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령처럼 뜨거워지기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5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간 김성령은 사랑스럽고 또 섬뜩한 그녀만의 ‘미저리’를 연기하며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중이다.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선 그녀의 눈빛이 일순간 애니 윌크스처럼 번뜩였다. | 김성령,황인뢰 감독,미저리,연극,배우

 ━  eyes on you   재킷은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촬영 내내 눈빛이 인상 깊었어요. 연극적인 눈빛이라고 해야 할까요. 핀 조명이 터진 것도 아닌데 컷마다 무대 위에 올라선 연극배우의 느낌이었어요. 지금 하고 있는 연극 <미저리>의 애니 윌크스에 빠져 있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나이가 50이 넘으면 눈빛이 깊어져야죠.(웃음) 공연 준비할 때에는 고생스럽기만 했는데, 얼마전에 영화 포스터 촬영이 있었거든요. 그때 관계자들도 표정이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극중 인물에 몰입해 있으면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고생스러울 만도 해요. 애니 윌크스의 대사 분량이 어마어마하더라고요.  너무 힘든데, 어찌 됐든 누군가 했던 공연인데 나만 힘들다고 엄살 부리기가 그래요. 기대만큼 만족하신 관객들도 있고 아닌 분들도 있을 테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한계를 부수는 작품이었다고 할까요. 연습 끝내고 매번 같은 연기를 반복하는 게 아니고 오늘은 이걸 바꿔보고 내일은 저걸 바꿔보고. 계속 고쳐요.     막이 오르기 전까진 너무 힘들어요. 내가 오늘 대사를 잊어버리지 않아야 할 텐데, 목소리가 잘 나와야 할 텐데, 감정을 잘 살려야 할 텐데 등등. 그러다가 딱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객석에 앉은 관객들이 보이거든요. 이젠 밖으로 나가야 하는 수밖에 없잖아요. 오히려 그때가 마음이 편해요. 시작을 했으니까. 멈출 수 없으니까.   재킷, 타이츠, 슈즈는 모두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귀고리는 Portrait Report. 황인뢰 감독이 연출을 맡아서인지 로맨스가 강화된 느낌도 있더라고요. 이를 테면 애니의 “사랑해요”라는 대사는 섬뜩하다기보다는 그 순간만큼은 굉장히 로맨틱한 고백으로 느껴졌거든요. 집착이 사랑이지 뭐.(웃음) 그녀도 불쌍해요. 사랑하면 집착하게 되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쿨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요즘 젊은 애들은 엄청나더만. 우리 아들만 해도 여자친구랑 하루에 몇 번씩 꼭 전화해야 하고, 전화 안 받으면 안 되고 그런 규칙이 있던데요. 그것도 어떻게 보면 집착하는 거잖아요. 좋아하면 그렇게 되는 것 같아. 그 사람이 궁금하잖아요. 뭐 했는지, 뭘 먹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쿨한 척, 괜찮은 척하는 것뿐이지.   캐릭터에 엄청 공감하고 계시네요. 사실 김성령 씨는 쿨한 이미지를 갖고 있잖아요.  집착의 끝인 애니를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했거든요.나도 집착하는 성격인 것 같아요. 아닌 척하고 쿨한 척하지만 사실 그렇게 너그럽고 느긋한 성격은 못 돼요. 일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죠.     톱, 스커트는 모두 Isabel Marant. ‘내가 널 이렇게 씻기고, 재우고, 입히는데 왜 이렇게 나를 몰라줘.’라는 식이 대사가 두 번이나 나와요. 애니가 폴에게 하는 말이지만 꼭 엄마가 자식에게 하는 넋두리처럼 들리더라고요.  하루는 이 대사가 꽂히고 하루는 저 대사가 꽂히고, 어느 땐 감정에 복받쳐서 연기할 때가 있어요. “내가 너한테 잘해주려고 지금 얼마나 무리하는지 알아? 입히고 씻기고 재우고. 근데 넌 고마워라도 해봤어?” 이런 마음일 때도 있고. “아무리 두 눈을 가려보려고 해도 난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 이 말이 유독 와 닿을 때도 있어요. 살다 보면 정답은 이미 알고 있는데 우리 스스로 외면하려 하고 피하려 하고 안 들으려고 할 때가 있잖아요. 내 대사는 아니지만 “최악과 차악 사이에서 난 최선을 다할 테니….” 요즘엔 이 대사가 참 좋더라고요.   본인한테 해당되는 얘기네요. 성실의 아이콘이잖아요. 너무 재미없을 정도죠.   타원형 디자인의 화이트 골드 케이스에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베누아 알롱제 주얼리 워치’, 스터드 모티프의 디자인이 돋보이는 두 가지 사이즈의 ‘클래쉬 드 까르띠에 브레이슬릿’은 모두 Cartier. 오랜만에 연극 무대로 다시 돌아온 이유는 뭔가요?  너무 일이 하기 싫어서요. 연극이 얼마나 고달픈지 아니까 이걸 해야 내가 정신을 차릴 것 같아서 극한 상황으로 저를 몰아넣은 거죠. 일단 시작하면 허투루 할 수는 없으니까요.   공연하면서 어떤 순간에 가장 행복을 느끼나요?  처음 등장할 때가 가장 좋아요. 막이 오르기 전까진 너무 힘들어요. 내가 오늘 대사를 잊어버리지 않아야 할 텐데, 목소리가 잘 나와야 할 텐데, 감정을 잘 살려야 할 텐데 등등. 그러다가 딱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객석에 앉은 관객들이 보이거든요. 이젠 밖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잖아요. 오히려 그때가 마음이 편해요. 시작을 했으니까. 멈출 수 없으니까.     니트 톱은 MaxMara. 목걸이는 Chanel. <미저리> 전에 작업한 영화 <콜>은 한창 후반작업 중인 걸로 알고 있어요. 박신혜, 전종서, 이엘까지 여성 배우들이 주연한 여성 서사의 작품이라서 더 기대가 큽니다.  요즘은 드라마든 영화든 다 남자들 얘기잖아요. 여자들만 나오는 영화라서 굉장히 느낌이 신선하더라고요. 이번에 전종서 배우와 작업했는데 그 친구 정말 매력 있어요. 거침없으면서도 예의 바르고요.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면을 가지고 있어요. 나는 되게 전전긍긍하거든요. 남한테 피해를 끼치면 안 되고 내가 맡은 역에 충실해야 되고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런 걱정 때문에 내 안의 나를 깊숙이 들여다보지 못해요. 종서는 남이 뭐라 그러든 자기 자신을 볼 줄 아는 아이 같아요.     개성 넘치는 후배를 불편하게 보는 선배들도 있던데요.  나이가 들면 통찰력이 생기잖아요. 그저 연예인 됐다고 까불까불대는 것과 DNA 자체가 독특한 친구들은 구별할 수 있죠. 그 친구는 나한테 없는 걸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사랑스러워요.   오프숄더 톱, 트랙 팬츠는 모두 Burberry. 50대 여자 배우가 할 수 있는 작품이 많지 않아서 속상하시죠?  <미세스캅 2>가 완전히 흥행했으면 <미세스캅 3>가 나왔을 텐데 그렇지 못해서 아쉽죠. 당시에 정말 고생했거든요. 방송국 숙직실에서 머리 감고 다같이 대기실에서 자다가 수정 보고 그랬으니까요. 우린 진짜 고생한 세대예요.   지금은 드라마 촬영 현장도 주52시간 근무를 지켜야 해서 그렇게 못하겠지만 말그대로 ‘고생한 세대’잖아요. 열악하게 일하던 옛날 생각도 나시죠?  어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데 사실 나는 그 말이 조금 억울해요. “어떻게 살을 빼셨어요?”라는 질문에 배우들이 농담으로 “입금되면 관리된다” 이런 말 하잖아요. 나는 심지어 입금이 되기 전에 미리 살을 뺀 적도 있어요. 원작만 있고 시나리오도 아직 안 쓴 작품이었어요. 제작하느니 마느니 얘기가 돌았는데 너무 하고 싶었거든요.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일단 살을 빼야겠다 싶더라고요. 암환자 역할이이었거든요. 그래서 중학교 이후 처음으로 몸무게 앞자리를 4자로 만들었잖아요. 부끄러워서 그 영화 때문에 살 뺀다는 말을 아무데도 못했어요. 캐스팅이 안 된 상태에서 뭐라고 얘기하겠어요. 결국 영화는 엎어졌고 전 다시 먹었어요. 한 달 만에 다시 사이즈 원상복구.(웃음) 한 가지 확실한 건 ‘나한테 좋은 역할이 주어지면 정말 잘 할수 있어’와 ‘좋은 역할을 하기 위해서 내가 그런 사람이 되겠어’에는 차이가 있다는 거예요.     애니도 불쌍해요. 사랑하면 집착하게 되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쿨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아닌 척하고 쿨한 척하지만 사실 나도 그렇게 너그럽고 느긋한 성격은 못 돼요. 일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죠.   체인 장식 니트, 가죽 팬츠, 부츠는 모두 Bottega Veneta. 옐로 골드에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선인장 모티프의 ‘칵투스 드 까르띠에 링’은 모두 Cartier. 최근엔 가짜 뉴스 때문에 마음고생 하셨을 것 같아요. 여배우의 성공을 뒤에서 누가 띄워주고 말고로 판단하는 게 너무 편협하죠.  가장 속상했던 건 내 얘기도 있지만 “여배우가 뜨는 데는 반드시 뒤에 ‘빽’이 존재한다, 그게 일반적인 공식이다” 이런 얘기였어요. 그런 오래된 선입견이 아직도 만연하다는 게… 가끔 후배들한테 “성령 언니처럼 되고 싶어요”라는 이야기를 들어요. 내가 그들의 작은 희망이었거든요. 나이가 들어도 열심히 하다 보면 나도 저렇게 좋은 작품을 하고, 광고도 찍고 돈도 벌 수 있다는. 그런데 본인이 열심히 해서 잘된 게 아니라 누군가가 밀어줬기 때문이라고? 그러면 지금껏 나를 롤모델이라고 생각했던 후배들한테는 절망인 거죠. 마음이 아팠어요. 게다가 이렇게 정치적인 이슈가 있으면 왜 꼭 여배우를 끌어내리려고 하는지. 기본적으로 나는 누군가와 싸우는 걸 극도로 피해요. 남이 싸우는 것만 봐도 가슴이 벌렁벌렁한 사람인데 상황이 참 속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