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억의 밤>은 장항준 감독의 9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이다. 시나리오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나?
대본을 읽기 전에는 ‘장항준 감독님이 스릴러를? 약간 코미디적인 요소가 있나?’라고 생각했다.(웃음) 그러다 밤에 첫 장을 열었는데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이야기 자체가 너무 짜임새 있었고 퍼즐처럼 잘 맞물린다. ‘유석’이란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괴한에게 납치된 지 19일 만에 기억을 잃고 돌아오는데 뭐랄까, 측은하고 안쓰럽고 동정심이 드는 인물이었다. 영화가 전개될수록 감추고 있던 커다란 비밀이 밝혀진다.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여기까지만 말씀드리겠다.
장항준 감독이 김무열이란 배우에 대해 남긴 “모범생 역할을 해도 뭔가 여운이 길고 악역을 해도 뭔가 슬프더라”는 코멘트가 인상적이었다. 다른 사람은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배우 고유의 오라를 발견한 것 같았다.
그 말씀은 정말 극찬이라고 생각한다. 감독님과는 첫 만남부터 말이 너무 잘 통했다. 배우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주시려는 마음이 고마웠다. 앞으로의 작업이 힘들지 않고 즐거울 거라는 확신이 들었고 그래서 뵙자마자 바로 출연을 결정했다. 감독님께서 나중에 말씀하기를 ‘김무열 어떠냐’고 개인적으로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어서 ‘착하다’고 했더니 거짓말 아니냐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더라.(웃음) 이게 감독님이 나를 캐스팅하신 이유 아닐까? 현장에서 늘 ‘짱항준’으로 불러달라고 본인 스스로 강조하셔서 그렇게 불러드렸다.
동생 역으로 등장하는 강하늘(진석 역) 씨가 현재 군입대 중이라 제작보고회에 ‘강하늘 입간판’이 대신 참석한 것이 웃기면서도 짠했다. 두 배우는 2009년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으로 만났다가 정말 오랜만에 재회한 것 아닌가?
아마 그 공연이 스무 살 하늘이의 첫 데뷔 무대였을 거다. 근데 그때나 지금이나 착하고 순수한 마음이 하나도 변한 게 없어서 너무 깜짝 놀랐다. 오히려 변한 게 있다면 배려가 더 늘었다. 자신의 위치가 변했다는 걸 알고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배려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더라. 정말 ‘이런 인간이 있나’ 싶었다. 이번 영화에서 비를 맞아가며 자정부터 새벽까지, 해가 떠오르는 순간에도 맨발로 뛰어야 해서 고생을 많이 했다. 그것 때문에 4~5kg 정도 빠졌다고 들었다.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상 촬영장에서도 늘 긴장을 놓을 수 없었을 것 같은데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항상 화기애애했다. 현장 분위기는 전혀 스릴러 영화의 느낌이 아니었다. 장항준 감독님은 술을 좋아하고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것도 좋아한다.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촬영이 끝나면 술을 드셨다.(웃음) 다이어트 때문에 감독님의 애프터 모임에 자주 참여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영화 시작 전 의상을 피팅해본 후 감독으로부터 “근육을 조금만 빼줬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받았다고 들었다. 어떤 의상이었나?
영화에서 테니스 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반팔 티셔츠를 입는데 하필 그 의상을 피팅하는 날 운동을 하고 가서 몸이 좀 화나 있는 상태였다.(웃음) 분명히 감독님께서 첫 미팅 때는 근육을 보시더니 “그 좋은 걸 왜 빼세요, 그대로 두세요.”라고 하셨었는데 말이 달라졌다. 그래서 격하게 살을 빼기 시작했다. 퍼스널 트레이닝도 받고 농구를 열심히 했다. 점프도 많이 하고. 전신을 다 쓰기 때문에 농구를 하면 살이 엄청 잘 빠진다. 마지막엔 요가로 뭉친 근육도 풀어주고 밸런스를 잡았다. 한동안 NBA 선수들의 훈련 사이클 그대로 산 거나 다름없다. 내가 농구선수가 된 줄 알았다.(웃음)
사실 그동안에도 충분히 배우계의 ‘태릉인’다운 길을 걸어오지 않았나?(웃음)육상, 태권도, 쿵후, 아크로바틱, 브라질 전통무술인 카포에라 등등. 배워본 운동 종목의 포트폴리오가 화려하다.
태권도와 쿵후는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 동네에 있는 도장에서 힘 단련과 수양을 좀 하라고 보내주셨다. 고등학교, 대학교 연극영화과에서 연기를 전공하다 보니까 원래부터 배우의 신체 훈련에 관심이 많았다. 20대에는 연기를 주로 하는 배역보다는 춤이나 앙상블로 참여했던 공연이 더 많다 보니 다채로운 움직임을 배워두면 주 무기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발레랑 재즈댄스도 배웠었다. 뭐랄까, 내가 약간 4차 산업혁명형 인간인 것 같다. 얇고 넓게 이것저것 다해보는.
올해 뮤지컬 <쓰릴미>가 10주년을 맞이했다. ‘스타 배우의 산실’이자 ‘2인극 열풍’을 몰고 온 이 작품은 의미가 남다른 공연으로 알고 있다. 특히 10주년을 기념해서 초연 멤버인 최재웅 배우와 함께 캐스팅된 공연 회차는 티켓 오픈과 동시에 전석이 매진되었는데, 다시 무대에 오른 기분이 어땠나?
상대 역인 베테랑 최재웅 배우가 사시나무 떨 듯 떨어서 깜짝 놀랐다. 공연이야 준비한 만큼 무대 위에서 보여주면 되는 건데 나 역시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긴장이 됐다. 성냥을 건네주는 첫 장면에서 최재웅 배우가 손을 덜덜 떨어서 나도 그걸 못 잡을 뻔했다.(웃음) 그 정도로 우리에겐 의미가 남달랐던 공연이다. 재웅이 형도 나도 배우로서의 모습을 많은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었던 기회의 관문 같은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무대가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진짜 말 그대로 세월이, 시간이 몸을 막 관통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사랑과 영혼>의 한 장면처럼 붙잡고 싶은데 붙잡을 수 없는 무언가가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아서 울컥했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지만 무대 위의 김무열을 가장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팬들이 존재한다. 개인적으로 언젠가 꼭 한번 공연해보고 싶은 작품은 무엇인가?
<헤드윅>은 아껴두고 있는 작품이다. 한 살만 더 먹으면, 두 살만 더 먹으면 해야지 이런 마음으로.(웃음) 헤드윅이란 사람이 살아온 인생에 대해서 충분한 이해를 더 할 수 있을 때 무대에 서보고 싶다. 캐릭터에 대해 혼자 이런저런 구상도 많이 해봤다.(웃음) 병든 채로 죽어가며 사랑을 갈구하는 헤드윅, 혹은 살을 극도로 찌운 모습의 거구 헤드윅을 상상해본 적 있다.
실제로 대학 입시에 떨어지고 재수할 당시 100kg 가까이 나갔던 시절도 있었다고 들었다.
고등학교 때 나름 최고라고 자부하다 실패를 맛보니 정신적으로 충격이 컸다. 스트레스로 살이 찌면서 100kg 넘게 나갔다. 뭐랄까, 그 시절엔 아둔했다. 당시엔 도토리 키 재기였을 텐데 내가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연기를 다시 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은 순간부터는 술과 담배를 완전히 끊고 운동하면서 차근차근 다시 시작했다. 내가 기억하는 20대 시절은 올바름, 정직함, 열심히 사는 모습들로 남아 있다. 연기를 대하는 자세나 태도, 열정은 그 시절에 가장 많이 배우고 느꼈던 것 같다.
사실 그동안 필모그래피 가운데 <은교>의 서지우, <연평해전>의 윤영하 대위, <대립군>의 곡수 등 강렬하며 ‘멋’ 그 자체인 캐릭터들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독립영화 <개들의 전쟁>에서 인간이 어디까지 지질하고 비굴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줬던 동네 양아치 ‘상근’의 캐릭터를 가장 좋아한다. (웃음)
당시 굉장히 저예산으로 찍었던 영화다. 작은 시골 동네 여인숙 하나를 빌려서 배우들이 우르르 몰려 내려가 단기간에 찍었다. 함께 출연한 배우들이 비슷한 또래였고 노는 것도 좋아해서 밤새 술 마시면서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내일 어떻게 연기할지 합을 맞춰보았던, 정말 즐겁고 생산적인 현장이었다. 아직도 ‘단톡방’이 있어서 배우 누가 공연을 하거나 영화 시사회가 있으면 서로 같이 보러 다닌다. 감독님이 직접 겪은 본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시나리오였는데, 그 안에 정말 남자들의 지질한 행동과 속마음이 잘 드러나 있었다. (형님 세일에게 눈을 부라리며 인사 안 하겠다고 버티다가 결국 눈물을 찔끔보이며 허리를 45도로 꺾는 장면은 정말 명장면이다.(웃음)) 겪어본 남자라면 알 거다. 끝까지 버티다가 확 꺾이는 그 순간을. 화도 나고 무섭기도 하다가 갑자기 쪽 팔리는 그 감정을.(웃음) 고등학교 시절 네 명 정도와 시비가 붙은 적 있었는데 순간 상대편이 30명이 되니까 기세 등등했다가도 갑자기 존댓말이 절로 나왔다. 왜 그 포인트에서 눈물이 나오는지 겪어본 사람들은 안다.
김무열이란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
매운 무사. 매울 ‘열(烈)’과 무사 ‘무(武)’를 쓴다. ‘맛이 맵다’가 아니라 ‘주먹이 맵다’ 할 때의 그 뜻이다. 무열왕이랑 같은 한자를 쓴다. 할아버지께서 무열왕이 삼국통일을 했듯이 남북통일 할 수 있는 큰 인물이 되라는 의미로 지어주신 이름이다. 하지만 그런 위대한 인물이 되기엔 다음 생을 기약해야 할 것 같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