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반려생활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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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반려생활

지금 사랑하는 곳에서 살고 있습니까? 서울의 다양한 동네에 사는 이들이 자신의 터전에 한번 와보라 손짓한다.

BAZAAR BY BAZAAR 2020.02.26
석천문화관.

석천문화관.

성북동에는 예부터 많은 문화예술인이 살았다고 한다. ‘성북동 비둘기’를 쓴 김광섭 시인과 미술사학자 최순우, 김환기, 김향안 등. 물론 그러한 이유로 이 동네를 택한 건 아니다. 오다가다 지나는 성북동은 광화문에서 10분 정도 차로 이동하면 닿는 위치에 있고 마을은 산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도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 있다. 지대가 높다 보니 미세먼지가 없는 저녁에는 강 건너로 롯데타워가 보이고 밤에는 하늘에 별만 빛난다. 나는 약 4년 정도 성북동에서 집을 찾았다. 속 시끄러운 사람, 생각이 많거나 평소 일이 정신을 분주하게 만드는 사람에게는 삶 속 둥지 같은 곳이 성북동일 수 있다. ‘집’이라는 단어에 내포된 편안함의 추상적인 의미를 동네가 담고 있어서.
나는 반려자 최현록 씨와 중대형견에 속하는 반려견 ‘봄이’와 살고 있다. 우리 가족 하루 일과를 간단히 적어본다. 봄이 아침밥을 주고 채비를 해서 산책에 나선다. 우리 집은 산길이 나 있는 높은 지대에 있어서 뭔가를 사려면 평지로 내려가야 한다. 요즘처럼 아침 해가 늦게 뜨는 겨울은 커피와 식사를 위한 간단한 빵을 사서 와룡공원으로 간다. 공원 출입구는 아래쪽과 위쪽 두 군데인데 접근이 쉬운 초입에서는 동네 반려견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우리는 차를 타고 윗길로 가는 편이다. 저녁에는 동네 한 바퀴를 돌지만 아침만은 봄이와 비교적 길고 평온한 산책을 위해서 한양도성 성곽길 가장 높은 지대에 있는 와룡공원을 산책하는 것이다. ‘다른 반려견을 많이 만날 수 있으면 좋지 않나’ 누군가 묻기도 하지만 봄이는 사회성이 부족해서 다른 개와 잘 지내지 못해서다.
유기견이었던 봄이는 우리를 만나기 전에 두 차례나 파양되었다. 진돗개와 시바견이 섞였다지만 시바견보다는 큰 체구에 외모는 전형적인 시골개 누렁이다. 개농장에서 구출된 봄이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보호자에게 입양됐지만 아파트에서 봄이는 무서움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콘크리트 구조로 모든 환경이 정비되어 있는 소위 휴먼 스케일을 고려해서 설계된 아파트에서 봄이를 만나면 적잖이 놀랄 것도 같다. 흔히 봤던 귀엽고 작은 강아지, 품종은 모르지만 복슬복슬한 귀여운 모습이 아니라 성인 무릎을 넘는 키에 잔 근육이 있는 시골에서 봤음직한 누런 개를 만나면 당황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수렵생활의 유전자가 남아 있고 시골에서 집을 지키는 개로 인식된 봄이와 같은 아이들은 아파트에서 생활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봄이는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의 시간을 보내고 우리의 가족이 되었다.
 
길상사

길상사

아침마다 산으로 산책하는 봄이는 산까치를 놀라게 해서 날아가게 하는 재미에 귀를 젖히며 산을 휘젓고 달린다. 낙엽과도 단풍과도 초록과도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말 그대로 산개나 들개처럼 자연스럽다. 산길을 횡단하거나 거꾸로 혹은 비껴가도 누군가와 부딪히거나 정면으로 맞서는 일은 없다.
성북동에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는 수려한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동네가 주는 심리적인 안정감이 커서이다. 봄이처럼 비교적 큰 반려견이 자유로이 산책할 수 있다는 것과 대사관을 비롯해서 큰 주택이 많은 동네에서 봄이는 그저 ‘흔한 개’라는 점. 동네 곳곳에 출몰하는 진돗개, 허스키, 맬러뮤트, 보더콜리, 리트리버는 하루 한두 번씩 거리에서 만날 수 있어서인지 동네를 걷는 사람들이나 빵집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봄이를 보고 크게 놀라거나 당황스러워하지 않는다.
한때 멋을 부리고 다니던 나와 반려자는 규칙적인 산행으로 어느새 기능성 등산복과 운동복 차림이 일상이 되었고 외출복은 봄이의 털 인증으로 개엄마의 신분을 알리고 있지만, 겨울철 늦게 뜨는 아침 해를 만나는 순간과 해 질 녘 밤 산책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봄이와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
김환기는 1948년 성북동이 시골이라고 못마땅하게 여기던 어머니 때문에 원서동으로 이사를 갔다가 그해 여름 온 가족이 열병을 앓아서 시내를 벗어나는 것이 좋겠다는 가족의 의견으로 성북동으로 이사했다고 한다. 김환기는 최순우에게 성북동에 이사를 오라고 몇 번이나 권했다고 한다. 변한 성북동의 모습에 실망하고 수향산방과 비슷한 지형과 분위기를 찾아간 곳이 부암동이라고 하나 지금 성북동은 김환기가 떠난 그 시절 시간 속에서 멈춰 있는 것 같다. 크게 변하지 않는 산동네. 3월에 사무실을 옮길 계획이다. 물론 성북동이다. 동생이 집을 알아보고 있다. 성북동이다.
글/ 정진아(아트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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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박의령
    사진/ 이강혁
    웹디자이너/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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