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킴의 선택에는 단단한 확신이 남아있다
림킴이 새 정규 앨범 <Exit to Nowhere>을 완성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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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ONE’S ROOM
텅 빈 방에 불이 켜지면, 림킴은 비로소 춤추고 노래한다.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듯이.
셔츠는 Pushbutton.
페이턴트 미니 드레스는 Hannah Shin. 실크 브라렛은 Hoopoe. 벌룬 실루엣 장갑은 Jinsun. PVC 스트랩 샌들은 Gianvito Rossi. 스타킹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하퍼스 바자 해마다 싱글을 내긴 했지만 미니 앨범은 6년 만에 선보여요. <Exit to Nowhere>를 두고 회고록 같은 앨범이라 소개했죠.
림킴 시간이 금세 지났어요. 억지로 하려고 해도 마음처럼 안 되잖아요. 처음 데뷔했을 땐 노래 부르는 일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이후부터는 앨범을 만들며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내가 할 이야기는 뭘까’가 가장 중요해졌어요. 그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응축하며 기다린 시간이었죠.
하퍼스 바자 자전적인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던 이유가 뭘까요?
림킴 매일 카페에 가서 노트북 메모장에 그때 드는 생각을 적으며 힌트를 모으는데, 어느 날 어른이 된 후 지금까지의 일들을 막 적어봤어요. 다사다난했던 지난 시간을 얘기하고 싶어졌어요. 돌아보면 10여 년의 시간이 하나의 통로였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거의 끝난 것 같고요. 그래서 이 앨범을 만들었어요. 그다음 통로가 있을 거라고, 막연하지만 훨씬 더 좋은 모습일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제 안에 어떤 내면의 변화랄까, 더 여유가 생기고, 뭔가 할 준비가 된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이번 앨범은 림킴의 지난날의 감정을 돌아보는 7곡으로 채워졌어요. 10대에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연예계 데뷔를 한 뒤 각 잡힌 생활을 했던 기억을 담은 곡(‘인사하세요’), 서툰 스물한 살의 이별을 그린 곡(‘21:00’)처럼요.
림킴 앨범 제목의 ‘Nowhere’는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의 느낌이에요. 1번부터 4번 트랙까지 그런 느낌에 가까워요.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고, 이곳에 떨어져 있는데 잘 가고 있는지 모르겠는, 방황의 이야기들을 담았어요. 5번 트랙 ‘림보’를 기점으로 나를 찾아가며 나만의 공간으로 가는 이야기로 바뀌죠. ‘Now Here’로 바뀌는 지점이랄까요. 제 이야기이긴 하지만, 누구나 이런 생각이 들 법한 스토리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이 앨범을 방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한 시절을 지나며, 방을 통과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만들었어요. 개개인의 과정이나 상황은 다르겠지만요.
하퍼스 바자 사실 뮤지션 림킴을 떠올리면, 동양적인 사운드와 강렬한 비주얼이 먼저 떠올라요. 홀로서기를 한 뒤 발표한 <Generasian> 앨범이 충격적이라 그랬을까요? 당시 앨범 비주얼을 일본 날라리 여고생, 몽골의 여장군부터 영화 <킬빌> 등의 장면에 영향받았다고 언급한 적도 있는데, 이번엔 이탈리아 거리를 달리는 모습이 생경했어요.
림킴 앨범 작업을 할 때 항상 비주얼을 그리고 시작해요. 이번엔 공간적으로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공간의 힘이 있는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봤어요. 최근에 영화 <백룸>이 주목받고 있는데, 이전부터 그런 유의 영화나 드라마를 즐겨 봤어요. 시리즈 <세브란스: 단절>도 좋아하고요. 과거를 특정 공간에서 회상하기보다 제 관점과 시점을 캐릭터로서 해체하고 붙여보기도 하고, 기억을 재구성하면서 보여지는 방식이 좋을 것 같았어요. 그러다가 팀과 함께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처럼 풀어내는 방향으로 발전시켰고요.
하퍼스 바자 “힘껏 짓누르던 화려함에 답해 난/ 엉킨 궤도 너머 그려지는 my way/ 텅 빈 백색 속에 만난 자유함에 난/ Now I feel myself get louder”. ‘Now Here’의 곡 가사가 기억에 남더라고요.
림킴 하얀 방에 나만 오롯이 있는, ‘내 방’이라는 공간에 처음 들어간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모든 곡이 각각의 방이라고 생각을 했을 때, 방마다 색깔도 생각해보며 어떤 방을 지나고 있었는지를 상상했거든요. ‘지금 방에 있는 나’ 자체를 떠올린 곡이에요.
하퍼스 바자 비주얼을 덜어낸 만큼, 사운드의 변화도 커요. 기존의 힙합적인 색채나 강렬한 비트 대신, 얼터너티브팝과 신스팝을 택했고요.
림킴 그냥 레트로한 느낌보다는 1980년대 신스팝 사운드가 가진 서늘한 감각, 향수가 느껴졌으면 했어요.
하퍼스 바자 이전 앨범에는 분노 같은 감정이나 욕망을 드러내는 방식에 집중해온 인상이에요. 대표적으로 ‘Yellow’ 같은 곡은, 아시아계 여자에 관한 선입견이나 동양 문화에 관해 뭉뚱그려 받아들이는 현상을 비트는 곡이었고요. 그럴 수밖에 없던 시기였나요?
림킴 항상 그 시기에 제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라는 마음이 있어요. 지나고 봤을 때, 그때의 앨범을 떠올리면 지금은 못할 것 같은 것들요. 회사를 나오고 처음 제 음악을 만들면서, 본질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해야 될까, 스스로에게 질문했어요. 해외에서 음악 관계자들을 만나면 당시에는 케이팝이 지금처럼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음악은 어때?” “한국 음악은 뭐야?”라는 질문을 많이 들었죠. 저도 대답하기가 어려워, 파고들게 됐고요.
더블 브레스트 재킷, 실크 타이 셔츠, 울 크레이프 펜슬스커트는 모두 Dolce&Gabbana.
레이스 장갑이 더해진 셔츠는 Pushbutton. 컷아웃 디테일 스커트는 Oude Waag. 부츠는 Jacquemus.
가죽 숄 코트, 울 턱시도 재킷, 테일러드 팬츠는 모두 Burberry. 브라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하퍼스 바자 2019년 <Generasian> 앨범이 나온 시기였죠? 단편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겐 오리엔탈적인 콘셉트를 치트키로 활용했다는 시선도 분명 존재했을 거예요. 이후 싱글 <궁>에서도 이어지는 비주얼을 선보였고요. ‘투개월’로 등장한 <슈퍼스타K3> 얘길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지만, 그 시절 김예림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적잖이 놀라움을 안겼을 테니까요.
림킴 내가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충분히 고민해본 적이 있었나. 앨범을 만들면서 궁금증과 감정을 풀어내게 된 것 같아요. 비주얼이든, 메시지든 무언가를 콘셉트적으로 사용한다기보다는, 스스로 ‘이것을 쓰는 의미’를 정확히 알고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평가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었어요. 명확하게 ‘이미 고민은 끝났고, 이걸 해야 된다’는 마음으로 해왔어요.
하퍼스 바자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한 시간이 림킴에게 무얼 남겼나요?
림킴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기어코 해내는 편이었어요. 의사가 분명했고요. 식당에 가서 메뉴를 고르더라도 ‘이게 좋아’라는 확실함이 있었죠. 초등학교 때 대안학교를 가고 싶어서 가게 된 것도, 자발적인 선택으로 미국 유학을 간 것도 마찬가지고요. 데뷔한 이후에는 다른 사람들이 모든 걸 해주는 상황이 이상했어요. 나도 뭔가 정할 수 있는 사람인데, 어른이 되었지만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고, 아는 것도 별로 없는 상황이 낯설었죠. ‘림킴’으로 첫 앨범을 만들면서 사업자등록증을 만드는데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나요. 사람들에게 일을 분배하고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실현되는 과정을 보는 게, 제 손 안에 있는 느낌이 좋았어요.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그게 제 성향과 잘 맞는다는 걸 알았죠.
하퍼스 바자 1990년대 초반에 태어난 저 역시, 한 아티스트로서 림킴의 데뷔 이후 모습을 어쩐지 같이 봐온 인상이에요. 모든 걸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성향으로 살아왔는데,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갑작스레 대중에게 알려지는 직업을 택하게 된 거니까 그 격차가 클 수밖에 없었겠어요.
림킴 그 차이가 강하게 있었죠.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아졌고, 안 되는 게 너무 많은 순간들이 오니까요. 왜 그래야 하지, 라는 물음을 내내 갖게 되었고요. 물론 처음 해본 사회생활이었고, 이 사회에 던져진 한 사람으로서의 고민일 수도 있고요.
하퍼스 바자 모든 걸 직접 결정한 뒤 바라던 결과나 반응이 아닐 때, 나름의 부침도 있었나요?
림킴 내가 원했던 만큼의 결과든 사람과의 관계든, 여러 가지를 직면해야 되는 순간이 있잖아요. 그럴 때는 쉽지 않았어요.
하퍼스 바자 어떻게 털어냈어요?
림킴 뭐, 그냥 받아들여야죠.(웃음) 방법은 따로 없는 것 같아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생각 정리를 많이 해요. 새로운 공간 가는 걸 좋아해서 많이 돌아다녀요. 카페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그런 시간들을 가지며 조금씩 소화가 되는 거죠. 저는 어떤 면에서는 초연한 구석이 있는 것 같아요. 일을 할 때는 내면에서 계속 고민할 때가 많은데, 막상 결정을 하고 나선 현재에만 집중하는 편이에요.
하퍼스 바자 오늘 만나기 전에는 어쩐지 예민하거나 차가울 것 같다는 인상이 있었어요. 실제로는 거의 MBTI ‘T’ 같은 안정적인 모습이지만, 스태프를 포함해 사람들에게 따뜻한 면이 있어요.
림킴 다양한 콘셉트를 시도해서 사연이 있어 보인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종종 차가워 보인다는 말을 들을 때도 있고요. 저는 꽤 낙천적인 편이고, 사소한 것에 재미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어요. 제가 해온 선택이 확실한 사람처럼 보이고 조금 다른 성향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저에겐 앨범을 만드는 일도 그냥 소소한 일상을 즐기는 마음과 같은 거예요. 누군가에겐 과감한 결정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저는 결국 저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선택을 하는 것 같아요. 그냥 음료를 고르듯이요. 이게 더 좋다는, 어떤 직감에 더 가까운 거죠.
하퍼스 바자 대담한 면모가 인스타그램에서도 보여요. 게시물을 모두 지워버렸죠.
림킴 두 번째인데요. 첫 정규 앨범 <Generasian> 냈을 때 한 번, 그리고 지금이요. 다른 시기에 접어들면, 이전의 나를 복습하고 참고하는 것보단 지금에 집중하고 싶어요. 중간 지점의 애매한 부분보단, ‘나는 이거야’를 보여주는 게 좋잖아요. 일부러 숨기는 건 아니에요. 딱 준비가 됐을 때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죠.
하퍼스 바자 이제 서른을 지난 림킴이, 삶에 있어서 체득한 진실이 있을까요?
림킴 살면서 자잘한 것부터 큰 것까지 선택할 게 너무 많잖아요. 좋은 선택들도 있고 안 좋은 선택들도 있지만, 내 안에서 ‘이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항상 무의식에 있어요. 이게 맞을까, 라는 생각 때문에 고민의 크기가 커져버리는데, 결국엔 무의식이 말하는 대로 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선택이 지연만 될 뿐.
재킷은 Trunk Project. 플레어스커트는 Jacquemus.
Credit
- 사진/ 임유근
- 헤어/ 전수현
- 메이크업/ 류나
- 스타일리스트/ 이경은
- 어시스턴트/ 손영우, 최혜진(스타일링)
- 디자인/ 한상영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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