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셔츠’라는 명칭으로 친숙한 탱크톱은 1930년대 원피스 수영복을 일컫던 ‘탱크 수트’에서 유래했다. 그 후, 몇 십 년간 남성용 언더웨어의 기능으로만 활약하던 탱크톱은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1)의 남자 주인공 말런 브랜도에 의해 비로소 ‘외출복’으로 첫 신분 상승을 이뤄냈다.
1960~70년대엔 남녀 모두를 위한 캐주얼웨어로 자리 잡았지만 머슬 비치(운동 기구가 많아 붙여진 베니스 비치의 다른 이름)에 등장한 탱크톱 차림의 아놀드 슈워제네거 덕택에(?) 근육질의 강한 남성미를 과시하기 위한 이들의 강력한 트레이드마크로 급부상하게 되었다.(현재도 인스타그램에 ‘#TankTop’을 검색하면 몸 좋은 남자들이 득실거린다.)
이렇듯 언더웨어와 스포츠웨어, 캐주얼웨어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던 탱크톱이 하이패션계에 수줍게 입성한 건 미니멀리즘의 강렬한 바람이 불었던 1990년대. 경제 불황기에 맞닥뜨린 새로운 세대들은 탐욕스러웠던 1980년대를 뒤로한 채 자신만의 스타일 감각을 표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고, 그 선두에 캘빈 클라인과 핼무트 랭이 있었다. 그들이 제안한 중성적이고 절제된, 그리고 실용적인 미니멀리즘 속에 군더더기 없이 깨끗한 화이트 탱크톱이 트렌디한 아이템 중 하나로 떠오른 것.
1990년대 미니멀리즘의 물결이 출렁이는 이번 시즌 화이트 탱크톱의 등장은 어쩌면 당연지사다. 개인적으로 화이트 탱크톱은 유달리 손이 가지 않는, ‘노 관심’ 아이템 중 하나지만(중학교 시절 교복 안에 받쳐 입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별을 고했을 정도)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의 제안을 목도한 후 마음이 흔들렸음을 고백한다.
화이트 탱크톱의 매력을 상기시킨 결정적인 컬렉션은 더 로인데 헐렁한 테일러드 팬츠와 믹스 매치된 탱크톱은 무심한 듯 쿨한 매력을 배가시켰다.
미국 문화에 대해 탐구했다는 캘빈 클라인의 수장 라프 시몬스는 초록색의 펜슬 스커트 위에 앤디 워홀의 ‘Sandra Brant’ 프린트 탱크톱을 더해 업그레이드된 ‘1990년식 캘비니즘’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런가 하면 뮈글러는 슬림한 팬츠, 와이드 벨트에 깊게 파인 실루엣의 탱크톱으로 섹슈얼한 뉘앙스를 발휘하기도.
이처럼 이번 시즌 화이트 탱크톱 스타일링은 단순히 1990년식 미니멀리즘을 떠올리기보다는 드레시한 요소와 매치해 동시대적인 쿨함을 가미하는 게 필수다.
감각적인 겹쳐 입기를 통해 이 대열에 합류한 디자이너도 있다. 깃털 장식 슬립 드레스(니나 리치), 플라워 패턴의 시스루 원피스(미우 미우), 언밸런스하게 젖혀진 더블 데님(쟈딕 & 볼테르) 사이로 화이트 탱크톱이 훌륭한 레이어링 요소로 등장 한것. 탱크톱 본연의 스포티하거나 캐주얼한 무드는 드레시한 룩과 결합하며 색다른 앙상블을 완성시켰다.
그렇다면 화이트 탱크톱을 어떻게 입을 것인가를 고민해볼 차례다. 접으면 한 줌밖에 되지 않는 면 ‘쪼가리기’에 아빠의 러닝셔츠 같지 않은 소재와 실루엣을 찾는 게 가장 급선무다.
무엇보다 네크라인과 끈의 두께는 탱크톱의 이미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 얇은 끈은 여성스럽고, 두꺼워 질수록 중성스럽거나 캐주얼하며, 어깨 끈이 안쪽으로 쏠려 있거나 깊게 파인 네크라인은 섹시하다. 또 어깨 끈이 바깥쪽으로 향할수록 통통한 살집을 보완할 수도 있으니 기억할 것. 암홀이 너무 좁은 경우 불쑥 튀어나오는 겨드랑이 살을 경계해야 한다.
나에게 딱 맞는 탱크톱을 구비했다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드레시한 요소의 조력자를 권하는 바이다. 개인적으로 여타 액세서리 없이 루스한 팬츠만으로 에포틀리스 시크를 연출한 더 로나 티비를 추천한다.
어릴 적 교복의 짝꿍에서 머물러 있던 탱크톱을 추억 속에서 꺼내야 할 때가 온 듯하다. 차분하고 중성적인 화이트 탱크톱은 무엇과 매치하냐 따라 도심부터 리조트, 뮤직 페스티벌, 심지어 공식 석상까지 아우르며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아이템이 되어줄 테니. 화이트 탱크톱과 하이웨이스트 팬츠로 여유롭고 세련된 스타일을 완성한 다이앤 크루거의 ‘칸 영화제 룩’이 증명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