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개의 시간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개와 개의 시간

SNS에서 만난 닥스훈트에 자꾸만 눈이 갔다. 이름은 없고 또렷한 눈 코 입과 긴긴 허리를 가진. 동산에 나타났다 디스코텍에서 춤을 추는 귀여운 생물의 하루를 좇다가 마음이 행복해져 후후후 웃어버리고 말았다.

BAZAAR BY BAZAAR 2020.02.01
 
SNS에서 행복을 나눠주는 부적처럼 닥스훈트 그림이 돌아다녔다. 발생지는 독일이고 작가의 이름은 한글 ‘김주영’이었다. 
2008년 독일에 와서 지금까지 라이프치히에 살고 있다. 한국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하면서 한 학기 동안 교환학생을 갔다가 얼떨결에 미술대학의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학부에 입학했다. 일러스트 세부 전공을 선택한 이후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작가라는 호칭이 어색할 정도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지난 일 년 반 동안 주로 손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들을 책으로 엮는 작업을 해왔다.
지금까지 네 권의 출판물을 냈다. 〈Mensa〉는 진의 형태, 〈Boomerang〉은 카툰, 〈번역이 안 되는 독일어 단어들(Un¨ubersetzbare Deutsche W¨orter)〉은 동화책 같고, 〈Welcome to My Life〉는 화보집에 가까워 보인다. 
‘Mensa(멘자)’는 독일어로 ‘학생 식당’이라는 뜻이다. 독일 음식은 가뜩이나 맛이 투박하기로 소문났는데 거기에 저렴한 예산으로 학교 반지하 식당에서 조리를 하니 맛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나름 서너 가지 선택 메뉴가 있지만 결국 모두 고기, 감자, 냉동 야채로 재구성한 점도 너무 웃겼다. 항상 얼굴을 마주하는 동독 억양이 센 식당 직원들이 나중에는 어떤 캐릭터처럼 느껴졌다. 거기서 본 것을 그리고 편집해서 더미 북을 만들었는데 친구들의 호응이 커 그 자리에서 20부를 찍어 팔았던 소량 출판물이다. 독일 시인 요아힘 링엘나츠의 ‘부메랑’이라는 짧고 재미있는 시를 읽고 만든 것이 〈Boomerang〉이다. “옛날에 부메랑이 있었다/ 부메랑은 날아서 돌아오지 않았다/ 군중들은 몇 시간이나 부메랑을 기다렸다”. 왜 부메랑은 돌아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의 타래를 이야기로 만들어 카툰과 그림책 형식을 접목했다. 독일어에는 참 이상한 단어가 많다. 두 개는 기본이고 여러 개의 단어를 한 단어로 합성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Schadenfreude(샤덴 프로이데)’. 직역하면 ‘불행 기쁨’. 남의 불행을 보며 느끼는 은밀한 쾌감, 안도감을 뜻한다. 〈번역이 안 되는 독일어 단어들〉은 이런 단어를 그림으로 번역하려는 시도였다. 가장 최근에 만든 〈Welcome to My Life〉는 산속에 사는 허리 긴 강아지가 매일 시내에 내려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보내는 하루를 그린 그림책이다. 화보집처럼 보인다고 했는데 장면마다 강아지가 각기 다른 배경에 놓여 있는 면에서 그렇다.

1,2 〈번역이 안 되는 독일어 단어들〉의 표지와 내지. 3,4 김주영 작가의 첫 출판물 〈Mensa〉의 일부 페이지.

1,2 〈번역이 안 되는 독일어 단어들〉의 표지와 내지. 3,4 김주영 작가의 첫 출판물 〈Mensa〉의 일부 페이지.

〈Welcome to My Life〉에는 명확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모델이나 이름이 있을까 궁금증을 일으킨다. 
지인의 닥스훈트가 새끼를 낳았고 그중 세 마리가 다른 지인에게 보내졌다. 강아지의 이름은 까미, 콩이, 보리, 두리. 그중 까미와 어미 닥스훈트를 장기간 맡게 되어 행복한 여름을 보냈다. 이들을 지켜보면서 특징을 과장해 허리가 길고 반듯한 강아지를 그리기 시작했다. 내 그림의 대부분이 두루뭉술한 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사이에 자를 대고 그린 듯 반듯하게 솟아난 캐릭터가 들어가니 시각적으로 재미있었다. 그 부조화가 마음에 들어서 계속 그렸다. 딱히 이름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는데 최근 독자가 늘어나면서 이름을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동물 얼굴에 또렷한 표정이 있어서 보는 이에게 여러 감정이 전달되는 것 같다. 
사람을 의인화해서 그린 건 아니다. 시각적으로 상반되는 것이 충돌할 때의 부조화를 좋아해서 강아지 얼굴에 사람의 눈 코 입을 넣었다. 인간 없이 살아가는, 상상 속의 강아지 세상을 만들고 싶었고 주체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취향도 있는 강아지를 만들려다 보니 사람과 닮아졌다.
쉽게 접할 수 있는 재료로 작업을 하며 그림체 또한 친근하다. 
미술을 기술적으로 배운 적은 없다. 독일 미대에선 테크닉 교육은 시키지 않고 프로젝트의 방향만 지도해준다. “원근감이 틀렸다, 구도를 어떻게 하라, 색을 바꿔라” 등의 조언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내 능력 안에서 내 일상에 가까운 것들을 그리다 보니 “아이처럼 그린다, 잘 못 그린다(좋은 쪽으로)”라는 말을 듣는 것 같다. 나름 그럴듯하게 그리고 싶어 노력하는데 결과가 이렇다.(웃음)
작업물을 공개하거나 판매하는 방식이 대개 온라인을 통해 이루어진다. 오프라인을 통한 전시 등 활동 계획이 있나?  
작년에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참여하면서 처음으로 굿즈를 만들었다. 책 형태의 결과물만 만들다가 신선한 경험이었다. 요즘은 입체 작업에 한눈을 팔고 있는데 작업이 어느 정도 모이면 여러 작업을 한 공간에 놓아보고 싶다. 조만간 라이프치히에서 같이 작업하는 친구들과 전시를 하려고 한다. 에디터/ 박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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