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불시착> 구승준을 떠나보낸 김정현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확신 없음에 대한 확신이 이 배우의 성장동력이다. ‘구승준’을 떠나 보낸 김정현은 여전히 느낌표가 아닌 물음표를 품고 산다.

MYSTERIOUS

MA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캐릭터 ‘구승준’으로 실시간 검색어 1위에도 올랐어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제 이름 석 자를 찾아봐주시는 것도 좋지만 제가 맡은 역할이 관심을 받으니까 그것도 참 기분 좋은 일이더라고요.
상의 탈의도 화제가 됐고요.(웃음)
〈질투의 화신〉 때는 그래도 고등학생 역할이었잖아요. 감독님께서도 수험생 같은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마음 편하게 벗었죠. 예쁘게 봐주신 분들에겐 감사하지만 사실 이번 작품의 경우엔 조금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촬영에 들어가면서부터 운동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제가 평소에 주짓수를 즐겨 하거든요. 음… 그러니까 아직 더 탄탄해질 여지가 있다는 말입니다.(웃음)

연기하면서 대중적으로 이렇게 큰 사랑을 받은 건 처음이죠? 드라마의 인기를 체감한 순간이 있었나요?
친구들에게 전화가 왔어요. 작가님 전화번호 좀 달라고. 왜 너를 죽였는지 이유를 물어봐야겠다고요.(웃음) 한번은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는데 아주머니들이 저보고 대체 언제 북한에서 내려온 거냐고 물으시더라고요.
뭐라고 답했어요?
막 내려왔다고 했죠. 이왕 남한에 온 김에 많이 먹고 가라며 반찬도 많이 주셨어요. 시청률이라는 게 지나봐야 알 수 있는 지표잖아요. 운이 좋게도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고. 사실은 아직도 조금 얼떨떨해요. 모든 작품이 의미가 있지만 제게 이번 드라마는 연기로서 그만큼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는 일종의 증거로 남을 것 같아요. 큰 사랑을 받았구나. 이렇게나 사랑을 많이 받을 수 있구나.
〈시간〉에서 하차한 이후 1년 5개월 만의 작품이라서 더욱 그렇겠네요.
이번 드라마로 자신감도 생기고 자존감도 올라갔어요. 저한텐 감사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죠.

니트는 Fendi. 팬츠는 Dior. 목걸이는 John Hardy.

니트는 Fendi. 팬츠는 Dior. 목걸이는 John Hardy.

한참 선배인 손예진, 현빈, 서지혜와 대등하게 연기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제가 선후배라는 틀 안에 갇히지 않도록 동료로서 받아주셔서 감사하죠. 기죽지 않고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도록 편하게 대해주시고 배려해주셨어요. 촬영 중에 현빈 선배님이 감기몸살에 걸린 적이 있어요. 평소에 굉장히 상냥하신데 그날따라 안색이 너무 안 좋으시더라고요. 밤에 문자가 한 통 왔어요. 정현아, 내가 감기 때문에 몸이 너무 안 좋다. 혹시라도 너한테 옮길까 봐 거리를 둔 거니까 오해하지 말라고요. 저야 그저 아, 연기 때문에 예민하신가 보다 생각했는데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시니까 감사하더라고요. 사실 제가 그리 살가운 후배가 못 되거든요. 노력은 하는데 참 어려워요. ‘지금 이 타이밍에 말을 거는 게 맞나?’ 속으로 엄청 고민하고.(웃음) 사적인 자리도 아니고 일하는 중인데 혹시라도 선배들에게 방해가 될까 봐요. 이 자리를 빌려서 이렇게 변명해봅니다.

셔츠는 Valentino. 팬츠는 Marni by Mue. 슈즈는 Givenchy.

셔츠는 Valentino. 팬츠는 Marni by Mue. 슈즈는 Givenchy.

한 인터뷰에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느냐”는 질문에 “유심히 들여다보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어요. 이번 작품에선 어떤 걸 유심히 들여다봤나요?
승준이가 가지고 있는 아픔,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들여다보려고 노력했어요.
‘영앤리치’, ‘젊은 사업가’ 혹은 ‘사기꾼’ 말고 구승준은 어떤 사람이던가요?
가장 철없어 보이는 인물이지만 저는 승준이가 오히려 어른스럽다고 생각해요. 자기의 슬픔에 함몰되어 있지 않고 밝고 건강하게 생활하잖아요. 실제로 가장 마지막에 촬영한 장면이 꽃제비에게 도움을 받는 신이었는데요. 승준이는 무얼 원했던 걸까. 돈이었을까, 아니면 복수였을까 여러 가지 물음표가 떠오르지만 근원엔 결국 외로움이 있었던 것 같거든요.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도 유독 그 장면이 기억에 남고요.

플라워 프린트 수트는 Kimseoryong.

플라워 프린트 수트는 Kimseoryong.

배우 김정현은 진중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능글맞고 발랄한 역할을 연기할 때 가장 돋보인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이번 드라마의 구승준도 그렇지만 〈초인〉의 체조선수 도현이나 〈질투의 화신〉의 표나리 동생 표치열, 〈어느 날〉의 보험회사 직원 차 대리도 그랬죠.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네요. 늘 50 대 50인 것 같아요. 제 모습이 섞여 있긴 한데 오히려 연기를 하면서 잊고 있거나 혹은 전혀 모르던 새로운 면을 발견하기도 하니까요. 제가 부산 출신인데, 거기 친구들은 능글맞은 역할에서 제 모습이 살짝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스스로를 ‘욕망 덩어리’라고 표현할 만큼 연기 욕심이 상당하다고 들었어요. 〈학교 2017〉로 주연을 꿰차고 나서 라이징 스타로 주목받았잖아요. 하지만 그 후로 한동안 작품 활동을 못했는데 빨리 증명해 보이고 싶다는 부담감은 없었어요?
빨리 뭔가를 이루겠다는 마음보다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굶주림이 컸어요. 휘둘리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그러려면 그냥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게 최선이더라고요. 연기하면서 늘 ‘이게 맞을까’ ‘이렇게 하면 내가 의도한 대로 봐주실까?’ 하는 불안감도 있어요. ‘그래, 그럼 너는 어때?’ ‘너는 이 정도면 만족하니?’ 저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던지고요. 그런 부분에 대한 결핍은 계속 있어왔던 것 같아요. 결국 이게 욕심인 거겠죠.

재킷은 Kimseoryong.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은 Kimseoryong.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제 ‘굶주림’은 해소되지 않았나요? 이번 작품으로 존재감을 보였으니 앞으로는 방향성에 대해서 고민해야 할 타이밍인 것 같은데 어때요?
전혀 안 해요. 어떤 작품을 하고 싶다, 어떤 역할을 해야겠다 이런 생각요. 장르, 캐릭터 불문하고 뭐든지 하고 싶어요. 저는 연기가 일종의 대화법이라고 생각해요. 그저 작품으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요. 가능하면 오래도록요.
할리우드 진출에 대한 야망이 있나요? 작품이 끝나자마자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죠.
꼭 할리우드가 목표인 건 아니에요. 그게 어느 나라가 됐든 어떤 시장이 됐든 다양한 작품으로 다양한 관객과 만나고 싶어요. 좋은 계기는 있었죠. 〈기생충〉이 오스카 작품상을 받았잖아요. 그걸 보면서 ‘아, 저곳이 아예 닫혀 있는 다른 세계가 아니구나’ 싶으면서 감동적이더라고요. 그런 대단한 상까진 아니더라도 제가 다른 자리에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누군가 보고 비슷한 감동을 느낀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일일 거라 생각해요. 배우 김정현에게도 그리고 인간 김정현에게도 동기부여가 된 거죠. 그래서 요즘엔 어딜 가든 항상 영어 얘기를 해요. 나중에 빼도 박도 못하도록요.(웃음) 그렇다고 제게 대단한 확신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인터뷰 내내 물음표, 질문, ‘모르겠다’, ‘확신이 없다’고 이야기한 거 알아요?(웃음)
확신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드물거나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안주할 수도 없고요. 잘 모르겠지만 두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씩 하나씩 해보는 거죠. 제 영어 공부가 그렇듯이 말입니다.(웃음)
확신 없음에 대한 확신이 이 배우의 성장동력이다. ‘구승준’을 떠나 보낸 김정현은 여전히 느낌표가 아닌 물음표를 품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