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즌 런웨이에서 뽑은 베스트 룩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재해석한 클래식부터 사파리에서 영감받은 글래머머 룩까지, 이번 시즌 런웨이에서 베스트를 뽑았다.

SUMMARY OF THE

SEASON

지난 50년을 통틀어 가장 아이코닉한 스타일 10개를 꼽아본다면? 믹 재거와의 결혼식에 깊게 파인 블레이저를 입고 나타난 비앙카 재거.(모던한 섹스 어필의 상징이 되었다.) 패턴 강한 스카프를 머리에 두른 재클린 케네디는 가장 기발하고 실용적인 방법으로 자신만의 단정한 매력을 뽐낸 바 있다. 스리피스 수트 룩의 존 트라볼타(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에서 맡은 토니 마네로 역할), 아이스 블루 컬러 룩의 엘리자베스 여왕,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메릴 스트립이 선보인 사파리 룩, 트렌치코트를 더없이 완벽하게 소화한 케이트 모스, 녹색 시폰 소재에 정글 프린트가 압도적인 베르사체 스카프를 드레스로 탈바꿈시킨 제니퍼 로페즈…. 제대로 봤다. 이들 모두가 2020 S/S 런웨이에 등장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많은 클래식한 아이템들이 신선하고 흥분되는 선택지로 느껴지는 시즌은 처음이다. 역설적으로 들린다면(어떻게 이리도 신뢰할 수 있는 것들이 소설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지?) 2020년식의 기발한 트위스트를 살펴보길. 디자이너들이 이런저런 소소한 비틀기 전법으로 클래식에 새로운 혁신을 꾀했으니까 말이다. 에디 슬리먼의 셀린부터 시작해볼까. 1970년대의 힘을 보여준 63개의 룩에는 글램 록, 데카당스, 보호, 히피의 시대를 회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이 등장했다. 이는 동시대적으로 새롭게 정제되고 업데이트된 감각으로 선보였다. 하이웨이스트 플레어, 시퀸 드레스, 날카로운 라펠과 어깨로 특징을 살린 구조적인 재킷, 데님, 베스트를 쇼핑 리스트에 올리길. 이 키 아이템들은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 이래 이렇게 파워풀한 에너지를 내뿜은 적이 없으니까. 올봄, 아침과 저녁 당신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 분명하다. 버버리의 스리피스 수트처럼 베스트를 입어보는 건 어떨지. 점프수트를 입은 것 같은 효과를 주기 위해 블레이저 대신 베스트를 입힌 루이 비통의 스타일도 추천한다. 혹은 클로에 컬렉션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이 베스트를 스커트 위에 걸쳐 입어 70년대 록 밴드 플리트우드 맥의 로큰롤 스타일로 연출하는 것도 방법이다. 팬츠수트를 새롭게 장만하고 싶다면? 중성적이고 편안한 매력에 라즈베리의 부드러움이 믹스된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더블 브레스트 수트를 추천하고 싶다. 보다 젊게 소화하고 싶다면, 이번 시즌의 쇼츠 수트를 시도해보자. 토즈의 보이시하면서도 실키한 느낌도 좋고, 샤넬의 매혹적인 트위드 룩, 그리고 생 로랑의 아주 작지만 염치없이 섹시하고도 시크한 버전(프랑스인들은 대체 이런 걸 어떻게 만들까 싶은!)도 눈여겨보길. 물론 우리는 모두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 그러니까 오랜 세월 입을 수 있는 것을 갈망한다. 한순간 휩쓸고 지나갈 반짝 하는 트렌드는 다행히 이번 시즌의 유행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 5년 이상 입을 수 있는 아이템을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그것을 지금처럼 앞으로도 아끼고 좋아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잘 생각해야 한다. 세퍼레이트 또한 전체적으로 리뉴얼된 모습. 팬츠와 스커트의 허리는 좀 더 위로 올라갔고, 또 모아지거나 혹은 묶였다.(성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이번 시즌은 허리에 관한 모든 것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리고 조심스럽지만 다리를 과감히 드러내는 것이다. 알투자라 컬렉션을 참고하길.) 블라우스 또한 대스타가 되었다. 그중 지방시의 클레어 와이트 켈러는 블라우스를 디바의 레벨로 끌어올렸는데, 하이네크라인, 스카프 패턴, 벌룬 소매의 실크 아이템들은 옷장을 뒤흔들 하이라이터가 되어줄 것이다. 저녁에는 단색의 맥시한 것과 매치하거나, 혹은 차려입지 않은 느낌으로 연출하려면 이번 시즌 각광받는 새로운 퀼로트와 매치해 부드러운 파워 스타일링을 보여줄 것.

런웨이에서 ‘여성의 힘’은 매번 변신을 거듭해왔다. 디자이너들은 언제나 ‘뉴 노멀’의 정신을 찬양해왔는데, 그건 파워풀한 옷 입기에 있어 규정된 룰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같은 여성이 어느 날은 미우 미우의 구조적인 턱시도 드레스를 입을 수 있고 다음 날엔 바닥을 쓸고 다닐 만큼 길고 또 한없이 여린 에르뎀의 레이스 드레스를 선택하기도 하듯. 한편, 화이트는 이번 시즌의 근사한 방점이 되어줄 것이다. 그러니 이젠 (그저 화이트를 입었다는 이유로) 사회심리 강연회에 등장하는 말콤 글래드웰이 되는 기분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다. 한 번 입을 때마다 관리만 잘한다면, 화이트 또한 오랫동안 투자 가치가 높은 옷이란 것을 기억해둘 것. 마크라메(매듭공예 기법) 장식이 특징인 가브리엘라 허스트의 지속가능한 소재의 드레스, 디올의 티어드 스커트가 돋보이는 자수 장식 네트 드레스, 혹은 끝을 러프하게 마무리한 프라다의 민소매 실크 튜닉은 모던하면서도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날렵해 보이면서도 소박하다. 그중에서도 화이트가 가진 이중성을 가장 강렬하게 보여준 하우스는 알랙산더 맥퀸이다. 사라 버튼은 화이트 아이리시 리넨을 사용해 과감한 다듬이질(beetling)을 시도했다. 여기서 다듬이질이란 약 1백 년 전 유행했던 기법으로 패브릭에 자연스러운 윤기가 돌 때까지 무거운 나무 망치와 함께 기계로 천을 마구 두들겨 마치 인조 가죽처럼 보이게 한 기술을 가리킨다. 물론 모든 ‘인조’가 오늘날 패셔너블한 것이 되기 전 얘기. 버튼은 이 빛나는 리넨을 커다란 소매가 달린 심플한 드레스로 변신시켰고 그 결과, 화이트는 로맨틱하고 글래머러스하며 실용적일 수 있는 아이템으로 환골탈태했다. 한편, 런웨이를 휩쓴 사파리 무드에 있어서도 어딘가 실용적으로 글래머러스한 분위기가 포착된다. 말 그대로 지극히 사파리스럽거나 미묘하게 표현되는 등 다양한 변주가 이루어졌다. 먼저, 에르메스는 멀티 포켓이 달린 사파리 재킷을 가죽이 트리밍된 버건디 컬러로 소개했다. 케이트 스페이드는 사파리풍의 매력적인 화이트 스커트수트를, 막스마라는 발목에서 떨어지는 테이퍼드 팬츠를 벨트 장식 재킷에 매치한 올 화이트 수트 룩으로 사파리의 기능성을 부각시켰다. 돌체앤가바나의 경우, 극도로 입체적인 테일러링에 카키 코튼 소재를 더해 레트로한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이는 좋아하는 실루엣에다 컬러나 패브릭만 바꾸면 룩 자체를 업데이트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교본이다. 컬러로 말할 것 같으면, 라일락과 오드닐(eau de nil, 노란색이 가미된 녹색, 덜 어렵지만 뭐 딱 그 정도)부터 옅은 블루까지 대부분의 컬렉션에 등장한 파스텔 컬러를 빼놓을 수 없다. ‘왕관 효과’라고 부를 수 있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잇 컬러(왕가의 열렬한 팬들에 따르면 그녀는 이 컬러를 다른 컬러보다 3배 더 자주 입는다고)가 런웨이에 급부상했다.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폴 앤드류는 이것을 그린 컬러와 믹스하는 근사한 콤비네이션을 보여줬다. 이 블루 컬러의 장점은 모든 다른 컬러, 예를 들어 초콜릿, 라임, 연초록 등 흔히 안 어울릴 것이라 생각되는 컬러와도 세련된 조화를 이룬다는 것. 그간 지나치게 달콤하다고 여겨진 연약한 컬러들은 어떨까. 보테가 베네타의 재간둥이 다니엘 리는 컬렉션 전체에 파우더리하고 가벼운 블루 컬러를 적절히 활용했는데, 특히 인트레치아토 기법의 슈즈와 백 등이 돋보인다. 이제 베이비 블루는 65년 전 그레이스 켈리가 1955년 영화 〈나는 결백하다(To Catch A Thief) 속 도둑을 잡는 장면에서 블루 시폰 드레스와 스카프를 매치했던 때만큼이나 차갑도록 세련된 컬러가 된 것이다. 스카프의 경우, 올봄 모든 컬렉션에서 나부끼고 있다. 아까 언급했던 재키 방식처럼 머리 위로 묶거나, 벨트로 이용하거나, 드레스나 홀터넥으로 변신하는 등 갖가지 방법이 동원되었다. 유행에 다소 소극적인 사람이라도 스카프만큼은 시즌의 보태니컬한 패턴을 소화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니 한번 시도해보길. 어느덧 제니퍼 로페즈가 깊게 파인 그린 시폰 드레스를 입고 그래미 시상식에 참석해 인터넷 사상 초유의 화제를 뿌린 지도 20년이 지났다. 물론 우리가 그때 그것이 대체 뭔지 제대로 알았다 해도 그녀는 입었겠지만. 어쨌든 그 센세이셔널한 룩에 대해 사람들 사이에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고(기억하기로 당시 직원들끼리 나누는 모든 가십에 그녀의 룩이 등장했다) 결국 구글이 이미지 검색 기능을 개발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을 기억하는지. 바로 그런 게 진짜 영향력 있는 드레스가 아닐까. 또 그렇게 해서 우리는 오래 지속될 아름다움에 대해 깨닫게 되는 것이고. 흥미롭게도 그때 그 드레스가 올봄 도나텔라 베르사체의 런웨이에 돌아왔다. 이번에는 소매 없이 조금 수정된 모습으로. 물론 우리의 제니퍼 로페즈도 함께 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좋아지는 건 옷뿐만이 아니란 걸 온몸으로 증명하면서.

※ 리사 암스트롱은 〈더 텔레그래프〉의 패션 디렉터이다.(telegraph.co.uk)

재해석한 클래식부터 사파리에서 영감받은 글래머머 룩까지, 이번 시즌 런웨이에서 베스트를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