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린 생선의 마법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생선 말리기 좋은 봄, 인천의 옛 시장에서 말린 우럭을 사다가 푹 쪄낸다. 쫄깃하고 기름지며, 살짝 발효 기운까지 풍기는 살점이 혀에서 녹아내린다. | 박찬일,우럭,박대,인천,현대시장

제철 음식 얘기를 하면 대개 채소나 생선을 거론한다. 채소는 온도에 민감한 본능이 있어서 나오고 들어가는 시점이 분명하니, 제철 감이 세다. 물론 요즘에는 ‘시설’이니 ‘하우스’니 하는 말이 나오면서 철 감각이 많이 달라졌다. 하우스도 하우스 나름이라, 가온(불 때기)을 하느냐 아니면 그냥 하우스만 쳐서 온도를 높이느냐 이런 걸로 또 나뉜다. 그러든가 말든가 채소에 철이 없을 수가 없다. 생선도 그렇다. 사철 잡히는 녀석이나 회유하면서 올라오는 경우나 살이 찌고 기름이 붙는 철이 있다.육고기는 어떨까. 예전에는 그 감이 있었다. 여름 돼지고기 안 먹는다는 것도 나름 제철 감이다. 냉장 설비가 약할 때 생겨난 것이기는 하지만, 다 이유가 있다. 철이란 지구의 물리적 환경은 물론이고 사람의 생활 사이클과도 맞아떨어져야 비로소 진짜다. 그래서 겨울 돼지고기다. 왜 겨울일까. 언젠가 제주에 취재 갔는데, 현지인이 이랬다.(사투리가 엉터리인 건 이해해달라. 기억의 녹음기가 나이 탓인지 고장 났다.)“우리는 겨울에 돗을 잡는데 말씨, 추렴하기 좋아서 하는 거우. 다른 철은 바빠서 못하고 말씨.”돌 많은 제주 밭농사가 좀 고된가. 적은 수이지만 바다 일 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니 돼지를 잡는 건 ‘큰일’(각종 관혼상제) 있을 때나 아니면 겨울의 일이었다. 이것이 사람을 둘러싼 제철, 인문의 제철이다. 소고기도 마찬가지다. 횡성 출신 내 후배의 말을 옮긴다.(역시 사투리는 상상해서 인토네이션을 그려보시기 바란다.)“횡성에는 왜 소가 유명한지 알아요? 다 이유가 있어. 겨울 돼봐. 엄청 추워. 그러믄 소가 배때기가 불룩해. 수소가 임신한 줄 안다니까. 농담 아니야. 횡성에 산이 높아. 밤 되믄 추워. 추우니까 소들이 배때기에 기름을 만들어 저장해. 그게 고기 사이사이로 기름기 끼는 거야. 소고기 맛이 없을 수가 없어. 고기에 비계를 깔고 간다니까.”이때 마지막 말, ‘간다니까’를 끝에 길게 끌어올렸다가 급격하게 추락시키는 인토네이션을 상상하시면 대충 횡성 사투리가 되겠다.몸에 비계를 깔고 간다. 그렇다. 횡성뿐 아니라 강원도 소가 대체로 시장에서 비싸다. 일교차다. 늘 더운 게 아니라 밤 되면 추워져야 한다. 사과 같은 과일도 마찬가지다. 일교차가 커야 달고 새콤하니 맛있다. 흔히 과일은 기온이 무조건 더우면 달고 맛있는 줄 아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해 떨어진 저녁과 밤에는 서늘해져야 과일이 “어이쿠, 날씨가 추워지는군. 내 몸에 영양분을 더 저장해야지.” 하면서 분주하게 맛있는 성분을 과육에 농축시킨다. 소도 그렇다. 추우니, 얼어 죽지 않으려고 지방을 만들어낸다. 다 저 살자고 무진 애를 쓰는 것이다. 그걸 우리는 제철의 맛이라고 표현한다. 곧 조개 맛이 좋은 철이 오는데(개나리에서 시작해서 진달래 피면 조개 맛이 제대로 들기 시작한다) 이것은 또 만물의 본능과 관련이 있다. 짝짓기와 수태와 수정 같은 생물학 용어가 필요하다. 암놈이든 수놈이든 살쪄서 좋은 새끼를 만들려고 노력한다.배를 가른 우럭에 소금을 슬슬 뿌리고 마당에서 걸어 말린다. 장대와 마당, 햇살, 거기에 빨래집게로 고정한 우럭이 말라가는 장면을 상상해보라.오늘 주제는 말린 생선이다. 이른바 얼었다 녹았다 하는 생선건조법은 황태와 과메기가 있다. 얼고 녹으면서 조직의 결이 달라진다. 보푸라기가 생길 듯 폭신한 황태의 맛은 이런 겨울 건조에서 이루어진다. 1~2월에 승부가 난다. 과메기도 11월부터 제철 기사가 나오지만, 진짜 자연건조는 1월과 2월이 되어야 가능하다. 얼었다 녹았다 한다는데, 도대체 작년 12월은 영하로 내려가는 날씨가 거의 없었으니 자연건조가 언감생심이었다. 물론 냉풍으로 말리는 과메기도 썩 먹을 만하지만 말이다.이 즈음이면 처가에서 말린 생선이 몇 마리 온다. 이 계절에 아내의 혀가 찾는 음식이 바로 말린 생선이기 때문이다. 처가는 인천인데 겨울 동안 살찌운 생선을 사들여 직접 말린다. 경상도 내륙 출신 부모님을 가진 나로서는 통 모르는 음식이다. 고등어자반이 최고인 줄만 아는 입맛이다. 우리는 차가 없어서 꽁꽁 싸맨 말린 생선을 인천에서 서울까지 지하철 7호선으로 조달한다. 아무리 싸매도 객차 안에서 묘한 냄새가 슬슬 퍼진다. 내 옆 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는다. 홍어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누워서 올 수 있을 것 같다.대개 처가에서 오는 생선은 우럭이다. 까맣고 자잘한 양식이 아니라, 회색빛의 건장한 자연산을 사서 말린다. 우럭이 커지면 색깔도 바뀐다. 바로 청회색이 된다.(우럭 색을 까맣다고만 생각하는 건 자연산을 못 본 때문.) 그런 놈을 사서 배를 가르는데, 일본식으로 하면 생선을 등부터 가르는 간토식 세비라키가 아니고, 배 쪽으로 가르는 간사이식 하라비라키가 되겠다. 배를 갈라 내장을 잘 꺼낸다. 특히 내장을 싸고 있던 뱃살 안쪽의 근육을 소금물로 잘 씻는다. 잘못 말리면 이 부위에서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일부러 이 냄새를 즐기기도 한다. 약간 코리한 말린 향을 즐기는 것이다. 그렇게 배를 가른 우럭에 소금을 슬슬 뿌리고 마당에서 걸어 말린다. 장대와 마당, 햇살, 거기에 빨래집게로 고정한 흰 홑이불, 아니 우럭이 말라가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이놈을 먹자면 우선 쌀뜨물에 좀 담가둔다. 짠 기운을 빼기 위해서다. 좋지 않은 냄새도 좀 지울 수 있다. 워낙 큰놈이라 찜기에 들어가지 않아서 반을 잘라야 할 때도 있지만, 내가 처가에 보내는 송금액이 줄어들면서 우럭 크기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우럭을 껍질이 밑으로 가도록 놓고 실고추며 마늘 다진 것, 청양고추 다진 것 따위를 뿌리고 푹 쪄낸다. 나 같으면 찜통 물을 잡을 때 화이트 와인이건 청주건 뿌리고 후추니 향초니 뭔가를 넣을 텐데 처갓집에서는 그런 거 없다. 맹물! 끝. 우럭이 좋으니 분칠을 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푹 찌면 상에 내는데, 우선 향으로 압도한다. 소갈비찜은 저쪽에서 혼자 손톱을 물어뜯게 만든다. 아아, 소금기 머금은, 빨랫줄에 매달려 온몸에 선샤인 샤워를 한 우럭이여. 먼저 뱃살을 공략한다. 소주를 한 모금 마신 후, 그 알코올 기를 씻어내려는 듯이 뱃살을 집어서 입에 넣는다. 필설의 부족이다. 쫄깃하고 기름지며, 살짝 발효 기운까지 풍기는 그 살점이 입에서 녹는데 내 혀인지 우럭의 살점인지 저들끼리 뭉치고 흩어졌다가 서로 껴안고 지랄을 한다.이런 생선을 직접 말리지 않고 사는 방법도 있다. 인천의 옛 시장에 가면 된다. 6·25 전쟁 당시, 황해도와 북쪽의 피난민들이 남쪽으로 갔다가 올라오면서 들이닥친 곳이 바로 인천이다. 인천역 앞에 군용 텐트를 치고 그들을 수용했다. 이내 피난민 거주마을을 만든 곳이 송현동, 송림동이다. 이 일대에 판자로 집을 짓고 화장실도 없이 피난민들을 수용했다. 당연히 시장이 번성했다. 현대시장이라고 아직도 건재하다. 이 일대는 구 인천에 속하고, 이제 쇠락하여 우울한 기운을 풍긴다. 그래도 닭내장탕 집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어 서민시장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이 시장 안에 인천 사람들이 사랑하는 말린 생선을 판다. 우럭도 있고, 박대도 있다. 우럭보다 더 인천 건어물의 표준이었던 생선. 넙데데한 몸을 가지런히 눕히고 손님을 기다린다. 박대구이를 모르는 인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언젠가 이 시장에서 가서 박대와 우럭 말린 걸 사고, 배다리에 들러서 개코막걸리집에 갔다. 50년은 된 이 전설적인 주점의 아주머니는 한평생을 바쳤고, 허리가 굽었다. 박대구이를 시키면 엄청난 솜씨로 천천히 박대를 지져낸다. 막걸리 한 잔에 박대 살 한 점을 찢어서 입에 넣는데, 아주머니가 등을 굽히고 부엌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시야에 잡혔다. 왈칵 눈물이 났다. 그건 봄 때문이었을 것이다. 봄이다. 봄. 생선 말리기 좋은 봄이다.