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플렉스의 머릿속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슈퍼플렉스의 머릿속

덴마크 출신의 컬렉티브 그룹, 슈퍼플렉스는 현대의 사회·정치적 징후를 집요하게 탐구함으로써 동시대 예술가의 새 역할을 발명했다. 경직된 세상과 현대미술의 질서에 지속적으로 균열을 내는 이 활동가들의 예술적 실천력은 결국 예술보다 삶이 더 중요함을 증명한다.

BAZAAR BY BAZAAR 2018.11.19

‘Superflex Portraits’(2014).

슈퍼플렉스를 칭할 때, ‘당신’이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당신들’이라고 불러야 할까? 슈퍼플렉스를 한 사람으로 볼 수도 있다. 우리 세 사람이 만든 네 번째 개인 같은 존재랄까. 다양한 방식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포함하도록 자라난 하나의 생명체. 문법적으로는 단수겠지만, 내부적으로는 복수로 구성된다. 그래서 우리는 ‘SUPERFLEX is’가 ‘SUPERFLEX are’보다 좋다.

좋다, 당신. 당신이 만든 그네를 타면서, 여러 사람이 함께해야 느낄 수 있는 집단의 힘이 굳이 세 예술가가 슈퍼플렉스로 모여 활동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One Two Three Swing!’을 자화상의 측면에서 보진 않았지만 슈퍼플렉스의 궤적을 따라가보면 분명 관련성이 존재한다. 경험된 무엇, 집단의 힘, 동기화, 연결점을 만드는 고리 등등. 이 그네는 누구든 움직임을 스스로 만들 수 있지만, 더 큰 움직임을 만들려면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걸 알려준다. 그 과정에서 그네를 타는 사람들이 집합적 에너지, 에너지의 거대 움직임을 생성한다. 이론적인 수준에서, 사람들은 행성이 움직이는 방식에 영향을 주는 능력을 가진, 말하자면 ‘인간 펜듈럼’이 된다. 이런 집합적 에너지를 물리적으로, 은유적으로 만들어내고자 했다.

슈퍼플렉스 작업실에서 발견된 새로운 프로젝트의 단서들.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었나? 모든 인간과 동물들이 같은 순간에 점프하면, 그 무게와 충격이 일시적으로 행성을 흔든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나? 수백만 개의 그네가 전 세계에 설치되어 같은 시간,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중력에 영향을 미치거나 행성의 궤도를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 집단의 힘은 공포스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협업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지난 1993년, 세 명의 미술학도는 어떤 취지를 갖고 슈퍼플렉스라는 제4자로 의기투합했나? 슈퍼플렉스는 언뜻 보디빌더들이 먹는 파우더나 도구처럼 들린다. 우리는 다양한 세계에 존재할 수 있는, 우리 작품을 둘러싼 일종의 ‘상부구조’를 만들고 싶었다.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하면서 최대한 유연해질 수 있는 조직적인 포맷. 우리가 그저 ‘아티스트’로만 받아들여진다면, 작품의 범위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봤다. 과학자로, 사업가로, 사회운동가, 활동가로 변신하고 싶었다. 특정 카테고리로 나누는 게 폭력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영상작품 ‘Western Rampart’(2018)에 등장한 버섯 오브제가 스튜디오의 입구를 장식한다.

‘SUPERFLEX’라는 이름이 뜻하는 바도 그렇고, 취지도 그렇고, 유연성이라는 전제는 곧 중요하게는, 당신이 예술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와 직결된다. 맞다. 예술은 개인적인 산업이고, 그래서 그걸 좀 다르게 작업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같은 맥락으로, 우리의 ‘예술가적 진실성(Artistic Integrity)’을 우리 셋의 바깥이자 슈퍼플렉스라는 집단 안에 놓기로 결정했다. 반면 ‘개인 아티스트’들은 보통 ‘예술가적 진실성’을 자기 내부에 갖고 있으려 한다. 하지만 우리는 ‘개인적인 예술’ 같은 건 없다고 믿는다. 모든 예술은 다른 시기의 사람들 혹은 같은 순간의 사람들 사이의 협업이다. 또한 기본적으로 예술은 거대한 아이디어의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의 핑퐁이다. 

CC에서 관객들은 움직임과 무관심이라는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들의 경험이 당신이 항상 다뤄온 ‘지구상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들’과는 어떻게 만나나? 특정 사회적 이슈나 정치적 논쟁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지만, 누구나 생각해봤으면 하는 개념을 상정한다. 특히 무관심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일반적인 마음 상태다. 전시는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제시함으로써 행동을 요구한다. 집단의 힘이 심지어 행성의 움직임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면, 더 작고 가까운 우리 사회 혹은 환경에 기여할 수 있다는 건 당연한 얘기 아닌가. 변화를 만들어낼 힘을 갖고 있는 스스로를 경험하는 셈이다. 물론 사람들이 다른 차원으로 우리 작품을 이해하는 것에 꽤 익숙하기 때문에, 그냥 놀다 가도 상관없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위치한 슈퍼플렉스의 작업실. 왼쪽에는 유명한 포스터 작업인 ‘Euphoria Now’(2015)가 자리한다. 조명 역시 ‘Supercopy’ 시리즈 중 하나.

이번 광주비엔날레에서 ‘Foreigners, Please Don’t Leave Us Alone with the Danes’를 보고 새삼 반가웠다. 지난 2006년 광주에서 선보인 같은 작품은, 예술의 생명력을 이런 식으로 증명한다. 이 포스터를 만든 17년 전, EU에서 중요한 논쟁이 있었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나치를 연상시키는 정당을 포함한 우익 정부가 득세했다. 그즈음 오스트리아에서 전시를 열 예정이었던 우리는 EU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포스터 캠페인을 진행하기로 했다. 게다가 오스트리아에 횡행한 극우주의가 덴마크에서도 돌연변이적 파시즘으로 부상한 최악의 시기였다. 우리는 다른 에너지와 담론들이 전 유럽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정치인들에게,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했다. 이 포스터는 지금도 누군가의 방에서, 거리의 전신주에서 발견되곤 한다. 

이 문장의 애매모호함은 매우 흥미롭다. ‘화자’와 ‘청자’, ‘외국인’과 ‘자국민’, ‘우리’와 ‘너희’ 등을 생각하게 된다. 게다가 이 포스터를 직접 그린 광주의 한 영화포스터 작가, 그 익명의 존재는 덴마크-한국, 코펜하겐-광주, 슈퍼플렉스-우리 등의 연결고리를 확실히 해주는 역할을 하는 ‘신의 한 수’라고 보는데 동의하나? 맞다. ‘우리’를 둘러싼 모호함과 혼란함이 이 포스터 작품의 핵심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덴마크인인가? 덴마크에 살고 있는 외국인인가? ‘이방인’ ‘우리’ ‘덴마크인’ 사이의 구분 역시 흐릿하다. 문장에서 그들은 모두 서로에게 스며든다. 처음 관객은 국가주의 혹은 홀로 덴마크인과 남겨지고 싶지 않은 외국인에 관한 거라 이해하지만, 읽을수록 ‘우리’와 화자의 정체가 더욱 불명확해진다. 많은 이들이 ‘우리’가 슈퍼플렉스라고 생각했다. 공식적으로 아니라고 대답하지만. 

슈퍼플렉스의 철학, ‘나는 카피한다, 고로 존재한다’의 증거인 ‘IF VALUE THEN COPY’ 스티커.

2006년도 작품을 2018년 같은 곳에 다시 전시했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로운 데다 지난 12년 동안 세상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덴마크는 점점 더 보수적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하던데, 이런 피할 수 없는 사실이 작업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언젠가 작업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아티스트를 묻는 질문에, 나(Rasmus Nielsen)는 ‘조지 부시’라고 답했다. 그런 답이 튀어나온 게 스스로 달갑지는 않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그는 ‘문명적 갈등’이라는 신조를 퍼뜨렸다. 1960~70년대를 산 사람들에게 베트남전쟁이 그랬듯, 이는 당시 사람들의 마음에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국가주의 정책이 활발해진 2004년 즈음, 덴마크에서도 엄격한 이민정책이 시행됐다. 사회적 맥락 안에서 작업하던 슈퍼플렉스는 이런 상황들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면에서 텍스트는 ‘정신 상태의 짤막한 스냅샷’이다. 

사회 정치적인 이슈들이 슈퍼플렉스로 하여금 어떤 특정 역할을 하도록 독려하는 건가? 정치인들은 끓어오르는 상황과 맥락의 산물일 뿐이다. 다만 우리는 단지 무엇이 덴마크의 정체성을 위협하는지 같은 표피적인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본다. 최근의 주된 정치적 주제라면, 국가 주변의 거대한 벽이다. 덴마크는 지금 독일 경계 지역에 아프리카 돼지 독감 바이러스를 보유한 돼지를 막을 울타리를 짓고 있다. 지금은 울타리에 그칠지 몰라도, 언젠가는 모든 종류의 외부의 것들이 유입되는 걸 막는 방어적인 벽으로 진화할 것이다. 

비엔날레 가이드북에 슈퍼플렉스에 대한 설명이 있다. “1990년대 이래 가장 힘 있는 아티스트들로 구성된 컬렉티브 그룹 중 하나.” 스스로 ‘힘 있는’ 아티스트라고 생각하나? 예컨대 ‘One Two Three Swing!’과 같은 설치에서 표현된 근본적인 방식은 힘이 있다고 본다. 우리의 프로젝트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프로젝트를 ‘도구(tool)’라 부른다. 사용자에 의해 활발하게 사용, 수정될 수 있는 모델 혹은 제안. 오브제가 최종 목적이 된다는 생각에 도전하는 우리의 방식이며, 작품은 시작일 뿐, 생각하도록 초대하고,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하도록 하고 싶다. 슈퍼플렉스는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지 않지만, 우리가 만들어내는 도구가 선택되고 사용된다는 전제 하에서는 일종의 권력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유명한 아티스트’라는 사실은 어떤 이점을 선사하나? 운 좋게도, 우리는 시장이 예술세계에 비대한 영향력을 미치지 않던 시기에 자랐다. 한 번도 큰 경제적 성공을 거둔 적이 없다. 우리 앞에서 돈을 쥐고 흔드는 이들에게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돈의 유혹에 넘어간 적도 없었다. 시장은 모든 걸 같은 수준, 보통의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시장은 특정 분모를 찾고자 하는 욕망을 부추기지만, 우리는 욕망의 주체가 된 적도, 대상이 된 적도 없었다. 유명함의 여부를 떠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하기 힘든 것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었다. 예컨대 물고기를 위한 건축물을 만드는 ‘Deep Sea Minding’ 프로젝트 같은.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을 단서로, 당신이 스스로 유일무이한 존재가 아니라 ‘통용 가능한’ 존재가 되고자 한 게 아닐까 했다. 어떤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나? 초창기에 일주일 동안 스웨덴의 오두막에서 지낸 적이 있다.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할지에 대한 합일점을 찾았음에도, 이를 완벽하게 언어화하여 회사에 형태를 부여하기엔 미숙했다. 어떤 미학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돌아오던 길에 우리는 ‘Superflex Bravo’라는 배를 탔다. 승무원들은 주황색 점프수트를 입고 있었는데, 1990년대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는 사람들처럼 멋있었다. 그러니까, 훔쳐온 거나 다름없는 이름이다. 게다가 우리는 이런 이름이 주는 ‘익명성’, ‘특성 없음’이 더 좋았다. 

당시 덴마크왕립예술학교를 다니던 학생들로서는 꽤 별난 행보였겠다. 덴마크왕립예술학교는 예술가를 높은 곳에서, 이해할 수 없는 형태로 예술세계를 구현하는 ‘천재적 개인’으로 대우하는 곳이다. 실로 로맨틱한 이 아이디어에, 우리는 결코 연루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혹은 예술 신에 대한 문제의식 같은, 꿈에 치우치지 않는 현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다른 말로, 우리 자신을 세 명의 개인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객관화하여 인간이 아닌 슈퍼플렉스라는 구조에 더욱 가까워지고 싶었다. 유연한 정체성을 고집한 이유도 ‘나 자신이 아닐 수 있다’는 자유 때문이었다. 우리가 만든 네 번째 독립체는 세 개의 인간성을 가지되, 우리 자신을 개인으로 작업하지 않도록 해준다. 

세 사람 각각의 역할이 성향, 성격, 취향 등에 따라 나눠지기도 하나? 그렇다. 각각 너무 다른 성향과 기술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이에 반해서 작업하려고 노력한다. 누구든 자신의 기질이 아닌 것에 관여할 때 더 풍요로워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날려버리려 한다. 그래서 항상 부딪힌다. 하지만 갈등이 멈추는 순간, 함께 작업할 이유도 없어진다. 분노로 가득 찬 논쟁은 회의 테이블 밖에서 무언가로 탄생한다. 그러므로 갈등은 행운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잠재력이다. 슈퍼플렉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나 할까. 

초창기에 고속도로를 만들 거라 선포하고, 이를 예술이라 선언했으며, 가짜 브로셔까지 배포했다. 예술가의 거짓말은 가끔 진실에 더 가까운 법이다. 어떤 ‘거짓말’을 하고자 하나? 우리 작업은 다른 현실들 혹은 현실을 픽션과 엮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둘 사이의 경계에 꽤 웃긴 이야기가 있다. 언젠가 26km의 고속도로를 따라 덴마크 시골의 아름다움을 포착한 영상을 만들고는 우리 스스로 꽤 만족했다. 그런데 그 영상이 중간에서 어느 결혼기념식 영상과 바뀌는 사고가 났다. 영상을 돌려 받으려 갖은 노력을 했지만 결국엔 실패했고, 다들 크게 절망했다. 그리고 이럴 바에 주변에 놓인 것들 중 가장 큰 구조물인 고속도로를 아예 예술작품으로, 현대 풍경의 기념비로 만들어보자 했다. 아주 옛날, 기능을 위해 지어진 피라미드가 오늘날 예술로 규정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고속도로가 미적 오브제가 아닐 이유는 없었다. 우리의 주황색 점프수트가 고속도로를 점령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이 ‘거짓말’을 단지 거짓말이 아닌, 세상을 맞닥뜨릴 때 불을 붙여주는 이야기로 본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을 사로잡은 이슈는 무엇인가? (Rasmus Nielsen) 날씨다. 수십 년 전, 농부 혹은 비행기 조종사들이 걱정하는 문제일 뿐이었던 날씨는 이젠 종말론적의 지표가 되어가고 있다. 올해 우리는 60년 만에 가장 더운 덴마크의 여름을 경험했고, 스웨덴에서는 가뭄 때문에 큰 불이 났다. 1만 개의 할리우드 재난영화가 제시하는 문제들은 눈앞에 닥쳐있고,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 대해 생각할 땐 더욱 암울하다. 

아까 언급한 최신 프로젝트 ‘Deep Sea Minding’이 그런 이야기인가? 그렇다. 물고기를 위한 건축물이다. 인간의 터전이 수면의 상승으로 인해 다른 종, 특히 바다 생물에 빼앗길 수 있다는 걸 상상하고 있다. 또한 작업을 통해 우리는 더 이상 인간이 핵심 종이 아닌 세상에서 다른 종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고민 중이다. 기후 변화로 가속되는 현상, 인간중심주의에서 아쿠아중심주의(Aquacene)로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다. 

20대에 만나 40대를 맹렬히 지나고 있는 당신이 예상하는 ‘내일’은 어떤가?  우리는 40대도, 50대도 아니다. 25살이다! 슈퍼플렉스의 나이가 더 중요하다. 지난 25년 넘는 작업 기간 동안 우리는 문화적인 자본을 얻게 됐다. 오늘날 우리가 하려는 모든 것은 그간 해왔던 다양한 협업을 통한 도전과 실패 그리고 성공에 기반한다. 슈퍼플렉스는 우리가 지금까지 생산해온 것들의 결과물인 동시에 미래를 가능하게 하는 존재다.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 마치 광주에서의 작품처럼, ‘나’와 ‘우리’의 개념이 헷갈린다. 나(Rasmus Nielsen)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세계를 혼자 걸어가는, 살과 피로 이뤄진 독립체로서의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예술, 문화, 사업 등을 포함한 다른 범위에서 만들어진 구조물이다. 우리는 다양한 정체성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것이 철학적 개념(몸 혹은 국가에 고정된 정체성)에 반대하고, 스스로에게 유연성을 부여하며, 변화에 집중하는 이유다. 잘하는 것에만 매진할 필요가 없다. 사회는 우리에게 보다 전문화되어 그것에만 집중하여 효율적이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는 더 지루한 사회와 지루한 사람들을 양산할 뿐이다. 우리는 기꺼이 아마추어가 될 것이다. 

그것이 당신이 믿는 요즘 시대 예술가의 덕목인가? 예술가가 더 특별한 책임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가장 창의적이라는 생각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잘 모르지만 중요한 영역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티스트라는 측면에서, 예술을 위한 ‘공간’에 대한 수요는 분명 있다. 하지만 예술가가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순간부터, 우리 역시도 그 공간을 정의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즉시 이러한 ‘공간’은 잠재력을 상실한다. 누구도 ‘아티스트가 해야 할 일’을 일반화할 수는 없다. 우리는 그 ‘공간’의 ‘애매모호함’을 믿는다. 정의 내리지 않으려는 시도, 통제되지 않는 문화의 풍경과 백지 상태의 정신적 지도의 중요성 같은 것 말이다. 모든 게 계획된다면, 우리는 완전히 다른 어떤 일을 할 것이다. 

상상력을 활용해 창조하는 행위는 아티스트의 책임감이며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하다. 만약 우리가 이를 도외시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세상은 지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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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김 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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