는 베티 사르의 작품 세계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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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같은 순간을 선물하는 베티 사르의 작품 세계

우연한 계기로 예술을 접한 베티 사르는 이제 이를 매개로 인종에 대한 편견에 맞선다. 그의 예술작품은 보는 이들에게 마법 같은 순간을 선물한다.

BAZAAR BY BAZAAR 2020.05.15

Betye Saar 

베티 사르 
베티 사르, 〈Anticipation〉, 1961.

베티 사르, 〈Anticipation〉, 1961.

1972년에 베티 사르가 버클리 갤러리에서 처음 선보인 작품 〈앤트 제미마의 자유(The Liberation of Aunt Jemima)〉는 공개되자마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흑인 여성 노예를 캐리커처화하여 만든 ‘유모(mammy)’ 인형을 작품 가운데에 두고 미니어처 라이플총을 한쪽 손에 놓았다. 사르는 마틴 루터 킹 암살 사건 이후 이 작품을 만들었다. 당시 아이 셋을 돌보느라 시위 행진에 참석할 수가 없었지만 분노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저는 흑인을 희생자가 아닌 전사의 이미지로 만들고 싶었어요.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티스트 사르가 말한다. 예술작품을 창조함으로써 흑인 여성운동의 방아쇠를 당긴 베티 사르는 93세가 된 현재까지도 큰 영향력을 지닌다.
캘리포니아에서 자란 사르는 우연히 예술을 접하게 됐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할머니와 함께 여름휴가를 즐기고 있던 중 우연히 아웃사이더 아티스트 사이먼 로디아(Simon Rodia)의 집을 지나게 된 것이다. 당시엔 로디아의 34년짜리 프로젝트 와츠 타워(Watts Towers)가 건설되는 중이었다. 와츠 타워는 철과 콘크리트로 구성된 17개의 빌딩을 설치하여 만든 거대한 구조물이다. “오늘날, 와츠 타워는 L.A의 유명한 랜드마크가 됐지만, 당시에 저는 그가 뭘 하고 있는지 잘 몰랐어요. 그는 멋진 철탑을 지으며 유리와 그릇의 파편을 묻고 있었죠. 평범한 이웃이었던 로디아는 자신만의 동화 속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돌이켜보면, 제게 최초로 영향을 미쳤던 사람은 로디아였던 것 같아요.”
 
그의 로렐 캐년(Laurel Canyon) 스튜디오에서 베티 사르의 모습.

그의 로렐 캐년(Laurel Canyon) 스튜디오에서 베티 사르의 모습.

결혼 전 사르는 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했다. 그리고 결혼생활을 얼마 하지 않은 채 1968년 이혼을 했다. 이혼 후에 석사 학위를 준비하기 시작한 그는 판화의 아름다움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전에도 디자인을 공부했지만, 그때 처음으로 미술을 접하게 되었어요. 잉크의 냄새, 그리고 판화를 제작할 때 돋보이는 육체의 움직임에 빠지게 되었죠.”
그러던 중 사르는 오늘날의 자신을 있게 해준 아상블라주를 처음 시도해보았다. 그의 복잡하고 난해한 작품들은 주로 신비주의와 페미니즘의 융화, 혹은 부적의 요소를 표현한다. 한 여성의 검은 실루엣이 오래된 창문 밖을 내다보는 모습을 담은 1969년 작품 〈흑인 소녀의 창문(Black Girl’s Window)〉에서 그는 소녀의 양손을 달과 별, 연금술 기호로 장식했다. 머리 위에는 해골과 사자, 독수리 등으로 포함된 9가지 심벌 시리즈가 있다. 그중 일부는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일부는 착색 방식으로 꾸몄으며, 나머지는 직접 세심하게 그렸다. 아름답고 복잡한 이 창조물은 제아무리 오랫동안 관찰한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완벽하게 해석할 수 없을 듯 보인다.
 
베티 사르, 〈The Liberation of Aunt Jemima〉, 1972.

베티 사르, 〈The Liberation of Aunt Jemima〉, 1972.

커리어 내내, 그는 관심 가는 대상을 수집하여 작품에 흡수시켰다. “중고상점이나 앤티크 숍, 벼룩시장, 길거리, 우리 집, 혹은 다른 사람들의 집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대상을 찾아다녔어요. 저는 제가 사용할 수 있는 대상과 마주할 때면 직감적으로 알 수 있죠. 그 대상이 저에게 말을 거는 것같이 느껴져요.” 그는 수십 년 동안 아상블라주 작품의 캔버스로 낡은 목재 빨래판을 사용하였다. 빨래판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와 고된 여정을 견디고 온갖 고생을 겪어야만 했던 개척자 여성의 역사를 의미한다. “이 하나의 물건에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어요. 빨래판은 노동과 고된 일의 상징이에요.” 이 숭고한 빨래판은 그에게도 개인적인 의미를 지닌 물건이다. 와츠 타워를 제작하던 로디아를 처음 본 그해 여름, 사르는 뒷마당에서 할머니가 빨래를 하고 있던 그 모습을 여전히 기억하는 것이다.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그의 스튜디오에는 여전히 새로운 작품의 일부가 되기 위해 대기 중인 물건들이 많다. 오래된 카누를 포함한 일부 물건은 10년이 넘게 대기 중인 반면, 그의 다음 작품 시리즈에 바로 포함될 동물의 뿔도 있다. “모든 것을 스튜디오 테이블 위에 놓아두어요. 그후 그것이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생각해요. 물건들이 가만히 기다려줬으면 해요. 그래야 제 다음 프로젝트에 사용될 수 있을 테니까요.”
90대인 그는 여전히 놀라울 정도로 활동적이며, 일상적인 오브젝트를 뛰어난 예술작품으로 완벽하게 바꿔놓는다. 심지어 가장 평범한 물건조차 그의 마법의 손길을 거치면 다른 대상으로 다시 태어난다.
 
카트리오나 그레이(Catriona Gray)는 영국 출신 기자 및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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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Catriona Gray
    사진/ Tierney Gearon
    웹디자이너/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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